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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벵듸의 눈물

[ 양장 ] 제주 4·3 구술자료 총서-07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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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5년 01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504g | 160*230*18mm
ISBN13 9788946056831
ISBN10 894605683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만벵듸의 눈물』은 제주4·3연구소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진행한 ‘제주4·3 1000인 증언채록 사업’ 과정에서 녹취한 1028명의 증언채록 결과물 가운데 제주시 한림읍에 거주하는 4·3 생존자 13명의 구술을 정리해 엮은 것이다. 당시 한림면(현재 한림읍. 1935년까지는 구우면, 1935년 한림면으로 개칭, 1956년에 한림읍으로 승격)에 살았던 13인의 4·3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한림읍은 한림중학생 공개총살 사건이 일어난 지역이다. 1948년 11월 16일, 제9연대 군인들이 한림중학교 운동장에 학생과 주민들을 강제로 집합시키고 한림중학교 3학년 학생 4명(강두형, 이경혁, 좌태봉, 김계준)을 공개총살 했다. 중산간마을에서 초토화작전이 벌어져 많은 인명들이 학살되기 시작할 즈음인 이때, 총살 장면을 처음 목격한 학생과 주민들은 “동생 같고, 자식 같은 아이들이 죽는 처참한 장면에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말한다.

또한 이 책은 67년 전에 일어난 비극, 제주4·3 사건을 제주 방언으로 그대로 살려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서는 사료로서의 가치를 한층 높였다. 이는 제주에서조차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기록·보존하는 한편, 제주4·3 당시의 상황을 그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제주4·3 구술자료 총서 7권과 8권을 펴내며

1부 드러내지 못한 진실
1. 제주대 7인동지회 활동, 4·3운동 시작이었어요
2. 제주도민이라는 것 때문에 그렇게 타격이 심했어
3. 우리 처갓집만 열다섯 명 희생됐어요
4. 그땐 사상관계는 어디로든 감춰야 했지
5. 행방불명자 가족,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6. 아직도 ‘장발장’ 경감 같은 사람 있습니까

2부 소년의 고통
1. 한림중학생 네 명 전교생 앞에서 가격했어요
2. 중학생이 불붙은 장작으로 구타당했어
3. 형님 둘, 우리 또래 아이덜도 심어단 죽여부럿주

3부 그리운 아버지
1. 나 한림지서에서 치욕적으로 맞았어
2. 슬피 우는 딸 찾아 꿈속에 온 아버지 그립습니다
3. 아버지 대신 성담 쌓고 보 삿주
4. 애기고 어른이고 사름 씨 그치젠 헷주기

구술 정리를 마치며
제주4·3연구소와 제주4·3 구술자료 총서
주요 4·3 용어 해설
제주시 한림읍 지도
주요 제주어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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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편자 : 제주4·3연구소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는 민간연구단체로, 제주4·3사건을 전문적으로 조사·연구해 4·3의 역사적 진실과 진상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통해 한국 역사의 올곧은 발전에 기여하고자 1989년 5월 개소했다. 이후 제주 공동체를 폐허로 만든 제주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운동에 앞장서왔다. 제주4·3연구소는 각종 국내외 학술대회와 토론회, 역사교실 등을 통해 4·3 관련 연구논문 및 자료집을 발간하고 있으며, 국내외 관련 자료 수집, 4·3 경험자들에 대한 증언채록 사업, 4·3유적 및 유물 조사 사업, 암매장·학살지 조사 및 유해 발굴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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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들어보니까 모슬포까지 실어가는 사람이 신발도 던지고, 옷도 던지고, 끌려간다는 표시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말까지 들었어요. 증언에 의하면. 그때 군대 생활하면서 명령받아 직접 학살에 참여한 사람 증언도 있었고. 조사만 잘되고 미군 같은 데서 협조만 잘해주면 진상은 많이 밝혀질 텐데.
미국 같은 데는 관여 안 한 것처럼 하지만 그게 다 관여가 됐어요. 그 당시도 제주도에 미군들은 보인 거 같지 않아요. 큰 사건이었으니까 고위층에서 다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 p.23

