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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 2000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동인문학상-31이동
리뷰 총점8.3 리뷰 20건 | 판매지수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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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00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41쪽 | 148*210*30mm
ISBN13 9788982812958
ISBN10 8982812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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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이 책은 저자 이문구의 7년 만의 외출이다. 1991년에 발표하여 제9회 <흙의 문예상>을 수상한 『장곡리 고용나무』와 함께 8편의 '나무' 연작 단편들을 모았다. 90년대의 농촌 풍경과 그 속에서의 대단할 것도, 누추할 것도 없는 사람살이를 날카로운 풍자와 풍성한 해학으로 그려내고 있다.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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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있는 날은 으레 점심 나절이 기울어질 만해서부터 바람결과 함께 물이 설레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수채가 되살아나고 뒤미쳐서 파란이 일기 시작하면, 물결마다 타는 듯이 이글대며 반짝이는 서슬에 누구도 저 먼저 실눈을 뜨지 않고는 물녘을 바라다 볼 수가 없었다.
--- p.157
제목으로 쓰인 나무는 나무이되 나무 같지 않은 나무이지요. 그렇다면 덩굴이냐, 덩굴도 아니지요. 풀 같기도 한데 풀도 아니고 그러나 숲을 이루는 데는 제 나름대로 역할을 하는 나무이지요. 꼭 소나무나 전나무, 낙엽송처럼 굵고 우뚝한 황장목 같은 근사한 나무만이 숲을 이루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 가치가 희미한, 그러나 자기 줏대와 고집은 뚜렷한 사람들의 이야깁니다. 돈 없고 힘 없는 일년살이들도 숲을 이루는 데는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 p.
'시방 뭔 소리여. 저수지 옆댕이루 왔다는 소문 듣구 대번에 알아본 사람버러. 앞으루 땜이 하나 더 생기면 그 물은 농업용수로만 쓰게 되니께 각종 위락시설이 쫙 들어슬껴. 앞으로 월마까장 뛸는지 암두 물르는 디니께 암말두 말구 몇 년만 더 붙잡구 있어. 거기 존 디여. 존 디루 잘 골랐다니께.'
--- p.186
망연한 눈으로물 위의 달빛에 빠져 다링 이우는 줄도 모르고 있던 그는 갑자기 달빛에서 헤어나 물이 사방에서 금을 긋고 있는 기스락까지 물 위를 모조리 쓸어보았다. 없었다. 밤낮으로 늘 있던 것들이, 그리하여 지금 이 시간에도 반드시 그렇게들 있어야 마땅한 것들이 없었다. 어쩐지 처음부터 어디가 허전하고 어느 구석인가 굻은 듯한 느낌이 드문드문 묻어나서 거칫거리었던 장본도 바로 그것들이 보이지 않은 탓이었던 것을. 그는 그제서야 새삼스럽게 그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 p.171
네가 그러는 목적이 뭔데? 종구가 한마디로 잘라서 묻자 은산이도 한마디로 잘라서 대답하였다. 우선 두 가지만 얘기헐까. 하나는 이웃과의 공동체 적인 생활을 위해 나를 희생하자는 것. 내가 장인 영감더러 도로 포장 공사가 싸게 끝나서 이웃 사람들이 쾌적한 환경을 누리도록 길가의 산소를 빨리 옮겨 모시라구 이냥 자주 와서 말씀드리는 것두 다 그거 아닌감. 그러구 또하나, 유아르가 국회에서 비준을 못 받게끔 끝까지 투쟁하여 우리 농민들이 외국의 농민들한테서 주체적인 농권을 되찾게 하는 것. 그래서 너한테 돌아오는 게 뭐냐구? 그야... 말하자면 국가와 민족의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산다-, 뭐 대충 그런 수준이지 뭐.
--- p.220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희망은 역시 자라나는 아이들뿐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던 것이다. 그는 문득 꾸지뽕나무를 쳐다보았다. 까치 둥지가 어느 때보다도 잘 보였다. 만약 저마저두 없었더라면 이냥 오래 가는 가물에, 이냥 더디 가는 더위를 워치게 견딜 뻔했을겨. 전은 까치둥지를 바라보며 내 너를 보아서 가마, 하고 정한 다음 웃는 낯으로 일렀다.(중략)'시방버텀 열심히 허거라. 내년 봄이면 둥지 하나가 더 생길텐디, 그늠은 니꺼다.'
--- p.153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이문구의 신작 소설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가 출간되었다. 『유자소전』(1993) 이후 7년 만이다. 이번 소설집에는 1991년에 발표하여 제9회 ‘흙의 문예상’을 수상한 「장곡리 고욤나무」를 비롯한 8편의 ‘나무’ 연작 단편들이 실려 있다(「더더대를 찾아서」 역시 ‘―나무’ 제목이 붙어 있지 않다 뿐, 같은 ‘나무’ 연작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홍시의 붉은 단물을 쏙쏙 빨아 삼키듯 읽어가게 하는 문체의 힘.
이문구의 문학세계를 특징짓는 가장 강력한 자원은 충청도 사투리로 이루어진 문체다. 유려한 토박이말과 생생한 입말이 살아 숨쉬고, 곳곳에서 날카로운 풍자와 풍유가 번뜩이는 그의 문장은 흐르는 물처럼 막힘이 없이 유장하다. 그의 문장에선 씹으면 씹을수록 깊은 ‘말맛’이 느껴진다. 이문구 특유의 독특한 입담은 이번 소설집에서도 예외 없이 빛을 발하고 있다. 각 작품에 등장하는 농촌의 갑남을녀, “수더분하면서도 고집스럽고, 학식은 짧지만 제반 일상사에서 경우 하나는 깍듯하게 바”른 그들이 벌이는 어깃장과 대거리의 입씨름판은 우리네 농촌의 토속적인 분위기를 현장감 있게 담아낸다. 소설가 신경숙 씨는 이문구의 문체를 두고 “홍시의 붉은 단물을 쏙쏙 빨아 삼키듯 읽어가게 하는 힘”이 있다고 했거니와 그 진경이 이번 소설집에서도 약여하다.

