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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방으로 기억하는 열두 살 소년의 4·3

[ 양장 ] 제주 4·3 구술자료 총서-08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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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5년 01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528g | 160*230*18mm
ISBN13 9788946056848
ISBN10 8946056843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가리방으로 기억하는 열두 살 소년의4·3』은 제주4·3연구소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진행한 ‘제주4·3 1,000인 증언채록 사업’의 결과물 중에서 제주시 한경면에 거주한 4·3 생존자 13명의 구술을 정리해 엮은 것이다. 이 책은 제주시 한경면 출신이거나 4·3 사건 당시 그곳에 거주했던 생존자들의 증언이 담겨있다.

여러 증언자들은 4·3 사건으로 가족을 잃는 등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4·3 이후에도 당시 입은 정신적·육체적 피해 때문에 힘든 세월을 보내야 했다. 눈앞에서 형님의 죽음을 목격하고 복수를 다짐했지만 차마 실행할 수 없었다던 증언이나, 4·3 때문에 고향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녀야 했다는 증언에서 4·3이 제주도 주민들에게 남긴 상처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67년 전에 일어난 비극, 제주4·3 사건을 제주 방언으로 그대로 살려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서는 사료로서의 가치를 한층 높였다. 이는 제주에서조차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기록·보존하는 한편, 제주4·3 당시의 상황을 그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제주4·3 구술자료 총서 7권과 8권을 펴내며

1부 4·3과 기억
1. 3·10 총파업으로 벌금형을 언도받다
2. 이웃에 살던 순경의 도움으로 경찰이 되다
3. 4·3의 기억, 아버지
4. 섯알오름 학살의 기억
5. 소년단원으로 맞은 4·3
6. 모든 외세를 몰아내고 자주독립하자
7. 고산 삼성의원에서 맞은 4·3

2부 중산간마을의 4·3
1. 가리방으로 기억하는 열두 살 소년의 4·3
2. 고향도 바꿔버린 4·3
3. 그런 야만족이 따로 없었어
4. 집행유예 선고를 받다

3부 여성이 겪은 4·3
1. 우리 애기 아방, “아빠!, 아빠!” 허는 딸 안은 채 경찰 총에 맞안 죽언
2. 여성들도 물허벅에 죽창 들런 보초를 서다

제주4·3연구소와 제주4·3 구술자료 총서
주요 4·3 용어 해설
제주시 한경면 지도
주요 제주어 용례
찾아보기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편자 : 제주4·3연구소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는 민간연구단체로, 제주4·3사건을 전문적으로 조사·연구해 4·3의 역사적 진실과 진상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통해 한국 역사의 올곧은 발전에 기여하고자 1989년 5월 개소했다. 이후 제주 공동체를 폐허로 만든 제주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운동에 앞장서왔다. 제주4·3연구소는 각종 국내외 학술대회와 토론회, 역사교실 등을 통해 4·3 관련 연구논문 및 자료집을 발간하고 있으며, 국내외 관련 자료 수집, 4·3 경험자들에 대한 증언채록 사업, 4·3유적 및 유물 조사 사업, 암매장·학살지 조사 및 유해 발굴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아버지가 고초 겪고 누워 지내시게 되니까 제일 애로사항이 집안일이었어요. 그 당시는 완전히 자급자족헐 때였어요. 그래 밭도 갈아야 허고, 우리 집에는 소나 말이 여러 마리 있었으니 소 먹이러, 말 먹이러 다녀야죠, 소 등에 짐도 싣고 다녀야죠……. 남자 어른 일이 집에는 참 많았죠. 그걸 내가 다 해야 허는데 난 어려서 키가 작으니 소 등에 짐을 잘 싣지도 못허고. 나는 아버지허민 이런 일들이 먼저 떠올라요. 집안에 남자가 없어가지고 내가 어른들 일을 다 해야 했었다는 거. 근데 사실은 너무 어리고 작아 별로 일을 헐 수도 없었다는 거……. --- p.57

내가 호적 때문에 육지 있을 때 간간히 파출소 같은 데 불려갔어요. 그때도 취직 안 되는 건 좋은데 파출소 불려가는 건 참 좋지 않더라고요. 특무대라는 것이 있었어요. 그 특무대에도 두 번인가 불려갔었죠. 그 저 영등포, 영등포 특무대, 거기에 불려 갔었어요. 뭐라더라? 제주도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묻는 게 그거예요. 다른 사람을 포섭한 일이 없느냐?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게 바로 그거예요. 그리고 내가 또 뭔가 하게 되면, “너 4·3 사건 때, 제주도 있을 때 폭도였지 않느냐?” 하고 괴롭혀요, 참. --- p.108쪽

