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독자라면 눈치 챘을 것이다. 이들의 여행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을. 아련하게 추억하는 대신 생생하게 묘사하고, 판타지로 포장하는 대신 날 것으로 중계한다. 『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아서』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을 박제시킨 영원의 책이다.
- 백은하 (영화저널리스트)
씨앗을 품고, 발아시키고, 너른 땅에 돌려준 이야기. 갈망이 있는 이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또 그것을 위해 준비하며, 결국 실현시키는 이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단과 두는, 여행 때문에 인생이 바뀌지 않았다. 그들의 능동적인 인생이 잠시 여행을 초대한 것뿐이다.
- 오소희 (여행작가)
둘과 나눈 오랜 인연에 더해 한껏 반가운 것은, 이 책에 실린 글과 사진에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한 ‘수평적인 시선’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점이다. 다운과 두산은 세상이 자기 것인 양 함부로 쓰거나 찍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자리에 있어줘서 고맙고, 받아줘서 기쁘다는 얘기들로 세상의 참맛을 전한다. 그래서 참 고맙다.
임종진 (사진작가, <달팽이 사진골방> 대표)
불과 한 달 전까지 높은 건물, 작은 책상에서 일하던 우리가 남미의 오래된 도시에 던져졌다. 우리는 이 여행을 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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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샤는 보통 남편 무릎에 먼저 올라갔다가 내 무릎으로 옮겨와 고롱고롱 잠을 잤다. 능숙하게 주문받고 서빙하는 소년 사무엘과도 친해져서 틈틈이 근황을 묻고 수다를 떤다. 이 아무렇지도 않은 날들이 나중에 몹시 그리워지겠구나. 가끔 그런 생각이 들면 미리 앞서 마음이 서늘해질 만큼, 행복한 시간.
미리 고백하건대, 나는 이곳, 안티구아, 남미 여행의 첫 도시에서 여행의 목표를 모두 이루었다. 이 하루, 이거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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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화려하고 웅장한 선물들로 듬성듬성 엮어진 것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 돌담 위의 꽃, 맛있는 커피 한잔, 사람들의 미소 같은 작은 선물들로 촘촘히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게 다 안티구아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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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는데 방이 없으면 다시 보고타로 돌아올 거야.”
“방이 없으면 전화해. 내가 도와줄게.”
숙소 주인장이랑 친해져서 보고타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우리 이야기에, 한국의 어머님께서는 “나그네가 그리 정을 주면 어쩌냐”고 하셨는데, 우리도 우리지만 호스텔을 운영하는 주인장이 이리 정을 주면 어쩌자는 건지. 다시 올 기약도 없는 나그네들에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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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것이 별로 없었다. 시간은 충분했고 하늘은 맑았다. 사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면서 이곳에서의 시간을 보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도 많다. 다만 그 행복의 질감만이 선명하다. 나른한, 그러나 가볍지 않은 기억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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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별이 뜨면 발아래에도 별이 뜨고, 해가 져 하늘이 붉어지면 땅도 함께 붉어졌다. 넋을 놓고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면 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투어를 끝내고 숙소에 들어와서 누우면, 아까 본 그 하늘이 그리워졌다.
“우리 한 번만 더 보고 가자.”
“응, 한 번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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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름다운 도시 발파라이소에서 얼마 전 큰 화재가 났다. 내가 걷던 그 포근한 도시가 잿더미가 되었다. 폐허에 남겨진 것들 그리고 남겨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생각에 아내와 나는 며칠 동안 꼼짝 없이 후유증을 앓았다.
재작년에는 토레스델파이네, 작년에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불이 났다.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생각보다 쉽게 사라진다. 떠나고 싶은 곳이 있다면, 그리운 곳이 있다면, 시간이 그리 충분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