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소득공제
미리보기 파트너샵보기 공유하기
리뷰 총점8.0 리뷰 2건 | 판매지수 96
정가
10,000
판매가
9,000 (10% 할인)
YES포인트
이 상품의 수상내역
가방 속 책 한 권이라면 - 굿리더 스트링백/간식 접시 머그/디즈니 미키 타포린 보냉백/타포린백
〈2022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투표 참여 회원 전원 1천원 상품권 증정!
8월 얼리리더 주목신간 : 귀여운 방해꾼 배지 증정
MD의 구매리스트
8월 전사
쇼핑혜택
1 2 3 4 5

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05년 10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07쪽 | 432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7420283
ISBN10 893742028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2000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단순히 가벼운 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제와 문체와 대화와 행동과 정신을 아우르는 예외적인 ‘속도’를 구사한다. 이 작품의 빠른 속도 속에는 일상의 틈새로 엿보이는 현기증 나는 공허를 들여다보고 그 상투성을 비트는 시선이 감추어져 있다. 리모컨을 장착한 새로운 작가의 출현이다.
― 김화영(고려대교수/문학평론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젊음은 존재했고 그 젊음은 새로움을 추구한다. 이 소설은 단연 젊다. 단문으로 치고 빠지는 가벼운 터치, 이따금 등장하는 만만치 않은 에피그램이 소설 읽는 사람의 자세를 고치게 만든다.
― 성석제(소설가)


저자 소개 (1명)

회원리뷰 (2건) 리뷰 총점8.0

혜택 및 유의사항?
파워문화리뷰 사랑과 결혼이라는 연극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오***스 | 2017.11.16 | 추천2 | 댓글0 리뷰제목
사랑과 결혼이라는 연극- 이만교, 『결혼은, 미친 짓이다』       이만교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결혼과 사랑 사이에서 분열된 인물의 모습을 중요한 모티브로 삼고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의식적으로’ 분열된 상태에서 저마다 추구하는 사랑을 꿈꾸고 있다. 그것은 “상처받은 나와 상처받지 않은 나. 환상에 빠져있는 나와 현실을 직시;
리뷰제목

사랑과 결혼이라는 연극

- 이만교, 『결혼은, 미친 짓이다』

 

 

 

이만교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결혼과 사랑 사이에서 분열된 인물의 모습을 중요한 모티브로 삼고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의식적으로분열된 상태에서 저마다 추구하는 사랑을 꿈꾸고 있다. 그것은 상처받은 나와 상처받지 않은 나. 환상에 빠져있는 나와 현실을 직시하는 나. 꿈을 꾸고 있는 나와 실재를 바라보고 있는 나라는 다양한 존재들로 표현되고 있거니와, 주체의 이러한 분열이 그들의 이중적인 삶을 가능케 한다.

 

주인공 그녀는 여러 여자-남자들을 섭렵하고 있으며, 주인공의 친구인 규진은 아내(유리)와 애인(지영)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들에게 삶-사랑은 타자 앞에서 해야만 될 연극으로 표현된다. 이 연극의 세계에는 돈을 위해 결혼해야 할 사람과 사랑을 위해 연애해야 할 사람이 나누어져 있다. 그 나눔의 기준은 바로 주체의 의식이며, 이를 통해 주체는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에 충실해질 수 있다. 주체가 배우가 되어 대본에 있는 배역에 따라 행동할 때, 타자 역시 그에 맞는 배역으로서의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주체와 타자는 서로에게 다만 대상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대본에도 없는 즉흥 연기의 저 실감나는 표정. 그 바람에 모든 상황이 실제인 양 생생해지고 동시에 내 머릿속으로 빠르게 십여 년치의 달력이 한꺼번에 넘어가더니, 아이를 안은 다소 뚱뚱해진 그녀가 저녁 식탁에 앉아 자기가 먼저 나를 좋아했잖아!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자기가 너무 긴장해서 물을 쏟기까지 했던 거 기억 안 나?>하고, 따지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 그렇다면 나는 지금 단순히 재미없는 배역을 맡고 있는 게 아니었다. 지극히 모범적인 그러나 무난히 소화해낼 수 있는 인생 배역이, 게다가 장기적인 연기 활동이 보장되는 일평생짜리 대본이 내 앞에, 출연 계약서처럼 떨어져 있는 셈이었다. 나는 새로 긴장을 추슬렀다.

