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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떨림

[ 개정판 ]
리뷰 총점8.5 리뷰 6건 | 판매지수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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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뮤지컬 미니 에디션 1월호
작은 출판사 응원 프로젝트 <중쇄를 찍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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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4년 10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97쪽 | 128*188*20mm
ISBN13 9788932916743
ISBN10 893291674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 1999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수상
* 일본 사회의 경직성을 고발한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


이 소설은 한 벨기에 여성이 일본 회사에 취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일본에 대한 나름의 동경을 가지고 있던 이 여성은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 회사라는 조직이 가지는 비인간적인 모순들에 눈을 뜨게 된다. 회의실에서 그녀가 차를 따르며 일본어로 인사를 건넨 것이 일본인에 대한 모욕적인 행위라고 지적받게 되고 그녀의 보고서가 완벽했음에도 불구하고 내용에 대한 검토도 없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완전히 무시당하게 된다.

그녀의 업무는 그녀의 탁월한 외국어 능력, 사안에 대한 분석력에 상관없이 매일 똑같은 서류의 수십 일에 걸친 복사, 숫자들을 다시 베껴 적는 것으로 점점 단순하고 효용 가치가 없는 일로 대체되고 결국 화장실 청소로 전락하게 된다. 그녀가 겪는 모멸감과 잔인성은 그녀의 내면을 황폐화시킨다. 그러나 그녀만의 내적 독백은 유머러스하고 명랑하며 도발적이고 찬란하기까지 하다. 이 소설의 매력은 바로 이런 반어적인 구조에 있다. 날이 감에 따라 외부적인 상황이 비천해질수록 그런 모욕에 맞서는 그녀 내면의 무사태평한 태도, 익살맞은 내레이션은 더욱 고조되며 빛을 발하는 것이다.

엄격한 위계질서하에서 개인의 능력보다는 무조건적인 명령에 일률적으로 따라야 하는 상황, 외국인에 대한 노예와도 같은 대우, 서양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주종에 가까운 복종 관계, 비효율적인 절차와 형식 등이 풍자적인 시선과 철저하게 절제된 문체로 마치 복수하듯이 냉정하게 묘사되고 있다. 부조리에 대한 무자비할 정도의 시니컬한 야유가 압권이다.

현실을 현실보다 더욱 치열하게 그려낸 수작으로 수직적이고 획일화된 사회의 중압감을 피아노 선율 같은 세밀하고 가벼운 터치로 승화시켰다. 작가만의 명징한 통찰력, 감정을 전혀 섞지 않는 차가운 문체가 글의 재미를 더욱 높인다.

저자 소개 (2명)

회원리뷰 (6건) 리뷰 총점8.5

혜택 및 유의사항?
주간우수작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떨리는지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s*******r | 2015.01.04 | 추천4 | 댓글0 리뷰제목
아멜리 노통의 대표작은 <살인자의 건강법>이나 <적의 화장법>이 아니라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 <사랑의 파괴>, 그리고 이 책 <두려움과 떨림>이라고 누차 얘기해 왔다.25세에 데뷔. 이후 1년에 한 권씩 미친듯이 책을 써내는 노통은, 그러나 그 열망과는 달리 작품의 질이 고른 편이 아니다. 어쩔 땐 자기와의 약속(1년에 한 권)을 지키기 위해 억지로 책을 쓰는 건 아닌가;
리뷰제목

아멜리 노통의 대표작은 <살인자의 건강법>이나 <적의 화장법>이 아니라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 <사랑의 파괴>, 그리고 이 책 <두려움과 떨림>이라고 누차 얘기해 왔다.


25세에 데뷔. 이후 1년에 한 권씩 미친듯이 책을 써내는 노통은, 그러나 그 열망과는 달리 작품의 질이 고른 편이 아니다. 어쩔 땐 자기와의 약속(1년에 한 권)을 지키기 위해 억지로 책을 쓰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엉망인 작품도 많다. 그래서 노통의 책을 고를 땐 이 한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그 소설이 노통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했는가 그렇지 않은가. 전자는 대개 '두려움과 떨림'을 안겨줄 만큼 압도적 재미를 선사한다. 후자는, 나 같은 나부랭이가 이런 위대한 작가에게 할 수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쓰레기다.


