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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읽는 서양사 4

사료로 읽는 서양사 4

: 근대편 2 - 계몽주의에서 산업혁명까지

리뷰 총점10.0 리뷰 2건 | 판매지수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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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서양문화 72위 | 역사 top10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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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2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408쪽 | 854g | 190*250*20mm
ISBN13 9791186293027
ISBN10 118629302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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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이영효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스틴 텍사스 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철학)를 받았으며, 현재 전남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미국사 낯설게 보기》, 《서양문명과 인종주의》(공저), 《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공저), 《지구화시대의 새로운 세계사》(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마가렛 수녀는 왜 모두의 적이 되었는가》,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 1~3》(공역), 《내러티브, 인문과학을 만나다》(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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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기적이나 초자연적 신비주의를 믿는 것은 미신이나 몽매함으로 간주되었고, 자연과 우주의 개별 현상을 관찰하고 실험할 때뿐만 아니라 인류 사회와 역사를 연구하는 데에도 과학적 연구 방법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과학적 방법을 적용하여 자연 세계와 인간 사회의 진보를 이룰 수 있다고 본 사상과 지적 태도가 계몽주의 혹은 계몽사상이다.|자료 01|―2장 42쪽(본문)

자료 01 계몽은 미성숙과의 결별이다 _임마누엘 칸트, 《계몽이란 무엇인가》
계몽은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미성숙과의 결별이다. 미성숙은 인간이 다른 사람의 인도 없이는 자신의 오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미성숙은 오성의 결핍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도 없이 사고하려는 결단과 용기가 없을 때 생기는 것이다. 감히 알려고 하라Sapere Aude! 자신의 오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바로 이것이 계몽의 슬로건이다.
외부의 지시로부터 해방된 후에도 대다수 인간은 게으르고 겁이 많아서 미성숙 상태에 기꺼이 머무른다. 그러한 게으름과 소심함 탓에 다른 사람이 손쉽게 보호자 역할을 차지한다. 미성년자minor가 되는 것은 너무도 편하다! 나에게 의미를 말해주는 책 한 권이 있고, 나를 위해 양심 있는 사제가 있고, 나를 위해 내 식생활을 판단해줄 의사가 있다면, 나 스스로 노력할 필요가 없다. 생각할 필요도 없다.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내 지루한 일들을 대신 할 것이다. (…) 우리는 현재 계몽된 시대에 사는가? 대답은, 아니다. 계몽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아직도 종교에 관련된 문제에서 자신의 정신을 확실히, 제대로 활용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자생적인 미성숙에서의 탈피와 보편적 계몽을 저해하는 방해 요인들을 점차 줄이고 자유롭게 일할 여지가 확장되고 있다는 확실한 지표들이 있다. ― 2장 47쪽(자료읽기)

임마누엘 칸트, 《계몽이란 무엇인가》, 1784 : 계몽사상의 시대가 최고조에 달했던 1784년에 칸트는 이 시대의 명칭으로 불리는 ‘계몽’의 의미를 ‘미성숙 상태에서의 탈출’이라고 정의했다. 계몽이란 미성년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미성년이란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이성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칸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계몽된 시대’가 아니라 단순히 ‘계몽의 시대’일 뿐이라고 정의하면서 계몽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 2장 70쪽(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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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775년 4월에 영국 수비대가 식민지 민병대와 충돌하면서 전쟁이 발발했다. 식민 정책에 항거하여 일어난 전쟁은 영국이 원주민과 흑인 노예, 독일인 용병을 신병으로 모집하고 식민지 항구까지 봉쇄하면서 격화되었고, 영국과의 완전한 결별을 외친 토머스 페인Thomas Paine의 《상식》이 1776년에 발표된 이후 식민지인의 독립 의지는 더욱 견고해졌다.|자료 04|―4장 92쪽(본문)

