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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증언

경계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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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5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16쪽 | 436g | 128*188*30mm
ISBN13 9788998778064
ISBN10 899877806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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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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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관들이 모여 사는 본가의 마당 깊은 곳에는, 천 년을 살았다는 고목이 있다. 자신이 한때 나무였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말라비틀어진 고목에는 서로 종류가 다른 꽃이 피고 지는가 하면 가끔은 나무 위에서 조개가 발견되기도 했다. 은우는 그 비밀이 참으로 궁금했다. 대체 저 나무에는 왜 제 것이 아닌 꽃이 피며, 바다에나 있어야 할 조개가 박혀 있는지.
“그렇게 궁금하더니……, 이제야 알겠습니다.”
은우가 나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새였습니다. 이 비밀스런 공간과 저 밖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가 세상 밖의 씨를 물어오고, 바닷가 조개를 발등에 묻혀왔던 겁니다.”
형랑은 묻고 싶었다. 너의 발등에는 무엇이 묻어 있었던 것이냐고. 무엇 때문에 네 눈은 그토록 많은 감정과 동요를 담게 되었느냐고. 돌아온 은우는, 너무나도 위태로워 보였다.
“대장께서는 왜 절 꾸중하지 않으십니까.”
다른 특검관들의 호들갑과 달리, 형랑은 살아 돌아온 그녀를 보고도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온 사람을 맞이하는 것처럼.
“꾸중들을 일을 하고 온 게냐.”
“……. 모르겠습니다.”
“네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네가 영영 사라졌다면 꾸중했겠지만……. 돌아왔으니 됐다.”
“그 일로, 혹 대장께, 다른 특검관들에게 피해가 가면 어쩝니까. 제가 묻혀온 바람이 피바람이면 어찌합니까.”
문득 형조 관아에서 만났던 하월군이 떠올랐다. 주변이 다 얼어붙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섬뜩한 기운을 풍기는 사내였다. 그자에게 원한을 샀다면 은우의 목숨뿐 아니라, 동료인 자신들의 목숨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우리들의 인생 자체가 피바람을 견디는 일 아니었더냐.”
--- 「2부 비단 주렴 모두 걷고 혼자 누각에 기대보니 」중에서

내가 울었구나. 은우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가를 만져보았다. 까슬한 감촉. 눈물이 말라붙은 자국이다.
“하긴, 가슴에 있던 사람 하나 잊기가, 어디 그리 쉽나.”
“잊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있소. 오래전에 내 곁을 떠난 사람이지.”
순간 자신이 들이켠 숨에 질식하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한꺼번에 많은 양의 공기가 은우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잊지 못했다.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나에게만 해당되는 일. 당신은 이토록 애틋한 표정으로, 다른 이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한다.
“시간이 사람에 대한 기억을 지워준다는 건 거짓말 같아. 내가 보기엔 말이오……, 시간은 기억의 각진 모서리만 닳게 할 뿐이오. 정작 알맹이는 그대로 남아, 여기저기, 기억을 굴러다니고 있지. 반들반들해진 돌멩이처럼.”
--- 「3부 돌아가고 돌아가도 마침내 끝이 없으니 」중에서

임금이 성인이 된 후.
그날을 생각하자, 은우의 눈이 매워졌다.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기에, 포악한 소문을 감내하면서까지 군사를 키워왔던가, 하월은.
살아남기 위해서.
훗날, 임금으로부터 버려지는 날을 대비하기 위하여.
“이 일에서 하월군을 떨어뜨려 주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깊이 들어가면 하월군이 위험해지네. 금상이 흔들리게 두어선 안 되네.”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은우로부터 시선을 거둔 대비가 수틀을 집어 들었다.
궁을 빠져나온 후, 은우는 멍하니 그곳을 돌아보았다. 높이 솟은 궁궐의 대문이 거대한 입처럼 느껴졌다. 한 번 빨려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아귀의 입.
은우가 한숨을 쉬었다. 하월을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모두 구중궁궐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앉은 늙은 여인의 뜻이로구나.
--- 「5부 소나무는 천년을 살다 썩고 」중에서

“어릴 때 말입니다.”
은우가 속삭였다.
“빗물이 감을 타고 내리면 감색 물이 들고, 잎사귀를 타고 내리면 초록 물이 드는 줄 알았습니다. 왜 비는 세상과 맞닿는데도 물들지 않을까. 그게 참으로 궁금했는데……, 그분께서 그랬습니다. 빗물이 세상과 맞닿아 물들기 시작한다면 그 색은 검은색일 거라고. 세상의 모든 색을 다 섞으면 검은색이 되어버리니까. 그리고 또 말씀하셨지요. 물들지 않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고. 비는 그 어려운 일을 수백 년, 수천 년 묵묵히 감내했던 거라고.”
--- 「6부 안위의 나뉨은 평생에 조금 알아 」중에서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정혼자의 결혼식에 얼음 상태로 배달된, 일명 ‘얼음 여인 사건’을 조사하던 특검관 서은우는, 임금의 이복형 ‘하월군’을 죽이려 한 자객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비슷한 시기, 청도에서 나비 형상으로 죽어있는 여인의 시신이 발견되고, 사건을 조사하러 떠나야 하는 특검관들은 은우의 무고를 입증하기 위해 하월군의 동행을 수락한다. 하지만 차츰 하월을 마음에 두게 된 은우 앞에 드러난 사건의 모든 증좌는 하월군과 그 너머의 거대한 음모를 지목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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