“농촌 최후의 시인”이라는 이문구에 대한 평가(유종호)가 말해주듯,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에 실린 8편의 소설 역시 농투성이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그리하여 이번 소설집에서 그리는 농촌의 세태는 『관촌수필』이나 『우리동네』의 그것과는 세월의 간격만큼이나 다르지만, 그 속에서 사람살이의 차등 없는 존엄이나 줏대를 보아내는 작가의 시선은 일이관지하며 여전히 깊고 의뭉하다.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우루과이라운드 등 급변하는 세상 풍파에 휩쓸리고, 휴대폰과 러브 호텔, 노래방 등 몰려드는 도시 문명의 홍수 속에 몸살을 앓는 90년대의 농촌 현실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지는 한편으로, 알 것 다 알고 “제 할말 다 하고 사는” 늘 그만큼의 그들(우리들)이 이번 소설집 속에는 있다.

이 소설집에 실린 8편의 단편 중 7편의 제목엔 전부 ‘나무’가 들어 있다. 그러나 제목에 나오는 나무들은 우리가 흔히 ‘나무’ 하면 떠올리는 소나무나 전나무같이 크고 우뚝한 나무가 아니라 싸리나무, 으름나무, 고욤나무 등 이름조차 낯설고 생김새도 볼품없으며 그다지 쓸모도 없어 보이는 나무 같지도 않은 나무들이다. 작품 속에 나오는 인물들 역시 이 나무들처럼 ‘존재도 희미한’ 농투성이 갑남을녀일 뿐이다. 그러나 이들 나무 같지도 않은 나무들의 삶은 작가 이문구에 의해 저마다의 존엄과 줏대를 유감없이 드러내며 사소한 듯 사소하지 않은 인간 진실의 국면을 풍성하게 열어 보인다.