자료 04 영국의 폭정에 맞서 일어나라 _토머스 페인, 〈15. 상식〉, 《토머스 페인 저작》
장기간에 걸쳐 난폭하게 권한을 남용하면 그것이 과연 정의로운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 영국의 왕이 자신의 ‘고유 권한’에 입각하여 ‘영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의회의 지지를 얻으려 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량한 이 나라의 인민은 그 결탁에 의해 심각하게 억압받고 있다. … 큰 잣대로 보면 아메리카에 중요한 일은 전체 인류에도 중요한 일이다. (중략) 인류는 원래 창조 질서 안에서 평등한데, 다음의 경우들로 인해 깨어지고 만다. … 유럽인들이 다시는 그런 분쟁을 벌이지 않으리라고 말하는 것은 안일한 환상이다. 우리는 인지조례 폐지 때 그렇게 생각했지만 한두 해만에 진실을 깨달았다. … 내가 분리와 독립을 주장하게 된 것은 자만이나 당파심, 원한 때문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되는 것이야말로 이 아메리카 대륙의 진정한 이익이라는 점을 분명히, 적극적이고 양심적으로 확신하고 있다. ― 4장 99쪽(자료읽기)

토머스 페인(1737~1809), 〈상식〉, 1776: 페인은 식민지 아메리카인들에게 영국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과 공화제에 입각한 새 나라 건설을 촉구하는 팸플릿을 발표했다. 영국과의 화해를 주장하는 의견에 대한 논박, 독립에 따르는 경제적 이익에 대한 논증, 세습 군주제의 불합리성에 대한 비판, 대의제에 따른 정치적 대표기관의 구성 방법 등에 관한 주장을 담았다. 이 팸플릿은 출간 직후 수십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였고, 미국 정치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일반 대중에게도 크게 영향을 주었으며, 미국 〈독립선언문〉의 기초가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 4장 108쪽(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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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5세 치세에 칙령 거부권을 상실했던 고등법원이 루이 16세 때 복원되면서 권력이 비등해진 귀족들은 국왕의 직접세 과세에 반대하여 신분제 의회 소집을 요구했다. 귀족들이 루이 16세가 왕실 재정 위기, 귀족과 부르주아의 대립과 분열, 높은 물가와 실업률, 경제 침체 등을 타개하려 한 노력을 외면한 것이다. 귀족들은 또 삼부회가 신분별로 모여서 따로따로 투표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제3신분의 분노를 샀고, 그 결과 1789년 1월에 팸플릿 《제3신분은 무엇인가?》가 등장했다.|자료 04| ― 5장 113쪽(본문)

자료 04 제3신분은 국민 전부다 _에마뉘엘조제프 시에예스, 《제3신분은 무엇인가》
우리가 스스로에게 제시할 질문은 세 가지이다.
1. 제3신분은 무엇인가? ― 전체이다.
2. 현재까지 정치 위계 속에서 무엇이었나? ― 아무것도 아니었다.
3. 무엇을 요구하는가? ― 무엇인가 되는 것이다.
… 제3신분이 전체에서 20분의 19를 이루고 있으며, 이들은 참으로 힘든 일들 즉 특권 계층이 이행하려 하지 않는 의무를 도맡아 하고 … 명예롭고 영리적인 자리들은 오직 특권 신분만이 장악하고 있다. … 그러므로 제3신분은 무엇인가? 전체이다. 그러나 족쇄가 채워지고 억압받고 있는 전체일 뿐이다. 특권 신분이 없다면 무엇이 될까? 전체, 그러나 자유롭고 건강한 전체가 될 것이다. 이들이 없다면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 특권을 받은 자들이 국민에게 유익하기는커녕 오로지 국민을 약화시키고 파멸시킬 뿐이라는 것을 지적한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 5장 124쪽(자료읽기)

에마뉘엘조제프 시에예스(1748∼1836), 《제3신분은 무엇인가》, 1789 : 귀족에 대항하는 제3신분의 분노를 담은 시예예스의 이 팸플릿은 1789년 1월에 발표되었는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시에예스는 원래 성직자였는데 제3신분의 의원으로 당선되었고, 루소의 사상에서 제3신분이 곧 국민이며 주권자라는 주장을 이끌어냈다. 당시 귀족계급과 성직자 계급은 전체 2600만 인구 중에 53만 명 정도만을 대표했다. 이 글에는 귀족에 대한 철저한 경멸, 제3신분에 대한 찬양, 시에예스의 사고에 미친 계몽사상의 영향이 드러난다. ― 5장 144쪽(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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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는 1821년부터 오스만제국의 오랜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운동을 벌였는데, 메테르니히는 오스만의 그리스 지배가 정당하다고 옹호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남하 정책을 기저에 두고 오스만에 전쟁을 선포했고, 이에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개입하여 그리스의 자유주의자들을 지원했다. 이처럼 5국 동맹이 붕괴된 상태에서 1829년에 그리스의 독립이 승인되었고 유럽의 반동·보수 체제는 크게 흔들렸다. 독립한 그리스는 발칸 반도의 여러 민족에게 민족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을 전파했다.|자료 05| ― 7장 171쪽(본문)

