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요제프 K를 모함했음이 분명하다.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어느 날 아침 체포되었으니 말이다. 그에게 방을 세놓은 그루바흐 부인의 가정부는 매일 아침 8시면 그에게 아침 식사를 가져다주곤 했는데 이날따라 오지 않았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 순간 그는 화도 나고 배도 고파 초인종을 울렸다. 금방 노크 소리가 나더니 그 셋집 건물에서 전혀 본 적이 없는 사내가 불쑥 들어왔다. (……) 「당신 누구요?」 K는 그렇게 물으면서 얼른 침대에서 몸을 반쯤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사나이는 그의 질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나타난 것을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는 듯한 태도로 오히려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초인종을 울렸잖소?」 「안나한테 아침 식사를 가져오라는 뜻이었오.」 K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대체 이 사내가 누굴까 생각하며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사내는 그의 눈길을 그리 오래 상대해 주지 않고 몸을 돌려 문을 조금 열더니 문 바로 뒤에 서 있는 듯한 누군가에게 말했다. 「이 친구가 안나더러 아침을 갖다달라는군.」 순간 옆방에서 짧은 너털웃음소리가 들렸다.---p.10
화가의 도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포기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게다가 화가가 주겠다는 도움은 변호사의 도움보다 훨씬 덜 의심스러웠다. (……) 화가는 자기 의자를 침대 쪽으로 바싹 당겨 놓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한테 먼저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군요. 당신은 어떤 종류의 석방을 원하죠? 세 가지 방식이 있죠. 즉 실제 무죄 판결, 표면상의 무죄 판결, 판결 지연이죠. 실제 석방이 물론 가장 좋죠. 하지만 이런 방식의 석방까지는 내 힘이 닿지 않습니다. 내 생각에 실제 무죄 판결을 이끌어 낼 만큼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없어요. 결정적인 것은 십중팔구 피고의 무죄일 뿐이죠. 죄를 짓지 않았으니까 오로지 당신의 그 무죄에 기대를 거는 것이 좋을 겁니다. 이 경우 당신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의 도움도 필요치 않아요.」---p.194
「그림들을 다 챙겨 놓으시오.」 그는 화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내일 내 사환이 와서 가져갈 거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화가가 말했다. 「짐꾼을 하나 불러서 당신에게 딸려 보낼게요.」 그 말과 함께 침대 위로 몸을 구부려 문을 열었다. 신경 쓸 거 없이 그냥 침대 위로 올라가세요.」 K는 사실 이 말이 없었어도 자기 마음대로 할 생각이었다. 그는 벌써 한쪽 발을 침대 한중간에 올려놓았다. 순간 그는 열린 문으로 밖을 보고는 얼른 발을 거두어들였다. 「저게 뭐죠?」 그는 화가에게 물었다. 「뭘 가지고 그렇게 놀랍니까?」 화가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법원 사무국이죠. 아니, 여기에 법원 사무국이 있는 걸 몰랐나요? 법원 사무국은 다락 층마다 다 있는데, 여기라고 없으라는 법 있겠소? 내 아틀리에도 사실은 법원 겁니다. 법원에서 내게 쓰라고 내준 거죠.」K가 놀란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 때문에, 법원 사정을 전혀 모르는 자신 때문에 놀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