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시인의 숲, 소년의 바다
눈이 많이 내리던 12월의 첫날이었습니다. 약간의 두려움과 기대로 스물두 시간의 비행을 거쳐 도착한 스톡홀름의 첫날 밤엔 피곤함조차 느끼지 못했습니다. 왠지 모르게 우리말과 멀어질 듯한 두려움에 무작정 구겨넣었던 시집들 중에, 처음 펼친 시집이 바로 선생님의 『이슬의 눈』이었지요. 한국을 떠나기 몇 달 전쯤, 작은 클럽에서 공연이 끝난 뒤 어느 착하고 소심한 팬이 저에게 직접 건네주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맡겨놓았던 시집이었습니다. 고백하자면 한국에서는 그 시집을 펼쳐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_루시드폴(p.22 첫번째 편지)
조군의 첫 메일을 보니 외국에 처음 도착했던 날의 마음 풍경이 새삼 황량하게 그려져 있네요. 그래요. 환경이야 달랐지만 나의 처지 역시 비슷했지요. 나는 1966년 6월 중순에 미국에 도착했어요. 물론 그때는 직항 비행기가 없어 하와이와 로스앤젤레스를 거쳐왔습니다. 아시아 사람이라고는 거의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었던 미국 오하이오 주의 중소도시인 데이턴Dayton이라는 곳이었어요.(……)아마 조군보다는 조금 더 힘들지 않았나싶네요. 그날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그 큰 병원에서 나는 밤새 여섯 환자의 죽음을 겪었습니다. _마종기(p.30 두번째 편지)
part 2 아직 끝나지 않은 여행
서둘러 윤석군의 ‘국경의 밤’ 앨범을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첫 결과는 ‘어리둥절함’이었습니다. 내가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나. 아니면 이게 세대 차이라는 것일까. 그러다가 지인이 ‘아주 좋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고 강조하던 생각이 나서 다시 듣기 시작했지요. 그러면서 아, 이 노래들은 혹 대화를 나누려는 외로운 영혼의 숨소리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_마종기(p.112 열일곱번째 편지)
선생님께서 제 음반을 들으시고 적어주신 글들에 감사하기도 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 음악은 대중음악이라 선생님께서 즐겨 들으시는 고전 음악이나 국악과 많이 달라서 당황하셨다는 말씀도 이해가 갑니다. 음악이나 시를 ‘배우는 것’에 대한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어땠는지 돌이켜보았습니다. 저도 음악을 배우거나 악기를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고, 하다못해 대학 시절 ‘화성학’이나 ‘대위법’ 같은 강의도 한 번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_루시드폴(p.116)
part 3 별과 디펜스
윤석군이 귀국을 하면 그간에 공부한 과학자로서의 길을 포기하지 말고 그 전문직을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과학과 예술의 두 가지 길을 병행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기는 하지만 한평생을 걸어볼 만한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 묘한 보완 작용을 할 것입니다. 내가 만일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시인의 길을 오래전에 포기했을 것입니다. _마종기(p.222 서른여섯번째 편지)
선생님께선 저에게 과학과 음악을 놓지 말라고 당부하셨지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는 지금 무언가를 놓치면서 사는 건 아닐까, 그중 하나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깊어집니다. 고국에서 친구, 가족, 사랑하는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절실해졌습니다. 그리고 동료들과의 음악 연주, 협연, 술자리, 나의 음악적 발전, 이런 모든 것들을 더이상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지요. 어쩌면 고향에서의 휴식이 제 생각을 바꾸어놓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해야 할 일들을 최선을 다해서 마무리하고 떠나고 싶습니다. _루시드폴(p.236 서른아홉번째 편지)
part 4 손끝에는…… 봄
저는 이제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음악도 마음껏 하고, 고국의 음식도 마음껏 먹고, 우리나라 말로 말하고 싸우고 울고 웃으며 살기 위해 돌아갑니다. 지금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우울하고 슬픈 소식들이 더 많습니다. 지금껏 멀리서 듣고 보아온 소식들을 피부로 느끼기에는 저는 너무 바쁘고 또 멀리에만 있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그 소식 한가운데에서 부대끼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어쩌면 거리에서, 투표함 앞에서, 식당에서, 술집에서, 집 안에서, 운동장 안에서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들 속에서 한 사람으로 살아가겠지요. 그때그때 느끼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생각하는 것들을 노래로 만들고 부르겠지요. _루시드폴(p.279 마흔여섯번째 편지)
이제 고국에서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을 만나고 한국 음식을 먹고…… 윤석군의 메일을 읽으며 나는 천천히 목이 메어왔습니다. 축하의 의미고 또 한편으로는 미련한 내 아쉬움 때문이었겠지요. 모쪼록 못내 사랑하는 고국에서 무엇이든 마음 두고 있는 것을, 매일의 생활을 사랑하고 즐기세요.(……)윤석군의 메일에서 좋은 음악인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지는 않고 더 많이 보고 느끼고 생각해야겠다’는 말에 찬성입니다. 단지 그 공부가 윤석군이 전공한 생명공학 계통이라면요. 그러나 넓은 의미로 우리가 좋은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책도 많이 읽고 다른 분야의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깊이 알아보는 것, 그것도 광의의 공부라고 한다면 그것을 게을리하겠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모든 예술은 결국 상통한다는 것을 날이 갈수록 더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_마종기(p.281 마흔일곱번째 편지)
선생님의 말씀 깊이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요.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것이 제 음악과 노래의 힘이 될 것입니다. 언젠가 마음속으로 누군가가 네가 사는 목표가 뭐냐는 질문을 한다면, 저는 ‘knowing’이라고 대답하리라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알아가는 것, 깨달아가는 것, 무언가를 수동적으로 배운다기보다는 자극에 반응하는 내 내부의 앎. 이것이 저를 밀어가는 힘이자 목표라고 여겼어요. _루시드폴 (p.285 마흔여덟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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