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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문학동네시인선-054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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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5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16쪽 | 150g | 130*224*20mm
ISBN13 9788954624800
ISBN10 8954624804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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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이규리
1955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4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앤디 워홀의 생각』 『뒷모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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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하네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외롭다는 말도 아무때나 쓰면 안 되겠어요

그렇다 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요

어느 때, 어느 곳이나
꼬리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 있겠지만
꼬리를 잡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와중에도 어딘가 아래쪽에선
제 외로움을 지킨 이들이 있어
아침을 만나는 거라고 봐요


관광버스

세 사람 건너면 내게 마이크가 올 차례다
단풍 진 바깥에 눈을 주고 있어도
귀는 노랫가락에 딸려간다
무량수전, 부석, 선묘, 닫집……
이런 단어 몇 개
가랑잎처럼 따라오다
남행열차와 소양강에 휩쓸려가버린다
사뭇 교양적이다가도 돌아가는 길에서는
약속한 듯 모두 급해진다
금방 일치가 된다
생은 늘 뒤에서 덜미를 낚아채니
못 이긴 척 질펀하게 풀어야 할지

차창 밖 멀리 웅크린 산등성이
몇 번 넘고 싶었다
넘어야 할 이유는 많았다, 저 능선들
저녁밥 굶고 모로 누운 가족 등허리 같아
슬쩍 커튼을 가린다
다시 생의 마지막을 소진하듯
헐거운 나이가 허용하는 고성과 방가
외로웠구나, 궂었구나,
돌아보면 어여쁜 것들 천지에서
오늘 함께 젖어보는 거다
가로수 아래 흥건히 떨어지는 단풍잎들도
소진한 것 아니냐
중얼거리는데
어둠처럼 빚쟁이처럼 덜컥,
코앞에 마이크가 도착했다


웃지 마세요 당신,

오랜만에 산책이나 하자고 어머니를 이끌었어요
언젠가 써야 할 사진을 찍어두기 위해서였죠
팔짱을 끼며 과장되게 떠들기도 했지만
이 길을 또 얼마나 걷게 될지

사진관에 들어섰을 때
어르신 한 분이 사진을 찍고 계셨어요
어머니가 급격히 어두워졌어요

나도 저렇게 하는 거냐

이게 요즘 유행이라며
평소에 미리 찍어두는 게 좋다며
나도 젊을 때 찍어둬야겠다며
쫑알대는 내 소리에는 눈도 맞추지 않으시더니

사진사가 검은 보자기를 뒤집어쓰자
우물우물 급히 말씀하셨어요

나 웃으까?

그 표정 쓸쓸하고 복잡해서 아무 말 못했어요

돌아오는 길은 멀고 울퉁불퉁했고

웃지 마세요
그래요 웃지 마세요 당신,


파계사에서 생각이

기와불사, 기와불사 한 장 1만 원
1만 원짜리 기와에 써놓은 내 주소와 이름 위에
제비 똥이 먼저 앉아 있다 하얗게,

1만 원의 지붕을 이고 무량청정 그 법문이 벌써 들리기라도 하는 듯

웃는 돼지머리가 상등품이라 입가를 쭉 당겨 찔러넣은 꼬챙이나
등산길, 도토리나무를 사정없이 두들기는 막대기가
나의 기와불사이다

만당은 무릇 무주공산이어서 공산은 또한 주인 잃은 만당이어서

날렵한 지붕을 떠받치기도 전,
부끄러운 주소와 이름을 제비가 슬쩍 가려준 것일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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