<두려움과 떨림>은 1990년대 초 일본의 '유미모토'라는 회사에 근무하게 된 노통의 이야기를 다룬다.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최강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1990년대 초의 일본을 보라고. '텐노 헤이카 반자이(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적의 항공 모함으로 달려들던 상명하복의 후예 답게 일본 국민은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에 묵묵히 따랐다. 아무런 의문도 갖지 말 것. 이 개미 군단의 질주가 패전의 핏물이 가득한 땅 위에 세계 최강의 경제를 일으켰다. 


그러나 상명하복, 무조건 적인 복종, 경직된 조직 구조로 대표되는 일본 경제의 핵심은 자유와 자유와 자유의 가치를 누려온 백인 여자에게 개미 지옥과 마찬가지였다. 노통은 그곳을 지옥이라 말하지만 택도 없는 소리! 쇠락한 서구 사회의 백인 여자가 어찌 감히 최강의 일본을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패배자가 숨겨온 복수의 칼날은 새디스트의 채찍이 되어 어리석은 백인 여자에게 태형을 선고한다.


노통은 이 수치스런 형벌을 받아들인다. 왜? 일본을 사랑했으니까.


일본 사람들에게 근대화의 역사는 서양 침략사와 일치한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패배의 추억. 일본은 이 트라우마를 '텐노 헤이카 반자이'(2차 세계 대전)로 치유하려 했으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떨어진 거대한 성기에 강간을 당함으로써 다시 한 번 무릎을 꿇는다. 수 십년간 부들부들 치욕에 떨었던 패배자들, 그들이 경제를 통해 비로소 세계 정복을 완수했으니 그 복수심이 얼마나 대단했겠는가.


반면 노통은 1967년 생. 승자의 기억을 단 한톨도 공유하지 않은 전후 세대다. 그녀는 일본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평생 기억하며 그 곳에서 매료된 압도적 미의식을 평생의 자양분으로 삼는다.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고통을 받아야 하는 운명. 고통을 받을 걸 알면서도 사랑을 할 수 밖에 없는 자의 아이러니.


후부키는 이런 아이러니가 그대로 형상화된 캐릭터다.


180cm가 넘는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우아한 곡선이 아름다운 일본의 고대활을 닮은, 눈부실 정도로 예쁜 여자. 유미모토 사의 유일한 간부급 여직원 후부키는 처음엔 이 낯선 외국인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비극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다. 건방진 백인 여자가 유제품 부서의 '덴시'씨를 위해 기가막힌 보고서를 써준 것이다.


입사한지 한 달도 안된 햇병아리가 감히 수 년에 걸쳐 쌓아올린 나의 커리어를 단번에 앞질러 가겠다고?


'눈보라'라는 이름의 후부키는 양눈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품고 이 건방진 백인 여자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이쯤에서 나는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제목이 갖는 다의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와 90년대를 경험한 보통의 서양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떨림'은 할미꽃 사이에 핀 해바라키 만큼이나 명확하다. 그것은 일본에 대한 두려움. 한 때는 보잘 것 없던 패배자가 어느새 거대하게 자라 과거의 승자를 잔인하게 짓밟으러 다가올 때마다 지표를 울리는 떨림이다.


그러나 노통에게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이상 행동에는 대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연루되어 있다. 노통은 일본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일본의 미에 완전히 매료됐다. 결코 드러내려 하지 않지만 불가항력으로 뿜어져 나오는 우아함. 한 겨울 대나무 위로 소복히 쌓이는 눈 소리 같은 미. 그토록 필사적으로 '모던'을 추구했던 서구 문명이 결코 흉내낼 수 조차 없는 간결함의 정수들. 자라지 못한 정신에 새겨진 미의 얼룩은 아무리 문질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무늬를 남겼다. 이 무늬가 지긋지긋할 정도로 답답하고 끔찍할 만큼 잔인한 나라에 몇 번이고 돌아오게 만든다.


