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고초 겪고 누워 지내시게 되니까 제일 애로사항이 집안일이었어요. 그 당시는 완전히 자급자족헐 때였어요. 그래 밭도 갈아야 허고, 우리 집에는 소나 말이 여러 마리 있었으니 소 먹이러, 말 먹이러 다녀야죠, 소 등에 짐도 싣고 다녀야죠……. 남자 어른 일이 집에는 참 많았죠. 그걸 내가 다 해야 허는데 난 어려서 키가 작으니 소 등에 짐을 잘 싣지도 못허고. 나는 아버지허민 이런 일들이 먼저 떠올라요. 집안에 남자가 없어가지고 내가 어른들 일을 다 해야 했었다는 거. 근데 사실은 너무 어리고 작아 별로 일을 헐 수도 없었다는 거……. --- p.57
내가 호적 때문에 육지 있을 때 간간히 파출소 같은 데 불려갔어요. 그때도 취직 안 되는 건 좋은데 파출소 불려가는 건 참 좋지 않더라고요. 특무대라는 것이 있었어요. 그 특무대에도 두 번인가 불려갔었죠. 그 저 영등포, 영등포 특무대, 거기에 불려 갔었어요. 뭐라더라? 제주도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묻는 게 그거예요. 다른 사람을 포섭한 일이 없느냐?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게 바로 그거예요. 그리고 내가 또 뭔가 하게 되면, “너 4·3 사건 때, 제주도 있을 때 폭도였지 않느냐?” 하고 괴롭혀요, 참. --- p.108쪽
세 놈이 이제, 날 그 소낭밧에 데련 갔어. 그러고는 곧 두 놈이 죽일 자세를 딱 취해. 한 놈만 뭐라고 허면 죽일 태세야. (죽창으로) 찌르는 거지.
그런 순간 안 되겠어. 이젠 내가 무조건 빌어야 헌다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 난 아무런 죄도 없다고, 살려달라고 막 빌었지. 어린 아이가 무신 죽을 잘못을 허느냐고. 막 빌었어. 게니 그 한 사름이, “에이! 그냥 버려두고 가자!” 허는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두 사름도 그냥 날 쳐다보지도 안 허영 가부는 거라. --- p.166
경허단 어느 날 4·3사건이 딱 터지잖아? 4·3사건이 터지니까 이젠 딴 동네 사름덜이 명이동놈덜은 전부 다 폭도라는 거야. 우리가 폭도 취급을 받았어. 그래서 이젠, ‘다 죽여불라!’ 이거지. 뭐, 잘 알겠주만 그 당시에는 누구라도 그저, ‘저거 폭도다!’ 허민, 그거는 여지없이 다 죽였어. 그래서 우리 명이동 사름덜이 다 죽게 된 건데……. 이제 내가 죽은 사름덜을 조사해보니까 정확허지는 않지만 한 78명 되더라고. 그러니까 한 150가구 정도 살던 마을에서 80명 가까운 인명이 돌아가신 거야. --- p.176
이게 내가 목격헌 4·3의 비극이고, 진실이야. 솔직헌 말로 뭐, 다 좋은데 우리 제주사름덜이 한때는 이렇게 다 야만족으로 살았던 때가 있었다는 걸 이젠 젊은 사름덜토 알아야 돼. 인간이 아니야, 야만족이지. 이런 얘기를, 내가 경험한 이런 일을 꼭 후세에 남겨두고 싶었어. 나는 지금 4·3을 경험한 사름치고는 나이도 그리 많지 않아. 67이야. 내가 참, 자다 깼다 허멍 하루에 한 번 4·3 때 겪은 이 일을 생각 안 해본 날이 없어. 때로는 악도 써봤어. 이 생각, 저 생각허다 내가 한창 피가 팔팔 끓을 때는 참지를 못해서, 참을 수가 없어서, 어쨌든 하나라도 내가 살아 있을 때 이 원수를 갚아야 헌다! 생각도 해봤어. 게도 결과적으론 ‘야, 그래도 그 악한 감정을 버린 것이 내가 오늘까지도 이렇게, 이 정도라도 살게 된 이유가 아니냐? 그 악한 감정을 그대로 썼으면 넌 그 당시에 그걸로 끝났을 거야!’ 허기도 해. 게서 살다 보니 어느새 한평생 다 저물어가네……. --- p.182
난 공부도 아무것도 아니 헌 사름이라. 가갸거겨도 모르는 사름. 우리 아방도 공부산지 뭔지, 했는지 말았는지도 몰라. 이제?록 우리가 바라지게 연애나 해봐서? 우리 아방은 열일곱에 장가가고, 난 열아홉에 오난 그자 아기 배고, 낳고 헌 거뿐이지, 원. 아무것도 몰랐주. --- p.216
항상 죽창에 물허벅. 무사 그땐 다 초가집덜이난게 불 나민 그 물허벅으로 불 끌 걸로. 게난 순찰 나오라 허민 우린 다 물허벅 지고, 죽창 들런 간. 우리 부녀자덜 수도 많아서. 한 보초막에 여자 한청이 멧 명이라고 딱 정해진 건 엇어. 남자덜 다 군인 가불고 허난 그때, 그때. 우리가 삶도 대동에 성 쌓으난 거기서 오래 살안. 우리가 처음 움막 짓기를 지금 농협 앞에 짓언. 지금은 나, 그 집 아덜네 줘두곡 이건 빌언 살멘.
--- p.231~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