 

 

주인공에게 세상은 한 편의 드라마이다. 그 드라마는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며, 그렇기에 주인공은 세상을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만난 그녀를 보면서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근거하여 긴장을 추스르는 주인공의 모습은, 세이렌이 유혹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 자신을 기둥에 묶는 오디세우스를 연상케 한다. 유혹의 소리는 아름답지만, 그 소리를 탐한 결과가 비참하다는 걸 주인공은 알고 있다. 소리를 즐기되, 비참한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 주인공은 자신의 사유 속으로 세계를 끌어들인다. 세계가 드라마처럼 손쉬운 예측이 가능하다면 주인공의 이러한 삶의 방식은 실현될 수 있다.

 

그렇지만 주인공의 드라마적 세계인식은 타자들의 예기치 않은 행동으로 자주 틈을 드러낸다. “신파인 줄 알았던 그녀와의 첫 만남이 포르노로 변하는 것처럼, 주인공은 예측할 수 없는 세계의 혼돈 속에 빠져든다. 작가는 오디세우스를 갈망하는 이 주체들을 혼돈스런 세계에 계속 빠트림으로써 분석적 이성을 무기로 삼는 주체들의 내면에 틈을 만들어낸다. 세상이 혼돈이기 때문에, 주체의 분석적 사고력도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주인공의 여동생이 갑작스럽게 유부남과 연애사건을 일으켜 주인공의 내면에 파동을 일으키더니, “콩나물 비빔밥과 관련된 우연적인 사건이 주인공과 그녀주말부부관계마저 종점에 이르게 한다. 모든 것이 갑작스럽게 시작해서 진행되다가 갑작스럽게 종결된다.

 

이처럼 우연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인물들이 벌이는 연기는 한계를 드러낸다. 연기력이 삶의 바깥에 있으면서 에 존재하려는 이중적인 사유의 소산이라고 본다면, 바깥을 연결시키는 것은 결국 주체의 사유능력일 수밖에 없다. 세계를 전유할 수 있는 능력이 주체가 가질 수 있는 사유 능력이라면, 우연적인 세계는 그 주체의 사유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여 주체화-동일화하려는 순간, 세계는 이미 또 다른 세계로 변화된다. 주체의 사유는 끝없이 변화되는 세계의 꽁무니를 따라다닐 뿐이며, 그러한 상황에서 연기력은 실제 상황의 문제로 돌변하여 현상과 실재라는 대립 관계를 없애버린다.

 

그들은 연기를 한다고 자부하지만, 그 연기는 언제까지고 계속될 수는 없는것이라는 점에서 그 끝은 명확하다. 그것이 계속되면 그것은 낭떠러지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 “낭떠러지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지점에서 주인공의 반성적인 사유가 시작된다. 그 반성적 사유는 주인공과 그녀가 선택한 기준이 결국은 자본주의 사회의 욕망에 편승한 용기 없는 행위였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실제의 삶을 받아들일만한 용기가 없기에 그들의 삶은 연극적인 연기, 곧 포즈의 차원에서 행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당연하게도 주인공은 용기를 말한다. 그렇지만, 용기는 갑작스러운 반성만큼이나 텔레비전처럼 구조화되어 있는 세대의 내면으로 사라질 운명을 지니고 있다.

