처음으로 전쟁이 내게 현실로 다가온 것은 열두 살 때였다. 1993년 1월, 나는 주니어 형과 나보다 한 살 위인 친구 탈로이와 집을 나섰다. 친구들과 함께 마트루종에서 열리는 장기자랑에 나가기 위해서였다. (…) 나는 힙합 춤이 너무나 좋았고 특히 힙합 가사를 배우는 게 즐거웠다. (…) 그날은 기이하리만치 평소와 똑같았다. 흰 구름 사이로 태양이 평화롭게 흘러가고, 새들은 나무 위에서 지저귀고, 나무들은 잔잔한 바람에 맞추어 춤추듯 흔들렸다. ‘이건 말도 안 돼.’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반군이 가까이 있다는 낌새는 전혀 없었는데.’
*해설: 모든 전쟁이 그렇듯 이스마엘과 친구들의 삶에 ‘갑작스럽게 끼어든’ 전쟁은 이제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극한의 변화 속으로 몰고 간다. 소년들에게 각인된 전쟁의 첫 번째 이미지는 ‘어리둥절함’이었다. 이스마엘과 친구들은 사방에서 빗발치듯 날아드는 총알을 피해 죽기살기로 달리고 또 달려야 했다. 이제 소년들 앞에 놓인 것은 춥고 배고프고 외롭고 슬픈 날들뿐이었다.
은신처를 떠나 여행길에 오르자마자 슬픔이 담요처럼 나를 온통 휘감았다. 슬픔은 순식간에 나를 덮쳤다. 나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제 내 앞에 무엇이 놓여 있을지 두려워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는 길가에 잠시 앉아 눈물이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길을 떠났다.
*해설: 소년들에게 정부군이나 반군, 전쟁을 일으킨 어른들의 명분 등은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았다. 이념과 명분을 걷어내고 어린이의 눈으로 마주한 ‘전쟁’의 실상은 한마디로 ‘광기와 파괴’ 그 자체이며 그런 전쟁을 만들어낸 어른들의 세상은 ‘미친 세상’일 뿐이었다.
이 전쟁은 혁명전쟁이며, 부패한 정부로부터 국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이라고 어른들이 얘기하는 것을 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세상에 어떤 해방운동이 무고한 민간인과 어린아이들, 그 어린 여자 아기에게 총을 쏜단 말인가? 이 질문에 대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눈앞에서 목격한 참상들로 머리가 무겁기만 했다. 걸어가는 내내 길도 무섭고, 멀리 있는 산도 무섭고, 길 양쪽의 덤불도 무서웠다. (…) 내가 본 것이 과연 현실인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해설: 명분도 영문도 알 수 없는 어른들의 전쟁 속에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은 이스마엘은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총을 들고 전쟁터를 누비는 소년병이 되어 있었다. 그날로 이스마엘과 그의 친구들은 세상과 인간을 향한 따뜻한 애정과 공감을 배워야 할 ‘어린 시절’을 피비린내 진동하는 광기의 현장에 모조리 빼앗겨버리고 만다.
이제 시체들이 두렵지 않았다. 나는 경멸하는 마음으로 시체들을 발로 차서 뒤집었다. G3와 탄약, 권총을 찾았다. (…) 일과가 점점 군인처럼 변해가면서 나의 편두통도 차츰 가라앉았다. 낮에는 마을 공터에서 축구를 하는 대신 마리화나를 피우고 화약과 코카인을 섞은 ‘브라운-브라운’을 흡입하면서 초소를 지켰다.
*해설: 그 광기의 세상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정말 멀고 험했다. 유니세프를 비롯한 국제 구호 단체의 도움으로 몸은 비록 전쟁터를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전쟁의 기억과 전쟁의 냄새를 떨쳐버리기란 너무나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그 어떤 것도 네 잘못이 아니야.” 에스더가 항상 대화를 마무리 지을 때마다 단호하게 하는 말이었다. 센터의 모든 직원들한테 귀가 닳도록 들었지만-솔직히 말하자면 들을 때마다 진절머리가 났다-그날 처음으로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다고 내가 저질렀던 것에 대한 죄책감이 무뎌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은 견디기 힘든 기억의 짐을 덜어주고 그 일에 대해 생각할 힘을 주었다.
*해설: 이미 세계적으로 수많은 기자들이 소년병 문제를 고발해왔고, 이 어린이들의 삶을 문학의 이름으로 전하기 위해 애쓰는 소설가들도 여럿 있다. 하지만 이 지옥 같은 현장을 온몸으로 견디면서 살아남은 누군가가 1인칭으로 직접 기록한 증언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살아서 이 전쟁의 끝을 보지 못할 게다. 그러니 너희들이 다른 많은 것들을 기억해둘 수 있도록 내 이름은 말하지 않으마. 너희가 이 전쟁에서 살아남거든, 그저 길 가다 만난 노인네로만 나를 기억해다오. 너희는 너희 갈 길을 가야 해.”
*해설: 이스마엘과 친구들이 반군의 습격을 피해 달아나던 길에 만난 어느 노인이 들려주었던 말은 그런 점에서 이스마엘이 왜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준다. 살아서 ‘전쟁의 끝’을 보고 겪은 이스마엘은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쟁의 숨은 얼굴에 대해 들려줄 무언의 사명을 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냥꾼이 있었는데, 원숭이를 잡으러 숲으로 갔단다. 사냥꾼은 이윽고 나뭇가지에 앉은 원숭이를 발견했지. 그런데 이놈의 원숭이가 사냥꾼이 다가오면서 마른 낙엽을 밟아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데도 도망갈 생각도 안 하고 있지 않겠니. 그래서 사냥꾼은 원숭이가 잘 보이는 나무 뒤까지 바짝 다가가 총을 딱 들고 겨누었지. 사냥꾼이 막 방아쇠를 당기려는데, 아 글쎄 원숭이가 이런 소리를 하지 않겠냐. ‘네가 나를 쏘면 네 어머니가 죽게 될 거야. 쏘지 않으면 아버지가 죽을 것이고.’ 그러고는 다시 원래대로 척 앉아가지고 나뭇잎을 썰어 먹으면서 날 쏠 테냐?” (…) 일곱 살 때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답을 찾았다. 하지만 엄마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아무에게도 얘기하지는 않았다. 내가 만약 사냥꾼이라면, 나는 그 원숭이를 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야 다른 사냥꾼들이 다시는 똑같은 곤경에 처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
*해설: 이스마엘이 집으로 돌아가는 기나긴 여정에 대한 기록을 마무리하며 소개하는 ‘원숭이와 사냥꾼’ 이야기는 어린이를 보호하고 지켜주어야 할 어른들이 작디작은 손에 자동소총을 쥐여주고 살인을 하라고 명령하는 오늘의 슬픈 현실에 대한 비극적 알레고리로, 평화를 꿈꾸는 우리들이 내릴 수 있는 작은 선택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져준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