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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1997년도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문학동네소설상-01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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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1996년 01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96쪽 | 592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5712767
ISBN10 8985712764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새의 선물>은 작가가 지난 여름 무주 적상산의 안국사라는 절에 들어가 2개월간 해발 1,000m가 넘는 선방에서 두문불출, 하루 10시간씩 노트북 컴퓨터와 씨름하며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장편소설. 그야말로 작가 은희경의 영혼과 정신의 거센 출렁거 림과 인간의 삶과 세계를 꿰뚫는 빛나는 통찰이 돋보이는 역작이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프롤로그.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1. 환부와 동통을 분리하는 법
2. 자기만 예쁘게 보이는 거울이 있었으니
3. 네 발밑의 냄새나는 허공
4. 까탈스럽기로는 풍운아의 아내 자격
5. 일요일에는 빨래가 많다
6. 데이트의 어린 배심원
7. 그 도둑질에는 교태가 쓰였을 뿐
8. 금지된 것만 하고 싶고, 강요된 것만 하기 싫고
9. 희망 없이도 떠나야 한다
10. 운명이라고 불리는 우연들
11. 오이디푸스, 혹은 운명적 수음
12. '내 렌나 죽어 땅에 장사한 것'
13. 슬픔 속의 단맛에 길들여지기
14. 누구도 인생의 동반자와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
15. 모기는 왜 발바닥을 무는가
16. 태생도 젖꼭지도 없이
17. 응달의 미소년
18. 가을 한낮 빈 집에서 일어나기 좋은 일
19.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도 깊은 것을
20. 사과나무 아래에서 그녀를 보았네
21. 죽은 뒤에야 눈에 띄는 사람들
22. 눈 오는 밤
에필로그. 상처를 덮어가는 일로 삶이 이어진다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운명적이었다고 생각해 온 사람이 흔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사랑에 대한 냉소를 갖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랑에 빠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얼마든지 다시 사랑에 빠지며,자기 삶을 바라 볼수 있는 거리유지의 감각과 신랄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집착 없이 그 사랑에 열중할 수가 있다. 사랑은 냉소에 의해 불붙어지며 그 냉소의 원인이 된 배신에 의해 완성된다.
--- p.224
어느 날 나는 지나간 일기장에서 '내가 믿을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긴 목록을 발견했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않는다 말인가. 이 세상 모든 것은 다면체로서 언제나 흘러가고 또 변하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사람의 삶 속에 불변의 의미가 있다고 믿을 것이며 또 그 믿음을 당연하고도 어이없게 배반당함으로써 스스로 상처를 입을 것인가. 무엇인가를 믿지 않기로 마음먹으며 그 일기를 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삶을 꽤 심각한 것이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 p.34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 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버렸네
--- 머리말 중에서
슬픔. 그렇다. 내 마음속에 들어차고 있는 것은 명백한 슬픔이다. 그러나 나는 자아 속에서 천천히 나를 분리시키고 있다. 나는 두 개로 나누어진다. 슬픔을 느끼는 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나. 극기훈련이 시작된다. '바라보는 나'는 일부러 슬픔을 느끼는 나를 뚫어져라 오랫동안 쳐다본다. 찬물을 조금씩 끼얹다보면 얼마 안 가 물이 차갑다는 걸 모르게 된다. 그러면 양동이째 끼얹어도 차갑지 않다. 슬픔을 느끼자. 그리고 그것을 똑똑히 집요하게 바라보자.
--- p.187
사람의 감정이란 언제 변할지 모르며 특히 젊은이를 변심하게 만드는 일은 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그러므로 상대가 나를 사랑할때 내가 행복해진다면 그것은 상대의 사랑을 잃을 때 내가 불행해 진다는 것과 같은 뜻임을 깨닫고 그 사랑이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한편 그것이 사라질 때의 상실감에 대비해야만 하는 것이다.타인을 영원하고 유일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이 세상에 그런 사랑을 있지도 않다는 것을 이모는 진작에 알았어야 했다.
--- p.304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에는 이쁘고 좋기만 한 고운 정과 귀찮지만 허물없는 미운 정이 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제나 고운 정으로 출발하지만 미운 정까지 들지 않으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운 정보다는 미운 정이 훨씬 너그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확실한 사랑의 이유가 있는 고운 정은 그 이유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지만 서로 부대끼는 사이에 조건 없이 생기는 미운 정은 그보다는 훨씬 질긴 감정이다. 미운 정이 더해져 고운 정과 함께 감정의 양면을 모두 갖춰야만 완전해지는 게 사랑이다.