노통은 결국 일본을 떠난다. 아픔을 잊으려 소설에 몰두했고 성공을 거뒀다. 다시 승자가 된 노통은 이제 모든 걸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옛 사랑의 이름을 듣는 순간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다.


1992년, 내 첫 소설이 출간되었다.

1993년, 나는 도쿄로부터 편지 한 장을 받았다.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아멜리 상,

축하해요.


모리 후부키


이 말은 내가 기뻐할 만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어떤 점 때문에 내 심장이 멎었다.


이 말은 일본어로 씌어 있었다. (p147~148)


이것은 상처 투성이 사랑을 닮았다. 이 사랑은 두려울 정도로 아픈 상처를 주지만 그 사랑이 살갗에 닿는 순간 전율이 일 정도의 떨림을 느낄 수 있다. 이 압도적 아름다움은, 두려움이자 떨림이다.

댓글 0 4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4
구매 아멜리 노통브의 두려움과 떨림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여***쥐 | 2019.12.3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아멜리 노통브의 책 여러권을 읽어보고 싶어서 구매했습니다.다른 책들과 다르게 일본 대기업에서 겪은 실제 이야기를 자서전처럼 쓴 책입니다. 끔찍한 현실 속에서도 그녀의 생각 하나하나 대화 하나하나에서 피식하게 됩니다.꽤 재밌어요. 시간이 지나면 다시한번 읽어볼것 같은 책.한 벨기에 여성이 일본 회사에 취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일본에 대한 나름의 동경을 가지고 있던 이;
리뷰제목
아멜리 노통브의 책 여러권을 읽어보고 싶어서 구매했습니다.
다른 책들과 다르게 일본 대기업에서 겪은 실제 이야기를 자서전처럼 쓴 책입니다. 끔찍한 현실 속에서도 그녀의 생각 하나하나 대화 하나하나에서 피식하게 됩니다.
꽤 재밌어요. 시간이 지나면 다시한번 읽어볼것 같은 책.

한 벨기에 여성이 일본 회사에 취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일본에 대한 나름의 동경을 가지고 있던 이 여성은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 회사라는 조직이 가지는 비인간적인 모순들에 눈을 뜨게 된다.
댓글 0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두려움과 떨림”이 이런 의미일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k******1 | 2017.03.13 | 추천2 | 댓글0 리뷰제목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그래도 꽤 열심히 읽은 편이다. 어떤 소설들을 읽었었는지 꼽아 보았더니 ‘살인자의 건강법’, ‘오후 네 시’, 머큐리’, ‘적의 화장법’, ‘로베르 인명사전’, ‘배고픔의 자서전’ 등 벌써 여섯 권이나 읽었다. 이 정도면 선호하는 작가 중 하나라고 얘기해도 무리가 없으리라.  사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그 스토리의 독특함 때문에 찾;
리뷰제목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그래도 꽤 열심히 읽은 편이다. 어떤 소설들을 읽었었는지 꼽아 보았더니 살인자의 건강법’, ‘오후 네 시’, 머큐리’, ‘적의 화장법’, ‘로베르 인명사전’, ‘배고픔의 자서전등 벌써 여섯 권이나 읽었다. 이 정도면 선호하는 작가 중 하나라고 얘기해도 무리가 없으리라.

 

사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그 스토리의 독특함 때문에 찾아 읽곤 했는데, 이 소설 두려움과 떨림은 예상 외로 독특한 스토리를 가진 소설은 아니다. 작가가 되기 전에 일본회사에서 일한 경험을 소설로 엮은 자전적 소설이다. 권위주의로 가득한 일본회사에 입사한 백인 아가씨의 고군분투기라고 하면 대충 요약이 된다.