세 놈이 이제, 날 그 소낭밧에 데련 갔어. 그러고는 곧 두 놈이 죽일 자세를 딱 취해. 한 놈만 뭐라고 허면 죽일 태세야. (죽창으로) 찌르는 거지.
그런 순간 안 되겠어. 이젠 내가 무조건 빌어야 헌다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 난 아무런 죄도 없다고, 살려달라고 막 빌었지. 어린 아이가 무신 죽을 잘못을 허느냐고. 막 빌었어. 게니 그 한 사름이, “에이! 그냥 버려두고 가자!” 허는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두 사름도 그냥 날 쳐다보지도 안 허영 가부는 거라. --- p.166

경허단 어느 날 4·3사건이 딱 터지잖아? 4·3사건이 터지니까 이젠 딴 동네 사름덜이 명이동놈덜은 전부 다 폭도라는 거야. 우리가 폭도 취급을 받았어. 그래서 이젠, ‘다 죽여불라!’ 이거지. 뭐, 잘 알겠주만 그 당시에는 누구라도 그저, ‘저거 폭도다!’ 허민, 그거는 여지없이 다 죽였어. 그래서 우리 명이동 사름덜이 다 죽게 된 건데……. 이제 내가 죽은 사름덜을 조사해보니까 정확허지는 않지만 한 78명 되더라고. 그러니까 한 150가구 정도 살던 마을에서 80명 가까운 인명이 돌아가신 거야. --- p.176

이게 내가 목격헌 4·3의 비극이고, 진실이야. 솔직헌 말로 뭐, 다 좋은데 우리 제주사름덜이 한때는 이렇게 다 야만족으로 살았던 때가 있었다는 걸 이젠 젊은 사름덜토 알아야 돼. 인간이 아니야, 야만족이지. 이런 얘기를, 내가 경험한 이런 일을 꼭 후세에 남겨두고 싶었어. 나는 지금 4·3을 경험한 사름치고는 나이도 그리 많지 않아. 67이야. 내가 참, 자다 깼다 허멍 하루에 한 번 4·3 때 겪은 이 일을 생각 안 해본 날이 없어. 때로는 악도 써봤어. 이 생각, 저 생각허다 내가 한창 피가 팔팔 끓을 때는 참지를 못해서, 참을 수가 없어서, 어쨌든 하나라도 내가 살아 있을 때 이 원수를 갚아야 헌다! 생각도 해봤어. 게도 결과적으론 ‘야, 그래도 그 악한 감정을 버린 것이 내가 오늘까지도 이렇게, 이 정도라도 살게 된 이유가 아니냐? 그 악한 감정을 그대로 썼으면 넌 그 당시에 그걸로 끝났을 거야!’ 허기도 해. 게서 살다 보니 어느새 한평생 다 저물어가네……. --- p.182

난 공부도 아무것도 아니 헌 사름이라. 가갸거겨도 모르는 사름. 우리 아방도 공부산지 뭔지, 했는지 말았는지도 몰라. 이제?록 우리가 바라지게 연애나 해봐서? 우리 아방은 열일곱에 장가가고, 난 열아홉에 오난 그자 아기 배고, 낳고 헌 거뿐이지, 원. 아무것도 몰랐주. --- p.216

항상 죽창에 물허벅. 무사 그땐 다 초가집덜이난게 불 나민 그 물허벅으로 불 끌 걸로. 게난 순찰 나오라 허민 우린 다 물허벅 지고, 죽창 들런 간. 우리 부녀자덜 수도 많아서. 한 보초막에 여자 한청이 멧 명이라고 딱 정해진 건 엇어. 남자덜 다 군인 가불고 허난 그때, 그때. 우리가 삶도 대동에 성 쌓으난 거기서 오래 살안. 우리가 처음 움막 짓기를 지금 농협 앞에 짓언. 지금은 나, 그 집 아덜네 줘두곡 이건 빌언 살멘.
--- p.231~232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어쨌거나 4·3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올해에도 구술 정리의 대장정을 이어간다. 그 엄혹했던 시절, 영화 〈지슬〉이 눈앞에 삼삼하게 떠오르는 용눈이오름과 큰넓궤에서, 금악오름에서, 아니 한라산의 이름 모를 여기저기에서 단지 목숨 하나를 부지하기 위해 온갖 시련을 겪었던 보통사람들의 삶을 이야기로 엮는다. 2013년에 이은 제주4·3 구술자료 총서 7권과 8권의 발간이다.”
- 서문 중에서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 제주4·3 사건
고통의 세월을 살아온 이들의 입에서 듣는 사건의 진실


“이런 얘기를, 내가 경험한 이런 일을 꼭 후세에 남겨두고 싶었어. 나는 지금 4·3을 경험한 사름치고는 나이도 그리 많지 않아. 67이야. 내가 참, 자다 깼다 허멍 하루에 한 번 4·3 때 겪은 이 일을 생각 안 해본 날이 없어.”

