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05년 08월 12일 |
---|---|
쪽수, 무게, 크기 | 255쪽 | 376g | 153*224*20mm |
ISBN13 | 9788932016252 |
ISBN10 | 8932016259 |
발행일 | 2005년 08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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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55쪽 | 376g | 153*224*20mm |
ISBN13 | 9788932016252 |
ISBN10 | 8932016259 |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아으르 산의 신화 옮긴이 해설 작가 연보 기획의 말 |
저녁을 먹고 있는 동안 밖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하산의 나이는 아마 예닐곱 살이었을 것이다. 하산은 그 짧은 순간에 아버지의 턱이 떨리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잠시 후 아버지는 총에 맞았고 하산은 연기를 보다가 아련히 정신을 잃었다. 아버지가 죽고 사람들이 몰려 와서 어머니를 끌어 냈다. 삼촌들은 어머니에게 발길질을 해댔고, 할머니는 자지러지는 통곡소리를 내며 울었다. 어머니는 할릴(아버지)을 죽인 것은 자신이 아니며 압바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미 압바스를 죽여 그 시체를 마당에 가져다 놓았었다. 어머니는 그 시체를 보며 '당신이 이렇게 죽다니..'라며 흐느꼈다. 사람들은 화냥년같은 인간이 남편을 죽였노라고 욕지거리를 해댔다.
아버지의 장례가 지나고 할머니는 매일 같이 하산에게 너의 원수는 니 어미라는 말을 했다. 하산을 끌어 안고 우는 할머니의 손을 풀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가 밥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표정은 가끔 밝아보이기도 했다. 하산은 혼란스러웠다. 어느날 무스타파 삼촌은 자개가 촘촘히 박힌 장총을 하산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하산아, 이 총은 네가 가져라. 네 할아버지가 쓰시던 총인데 유언에 그러셨지. 우리 집안의 원수를 갚는 첫번째 대장부에게 물려주라고..... 자 받아라. 잊부터는 총을 쏘고 싶을 때 마음대로 쏘아라.' 그래서 하산은 그 총을 들고 매일 산으로 들로 다니며 사냥을 했다. 그게 다였다. 처음에는...
이 단편은 두 가지의 큰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나는 '납치혼'이고 또 하나는 '명예살인'이다. 사실 하산의 어머니 에스메가 남편을 죽인 사람을 보며 슬퍼한 이유는 따로 있다. 에스메는 할릴과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압바스는 그 전부터 에스메를 사랑하고 있었으나 감옥에 있었다. 그 사이 하산의 아버지인 할릴이 에스메를 납치해 아편을 섞은 음료를 먹여 겁탈한 것이다. 할릴은 혼인신고를 해버리고 법적으로 혼인절차를 밟았다. 에스메는 일년이 넘게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압바스가 포기하게 하기 위해 결국 아이를 임신 시킨다. 그 이아가 하산이다. 그녀의 인생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는데도 잔인하게 흘러갔다. 그녀가 의지하는 것은 오직 하산 뿐이었다. 할릴이 죽고 나서 하산의 삼촌이 와서 에스메에게 떠나라고 말한다. 에스메는 하산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떠날 수 없다고 말한다. 삼촌은 그러면 당신은 죽게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돌아간다.
아버지의 가족들은 사람을 시켜 어머니를 죽이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사람들은 하산에게 찾아와 할릴이 한이 맺혀 저승에 가지도 못하고 하산에게 원수를 갚아 달라고 했다고 전한다. 어머니를 향한 하산의 맹목적인 사랑이 분노가 될 수 있도록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을 해댔다. 병역기피자 케림 아저씨는 어머니에게 찾아와 아버지의 유령을 봤다고 이야기 했고, 그 이야기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양 마을에 퍼져 나갔다. 그중에서는 그런 불길한 기운을 눈치챈 어떤 노인은 절대 니 손으로 어머니를 죽이는 건 안된다고 다짐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움직임도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할릴의 공포를 완화시키지 못했다.
할릴은 마침내 매일 밤 하산의 꿈에 나타났다. 그 모습은 언제나 처절하게 형상화 됐는데, 가끔은 구렁이의 모습으로 때로는 도마뱀이나 개구리, 올빼미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는 항상 그를 위해 복수를 해달라고 말했다. 꿈속에서 그는 매번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으며, 간절하게 부탁하듯 복수를 부르짖었다. 그렇다면 '독사'는 아마도 아버지의 원혼이었을까. 하산이 방아쇠를 당겨야 했던 것은 어머니를 향해서였을까. 아버지의 환영 혹은 할머니나 삼촌들의 미신같은 믿음이었을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동네 사람들을 떨게 만든 지독한 공포심이었을까.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는 결국 슬금 슬금 나를 뒤쫓아와 결국엔 나를 집어 삼켜버린 고통과 슬픔의 거대한 독사에 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우리 삶에 한번쯤은 그 거대한 '독사'와 마주할 순간이 있으며, 그때 그것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인생의 방향을 전혀 다르게 바꿔 놓을 수도 있다.
이 책은 2개의 중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그 중 여자에게 반해서, 여자를 납치해서 결혼해 버립니다. 졸지에 연인을 도둑맞은 남자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버린 사랑을 잊지 못하고 그녀의 집 근처에게 배회하다가, 결국 그녀의 남편을 죽여버리고, 동네사람들에게 붙잡혀 살해당합니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격정에 휩쓸린 폭력의 축제가 끝이 난 뒤에, 누군가는 그 뒷처리를 해야만 합니다.