 

언어 능력 때문에 일본회사에 채용된 백인 아가씨는 직장 내 상사에게 밉보여 며칠을 복사만 하더니, 송장 관리를 담당하게 되고, 다시 출장비 정산을 하는 시간 소모적인 업무에 투입되었다가는 마침내 화장실을 관리하는 업무로 좌천(?)된고 만다. 자유분방한 기업문화에 익숙한 서양 아가씨는 권위주의로 무장한 일본기업의 기업문화와 경직된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를 무자비한 상급자의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하급자의 무기력함으로 표현한다.

 

과거 일본 황실의 의전(儀典), 천황을 알현할 때는 두려움과 떨림의 심정을 느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는 문장 하나에 동양적 권위주의를 고이 간직한 경직된 상명하복식 조직 문화의 비애가 그대로 담겨 있다. 그리고, 그녀는 절대 서양의 기업에서는 경험하지 못할 끔찍한 사건을 시퍼렇게 날 선 칼날 같은 문장들로 난도질한다.

 

어느 날, 우리는 멀리, 산에서 천둥치는 소리를 들었다.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는 오모치 씨였다. 우르릉 쾅쾅 하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우리는 벌써 두려움에 떨며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들 사이로 굴러 떨어지는 부사장의 살덩이를 이기지 못하고 경리부의 문이 노후한 댐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는 사무실 한가운데 멈춰 서서 점심을 달라고 요구하는 식인귀의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후부키 상!

그때 우리는 누가 카르타고의 우상(偶像) 같은 식욕을 가진 뚱보의 제물로 바쳐질지 알게 되었다. 잠시 동안이나마 화살을 피하게 된 사람들이 아주 잠깐 동안 안도감을 느꼈지만, 진심으로 자기 일처럼 느껴 이내 모두들 덜덜 떨고 있었다.

즉시, 몸이 뻣뻣하게 굳은 내 상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자기 앞을 똑바로, 그러니까 내 쪽을, 하지만 나를 보지는 않고 쳐다보았다. 경이로울 정도로 공포감을 억누르고 있는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질 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오모치 씨가 축 늘어진 비계살 사이에 숨겨 두었던 검을 꺼내 그녀의 목을 벨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녀의 머리가 내 쪽으로 떨어지면 나는 그걸 잡아 죽는 날까지 고이고이 간직할 것이다.

아니지.> 나는 합리적으로 생각했다. <그건 다른 시대에나 쓰던 방법이지, 그는 늘 하던 대로 할 거야. 그녀를 자신의 사무실로 부른 뒤 세기적인 힐책을 퍼붓겠지.>

그는 생각보다 더 끔찍했다. 평소보다 더 사디스트적인 기분을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바쳐진 제물이 여성이라서, 그것도 너무도 아름다운 처녀라서 그랬던 것일까? 그가 그녀에게 천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힐책을 퍼부은 곳은 자신의 사무실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경리부의 40명 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서였다.

누구라도, 일본인이라면 더 더욱, 오만하고 고상한 모리 양이라면 한결 더, 이렇게 공개적으로 좌천당하는 것보다 더 모욕적인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괴물은 그녀가 체면을 잃기를 바랐던 것이다.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지신이 지닌 파괴적인 힘의 위력을 미리 음미하기 위해서인 듯, 그가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후부키는 눈썹 하나도 까딱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느 때보다도 눈이 부셨다. 바싹 마른 입술이 떨리기 시작했고, 그의 입에서 우레와 같은 고함소리가 끝을 모르고 쏟아져 나왔다.

