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뉴스위크〉, 〈가디언〉, 〈일본경제신문〉,〈아사히 신문〉 등 세계의 주요 언론이 잇달아 한국의 인터넷신문인 〈오마이뉴스〉를 보도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사주인 도널드 그레이엄 회장은 그의 집무실로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를 초청했다. 세계신문협회(WAN) 총회장에서도 오연호 대표를 초청해 오마이뉴스의 실험에 대한 주제발표를 들었다. 물론 한국의 KBS, MBC, SBS, 등 대부분의 방송이 오마이뉴스에 대한 다큐멘터리 방송을 내보냈다. 국민은행, 산업은행, KT 등 기업은 물론 외교통상부, 경찰청, 한국능률협회 등 주요기관에서도 오연호 대표의 강연을 요청해 들었다.
오마이뉴스는 2000년 2월 22일 세계최초로 시민기자제를 도입해 창간된 인터넷신문! 그로부터 4년6개월만에 국내 방송, 신문, 통신 등 모든 언론을 통틀어 영향력 6위에 올랐다(시사저널 조사). 또 현직기자들은 “영향력이 가장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언론사”로 오마이뉴스를 3년 연속 1위로 꼽았다.(미디어오늘 한길리서치 공동조사).
이 책은 한 나무꾼 소년의 변신기이다. 테크널로지와 전혀 친숙하지 못했던 한 시골 촌놈이 인터넷 바다에서 수영법을 배우기까지의 변신을 기록하고 있다. 당신도 변신을 꿈꾸는가? 이 책은 자기 혁신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모범 사례를 보여준다.
지리산 옆 산골 마을에서 한 나무꾼 소년이 꿈을 키우며 뛰놀고 있었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동네 친구들이랑 마을 뒷산에 나무를 하러 가곤 했다. 하루는 소나무에 올라가 마른 잔가지를 낫으로 베려다 그만 내 손등을 찍고 말았다. 피가 줄줄 흘렀다. 피범벅이 된 살점이 2센티미터 가량이나 덜렁거렸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의 오른손 손등에는 제법 큰 흉터가 있다. 그 흉터는 그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주말이나 방학 때가 되면 산에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러 다닌 나뭇꾼이었음을 증명하는 몸 안의 유일한 징표다. 유년시절 추억의 집적소이다.
그가 나뭇짐을 지고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할아버지의 냉정한 평가를 받는다. 나뭇짐으로 대문을 밀치고 마당 안으로 들어오면 할아버지는 하루의 노동을 평가했다. ‘잉걸’나무를 한 짐 가득 해오는 날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지만, 손자가 짊어지고 온 것이 ‘생나무’일 때에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오마이뉴스 사이트에는 나무꾼들이 아니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 몇 가지 있다. 그중 대표적인 낱말이 잉걸과 생나무이다. 오마이뉴스에 올라오는 모든 뉴스는 크게 생나무news, 잉걸news 두 가지로 분류된다. 생나무뉴스는 아직 편집부에 의해 공식 기사로 분류되지 않은 것이다. 산에서 막 해온, 땔감으로 바로 쓸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원고료도 없다. 잉걸뉴스는 편집부의 검토를 거쳐 공식기사로 채택된 기사다. 땔감으로 쓸 수 있다는 판정을 받아 불이 붙여진 것들이다. 이때 비로소 원고료가 발생한다고 한다. 나무꾼 소년의 기억의 터전으로 자리 잡았던 낱말이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나무꾼 소년에서 미디어혁명 CEO가 된 오마이뉴스(ohmynews.com) 오연호 대표기자! 그는 1964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미국 리전트 대학에서 저널리즘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학위논문을 준비 중이다. 월간 〈말〉 기자로 10년 이상 활동하면서 진보적 시각과 치밀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독특한 기사를 써왔다. 그는 2000년 2월 22일 설립 자본금 1억원, 상근기자 4명, 뉴스게릴라 727명으로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를 창간했다.
누구나 꿈을 품는다. 열정을 가지고 살 수 있다. 그러나 그 꿈과 열정을 현실 속에서 실현시켜내는 일은 많지 않다. 오마이뉴스는 그것을 해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는 모토는 더 이상 슬로건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그것이 곧 오마이뉴스의 파워다. 그래서 이 책은 통쾌하다. 눈물이 찔끔 난다. 꿈과 열정이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게 배우기만 했던 우리, 그러나 이제 선진국이 우리를 따라배우는 것이 생겨났다. 그게 바로 오마이뉴스다. 지금까지 한국의 언론들은 모두 내수용이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는 국내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세계를 향하고 있다. 영문판 발행과 함께 세계의 시민들이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로 가입해 기사를 쓰고 있다.
오연호 대표와 3명의 뉴스게릴라(시민기자)는 2004년 5월 말 터키의 이스탄불행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세계신문협회(WAN)로부터 오마이뉴스의 실험에 대해 발표해달라는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1,400여 명의 종이신문사 사장들 앞에 섰을 때 그가 당당할 수 있던 이유는 뭘까? 인간 커뮤니케이션 역사에서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소중한 그 무엇을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세계신문협회총회에서 발표를 하고 귀국한 지 며칠 후인 6월 18일 오연호는 미국으로 날아갔다. 샌프란시스코와 워싱턴 디시에서 오마이뉴스의 실험에 무척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지의 부사장 크리스토퍼 슈뢰더는 오연호 대표를 심층 인터뷰한 글을 〈뉴스위크〉인터넷판에 개재하였다. 그 기사의 제목은 이래와 같았다.
Oh Yeon Ho's belief that 'every citizen is a reporter' has changed journalism in South Korea -- and now he's aiming for the world
오연호의'모든 시민은 기자다'는 믿음은 한국의 저널리즘을 바꿔오고 있다. 이제 그는 세계를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