자료 05 그리스, 오스만 투르크의 320여 년 지배를 벗어나다 _그리스 〈독립선언문〉
국민의회가 그리스 국민에게,
혹독한 오스만의 압제에 짓눌려온 그리스 국민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그 멍에를 깨부수기로 결의하고 국민의회에 모인 합법적 대표기구의 이름으로 신과 인류 앞에서 독립을 선언한다.
고결하고 개명된 민족의 후손이여 … 우리의 고통은 이제 차고 넘칠 지경에 이르렀다. 비겁함과 어리석음의 허물을 감수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제 더는 오스만 지배의 가혹한 채찍을 참고 견딜 수 없다. 4세기 동안 투르크인들은 이성과 정의를 짓밟았고 … 우리는 오만한 전제군주가 우리 조국에 끼친 숱한 위해들[을] … 앙갚음하기 위해 분연히 무기를 들었다. … 그리스인들이여! … 그대들의 자유와 독립을 공고히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화합뿐이다. … 국민의 진정한 이익을 뚜렷이 인식하고 관료와 인민이 … 온 힘을 다한다면 우리가 오랫동안 갈망해온 조국 번영의 기초를 닦는 데 성공할 것이다. ― 7장 177쪽(자료읽기)

그리스 〈독립선언문〉, 1822 : 15세기 이래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아온 그리스가 독립전쟁을 벌이자, 메테르니히는 투르크에 의한 진압을 예상하고 개입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그리스가 동방정교회의 일원인 데다가 그리스 독립이 러시아의 지중해 진출을 가능케 하리라는 계산에서 그리스를 지원했다. 그러자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경계한 영국과 프랑스도 원조에 나섰다. 당시 유럽은 친그리스 정서가 강하여 독립전쟁을 ‘자유를 위한 투쟁’의 재현으로 간주했다. 영국 시인 셸리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인”이라고 했고, 바이런은 직접 참전하여 전선에서 병사했으며, 프랑스 화가 들라크루아는 〈키오스 섬의 학살〉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1829년 그리스 독립은 빈 체제가 동요하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 ― 7장 178쪽(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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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식민지들이 벌인 독립 투쟁에서 가장 탁월한 지도자는 시몬 볼리바르였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크리오요 귀족에 속한 부유층 출신의 군인이자 정치가였는데, 1807년부터 5년간 유럽에 체류하며 스페인의 몰락을 목도했다. 귀국 후, 볼리바르는 오늘날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지에서 스페인 통치에 맞서 혁명을 이끌었고 독립을 성취했다.|자료 04| ― 8장 183쪽(본문)

자료 04 베네수엘라인들이여, 스페인에 저항해 무장하라 _볼리바르의 포고문, 《볼리바르의 저술집》
베네수엘라인들이여, 콜롬비아가 보낸 당신 형제의 군대가 여러분을 해방하기 위해 왔다. … 우리는 스페인인들을 파괴하고, 아메리카인들을 보호하고, 한때 베네수엘라 연합을 형성했던 공화국 정부를 다시 건설하기 위해 왔다. 우리 군대가 방어한 국가들은 자유와 독립을 충분히 향유하면서 다시 과거의 헌법과 법정의 통치를 받는다. 우리의 사명은 …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우리 도시들을 묶고 있는 예속의 사슬을 끊는 것이다.
당신들을 강탈하고 죽음과 폐허로 몰아넣은 야만적인 스페인인들 때문에 여러분이 겪어야 했던 고난을 우리는 외면할 수 없었다. 그들은 각 국가의 신성한 권리를 침해했다. … 그리고 여러분은 이제부터 명예와 생명과 번영을 보장받는다. ‘아메리카인’이라는 단일한 이름이 여러분을 지켜줄 것이다. 우리 군대는 여러분을 보호하기 위해 왔으며, 여러분 중의 누구 하나도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다. ― 8장 189쪽(자료읽기)

