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4년 06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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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76쪽 | 652g | 153*224*22mm |
ISBN13 | 9788958287681 |
ISBN10 | 8958287683 |
발행일 | 2014년 06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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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76쪽 | 652g | 153*224*22mm |
ISBN13 | 9788958287681 |
ISBN10 | 8958287683 |
머리말 4 1부 근대국가의 수립, 근대인의 생활 방식 ?1 단발이 이야기하는 새로운 시대 12 ?2 민중이 있고 국가가 있는가, 국가가 있고 민중이 있는가 24 ?3 조선이 나아갈 길은 34 ?4 조선을 둘러싼 청과 일본의 전쟁 44 ?5 제국주의에 맞선 아시아 연대 56 2부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 지배와 해방 투쟁 ?6 러일전쟁과 일본의 한국 식민지화 68 ?7 일본, 무력으로 한국을 지배하다 79 ?8 저항하는 사람들 91 ?9 식민지 시대 경성의 사람들 102 10 동아시아 민중이 함께하다 112 11 중국 혁명의 뜨거운 열기 124 3부 전쟁, 그리고 평화를 향한 긴 도정 12 일본의 침략에 한국과 중국이 손을 잡다 138 13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내몰리다 149 14 아시아 사람들이 고통받다 160 15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 171 16 동족 간의 비극, 6·25전쟁 184 17 미국이 패배한 베트남전쟁 195 18 한일조약, 남은 문제들 206 19 할머니들의 눈물이 아직도 흐른다 216 4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발전 20 남녀평등을 향한 긴 여정 230 21 반핵 평화를 추구하는 일본 시민운동 241 22 1970년대 한반도의 남과 북 253 23 고도성장으로 생활이 변하다 263 24 ‘산업 전사’의 땀과 눈물이 한국 경제를 일으키다 273 25 반복되는 교과서 문제와 시민운동 283 26 1987년 6월, 민주주의를 외치다 294 5부 평화 공존의 동아시아를 위하여 27 ‘생명이야말로 보물’이라는 오키나와의 절규 308 28 주한 미군과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 319 29 휴전선을 넘어 철마는 달리고 싶다 329 30 다문화 공생 사회를 지향하는 한국과 일본 339 31 독도와 다케시마 349 맺음말 360 참고 문헌 365 찾아보기 371 자료 제공 375 |
일본 열도에서는 4세기경부터 흩어져 있던 정치 집단이 강력한 지배자 아래 통합되고 있었다. 이들 중에서 야마토 지방의 호족들이 중심이 되어 세운 국가가 야마토 정권이다. 오사카 주변에는 거대한 무덤들이 흩어져 있는데, 이 무덤들은 야마토 정권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무덤을 만드는 데 수십만 명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보아 야마토 정권 중앙집건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상투튼 머리를 두드려 보면 / 고리타분한 소리가 나고
단발한 머리를 두드려 보면 / 문명 개화의 소리가 난다네
1873년경 신문은 도쿄 주민 가운데 7할이 상투를 하고 3할은 단발을 했다고 전한다. 단발한 여성들도 나타났는데, 정부가 여성의 단발은 금지했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국민으로는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화 세력의 근대화 정책 추진에 반발한 대표적인 세력이 보수적인 유학자들이었다. 양반과 평민의 구별이 엄연하다고 생각하던 이들은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자 위기의식에 빠졌다. 여기에 왕비가 일본인 공사를 비롯한 무리에게 죽임을 당한 데 이어 단발령까지 시행되자 유학자들은 전국적으로 의병을 조직해 들고 일어났다.
조선 여성은 일본처럼 단발령의 대상이 아니었다. 서울에 단발을 한 여성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20년대 초다. 엄청난 용기를 낸 일이었지만 남성들은 구역질이 난다고 비아냥댔다. 가부장 문화에 젖은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은 달랐던 것이다. 그렇지만 점점 단발을 하는 여성이 늘어났다. 사회에 진출하는 여성이 늘어나고 의식이 바뀌어 갔기 때문이다.
우에키가 자유민권을 넓히려는 뜻은 민중이 국가의 일꾼으로서 좀 더 자각하도록 해야 한다는데 있었다. 그는 국가의 일꾼으로 자각한 사람을 기르는 것, 즉 국민을 만들어 내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면에서 후쿠자와와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자유민권운동 지도자들에게 공통으로 보인다.
전라도 태인군 산외면 동곡 거주, 농업, 평민, 피고 전봉준 41세
위에 기록한 자 전봉준에 형사 피고 사건을 심문하니 ... 피고 전봉준을 사형에 처한다.
- 법무아문 대신 서광범
1905년 7월 일본과 미국은 일본이 미국의 필리핀 통치를 인정하는 대신 미국은 일본이 한국을 보호국화하는 것을 승인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었다. 이어 일본은 8월에 영일동맹을 개정해 영국도 일본의 한국 보호권을 인정하게 했다. 1907년에는 이본과 프랑스가 협약을 맺어 프랑스의 베트남 지배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서로 승인했다. 같은 해에 러시아도 일본과 협약을 맺어 러시아가 외몽골을 지배하고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는 것을 서로 승인했다.
평양에 있던 대성학교의 역사교사는 시험문제로 국권회복의 방법을 물었고 폭탄과 암살이 최선책이라는 답안에 만점을 주었다. 이를 안 총독부에서는 학교를 폐쇄시켰다.
공장법은 아동의 취업을 금지하고 연소자와 부녀자의 취업 시간을 제한하며 야간 업무를 금지하는 등 노동자를 보호하는 내용의 법이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일본 기업의 진출을 위해 이 법을 한국에서는 실시하지 않았다.
미국은 6.25전쟁으로 '제2차 국가 부흥의 계기'를 맞았다고 할 정도로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보았다. 이에 대해 맥아더는 1954년에 한 세미나에서 '한국이 우리를 구해 주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도 6.25전쟁 뒤 격화도니 냉전 체제가 다방면에 걸쳐 큰 변화를 일으켰다. 먼저 유엔군의 군수 물자가 공급지가 되면서 '전쟁 특수'라 불릴 만한 경제적 부흥을 이루었다. 일본의 전 수상 요시다 시게루는 6.25전쟁을 두고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193쪽
긴 여정 끝에 일본 여성은 참정권을 획득했다. 일본국 헌법은 여성들에게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그 반대편 그늘에서는 재일 한국인 여성의 평등권, 생존권의 과제가 무겁게 남아 있다. 240쪽
1949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유가와 히데키는 제5후쿠류마루 사건 후 "원자력의 위협에서 인류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과학자의 책무다"하고 신문 지상에 호소했다. 1955년에는 영국의 버트런드 러셀이 아인슈타인과 공동으로 "우리 인류는 멸망을 초래할 것인가, 아니면 전쟁을 포기할 것인가?"하면서 과학자 11명이 핵무기 철폐와 세계 평화 실현을 선언했다. 이 선언에 서명한 유가와를 비롯한 사람드은 평화호소 7인위원회를 만들어 세계를 향해핵무기가 전 인류의 존재를 위협한다고 호소했다. 이 선언을 토대로 1957년에는 캐나다의 퍼그와 시에서 제1회 과학자의회가 열렸다. 1962년 5월에는 자연과학자와 사회과학자가 공동으로 핵무기 철폐를 고민하자는 제1회 과학자 교토 회의도 열렸다. 2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