회원리뷰 (20건) 리뷰 총점8.3

혜택 및 유의사항?
나무이되 나무가 아닌 나무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초* | 2015.04.01 | 추천9 | 댓글12 리뷰제목
요즘 들어 이문구 작가의 작품들을 찾아서 읽고 있다. 1970년대 이전 산업화 시기의 농촌을 묘사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젖게 했던 [관촌수필] 이나, 새마을운동으로 변모된 농촌의 또 다른 모습을 그렸던 [우리동네]가 그것이었다. 한 작품을 읽고서 그 작품과 연관된 또 다른 작품을 찾아서 읽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읽었던 작품에 대한 아쉬움이거나, 아니면;
리뷰제목

요즘 들어 이문구 작가의 작품들을 찾아서 읽고 있다. 1970년대 이전 산업화 시기의 농촌을 묘사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젖게 했던 [관촌수필] 이나, 새마을운동으로 변모된 농촌의 또 다른 모습을 그렸던 [우리동네]가 그것이었다. 한 작품을 읽고서 그 작품과 연관된 또 다른 작품을 찾아서 읽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읽었던 작품에 대한 아쉬움이거나, 아니면 그 작품의 재미에 푹 빠져서 인지도 모른다. 각 작품집은 전혀 다른 작품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 모인 연작소설들 이었지만, 작품집들 또한 다른 듯 하면서도 후속작품이라도 되는 양 별개의 작품으로만 읽히지는 않았다. 1990년대 영악해진 농민과 삭막해진 농촌풍경을 다루었다는 이 책 [내 몸은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역시 이전에 읽은 [관촌수필]이나 [우리동네]와 전혀 관계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연작소설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 책 역시 8개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형식 면에서 예전에 읽었던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평리, 장석리, 장천리, 장곡리 등 고향마을 이곳 저곳에 있을 법한 동네이름과 우리들이 익히 들어보았던 찔레나무, 개암나무, 싸리나무, 고욤나무와 같은 나무이름들이 묘한 친근감을 주고 있다. 작품이 그려지는 시기는 WTO IMF, 우루과이라운드 등으로 급변하고, 또한 휴대폰이나 노래방, 티켓다방 등 밀려드는 도시문명의 홍수 속에서 몸살을 앓으며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농촌의 모습이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은 이전의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그것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작가는 작품 제목으로 쓰인 나무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제목으로 쓰인 나무는 나무이되 나무 같지 않은 나무이지요. 그렇다면 덩굴이냐, 덩굴도 아니지요. 풀 같기도 한데 풀도 아니고 그러나 숲을 이루는 데는 제 나름대로 역할을 하는 나무이지요. 꼭 소나무나 전나무, 낙엽송처럼 굵고 우뚝한 황장목 같은 근사한 나무만이 숲을 이루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 가치가 희미한, 그러나 자기 줏대와 고집은 뚜렷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돈 없고 힘 없는 일년살이들도 숲을 이루는 데는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화살나무, 소태나무, 으름나무 같이 이름조차 낯설고 그다지 쓸모도 없어 보이는 나무 같지도 않은 나무들처럼, 작품 속에 나오는 사람들 역시 존재도 희미한 농촌의 갑남을녀 일 뿐이다. 그렇지만 이런 나무들이 숲을 이루는데 꼭 필요하듯이, 작품 속 인물들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농촌의 바로 우리 이웃들 이다.

 

이문구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을 때부터 뜻을 한참이나 생각하게 만들기도 했던 충청도 토속어는 이 작품에서도 어김없다. 처음에는 다소 애매한 뜻을 한참이나 생각하기도 했지만, 읽을수록 어렸을 적 동네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는 여전했다. 작가가 보여주는 토속문학의 힘이, 농촌소설이란 바로 그런 바탕 위에서 쓰여질 때, 더 많은 공감과 감흥을 주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왜 이 작품집의 제목이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이고, 제목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찾아보니 이 제목은 김명인 시인의 [의자]라는 시詩의 한 구절이라고 한다.