4·3평화공원 사료관, 기념관은 그 정도 자료라도 있다는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재판을 거치지 않고 죽은 사람들도 있고, 재판을 거치지 않고 죽은 과정을, 그 사람은 무슨 죄 때문에 감옥에 있었다는 것이 밝혀져야 되는데, 밝혀지지 않고 있고.
저희들도 형님이 돌아가시긴 했는데 과연 무슨 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죄가 있다면 어떤 죄 때문에 그렇게 됐는지, 그리고 왜 재판을 거치지 않고도 죽일 수 있었는지, 그런 과정이 어떻게 됐는가를 밝혀야 될 것 같아요. --- p.25

면담자: 그래도 형님하고 오용범 세력이 마을을 이끌었던 모양입니다.
완전 이끌언마씸. 마을을 나쁘게 이끈 게 아니고, 선진교육을 받은 분들이 그런 겁니다. 딴 마을도 그런 거 같아마씸. 제주도 선각자 지식인들 많이 희생당했습니다. 어느 마을도 그런 사람만 희생당했지. 물론, 4·3사건 진압하는 과정에서 막 억울도 헷주만 희생당한 사람은 전부 지식인이우다. 만약 그분들이 그대로 있었으면 정말 제주도에 일익을 담당하고. 다 할 만한 사람들이 거의 돌아가셔 버렸습니다. --- p.76

아직도 해결할 게 많이 있습니다. 제 경우는 그렇게 행방불명에 대한 것을 규명하긴 어려워도 유족이 어느 시점까지 자기네 유족이 희생된 건 아니까, 행방불명된 유족을 모아서 여기에 대한 대책도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 DNA검사? 유해 검사해서 시신만 나오면 된다는데……. 그걸 검사해서 시신만 나오면 되는데, 못 나온 사람에 대해서는 영원히 행방불명자로만 낙인해서 하지 말고, 이름을 좀 바꿨으면 해져마씸게. 희생자가 아니라 행방불명자라 하는 것은 듣기가 참. 이런 것도 연구를 해야 할 것 아닌가마씸. 행방불명이라는 말 말고 어떻게 좀……. --- p.89

이 일을 하면서 보람 같은 것은, 그렇게도 바라던 위령비를 세우고 위령제를 지내게 된 거야. 내가 정말 쓰러져서 죽을 뻔까지 했던 그 일, 살다 보니깐 참 되는 거구나…….
앞으로 바라는 거? 명예회복이 돼야 하고 유족들이 잘 뭉쳐서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어요. 젊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유족회 명의로 해서 장학금 같은 걸 주면서 키워서 앞으로 다시는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잘 이끌어갔으면 하는 겁니다. 이걸 정말 하고 싶은데……. --- p.101

끌려가 취조받고 죽는 사람들은 1중대 관할. 거 사형장이나 마찬가지니까. 여기저기 끌려가서 누군가 지적하면 죽는 거예요. 이렇게 보니까 이 새끼줄 하나로 묶어가지고 줄줄이 앞뒤로 숲 있는데 몰아가서, 일일이 일렬종대로 세와가지고 그냥 총 쏘는 걸 봤거든요.
‘아, 이거 잔인하다.’ 난 어릴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거든.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느냐. 저분들이 무슨 문제가 있는고.’ 이제는 일흔이 넘어 뭐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도 어이가 없거든요. 무슨 죄가 있어서 저렇게 죽여. 여자고 남자고. 여자들이 공산주의에 대해 뭘 압니까. 아, 어른들이 보기만 해도 알 거 아닙니까. 그분 얘기만 들어보면 알아요. 이분 학식이 있는 분인가, 없는 분인가. 그런 사람들을 일렬종대 세워놓고 그것도 아니고 기관총으로 “다다다다다” 갈겨 죽이는 거예요. --- p.115