도쿄 사람들은 특히 욕을 할 때, 초음속으로 말을 하는 경향이 있다. 부사장은 수도 태생이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불뚱이 뚱보였으니, 목소리에 지방질의 노기(怒氣)가 찌꺼기처럼 꽉 차 있었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해, 나는 그가 내 상사한테 퍼붓고 있는 끝없는 폭언을 거의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록 일본어가 낯설게 들리긴 해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 한 사람에게 너무도 부당한 대우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나한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정말 잔인한 광경이었다. 이 장면이 끝날 수만 있었다면 나는 값비싼 대가라도 치렀을 것이다. 하지만 끝나지 않고 있었다. 고문자의 배에서 나오는 노호(怒號)가 고갈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이런 벌을 받을 만큼 후부키가 도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단 말인가? 나는 결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내 동료를 알고 있었다. 그녀의 능력, 일에 대한 열정, 직업 의식은 보기 드물 정도였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모르지만 틀림없이 대수롭지 않은 잘못이었을 것이다. 또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이 뛰어난 여성이 지니고 있는 탁월한 가치는 고려해야 할 것이다.

내 상사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 하고 궁금해하는 내가 분명히 너무 순진한 것이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그녀가 아무 자책할 일도 하지 않은 경우였다. 오모치 씨는 우두머리였다. 원하기만 하면 그는, 대수롭지 않은 구실이라도 들먹여 모델처럼 생긴 이 처녀를 상대로 자신의 사디스트적인 욕구를 채울 권리가 있었다. 자기 행동을 합리화시킬 필요가 없었다.

갑자기 내가 부사장의 성()생활의 한 단편 정말 부사장이라는 그의 직함에 걸맞은 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처럼 거구인데도 아직 여자와 잠자리를 하는 게 가능할까? 대신 그의 몸집은 소리를 지르고, 이 미녀의 야리한 몸을 고함으로 부들부들 떨게 하는 데는 더 안성맞춤이었다.

분명히, 그는 모리 양을 강간하는 중이었고, 4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가장 저속한 본능을 채우는 것은 육체적 쾌락에다 노출증의 쾌감도 함께 맛보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설명이 얼마나 합당한지, 나는 내 상관의 몸이 내려앉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강인하고 하늘을 찌르는 자긍심을 가진 여자였다. 그런 그녀의 몸이 무너지고 있다면, 그건 그녀가 성적(性的) 공격을 받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녀의 다리가 기진맥진한 정부(情婦)의 다리처럼 주저앉았다. 그녀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내가 오모치 씨의 얘기를 통역하는 동시 통역사였다면, 아마 이렇게 통역했을 것이다.

『그래, 나는 150킬로그램이고 너는 50킬로그램이지, 우리 둘을 합치면 2백 킬로그램이야, 정말 흥분돼. 나는 지방질 때문에 움직이는 게 거북해. 그래서 네가 쾌감을 느끼도록 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거야. 하지만 내 살덩이 덕분에 널 쓰러뜨리고 깔아뭉갤 수 있지. 난 그게 좋아 미치겠어. 특히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이 멍청이들이 있으면 더 그렇지. 제 교만함이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걸, 제가 변명할 입장이 못 되는 걸 보는 게 좋아 미치겠어. 나는 이런 식의 강간을 끔찍이도 즐기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의 성격을 눈치채고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던 건 분명히 아니었다. 내 주변에서, 동료들은 당혹감으로 어쩔 줄 몰랐다. 그들은 할 수 있는 한 시선을 돌리고 자신들의 서류나 컴퓨터 화면 뒤로 수치심을 감추고 있었다.

이제 후부키는 완전히 구부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깡마른 팔꿈치는 책상에 올려져 있었고, 꽉 쥔 주먹이 이마를 받치고 있었다. 부사장의 입에서 불을 뿜으며 나오는 기관총 사격으로 이따금씩 그녀의 가녀린 등이 들썩들썩했다.

다행히도 이런 상황에서 조건 반사적으로 끼어들 만큼 내가 아주 어리석지는 않았다. 그렇게 했다면,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제물의 처지까지 악화시켰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현명하게 모른 척한 걸 내가 절대 자랑스러워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명예를 지키려면 바보처럼 굴어야 할 때가 아주 많다.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하느니 멍청이같이 처신하는 게 낫지 않을까? 지금도 나는 도리(道理)보다 현명함을 택했던 사실을 부끄럽게 느끼고 있다. 누군가 중간에 나서야 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위험을 감수할 리 만무했으니, 내가 희생했어야 했다.