 

창고에서 의자를 꺼내

처마 밑 계단에 얹어놓고 진종일

서성거려온 내 몸에도 앉기를 권했다.

와서 앉으렴,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때로는 창고 구석에 처박혀

어둠을 주인으로 섬기기도 했다.

마른장마에 잔 비 뿌리다 마는 오늘

어느새 다 자란 저 벼들을 보면

들판의 주인은 바람인가

온 다리가 휘청거리면서도 바람에게

의자를 내 주는 것은

그 무게로 벼를 익히는 것이라 깨닫는다.

흔들리는 생각이 저절로 무거워져

의자를 이마 높이로 받들고 싶어질 때

저쪽 구산 자락은 훨씬 이전부터 정지의 자세로

지그시 뒷발을 내리고 파도를 등에 업는 것을 본다.

우리에게 어떤 안식이 있느냐고 네가

네 번째 나에게 묻는다.

모든 것을 부인한 한낮인데 부지런한

낮 닭이 어디선가 길게 또 운다.

아무도 없는데 무엇인가 내 어깨에 걸터앉아

하루 종일 힘겹게 흔들린다.

- [의자] 전문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여전히 흔들리며 힘들게 산다. 바람에 흔들리는 벼들도 바람이 힘들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래서 의자를 내 주고 싶었나.. 내 몸 역시 바람처럼 흔들리며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기에 힘이 들고, 이제는 앉아서 쉴 의자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새천년의 농촌을 찾아온 각종 라운드와 도시문명의 홍수 역시 우리들의 이웃들을 서 있기도 힘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가는 의자가 필요했고, 김명인 시인이 그 의자를 주었는지 모른다.

댓글 12 9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9
존경받는 원로작가의 말년의 글모음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자**국 | 2012.03.28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예전에 읽었던 책이다. 몇 년전에 성석재씨의 소설을 자주 접했는데 문득 이문구씨의 별세소식을 소설로 알리며 무척 슬퍼하던글이 있어 언젠가 다시 한 번 읽어보아야겠다 생각했었는데 지금에서야 실천한다. 이문구씨의 소설을 다시 읽으니 새로산 소설책을 읽는 느낌이랄까 예전에 읽었던 내용은 하나도 기억에 남는게 없었다. 내 사랑 백석 이라는 책을 김자야할머니가 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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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던 책이다.

몇 년전에 성석재씨의 소설을 자주 접했는데 문득 이문구씨의 별세소식을 소설로 알리며

무척 슬퍼하던글이 있어 언젠가 다시 한 번 읽어보아야겠다 생각했었는데 지금에서야 실천한다.

이문구씨의 소설을 다시 읽으니 새로산 소설책을 읽는 느낌이랄까

예전에 읽었던 내용은 하나도 기억에 남는게 없었다.

내 사랑 백석 이라는 책을 김자야할머니가 쓰셨다 성북동 길상사와 관련된 노인이신데

그 분의 글을 읽으니 문체가 도저히 요즘 사람들의 느낌으로는 읽기에 좀 예전투가 많아 좋은 글인줄 그리고 애절한 사연인줄은 알면서도 왠지 가까이 가기가 어려웠다.

난 이문열씨나 황석영씨 성석재씨까지는 동감을 표하지만 글쎼 이문구씨는 태백산맥의 조정래씨나 토지의 박경리씨의 느낌으로 읽어야지 이해가 되는 조금은 오래된 문체가 느끼기가 약간은 힘들었다.

농촌문제나 사회문제 복지문제에 대해 이 시대의 소외된 사람들의 언어로 풀어쓴 것이 돋보이며

성석재씨가 슬퍼할만도 한 좋은 작가이신 것 같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도 아주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실천하니

좋은 느낌이 더욱 새로웠다.