졸지에, 과부가 되어버린 여자를 두고, 남편의 식구들,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어떻게든 죽여버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를 죽이러 간 남자들은 오히려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녀에게 구애를 하게 되지요.
마을 사람들은 이 여인을 어떻게든 죽이려고 하지만, 아무도 죽이려 들지는 않습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처럼, 누군가가 대신 처리해주기만을 바라고, 마을 사람들의 다수결에 의해 선택된 처형자는 바로 그녀의 아들이었지요.
하지만, 존속살해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어린 아들이 미쳐버릴때까지 엄마를 죽이라고 세뇌를 시키고 결국 아들은 엄마를 총으로 쏴서 죽이게 됩니다.
2. 아으르 산의 신화
- 제후의 말이 산으로 달아납니다. 그 말을 주운 산속의 남자는 말을 돌려주지 않고, 화가 난 제후는 그 남자를 잡아다 감옥에 가둡니다. 남자는 밤마다 피리를 불었고, 그 피리 소리에 홀린듯, 제후의 딸이 그와 사랑에 빠집니다.
제후는 말도 빼앗기도 딸도 빼앗기자 너무나 화가 나서 억지로 남자를 죽여버리려고 합니다. 그런 제후의 권력의 남용에 화가난 사람들은 시위를 벌이고, 사람들의 시위에 겁을 먹은 제후는 결국 그 남자를 용서하고, 딸과의 결혼을 허락합니다.
결혼이 허락이 되자, 남자는 스스로 제후의 딸과 헤어집니다. 왜냐하면, 제후의 딸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다른 남자에게 순결을 팔았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기 때문이지요.
두 소설 모두에서, 주인공의 파멸은 그 자신의 악덕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주변에서 강요한 가치관 때문에, 그 공동체에 계속 속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스스로 망쳐버리게 됩니다.
개인주의는 기득권의 논리라고들 합니다.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사람들의 논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힘 없는 사람들은 서로 뭉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장점만 있고 단점은 없는 것은 없습니다.
공동체가 사회문제의 모범 답안일 수는 있어도, 정답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경고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개인주의가 대안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매번 읽는 문학작품이 국내와 영미권, 서유럽의 작품들이었다. 갑자기 다른 문화권의 작품이 읽고 싶어 터키 작가 ‘아샤르 케말’의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평소 ‘터키’라는 나라에 대해 궁금하고 호의적인 느낌을 가졌던 터라 설레는 마음으로 읽으려 했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이 ‘납치혼, 명예살인’, ‘쿠르드족 탄압’에 대한 것이라 결코 설레임만으로 읽을 수 없었다.
작가인 ‘아샤르 케말’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유명하고 좋은 작품을 많이 쓴 사람이었고, 한 번 가보고 싶은 나라이던 터키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납치혼, 명예살인’, ‘쿠르드족 탄압’ 따위의 이면의 진실들은 불편하고 심각했다.
“아내나 누이가 성폭행을 당하거나, 혹은 혼외 성관계가 발각되는 경우 아내나 누이는 명예살인의 대상이 된다. 곧바로 아버지나 오빠, 남편이 처벌의 임무를 수행한다. 이때 명예살인으로 여성들이 처벌당하는 것은 ‘당연’하고 마땅한 결과이다.” (p.236)
‘명예살인’에 대한 내용인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이 작품은 1976년에 출간되었다.
‘명예살인’이 전 세계에 알려진 것이 1994년 요르단 타임즈의 ‘라나 후세이니’라는 여기자에 의해서였다고 하니,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잘못된 율법의 해석과 왜곡된 전통의 답습으로 많은 여성들이 피해를 받아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아프간의 ‘탈레반’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만이 이러한 ‘명예살인’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슬람 문화권에서 광범위하게 자행되었다는 사실에 무섭고 놀라웠다.
또한 책에 실린 두 번째 소설 <아으르 산의 신화>는 오스만 제국의 붕괴 후 터키공화국이 수립되는 과도기에서 자행된 쿠르드족에 대한 터키공화국의 탄압과 현재에도 유효한 그들에 대한 차별에 대한 내용이었다.
쿠르드족은 중동 지역에서만 존재하는 소수민족인 줄 알고 있었는데 터키 동부 산악지대를 비롯해 러시아의 일부 지역에까지 서구 열강과 군소 독립국들에 의해 탄압을 받아 왔다는 사실 또한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인권과 소수자에 대한 사회고발과 배려의식이 담긴 ‘야샤르 케말’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큰 의의가 있었다.
어느 곳이든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는 차별과 아픔 갈등이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것 또한 뼈에 와 닿는다.
이런 무거운 주제를 가진 작품이지만 작가의 필력은 대단하다. 마치 동화를 읽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잔혹동화라 해야 하나?ㅋ) 인물 간 대화와 상황 설정, 묘사가 빠르고 섬세하다. 그렇다고 가볍게 스케치 하듯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감정의 이입이 될 만큼 구성이 뛰어나다.
마지막으로 해외작품을 읽으며 한 번도 번역자에 대한 호평을 한 적이 없었는데 이 작품의 번역자인 오은경씨의 번역은 훌륭한 작품을 더욱 훌륭히 읽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에겐 낯선 터키어를 한글로 번역하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텐데, 터키어와 한글에 대한 공부가 충분한 실력 있는 번역가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터키와 터키의 문학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나에게도 전해져 빨리 또 다른 터키 문학작품을 찾아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