시몬 볼리바르(1783∼1830) : 볼리바르는 1810년부터 스페인에 맞서 싸웠고 라틴아메리카 5개국을 해방시킨 독립전쟁의 영웅으로, ‘라틴아메리카 독립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볼리바르는 프랑스혁명과 미국혁명, 유럽 계몽주의의 정치 이념을 잘 알고 있었고,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와 북부 안데스 지역을 통합하여 단일 국가를 건설하려 했다. 1813년에 발표한 포고문에는 베네수엘라인들에게 스페인의 지배에 저항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 8장 192쪽(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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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공화국 내 반동 세력이 ‘반反유대인 동맹’을 만든 데다 유대인 육군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독일에 군사기밀을 넘겼다는 누명으로 무고하게 종신형을 선고받자, 에밀 졸라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재심을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났다.|자료 08| 결국 드레퓌스는 1899년에 무죄 판결을 받아 군에 복귀했는데, 이 사건으로 드레퓌스의 유죄를 주장했던 왕당파와 군부와 가톨릭교회는 크나큰 타격을 입었다. ― 23장 450쪽(본문)

자료 08 반유대주의 비판 _에밀 졸라, 〈나는 고발한다〉, 《로로르》 1898년 1월 13일자
대통령 님, … 진실, 나는 그것을 말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사법부가 규정에 사로잡혀 분명하고 남김없이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제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제 의무입니다. 밤마다 저기에서 지독한 고문을 받아 짓지도 않은 죗값을 치르는 무고한 자의 유령이 출몰할 것입니다.
대통령 님, 바로 당신을 향해서 나는 외치려 합니다. 이 진실을, 정직한 사람이 가진 의분의 힘을 다하여. 당신의 영예를 위해서 당신은 진실을 무시하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나라의 최고 정무관인 당신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진짜 범죄자들로 이루어진 악한 무리를 탄핵하겠습니까? … 나는 하나의 열정, 빛의 열정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 나의 불타오르는 항변은 내 영혼의 외침일 뿐이지요. 여러분이 나를 중범죄 재판소로 끌고 가서 대낮에 심문할 용기가 있기를 바라오! ― 10장 230쪽(자료읽기)

에밀 졸라(1840∼1902), 〈나는 고발한다〉, 1898 : 독일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투옥된 유대인 군인 드레퓌스 대위가 무죄임이 밝혀졌는데도 프랑스 군부가 실수를 인정하지 않자, 당대 대문호로 칭송받던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에게 죄가 없다고 폭로하는 이 글을 1898년 1월 13일자 《로로르》 신문에 실었다. 이 신문은 몇 시간 만에 30만 부가 팔렸다. 졸라는 프랑스 의회의 기소로 무고죄라는 유죄 판결을 받자 영국으로 망명했으며, 사후인 1906년에 복권되었다. ― 10장 231쪽(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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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854년에 노예제에 반대하는 공화당이 등장하면서 남부와 북부 사이의 갈등이 증폭되었고,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예제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은 에이브러험 링컨이 당선되자, 남부에서는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시작으로 일곱 개 주가 연방에서 탈퇴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1861년 남부연합 군대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섬터 요새를 장악한 일을 계기로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다.|자료 03| ― 13장 271쪽(본문)

