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숨을 들이쉬었고, 손을 올렸다 다시 내렸고, 나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사실 그 아무것도 아닌 것, 다만 나른하고 텅 비고 조용하기만 한 날들, 물속에 있는 물고기 같은 삶과 이유 없는 웃음이 뭐가 어떻단 말인가? 나는 내 속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고, 그것이 내 삶을 힘들게 한다고 말하고 싶었고, 애인 곁에 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붉은 산호」중에서
그녀는 눈도 그저 그랬고, 어쩌면 녹색이었고, 그다지 크지 않았고, 또 두 눈 사이가 너무 좁았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고, 그녀를 쳐다보았고, 그녀도 나를 쳐다보았다. 성적인 것도, 수작을 거는 것도, 누군가를 녹일 듯한 것도 아니었지만, 얼굴을 한 대 치고 싶을 만큼 진지하고도 도전적인 눈빛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두 걸음 다가갔고, 그녀는 웃을 듯 말 듯 했다. 객실로 들어와 등 뒤로 문을 닫자, 난 거의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소냐」중에서
그때는 행복했지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는 항상 미화되기 쉽고, 기억은 아름답게 덧칠되는 것이겠지. 어쩌면 그 밤들은 그저 춥기만 했고,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그저 유쾌한 시간일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밤들이 내게 아주 소중했음이, 그리고 이제는 그것을 잃어버렸음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소냐」중에서
판자는 삐걱거렸고 담쟁이덩굴이 빛이란 빛은 금방 다 삼켜 버려서, 나는 짜증을 내며 덩굴을 한쪽으로 걷어치웠고, 그러자 슈타인이 얼음장같이 차가운 손으로 나를 복도 쪽으로 잡아당겼다. 나는 잡았다. 나는 그의 손을 꼭 잡았고, 갑자기 그와의 접촉을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았고, 그의 작고 침침한 석유 등잔 불빛조차 놓치기 싫었다. 슈타인은 흥얼거렸고, 난 그를 따라갔다. ---「여름 별장, 그 후」중에서
그 뒤로 매일같이 엽서가 왔다. 난 기다렸고, 하루라도 엽서가 오지 않으면 서운하기도 했다. 늘 교회 그림이 있는 엽서였다. 짤막한 수수께끼 같은 글이 네다섯 줄 정도 적혀 있었는데,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슈타인은 자주 ‘네가 온다면…….’이라고 썼다. 그는 ‘와.’라고 쓰지는 않았다. 나는 ‘와.’라는 말을 기다리기로 하고 그러면 그에게 가기로 마음먹었다.
---「여름 별장, 그 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