 이 책은 충청도 사투리로 구성되는 농투성이 들의 마음의 풍경이다. 괴팍하고 뒤퉁맞으면서도 세사으이 범사에 있어 자기 주견이 뚜렷한 사람들.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속의 경험을 통해 삶의 지혜를 체득한 사람들, 삶의 문리를 꺠친 사람들, 이리저리 말휘갑을 치며 궁지를 빠져나가는 능청스런 사람들 억압적이거나 허풍스런 관리들과 도시 사람들을 향해 혹은 그들의 논리에 대해 또박또박 이치를 따져 묻는, 겉으로는 헐렁해 보여도 속으로는 야무지기 이를 데 없는 고집스럽고 소박한 사람들의 이야기

정말 향토적인 색채가 물씬 풍기는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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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걷고 있는가 혹은 서 있는가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w***e | 2005.09.16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사실 이문구님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이자 번역가이신 이윤기님이 최근에 나온 신작에서 이문구님의 ‘관촌수필’과 바로 이 책,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를 칭찬하셨기 때문에 읽게 되었다. 이문구님은 거의 모든 작품이 ‘충청도’와 연관이 있다. 특이한 것이다. 대부분 소설의 무대는 경상도나 전라도, 혹은 강원도 두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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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문구님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이자 번역가이신 이윤기님이 최근에 나온 신작에서 이문구님의 ‘관촌수필’과 바로 이 책,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를 칭찬하셨기 때문에 읽게 되었다. 이문구님은 거의 모든 작품이 ‘충청도’와 연관이 있다. 특이한 것이다. 대부분 소설의 무대는 경상도나 전라도, 혹은 강원도 두메산골이 많다. 그만큼 이런 저런 사연도 많고 여기저기서 흘러들어온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청도는 전체가 모두 육지로만 막힌 지역이라 별로 이야깃거리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충청도를 ‘멍청도’라고 비하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충청도가 사방이 육지로 막혀있으니 거기에 사는 사람들도 뭔가 꽉 막혀 있을 거라는 편견이 있는가 보다. 게다가 충청도 사투리가 워낙에 또 느리지 않는가. 하지만 충청도 사투리는 느린 게 아니라 고도의 함축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또한 최근에 밝혀지지 않았나. 경상도나 전라도나 충청도나 강원도나 제주도 까지 모두 다 사람이 사는 곳이긴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소설의 제목에 나와 있듯이 여러 가지 나무들이 자라고 있기는 매한가지다. 이 땅 어느 곳에든지 이런 나무들이 없을까. 다 같은 나무들이고 다 같은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여기 대한민국이 아니던가. 여기가 미국처럼 넓은 곳도 아니고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뒤섞여 사는 곳도 아니니 이문구님의 소설은 그렇게 잔잔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어찌 생각하면 각각의 단편들이 그냥 드라마 ‘전원일기’의 한 편을 본 것 같은 느낌도 있지만 이문구님의 시도는 새롭고, 새롭고 또 새롭다. 책 뒷면에 나와 있는 대로 언어로는 미학의 단계에 접어든 경지가 된 것 같다. 이문구님의 언어는 그만큼 예술적이면서도 정리가 잘 되어있다. 그러면서도 예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우리가 사는 모습, 우리가 걸어가야 할 그런 모습들을 잘 보여주었다. 우리는 여전히 걸어가야 하고 혹은 서 있어야 한다. 그건 마치 살아서 숨을 쉬는 것과도 같다. 어떤 사람은 오래 걷고 조금 쉬다가 다시 걷는다. 또 어떤 사람은 많이 쉬다가 조금 걷고 또 쉰다. 그러나 누가 잘한 거고 누가 못한 것이라는 건 성립되지 않는 논리다. 그저 충청도 어느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상적인 일처럼, 우리는 여전히 걸어가거나 서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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