오빠가 “송아지를 쉐(소)로 알아서 나가 잡아먹었다”고 허니까 이제 오○○이란 분이 허는 말이 “뭐라 해도 우리는 마음 돌리지 못허쿠다. 오늘 승리해지카부덴 허는 것이 아니고, 이제 몇십 년 후에나 몇백 년 후에 나라가 분단된 때에 그래도 나라를, 조국통일을 위해 싸왔다고 허는 사름이 셔 낫젠 허는 말을, 그 말을 위해서 우린 싸우고 잇수다. 오늘 이기려 허는게 아니고. 우리가 이렇게 안 허민 자손들한테 무엇을 남깁니까. 우린 오늘 죽어도 이렇게 허다가 걸려서 죽어도 후대에 나라가 분단된 때에 나라를 위해 싸운 사름이 있다고 허는 그것을 위해 우린 싸왐수다” 헌 말을 했어. 나 그 사름 ?른 말이 제일 확실하게 생각나는걸. ‘아, 그랬구나’ 헌 걸 나도 이제 나이 많아가니까 ‘그것이 조국을 위한 혁명이로구나’ 생각을 허는 거라.
--- p.194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흔히 구술사는 ‘아래로부터의 역사(history from bottom up)’를 가능하게 한다고 얘기한다. 유력자들의 역사가 아니라 사회 주류를 이루는 보통사람들의 역사를 재구성해 이제껏 역사자료로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그들의 일상 생활사를 다시 서술해낸다는 것이다. 4·3의 구술증언도 마찬가지다. 자료 부족으로 그간 접근하기가 어려웠던 ‘4·3 일상사’를 우리는 제주도 모든 지역의, 성별을 불문한 많은 경험자들의 아래로부터의 이야기를 통해 접하게 되는 것이다.”
- 서문 중에서

차마 비명조차 내지 못했던 시절, 산으로 산으로만 도망 다니던 사람들의 이야기.

“이 일을 하면서 보람 같은 것은, 그렇게도 바라던 위령비를 세우고 위령제를 지내게 된 거야. 내가 정말 쓰러져서 죽을 뻔까지 했던 그 일, 살다 보니깐 참 되는 거구나…….
앞으로 바라는 거? 명예회복이 돼야 하고 유족들이 잘 뭉쳐서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어요. 젊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유족회 명의로 해서 장학금 같은 걸 주면서 키워서 앞으로 다시는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잘 이끌어갔으면 하는 겁니다. 이걸 정말 하고 싶은데…….”

이제 제주는 국제적인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매년 수백만의 국내외 관광객이 제주를 찾으면서 제주는 대표적인 휴양 명소가 되었다. 하지만 평화로운 제주의 한편에 아직 다 아물지 못한 상처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상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도 왜 그런 비극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더구나 그 비극의 한가운데 서 있던 제주 주민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책은 4·3 사건을 겪은 여러 생존자들의 증언을 묶어 평화의 섬 제주의 안타까운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여러 기관과 정부 위원회의 노력으로 4·3 사건의 진상은 많이 밝혀졌다. 하지만 그러한 조사는 그 시간을 겪은 이들의 고통을 기록하기에는 부족했다. 제주4·3연구소는 구술 채록이라는 방식으로 살아남은 자들이 기억하는 4·3을 복원했다. 4·3을 겪은 생존자들은 가족을 잃고, 고향을 등지며 4·3 이후에도 그날의 아픔을 간직한 채 삶을 이어가야 했다. 그날의 끔찍한 기억은 평생 동안 생존자들을 괴롭혔지만 생존자들이 그날에 관해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그들의 증언을 통해서 들을 수 있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일 뿐이지만, 우리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그 이야기를 기억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제주는 진정한 평화의 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제주 방언 그대로, 사료적 가치를 높이다