--- p.123
말은 빈 수레를 끌고 가는데도 침을 질질 흘리며 헉헉대고 있다. 제깐에는 꾀병을 부리는 것인지 땅바닥에 발을 끌며 느릿느릿 걷는데 그럴 때마다 못마땅한 마부는 고삐를 더욱 세게 잡아당기며 발걸음을 빨리 한다. 그러면은 말은 느릿느릿 걸어가는 중에도 앞다리와 뒷다리를 바꿔 딛는 사이사이에 넙적한 똥을 퍽퍽 떨어뜨림으로써 주인에게 모욕을 준다. 말하자면 말과 주인이 신경전을 벌이는데 배짱은 말이 더 센 것 같았다.
--- p.136
댓돌 위의 구두를 신고 나서 이모는 마지막으로 마루 끝의 기둥에 걸려 있는 작은 거울에 자기의 모습을 비쳐본다. 상당히 의식적인 동작으로 머리카락을 한 번 쓸어넘겨 보더니 옆으로 몸을 틀며 어깨를 살짝 들어올리면서 가볍게 고개를 젖혀보기도 한다. 그리고는 자기의 모습에 대한 흡족함의 표시로 괜스레 비뚤어지지도 않은 내 옷깃을 바로잡아준다.

자기의 모습이 만족스러운 데다 나를 들러리로 앞세우고 나서니 비로소 일전을 불사할 자신감이 생기는 듯하다. 그 자신감을 미소로 드러내 보이느라고 이모의 번들거리는 죽은분홍색 입술이 살짝 젖혀진다. 첫만남을 위해 이모는 장소에 대해 꽤 신경을 썼다. 고심 끝에 이모가 결정한 평생 잊혀지지 않을 낭만적인 장소는 산성 안에 있는 '성안'이다.
--- p.81
누가 나를 쳐다 보면 나는 먼저 나를 두개의 나로 분리시킨다. 하나의 나는 내 안에 그대로 있고 진짜 나에게서 갈라져나간 다른 나로 하여금 내 몸밖으로 나가 내 역할을 하게 한다. 내 몸 밖을 나간 다른 나는 남들 앞에 노출되어 마치 나인 듯 행동하고 있지만 진짜 나는 몸 속에 남아서 몸 밖으로 나간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하나의 나로 하여금 그들이 보고자 하는 나로 행동하게하고 나머지 하나의 나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때 나는 남에게 '보여지는 나와 나 자신이 '바라보는 나'로 분리된다.
--- p.20-21
내가 왜 일찍부터 삶의 이면을 보기 시작했는가. 그것은 내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삶이란 것을 의식할 만큼 성장하자 나는 당황했다. 내가 딛고 선 출발선은 아주 불리한 위치였다. 더구나 그 호의적이지 않은 삶은 내가 빨리 존재의 불리함을 개닫고 거기에 대비해주기를 흥미롭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어차피 호의적이지 않은 내 사람에 집착하면 할수록 상처의 내압을 견디지 못하리란 것을 알았다. 아마 그때부터 내 삶을 거리 밖에 두고 미심쩍은 눈으로 그 이면을 엿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의 삶의 비밀에 빨리 다가가게 되었다.
--- p.14
내가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힘이 나.그 안간힘이 소설을 쓰게 했을까. 세상이 내게 훨씬 단순하고 그리고 너그러웠다면 나는 소설을 쓰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 인생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작가 후기> 중에서
--- p.390
내 이름이 불려지자 허석은 어뜻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허석이 이모 편에 들어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는 걸 보며 배신감과 질투를 느끼던 나는 그의 시선에 조금 마음이 누그러진다. 사랑은 자의적인 것이다. 작은 친절일 뿐인데도 자기의 환심을 사려는 조바심으로 보이고, 스쳐가는 눈빛일 뿐인데도 자기의 가슴에 운명적 각인을 남기려는 의사표시로 믿게 만드는 어리석은 맹목성이 사랑에는 있다. 허석이 다만 하번 쳐다본 것을 가지고 그것이 '이렇게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바로 너'라는 의미라도 되는 듯이 가슴이 설레는 걸 보면 진정 나는 사랑에 빠진 모양이다.