자료 03 전쟁의 목적은 연방을 구하는 것 _〈링컨의 편지-호레이스 그릴리의 공개서한에 대한 답변, 노예제와 연방: 최고목적은 연방의 회복〉, 《뉴욕타임스》 1862년 8월 22일자
존경하는 호레이스 그릴리 씨에게
나는 연방을 구할 것입니다. … 국가의 권위가 더욱 빨리 회복될수록, 연방은 ‘과거에 존재했던 연방’에 더욱 가까워질 것입니다. 만약 노예제를 보존할 수 없다면 연방을 구하지 않겠다는 사람과는 저는 의견을 같이 하지 않겠습니다. 동시에 노예제를 파괴할 수 없다면 연방을 구하지 않겠다는 분에게도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어떤 노예도 해방하지 않고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또 모든 노예를 해방해서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요. 일부는 해방하고 일부는 그냥 둠으로써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역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 저는 제가 가진 공직[대통령]의 관점에 따라서 나의 목표를 선언했으며, 제가 종종 표명했던 대로 모든 사람은 어디에서든 자유로워야 한다는 개인적인 소망을 조금도 변경할 의사가 없습니다. ― 13장 277쪽(자료읽기)

링컨의 편지, 1862 : 노예제 폐지론자가 링컨의 조치가 미흡하다는 요지의 편지를 보낸 것에 대해서 링컨이 신문에 보낸 답변이다. 이 답변에서 노예해방보다는 연방의 유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이런 답변은 이례적인 것인데, 그는 각료들과 군사력의 확보 없이는 목적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 연설에서는 그런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편지의 마지막에서는 노예제의 종식이 전쟁의 목적임을 시사한다. 남부의 수천 명 노예가 북군에 참여했으며, 이 편지를 발표한 지 한 달 후에 노예해방 시안이 발표된다. ― 13장 284쪽(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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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당국은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빈민가를 헐어내고 상하수도를 갖추어 위생 조건을 개선하려 했다. 특히 소규모 작업장에서 일하는 비숙련 도시 노동자들의 생활이 가장 열악했는데, 그들은 낮은 임금을 받으며 불안정한 삶과 실업의 공포에 시달렸다.|자료 03| 1840년대 영국의 공업 도시에서 노동 인구의 절반이 실직 상태에 놓였고, 상당수가 빈민 구호금이나 의연금에 의존했다. ― 17장 335쪽(본문)

자료 03 새들러 위원회 보고서에 드러난 영국 공장의 노동조건 _《1831∼1832년 의회 보고서》
소환되어 조사받은 매튜 크랩트리의 경우
? 몇 살입니까? ― 스물두 살입니다.
? 직업은 무엇인가요? ― 담요 제조공입니다.
? 몇 살에 처음으로 공장에 일하러 갔습니까? ― 여덟 살 때부터요.
? 그 공장에서 몇 년간 일했습니까? ― 4년간 했습니다.
? 처음 공장에 갔을 때 노동시간은 보통 얼마나 됐습니까? ― 새벽 여섯 시부터 저녁여덟 시까지였습니다.
? 열네 시간 동안이요? ― 예.
? 휴식과 간식을 위한 쉬는 시간은? ― 정오에 한 시간 동안 쉬었습니다.
? 일이 많을 때는 몇 시간 노동했습니까? ― 새벽 다섯 시부터 밤 아홉 시까지 했습니다.
? 열여섯 시간 동안이요? ― 예.
? 어떻게 시간을 지켰나요?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 스스로 일어난 적은 거의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 부모님이 깨우거나 졸고 있는 채로 침대에서 끌려 나옵니다.
? 항상 시간을 지켰습니까? ― 아니오.
? 많이 늦은 경우에는 어떻게 됩니까? ― 대부분 매를 맞습니다.
? 심하게 맞았나요? ― 매우 심했다고 생각합니다.
? 일과의 나머지 시간에도 매질이 계속되었습니까? ― 끊임없이 계속되었습니다. ― 17장 341쪽(자료읽기)