물론, 내 상사는 그런 나를 절대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잘못 생각한 것이다. 우리가 한 것처럼 행동하는 게, 이런 비인간적인 장면을 이렇다 저렇다 말도 못하고 보고만 있는 게, 더 나쁜 건 아니었을까? 권위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우리 모습이 더 나쁜 게 아니었을까?

욕지거리하는 시간이나 재놓을 걸. 그는 뚝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고함소리가 점점 쩌렁쩌렁하게 퍼지는 것 같은 인상까지 받았다. 아직도 더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면, 이거야말로 그 장면이 어떤 호르몬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 주는 것이었다. 성행위의 쾌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성욕을 갈구하는 자신의 몸부림을 보면서 정력이 다시 솟거나 놀라우리만큼 커지는 것을 경험하듯이 부사장은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했고, 그의 고함소리에서 점점 더 에너지가 발산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발생하는 물리적 충격에 그 가련한 여성은 갈수록 제압당하고 있었다.

끝이 날 무렵, 다리의 힘이 쫙 풀리는 장면이 벌어졌다 강간을 당할 때 틀림없이 나타나는 현상처럼, 후부키도 퇴행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가냘픈 목소리가, 여덟 살짜리 소녀의 목소리가 이렇게 신음소리처럼 두 번 울리는 걸 들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오코루나, 오코루나.

이것은 잘못을 했을 때 쓰는 가장 유아적이고 구어체적인 표현 중에서도, 어린 소녀가 아버지한테 대들면서 쓰는 표현, 그러니까 모리 양이 자신의 상사한테 말을 하면서는 결코 쓰지 않을 표현이었는데, <화내지 마, 화내지 마하는 뜻이었다.

이미 토막이 난 뒤 반쯤 입 속으로 들어간 영양(羚羊)이 맹수에게 구해 달라고 하는 것처럼 터무니없는 애원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복종의 원칙을, 윗사람의 말에 대해서는 절대 자기 변호를 할 수 없다는 금지 사항을,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어기고 있었다. 오모치 씨는 처음 들어 본 이 목소리에 약간 당황한 것 같았지만 상관하지 않고 도리어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어쩌면 이런 어린애 같은 태도에 그에게 한층 만족감을 주는 면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 괴물이 장난감에 싫증을 느꼈는지, 아니면 강장제 효과가 있는 이 운동을 하고 나니 배가 고파 마요네즈 더블 샌드위치가 먹고 싶었는지, 자리를 떴다.

경리부는 쥐죽은듯이 조용했다. 나 말고는 아무도 희생자를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녀는 몇 분 간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어설 힘이 생기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도망치듯 사라졌다.”

 

이런 일이 어디 일본기업 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겠는가? 우리도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런 일들을 겪고 있을 것이다. 서양 아가씨가 동양의 문화를 어찌 이해할 수 있겠냐는 쓸데 없는 자존심도 세우지 말고, 늘상 일어나는 일이기에 감각이 무뎌졌다는 변명도 하지 말자. 솔직히 비루한 밥벌이를 걱정해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한 시선을 돌리고 자신들의 서류나 컴퓨터 화면 뒤로 수치심을 감추고 있을뿐인 것이다.

 

갑작스레 먹고 사는 일의 버거움이 견디기 싫어졌다. “오늘은 내일을 위해 거쳐가는 시간일까? 오늘 참으면 내일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어느 자동차 회사의 광고가 무겁게 마음 한 곳을 짓누른다.

 

(BOOK : 2017-008-0196)

댓글 0 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2

한줄평 (4건) 한줄평 총점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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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평점4점
노통브답게 말 한마디 한마디에 ㅃㅕ가 있네요~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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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쥐 | 2019.12.31
구매 평점5점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g******0 | 2018.09.19
평점4점
관료제의 폐해를 위트있게 그려냈네요. 재밌습니다~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블**완 | 2017.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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