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백억이 적어? 얼마면 기꺼이 애국하실 의향인데? 젊은 사람이, 욕심이 과한가봐? 나와 조국에 진 신세를 갚아야지. 사람이 은혜를 모르면 쓰나."
"신세...은혜라... 그런 기억,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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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따윈 날 못 이겨. 넌 이번에도 지게 되어 있고, 난 이기게 되어 있어."
"포기하지 않는 놈과 싸워본 적은 없으시잖아요."
"얘가 말귀를 못 알아듣네. 너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놈과 싸워본 적은 없잖아. 넌, 목이 열두 개쯤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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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배은망덕에다 방자하기 짝이 없는 후레잡놈으로 아주 매장되는 분위기던데, 정말 괜찮겠어?"
"어차피 조국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새끼, 본데 배운데 없는 조국의 후레자식 된 김에 끝까지 쭉! 한번 가보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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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그렇게 뻗대는지나 물어 보자. 이래서 네가 얻는 게 뭐야."
"얻을 게 있어서가 아니라 빼앗기지 않으려고 싸우기도 하네요. 싸우기 싫어도 싸워야만 지키니까 싸우는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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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새끼. 다른 놈들은 내 말에 오류가 보이지 않아서 잠자코 있는 줄 알아? 오류가 있든 없든 무조건 잠자코 있는 거야. 너 같은 놈을 한국선 뭐라는 줄 알아? 버르장머리가 없다, 싸가지 없다, 예의가 없다, 라고 하는 거야. 후레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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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종교가 두갠데 그 중 하나가 돈이야. 그래서 널 포기 못 해. 신앙을 거스르는 일이야."
"제 종교는 명칭이 좀 길어요. 회장님 뜻대로 해주지 않겠다. 결코. 열네 글자나 되네요. 누구의 종교가 강한지, 어디 한 번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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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는 덕에 나도 왕좌에 좀 앉아보게 된 거지만, 대통령이 골백번 바뀌어도 못하는 건 못하는 겁니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던 걸로 아는데요."
"당연하지요. 이렇게 말했으면 당선됐겠습니까? 허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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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저냥 보통의 인력은 필요가 없는데 어쩌란 겁니까. 연봉은 목숨이 붙어있다는 이유로 주는 게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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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들이 대책 없이 살아놓고 이제 나이 찼으니 나라에다 구원해 달랍니다. 구해달란 처지에 까다롭기까지 해요. 덤핑으론 절대 못 간대요. 모자람 없는 조건에 인간적 대우에 정식 루트로만 가겠답니다.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어. 배들이 불러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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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춘 건 없으면서 자아만 있어서는. 불평불만, 분노 말고는 내용도 없는 자아. 실력은 없으면서 실력 없는 사람으로 대접하면 분노합니다. 감히 사회가 나에게 이럴 순 없다, 내 부모가 날 어떻게 키웠는데? 세상에 적응도 못하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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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위로나 하고 다닐 걸 그랬나요? 요즘엔 위로하는 말재주가 큰 돈벌이가 됐습디다. 우리처럼 대놓고 장사하는 정치가보다 그런 것들이 더 얍삽한 장사꾼 같아. 살긴 딱 정치가처럼 먹고 사는데 정치가 명함만 없으면 존경을 받으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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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해도 너무들 딱해요. 개인사에 대통령 하나만 이루면 딱 좋겠는데 싶은 사람들이 지극히 사적인 욕망으로 나오는 게 선거입니다. 열광 다음엔 남 좋은 일. 그 다음은 실망. 충격은 두 배. 정해진 순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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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품고 발을 디디는 인간이 나쁜가요, 디디라고 유혹하는 절벽이 나쁜가요? 나라에 기대를 갖는 국민이 나쁩니까, 기대하게 해서 더욱 아프게 추락하도록 만드는 국가가 나쁩니까? 뭔가 해줄 수 있을 거처럼, 뭔가 열쇠라도 갖고 있는 거처럼 헛된 기대 주지 말란 겁니다. 잔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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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김무정.
이 인간에 대한 세 남자의 소감은 이랬다.
“여태껏 살아온 내 인생을 한 순간에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린 인간을 만났다. 최악의 인연. 욕지거리가 나오게 만드는. 어릴 적 아버지가 해주셨던 말씀이 내내 귓가에서 거치적거렸다. 사나이 가는 길, 뒤돌아봐서는 안 된다. 절대로. 옳은 말인지 그른 말인지 판단을 미루다 난 회복 불가능한 실수를 했고, 알게 되었다. 옳은 말이기도 하고 그른 말이기도 하단 걸. 그러니 결정부터 보았어야 했다는 걸. 판단을 미룬 대가가, 참혹했다.”
“숨이 끊기는 마지막 날, 마지막 순간까지 결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인간. 그때,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묻지 마라. 숨이 끊기는 마지막 날,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는 입을 다물 것이다. 그렇다. 남아 있다. 그것이 내 마지막 자존심이다.”
“걷다 보면 발에 차이곤 하는, 땅바닥에 깔린 흔하디흔한 돌멩이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내 판단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맞고 틀리고 그 중간쯤이라고 해 두자. 걷어차 버리고 싶기도 하고, 주워서 집에 진열해 놓고 싶기도 한, 묘한 돌멩이였다. 뻥 걷어차면 속 시원하게 날아가 버릴 것도 같고, 저걸 차면 내 발도 아플 것만 같아 갈등하게 만드는, 짜증나는 돌멩이.”
세 남자 중 누가 어느 말을 한 건지 사람들은 영원히 알 수 없었다. 누가 어느 말의 주인인지 세 남자의 가족들마저도 끝내 알지 못했다. 그들 중 누구도 입 밖으로는 내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자신한테만 털어놓은 말이었다. 자신한테만 말하는데도, 폐부가 편치 않았다.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