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화를 보는 한 방식. 주인공의 입장이 아니라 주변인의 입장에서 본다! 우리의 수퍼 히로인이 시장 골목으로, 백화점 내부로 자동차 핸들을 꺽으며 보란듯이 악한을 따돌리는 동안, 나는 내내 주인공이 들이박은 과일상자니 백화점 유리창 걱정이다. 그가 박살 낸 과일상자에 치여 엄마 손 잡고 시장구경 나온 아이 하나가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쩌나, 하루 벌어 먹고 사는 행상은 어디서 보상을 받나... 그런 쓸데없는 걱정들. 주인공의 눈부신 활약처럼, 우리 삶엔 밝고 희망찬 미래도 많이 있건만, 왜 나의 촉수는 매번 불운한 것들로 쏠렸을까. 성실하게 쌓아놓은 것들이 우연한 사건으로 한순간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아마 그것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통제불가능한 상황에 대해 우리 인간은 아무 것도 대비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불안-즉 미국작가 '폴 오스터'가 끊임없이 견지하는 그런 오스터식 불안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왜 신은 선하시다면서, 자신이 만든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가. 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는가." 이 책『고통의 문제』는 이 길고 오래된 '고통'의 문제에 대해, 신학적인 관점에서 변증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서두에서부터 이런 반론으로 글을 시작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은 불합리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인류의 역사만 보아도 비이성적이고 잔인한 행태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왜, 왜 인간은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어떤 선한 존재가 창조했다고 생각하게 됐는가'. 그는 이 반론에 또다른 반론과 증거를 제시하면서 신의 전능과 인간의 악, 그리고 고통에 대한 문제를 하나 둘 풀어내고 있다. 나는 여기서 저자가 언급한 정교한 이론을 모두 언급하는 무모한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저 그가 논지를 위해 내세운 이론 중 아주 일부만을 소개하려 한다. (솔직히, 그것만으로도 나는 벅차다)
C.S.루이스가 말한 이론 중 내 무릎을 치게 만든 한가지는 바로 이것이다. '왜 이 세상엔 고통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세상은 매트릭스의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거칠게 말하면 내 의지(자유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공간이 늘어나거나 신체 기능이 다른 물질로 바뀔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는 것. 마치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는 자연현상을 우리가 조절할 수 없듯이(저자는 이것을 '자연' 스스로 '자유의지'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세상에는 어느 한 사람의 의지로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고정된 물질적 기반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공동의 계약'으로 형성된 사회라는 객관적 기반이 있기에 인간이 비로서 '자신'과 '타자'를 구별할 수 있듯이. 만약 매트릭스의 세계처럼 어떤 한 개인 'A'의 의지가 자유자재로 자연과 물질세계를 지배하게 되어서, 어느 누구도 홍수에 휩쓸려 죽지 않고 마주 달려오는 차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면? 그래서 수많은 자유의지들이 이 물질세계를 서로 지배하려 든다면? 그 세계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도 아니며, 이미 너와 내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즉, 그것은 불가능한 세계가 아니라, '헛(없는) 세계'라는 것. (저자는 이어 대표적인 신학적 난제 중 하나인 '삼위일체'-'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동시에 한몸인 존재-를 통해서도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원하시는 삶의 방식, 즉 '사회'에 대한 단서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 이즈음에서 고통의 문제를 다시한번 환기해 보자. '왜 고통의 문제가 발생하는가.'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논의에 대해서만은 적어도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자원(물질)은 한정되어 있으며, 이 땅엔 '나'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는 물질을 누리면, 누군가는 물질을 덜 누리거나 누리지 못하게 된다. 나는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불행해질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은 '함께 사는 일'에 대한 문제로 귀결되는가. 그렇다. 나는 저자가 언급한 수많은 고통에 관한 논의 가운데 이렇게 '함께 사는 문제'의 관점에서 이 책을 소개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너무 염려 마시라. 이 책의 적어도 8할은 아주 고차원적이고 정신적인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으니까. 다시 말하면, 아무리 많은 '물질'도 인생의 궁극적인 행복이 될 수 없다는, 마찬가지로 고통에 대해서도 우리가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이야기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들의 미래를 위해 회초리를 드는 아버지처럼, 상대방을 더 좋은 모습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와 수정을 요구하게 되는 연인들처럼, 우리에게는 물질을 넘어서는 더 큰 차원쟀 세계가 있으며, 고통은 그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인간을 독려하는 유익한 과정일 수도 있다는 것. 너무나 당연한 논리같지만, 오랜 세월동안 불문율처럼 인류의 가슴에 살아있는 그 귀한 오소독시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자면, 이 책은 쉽게 읽히는 류가 아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나는 책의 아주 일부분만을 풀어놓았으며, 자의적인 해석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꼭 직접 책을 통해 인간과 신과 사랑,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한 저자의 방대한 사유와 이론의 전개를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A가 곧 B의 그림자임을 암시하는 요소가 곳곳에 깔려 있다. 그 팽팽한 지적 유희를 꼭 만킥해 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