 

한 가지만 선택해서 행동해야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라는 주인공의 깨달음은, 이런 점에서 현실과 매혹의 두 가지를 선택한 오디세우스의 경계지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깨달음이다. 그는 한계에 직면한 분석적 사유의 새로운 길을 찾고 있을 뿐이다. 그 길이 진정 한 가지만 선택하는 길이 되려면, 그는 타자성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뿌리까지 파헤칠 수 있는 인식의 모험에서만 나올 수 있는 험난할 길이다. 이 타자성에 대한 인식이 심화될 때, 그가 생각하는 한 가지를 선택하는 길도 제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 0 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2
결혼을 재고하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차* | 2010.08.22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함께 살아간다는 것   갓 대학에 입학한 20살 때였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 외지에서 살게 되었다. 혼자보단 둘이 좋을 것 같아서, 마침 같은 대학에 합격한 고3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 함께 하숙을 하였다. 이기기보단 져주는 편인, 착실히 공부했고, 특별한 일탈을 저지른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정말 순하디 순한 친구였다.   그러나 같이 사는 것은 제법;
리뷰제목

 

함께 살아간다는 것

 

갓 대학에 입학한 20살 때였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 외지에서 살게 되었다. 혼자보단 둘이 좋을 것 같아서, 마침 같은 대학에 합격한 고3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 함께 하숙을 하였다. 이기기보단 져주는 편인, 착실히 공부했고, 특별한 일탈을 저지른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정말 순하디 순한 친구였다.

 

그러나 같이 사는 것은 제법 까다로웠다. 밀도 높은 고3의 시간을 한 교실에서 보냈건만, 동거할 때 나오는 성격과 행태는 참 새로웠다. 가끔 소소한 다툼이 있었고, 제법 많은 인내심이 요구되었다. 내가 휴학하기까지 1년을 함께 살았다. 나중에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절친 사이라도 같이 살았다가 인연을 끊기도 한다고. 어머니의 소싯적 경험에서 나온 말씀이다. 그 친구와 나는 요즘도 종종 만난다. 나름대로 성공적인 동거를 해낸 셈이다.

 

이 때의 기억은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르게 한다. 결혼은 어떨까? 기껏해야 한 방을 같이 쓰는 것뿐이었는데, 참 많은 인내심과, 인격적 성숙이 요구되었다. 그렇다면 함께 모든 일상을 함께해가며, 삶의 궤적을 함께 그려가며 반평생을 살아가는 결혼이라면, 얼마나 잘 맞아야 하는 것일까? 나나 그 사람이나 얼마나 성숙해야 하는 것일까? 도통 감이 잡히질 않는다.

 

 

결혼이 미친 짓인 이유

 

결혼은 과연 사랑의 산물일까? 이런 환상을 갖기엔 이미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근대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가 결혼이라는 설이 있다. 특히, 일부일처제는 사회적 가치가 낮은 남자들에게도 짝이 돌아가도록 하여, 그들로 인한 사회 분열을 막고,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인구 수를 늘리기 위해서라고. 그럴 듯 하다.

 

뭐 이런 거시적인 담론이 아니라도, 자신의 감정에 민감하더라도 느낄 수 있다. 내 생각엔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마저도 나와 경제적·계급적으로 비슷하거나 조금 나은 상대를 만났을 때 촉발되는 것 같다. 그리고 결혼의 관건은 상대의 조건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세태를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꼬는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너무 많은 사람들이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각자의 결혼생활을 거짓으로라도 미화시키거나 편협한 도덕론으로 묶어놓기에 바쁘다. 특히, 경제적 손익계산표를 바탕으로 한 거래이면서도 마치 순수하게 사랑하는 척하는 위선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만연되고 있다. 그런데도 결혼이 아주 성스러운 것인 양 치장된다.”

 

결혼을 강요하는 사회

 

그가 직설적으로 폭로하는 현실에서 과연 나는 자유로운 것일까?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결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조건을 따져서 결혼에 골인했다면, 인간 대 인간으로서 진정한 소통이 가능할까? 지속적으로 촉발될 갈등은 잘 해결해갈 수 있을까?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하면 친구 만날 시간이 거의 없다는데, 마음은 어디다 털어놓아야 할까? 그렇담 삶에 무슨 낙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행복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함께 있고 싶고, 맘이 통한다 하더라도 언제까지 그럴꺼란 보장도 없지 않은가. 거창하게 결혼을 했다가 나중에 안 좋으면 어찌하나? 그런데 결혼을 안하자니, 주변으로부터의 압력이 상당하다. 획일화된 사회에서는 튀는 행동을 하면 몰매를 맞기 마련. 부모며 친구며 언제 결혼할꺼냐고 압박을 가해올 것이며, 무슨 하자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런 눈초리를 받을 것이다. 또 결혼한 친구들은 바쁘다고 별로 만나주질 않을테고.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살겠다고 외쳐봐도, 나를 비롯한 모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것은 결혼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큰 불행을 초래할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다.

