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야만성에 굴복하고 말 것인가?
세월호 이후를 준비하기 위한 철학의 성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도르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위해 아직도 철학이 필요한가?”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의 극악함은 2500년 동안 지속된 철학을 향해 이렇듯 ‘도대체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라는 비난과 ‘앞으로 무엇이든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요구를 동시에 제기하도록 만들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고 1년이 되어가는 지금 한국의 철학자도 동일한 비난과 동일한 요구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국 사회는 이제 ‘그후’와 ‘그전’이 같을 수 없게 되었고, 세월호의 침몰은 해석되고 이해되기를 요구하며 우리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이충진은 세월호가 1980년 광주 이후 가장 중요한 시대적 사건이라고 단언하며, 세월호를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철학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세월호가 우리에게 던진 뼈아픈 물음들에 답해보고자 하는 철학적 시도이다. 지은이는 세월호를 계기로 드러난 우리 삶의 불합리함과 비윤리성, 세월호를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 세월호 전후의 우리 사회의 단면, ‘세월호 이후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라는 물음까지 우리가 반드시 숙고하고 긴 호흡으로 대해야 할 문제들을 철학의 눈으로 성찰한다. 자신의 시대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서의 철학, ‘지금 여기의’ 한국 사회에서 그것은 바로 ‘세월호의 철학’이며, 이 책은 그 출발점에 서 있다.
세월호가 던진 물음 ― 국가, 시장, 윤리, 존엄성, 한국 사회
이 책의 논의는 세월호를 계기로 우리에게 중요하게 떠오른 몇 가지 사항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1장에서는 세월호 침몰 이후 우리가 가장 처음으로 맞닥뜨린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주목한다. 2장에서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신자유주의를 이야기하며, 3장에서는 세월호를 둘러싼 사람들의 행위를 중심으로 합리적 행위와 윤리를 이야기하고, 4장에서는 세월호 이후에 두드러진 우리 사회의 야만성을 폭로한다. 그리고 5장에서는 칸트의 눈을 빌려 세월호를 둘러싼 문제를 돌아보고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길을 모색해본다.
대한민국의 본질이 궁금하다 ― 무력하고 무심하고 편향적인 국가
2014년 4월 16일 수백 명의 목숨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죽어가는 사람들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해경을 보면서, 사람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버는 업체를 방치하는 정부를 보면서, 죽음의 원인을 밝혀달라는 유가족을 외면하는 청와대와 국회를 보면서 우리의 머릿속에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국가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 먼저 주목한 것은 바로 국가에 대한 질문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세월호의 침몰은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에 어울리지 않는 국가임을 폭로했다. 세월호 ‘옆’의 국가는 무력했고 세월호 ‘앞’의 국가는 부자유와 불평등의 원천이었으며 세월호 ‘뒤’의 국가는 무심했다.”(33쪽)
우리가 목격한 대한민국은 홉스가 생각했던 국민의 보호기관도 아니었고 루소가 생각했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권력도 아니었다. 세월호 당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해달라는 국민의 권리 요구는 철저히 묵살되었으며, 자본에 봉사하는 하위 조직이 되어버린 국가는 자본에 의해 국민의 천부적 자연권이 말살되는 것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심지어 대한민국은 전근대적 국가도 아니었다. 전근대적 국가에서 국가는 부모와 다름없으며 국가는 부모가 아이를 보살피듯 국민을 보살펴야 하지만 세월호 이후 우리가 본 것은 국민을 ‘남의 자식’으로 대하는 국가였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란 무엇인가? 세월호 이후 우리는 이런 물음에 답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 책은 현재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결핍을 찾아내는 작업, 한국의 역사적 경험 안에 담긴 한국 정치의 특수성을 찾아내는 작업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이야기한다.
‘세월호 이전’, ‘세월호 당시’, ‘세월호 이후’의 한국 사회에 대한 전 방위적 검토
세월호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이 책이 택한 접근 방식은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당시’와 ‘이후’를 전 방위적으로 돌아보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이며, 사건 당시 일어났던 수많은 일 중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침몰 이후 드러난 우리 사회의 민낯은 무엇인지 살펴보며 앞으로의 우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숙고해보는 것이 이 책의 큰 틀이다.
‘세월호 이전’을 돌아보기 위해 이 책은 ‘과연 세월호 침몰의 원인은 신자유주의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개인의 삶과 공동체를 항시적 불안 상태에 빠트리는 민영화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적 흐름이 세월호 침몰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모든 것이 신자유주의 탓이라고 말해버리면 세월호 참사의 본질을 설명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냐 아니냐?’의 양자택일식 질문에서 벗어나 질문의 종류는 다양해야 하고 질문의 스펙트럼은 광범위해야 한다. 그런 질문들이 연속해서 제기되고 그 대답들이 충분히 축적된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세월호 침몰의 원인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세월호 당시’를 돌아보기 위해 이 책은 세월호를 둘러싼 여러 행위자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월호 참사의 출발점이 된 선원들의 행위,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따르다 목숨을 잃고 만 학생들의 행위, 바다 위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월호 참사를 야기한 ‘탁상 위의 살인자들’의 행위를 돌아보며 지금 여기의 우리가 과연 인간다운 인간, 윤리적 인간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세월호 이후’로 눈을 돌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야만성, 인간 존엄성이 사라진 현실을 이야기한다. 생명과 돈을 저울질했던 해운사, 희생자 가족들을 철저하게 외면한 공직자들, 세월호와 함께 침몰해버린 언론, 개인을 향한 폭력에 침묵하는 사람들, 진영 논리에만 갇혀 사건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인간 존엄성을 위한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 야만의 사회를 이야기한다.
한국 사회를 돌아보기 위해 ― 칸트의 눈으로 세월호를 보다
여객선의 침몰은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세월호 침몰은 모든 면에서 지극히 한국적이라 할 수 있다. 세월호를 둘러싼 많은 문제들이 대부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것들, 최소한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던 것들이다. 그런데 다른 시대, 다른 사회의 눈을 빌려 한국적 문제들을 다시 되돌아보면 어떨까? 이 책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세월호의 모습과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기 위해 철학의 눈으로 자신의 시대를 보려 했던 철학자, 칸트의 눈을 빌려 좀 더 깊이 있는 성찰을 시도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주목할 만한 세월호를 둘러싼 모습들을 발견한다. 세월호 침몰의 원인을 밝혀달라는, 진상 규명을 해달라는 희생자 가족의 농성을 보면서 반국가적 행위를 읽어내는 범주 착오의 오류, 사회성과 반사회성, 안정성과 역동성의 균형이 사라진 한국 사회, 세월호를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는 중요한 관찰자들 등 우리 사회의 단면들이 새롭게 드러난다.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물음 ― 세월호는 지금 여기의 나에게 무엇인가?
이 책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세월호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에 끈기 있게 대응하고 좀 더 긴 호흡으로 세월호 이후를 대비하자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을 보면서 갖게 된 나의 느낌과 그로 인해 변해버린 나의 일상에 주목하는 것, 그리고 그런 자기 성찰을 위해 요구되는 용기를 갖는 것, 이런 것들을 기반으로 해서만 우리는 ‘세월호는 지금 여기의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떠올리고 이에 대한 대답을 찾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세월호 침몰 이후 지난 1년의 시간을 그 이후의 몇 년 몇십 년의 시간 속에 위치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세월호 이후’를 우리의 미래로 만들어야만 세월호 침몰을 영원한 현재로 만들 수 있으며 세월호의 슬픔을 진정성 있는 슬픔으로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