『만벵듸의 눈물』은 제주4·3연구소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진행한 ‘제주4·3 1000인 증언채록 사업’ 과정에서 녹취한 1028명의 증언채록 결과물 가운데 제주시 한림읍에 거주하는 4·3 생존자 13명의 구술을 정리해 엮은 것이다. 앞으로도 제주의 지역별로 총서 출간이 이어질 예정이다.
이 책은 당시 한림면(현재 한림읍. 1935년까지는 구우면, 1935년 한림면으로 개칭, 1956년에 한림읍으로 승격)에 살았던 13인의 4·3이야기이다. 특히 한림읍은 한림중학생 공개총살 사건이 일어난 지역이다. 1948년 11월 16일, 제9연대 군인들이 한림중학교 운동장에 학생과 주민들을 강제로 집합시키고 한림중학교 3학년 학생 4명(강두형, 이경혁, 좌태봉, 김계준)을 공개총살 했다. 중산간마을에서 초토화작전이 벌어져 많은 인명들이 학살되기 시작할 즈음인 이때, 총살 장면을 처음 목격한 학생과 주민들은 “동생 같고, 자식 같은 아이들이 죽는 처참한 장면에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말한다.
이렇게 대개 4·3의 광풍이 그들의 소년기를 덮쳤고, 가족사를 폭풍처럼 뒤흔들어 버렸다. 그 시기를 살았던 이들이 가슴속에 품었던 말을 토해낸 지 이미 7~8년. 그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황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있다. 자신들의 형님이 가족이 친척이 왜 그렇게 죽어야만 했는지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과정이 규명되고 밝혀지기를 원한다.
또한 이 책은 67년 전에 일어난 비극, 제주4·3 사건을 제주 방언으로 그대로 살려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서는 사료로서의 가치를 한층 높였다. 이는 제주에서조차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기록·보존하는 한편, 제주4·3 당시의 상황을 그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제주4·3 사건 67주년, 살아남은 사람들 33명의 목소리를 담아낸 증언집

정부에서는 2014년 제66주기 4·3 위령제를 맞아 4월 3일을 ‘4·3 희생자 추념일’로 지정했다. 유족과 관계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 가지를 더 부탁했다. 대통령이 4·3 위령제에 참석해 국가추념일로 처음 치러지는 이 날의 의미를 더욱 빛내달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제주도 여기저기에서 쏟아지는 수차례의 요구에도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위령제에는 총리가 대신 자리해 4·3의 정신인 ‘화해와 상생’을 소리 높여 칭찬했다.
그러나 그뿐, 서울로 돌아간 총리는 다른 사람으로 변신했다. 총리는 이날 오후 국회에 출석해 한 여당 의원의 “4·3 희생자 선정에 문제 있다”는 질의에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며 희생자 일부에 대해서는 재검증을 거치겠다고 대답했다. 4·3을 대하는 작금의 현실을 한눈에 보여준 가슴 아픈 우리 사회의 단면이었다.

우리는 4·3을 기억해야 한다. 그 시절을 고통 속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은 아직도 제주4·3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들이 왜 공권력에 의해 죽어야만 했는지, 왜 운동장에 세워 무고한 사람들을 총으로 쏴 죽였는지, 시신조차 알아 볼 수 없어 치아로 확인을 해야만 했는지, 왜 이 모든 이야기들을 오랫동안 제주 사람들이 입을 닫고 살아야 했는지 그들은 아직 나라에게 대답을 듣지 못했다. 오래도록 역사의 상처를 동여매고 살았던 이들의 생은 그 자체가 국가 공권력에 의한 트라우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총서는 그들의 증언, 그리고 밝혀져야 하는 진실을 이야기한다. 진실이 규명되지 않고, 아픔이 봉합되지 않은 채 흘러가는 사회는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르는 사회의 아픔에 성숙하게 대응할 수 없다. 정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다. 이번 총서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밝혀지지 않은 역사와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계속 될 것이다. 그리고 제주4·3연구소의 작업 또한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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