 

그래서 넌 어쩔껀데?

 

나는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으며 살 것을, 사회가 제한해 놓은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기를 결심했다. 따라서 사회적 속박의 최고 산물인 결혼은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또한 나는 시절인연을 믿는다. 정말 인연이라 생각되는 두 사람이 만난다면, 한동안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며 긴밀한 관계를 맺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아무도 모르는 것.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가는 방향이 달라져 관계가 어긋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평생 서로에게 속박되어야 하는 결혼은 이런 자연스러운 인연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 나는 독신론자인가? 그렇지 않다. 나는 결혼을 할 것이다. 으잉, ? 왜냐하면 정말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진정한 소통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서로의 방향이 어긋나더라도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그런 상대를 알아볼, 그리고 마음을 사로잡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내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연애는 나중에 사회 나가서 하라고. 지금은 공부할 때라고. 하지만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행동으로도 꾸준히 배반해왔다 ㅡㅡㅋ 공부하는 이유도 행복하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행복은 관계에 있는 것이고, 인간관계도 자꾸 해봐야 는다. 그것도 깊게 사귀어 봐야 한다. 그리고 사람을 깊게 사귀어보는 것에는 연애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여자사람을 만난다

 

(혹시 오해할까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만나는 건 아니다. 만남 자체가 행복하니까 만나는 거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은 부수적인 이득일 뿐.)

 

내가 만나야 할 배우자는 존경할 수 있는 상대,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있고, 내밀한 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내가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진정성이 묻어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런 상대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 어떤 소설가보다 인간의 본성과 심리에 대해 깊은 이해와 공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사실 내가 결혼을 꼭 하려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아이를 낳기 위해서다. 나는 지금도 애기를 참 예뻐한다. 길가다 애기를 보면 절로 웃음이 나고, 자꾸 보고 싶다. 그런데 내 자식이라면 정말 얼마나 애틋하고 귀여울까?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무한한 행복을 누리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안정적인 양육 환경을 제공하는 데엔 결혼이란 제도 하에 있는 것이 유리하리라 생각된다. 아이도 차별받지 않을 것이고.

 

참 위에서 언급을 안했는데, 후에 서로의 방향이 너무나도 크게 어긋난다면 이혼을 할 용의도 있다. 물론 아이를 낳으면 이혼이 자유롭지 않아질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살아간다면, 아이들도 그것을 배우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굳은 심성과 자질을 충분히 키워준다면 말이다

 

 

용기는 최상의 살해자다

 

이제야 나는 깨닫는다. 사진 속의 삶은 그녀가 가보고 싶어했던 또 하나의 길이라기보다는, 그녀와 내가 갔어야 했던 길임을. 그러나, 우리에겐 그 길을 갈 용기가 없었다

 

소설 마지막, 주인공의 독백이다. 주인공은 길을 갈 용기가 없어서 주저했다. 하지만 나는 성공적인 결혼을 위해 지금부터 진정성 가득한 관계로 일상을 채워갈 것이다. 그리고 적기라 생각될 때 용감하게 달려들 것이다.

 

 

 

. 실상 이렇게 쓰면서도 생각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는다. 솔직히 요즘 많이 혼란스럽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 지 알고, 총체적인 삶을 아우르는 전망을 내놓는단 말인가? 결혼만 해도 적어도 인생의 10~20년을 내다보는 것인데. 그래서 그냥 지금 생각을 명확히 한다는 데 의의를 두려 한다. 좀 더 풍부한 경험을 겪고,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그때 그때 느낀 바를 중심으로 서술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댓글 0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9,0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aniAla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