이제 제주는 국제적인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매년 수백만의 국내외 관광객이 제주를 찾으면서 제주는 대표적인 휴양지가 되었다. 하지만 평화로운 섬 제주의 한편에는 아직 다 아물지 못한 상처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상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도 왜 그런 비극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더구나 그 비극의 한 가운데 서 있던 제주 주민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책은 4·3 사건을 겪은 여러 생존자들의 증언을 묶어 평화의 섬 제주의 안타까운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여러 기관과 정부 위원회의 노력으로 4·3 사건의 진상은 많이 밝혀졌다. 하지만 그러한 조사는 그 시간을 겪은 이들의 고통을 기록하기에는 부족했다. 제주4·3연구소는 구술 채록이라는 방식으로 살아남은 자들이 기억하는 4·3을 복원했다. 4·3을 겪은 생존자들은 가족을 잃고, 고향을 등지며 4·3 이후에도 그날의 아픔을 간직한 채 삶을 이어가야 했다. 그날의 끔찍한 기억은 평생 동안 생존자들을 괴롭혔지만 생존자들이 그날에 관해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그들의 증언을 통해서 들을 수 있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일 뿐이지만, 우리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그 이야기를 기억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제주는 진정한 평화의 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제주 방언 그대로, 사료적 가치를 높이다

『가리방으로 기억하는 열두 살 소년의4·3』은 제주4·3연구소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진행한 ‘제주4·3 1,000인 증언채록 사업’의 결과물 중에서 제주시 한경면에 거주한 4·3 생존자 13명의 구술을 정리해 엮은 것이다. 앞으로도 제주의 지역별로 총서 출간이 이어질 예정이다.
이 책은 제주시 한경면 출신이거나 4·3 사건 당시 그곳에 거주했던 생존자들의 증언을 모았다. 여러 증언자들은 4·3 사건으로 가족을 잃는 등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4·3 이후에도 당시 입은 정신적·육체적 피해 때문에 힘든 세월을 보내야 했다. 눈앞에서 형님의 죽음을 목격하고 복수를 다짐했지만 차마 실행할 수 없었다던 증언이나, 4·3 때문에 고향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녀야 했다는 증언에서 4·3이 제주도 주민들에게 남긴 상처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67년 전에 일어난 비극, 제주4·3 사건을 제주 방언으로 그대로 살려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서는 사료로서의 가치를 한층 높였다. 이는 제주에서조차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기록·보존하는 한편, 제주4·3 당시의 상황을 그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제주4·3 사건 67주년, 살아남은 사람들 13명의 목소리를 담아낸 증언집

정부에서는 2014년 제66주기 4·3 위령제를 맞아 4월 3일을 ‘4·3 희생자 추념일’로 지정했다. 유족과 관계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 가지를 더 부탁했다. 대통령이 4·3 위령제에 참석해 국가추념일로 처음 치러지는 이 날의 의미를 더욱 빛내달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제주도 여기저기에서 쏟아지는 수차례의 요구에도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위령제에는 총리가 대신 자리해 4·3의 정신인 ‘화해와 상생’을 소리 높여 칭찬했다.
그러나 그뿐, 서울로 돌아간 총리는 다른 사람으로 변신했다. 총리는 이날 오후 국회에 출석해 한 여당 의원의 ‘4·3 희생자 선정에 문제 있다’는 질의에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며 희생자 일부에 대해서는 재검증을 거치겠다고 대답했다. 4·3을 대하는 작금의 현실을 한눈에 보여준 가슴 아픈 우리 사회의 단면이었다.
우리는 4·3을 기억해야 한다. 그 시절을 고통 속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은 아직도 제주4·3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들이 왜 공권력에 의해 죽어야만 했는지, 왜 운동장에 세워 무고한 사람들을 총으로 쏴 죽였는지, 시신조차 알아 볼 수 없어 치아로 확인을 해야만 했는지, 왜 이 모든 이야기들을 오랫동안 제주 사람들이 입을 닫고 살아야 했는지 그들은 아직 나라에게 대답을 듣지 못했다. 오래도록 역사의 상처를 동여매고 살았던 이들의 생은 그 자체가 국가 공권력에 의한 트라우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총서는 그들의 증언, 그리고 밝혀져야 하는 진실을 이야기한다. 진실이 규명되지 않고, 아픔이 봉합되지 않은 채 흘러가는 사회는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르는 사회의 아픔에 성숙하게 대응할 수 없다. 정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다. 이번 총서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밝혀지지 않은 역사와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계속 될 것이다. 그리고 제주4·3연구소의 작업 또한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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