새들러의 의회 조사 보고서, 1831/1832 : 영국 의회에서 아동 노동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의원 대다수는 “영국에서 아동의 하루 노동시간을 줄이면 다른 나라들이 이익을 얻을 것”이라며 반발했다. 1832년 영국 공장들의 노동조건을 조사한 위원회의 위원장이던 새들러가 작성한 이 보고서(‘자료3’)는 1833년의 공장법을 비롯한 주요 개혁 조치를 이끌어냈다. 또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체제를 다룬 논문을 쓰는 데 중요한 근거를 제공했다. ― 17장 351쪽(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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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1859)에서 ‘자연도태 이론’을 제시했다.|자료 04| 다윈은 변이와 자연도태를 새로운 종 발생의 일차적 요인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 유리한 형질을 지닌 식물이나 동물은 여러 세대를 통해 유전된 성질을 전달하고, 변이에 적합하지 않은 개체는 계속 도태됨으로써 결국 생존에 성공하는 새로운 종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윈은 진화에 대한 생각을 동식물의 종뿐만 아니라 인간에게까지 적용하여, 원숭이와 인간이 공통의 선조를 갖고 있다는 주장을 《인간의 계보와 성 선택》(1871)에서 전개했다.|자료 05| ― 19장 376쪽(본문)

자료 04 진화는 오랜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_찰스 다윈, 《종의 기원》
최근까지도 대부분의 자연학자들은 종種, species은 불변하며 개별적으로 창조되었다고 믿었다. … 각 종에서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개체들이 태어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생존경쟁이 빈번히 반복되기 때문에, 만약 어떤 존재가 복합적이고 때로는 달라지는 생활조건에서,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든 약간이라도 유리하게 바뀐다면, 생존의 기회는 더 좋아지고 그 결과 자연적으로 선택된다. 강력한 유전 원칙에 따라서 어떤 선택된 변종은 자신의 새롭고 변모된 형태를 유전시키는 경향을 가지게 될 것이다. … 종은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만약 어떤 종의 변이로 인정되는 것이 나오면 그것이 그 종의 후손이라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같은 속屬에 속하는 것들은 보통 다르기는 하지만 사멸한 어떤 종의 직계후손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게다가 나는 자연 선택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유일한 변화 수단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 19장 380쪽(자료읽기)

자료 05 자연도태와 적자생존 _찰스 다윈, 《인간의 계보와 성 선택》
이 모든 점이 인간이 다른 포유동물과 함께 하나의 공통조상을 둔 후손이라는 결론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 이 연구에서 도달한 주요 결론, 즉 인간이 어떤 저급한 생물체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을 매우 씁쓸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미개인들에게서 유래했다는 점은 의심할 수 없다. … 내가 황량하고 울퉁불퉁한 바닷가에서 푸에고 섬 사람들이 벌인 잔치를 처음 보았을 때 느낀 놀라움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저런 사람들이 우리 조상들이었다는 깨달음이 내 마음속에 밀려들었던 것이다. … 인간은 비록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는 아닐지라도, 유기체 중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지 모른다. ― 19장 381쪽(자료읽기)

찰스 다윈(1809∼1882), 《종의 기원》, 1859 : 《종의 기원》 초판은 발간 당일에 모두 팔렸으며 다윈 생전에 총 6판까지 인쇄되었다. 1809년에 프랑스 박물학자 라마르크는 생물학적 종種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고, 1858년에 앨프리드 월리스는 ‘자연선택’의 원리를 종의 변화 체계에 수용했다. 다윈은 영국 측량선 비글호를 타고 1831년에서 1836년까지 5년 동안 전 세계를 항해하며 면밀하고 체계적인 조사를 벌인 후, 종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변이를 거듭해 진화했다는 이론을 발표했다. 생물은 살아남으리라고 예상되는 수보다 훨씬 더 많은 자손을 낳으며, 환경조건의 변화에 잘 대처한 유리한 형질의 개체들만 살아남는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 19장 384쪽(출전)

다윈, 《인간의 계보와 성 선택》, 1871 : 다윈은 1859년에 열린 한 토론회에서 “인간은 원숭이에서 진화되었다”라고 발언한 후, 이 책에서 인간을 동물로 보고 자연선택의 원리를 적용하여 인간의 유래를 설명했다. 다윈은 동물의 ‘마음’을 고찰하고서는 동물이 ‘사회적 본능’을 지니고 있고 그것이 점차 고도로 발달해 도덕 감각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도덕적 행위가 점차 쌓여 서서히 몸에 익숙해지면 도덕적 자질이 높은 인간이 늘고 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신체적 차이도 인간 선조의 수컷이 암컷을 차지하려고 싸웠던 오랜 생존 투쟁의 결과라고 보았다. ― 19장 384쪽(출전)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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