--- p.180
나처럼 일찍 세상을 깨친 아이들은 어른들이 바라는 어린이 행세를 진짜 어린이 수준밖에 못 되는 아이들보다 훨씬 더 그를듯하게 해낸다. 그래서 어른들 비밀의 겉모습을 조금 엿봤을망정 그 비밀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묻것도 모르는 척 행동한다. 그것이 어른들을 얼마나 안심시키면서 또한 귀여움을 촉발시키는지 모른다. 비밀이란 심술궂어서 자기를 절대 보이기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누군가에게 공유되어지기를 간청하는 속성이 있다.
--- p.19
나는 왼쪽 털신 속에 발을 집어 넣고 이번에는 오른쪽 털신을 벗어들고는 그 안의 눈을 털어냈다. '보여지는 나'가 말한다. 공손하게 인사를 해. 침착하게. '바라보는 나'가 말한다. 반가워하지마. 아버지라고? 농담이야. 60년대엔 나에게 아버지가 없었지. 그러니 이건 새로운 농담이 틀림없어. 70년대식 농담인 거야. 시대라는 구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건 어쩔 수 없이 인정하더라도 맙소사, 아버지아니, 70년대엔 내게 아버지가 있다니, 이건 대단한 농담이다.
--- p.380
나는 볕이 들지 않는 뒷마루로 가서 고전읽기 경시대회에 대비하여 단테의 [신곡]을 읽기 시작했다. 까다로운 외국 이름이 페이지마다 새로 나오고 주석이 너무 많아서 내용이 쉽게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따분한 책이었다. 몇 장 읽기도 전에 하품이 나왔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아홉 가지 지옥이며 거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 외어야 하는데 주인공은 외울 것이 많아지면 아이들이 더욱 괴로워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없이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자기 견문만 넓히고 있다.
--- p.289
나는 기회만 닿으면 언제라도 '첫경험'의 금기를 깨뜨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기회가 어른들이 생각하는 적당한 나이보다 조금 빨리 주어져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 기회가 그처럼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삶이 다 그렇듯이 그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p.247)
그러자 이모는 더 큰 소리로 섧게 울었다. 사랑을 잃은 처녀의 눈물로 새워질 또 하루의 밤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이모에게는 너무나 긴 밤이었다. 그리고 그 밤이 지나자 화요일이 되었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허석이 오는 날이었다.(p.320)
세상에 기적이란 없다. 그러나 우연은 많다. 아니 세상의 중요한 일은 공교롭게도 모두 우연이 해결한다. 다행인 것은 우연 중에는 나쁜 우연이 더 많지만 간혹 좋은 우연도 있다는 것이다.(p.372)
--- p.247-372
그때 버스 안에 탔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나를 향해 아우성을 친다. 사방이 웅성거리고 소란스럽다. 나 혼자만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가슴을 쥐어뜯고 있다. 시끄럽게 웅성거리는 소리는 찢어질 듯한 비명과 아비규환의 부르짖음으로 바뀐다. 한사코 나는 목소리를 내려고 몸을 비틀고 고개를 내두르며 안간힘을 썼다. 제발, 단 한 마디만, 이모라고, 제발 한 마디만, 이모.....드디어 꽉 막혔던 목구멍이 터지며 내 입에서 가느다란 소리가 새어나왔고,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 p.337
그것은 내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삶이란 것을 의식할 만큼 성장하자 나는 당황했다. 내가 딛고 선 출발선은 아주 불리한 위치였다. 더구나 그 호의적이지 않은 삶은 내가 빨리 존재의 불리함을 깨닫고 거기에 대비해주기를 흥미롭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어차피 호의적이지않은 내 삶에 집착하면 할수록 상처의 내압을 견디지 못하리란 것을 알았다. 아마 그때부터 내 삶을 거리 밖에 두고 미심쩍은 눈으로 그 이면을 엿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삶의 비밀에 빨리 다가가게 되었다.
--- p.14
그 식모,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식모'보다는 '비운의 처녀'인 영숙이모는 주인아저씨의 목소리가 은밀하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조금만 잘해줘도 주인의 인정스러움에 감동'하는 식모답게 황급히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술냄새가 확 끼치며 영숙이모의 순결한 몸위로 탐욕스러운 대머리 사내의 몸뚱이가 덮쳐왔다.
--- p.258
광진테라 아저씨가 이렇게 방방마다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모르는 척 그냥 방구들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장군이네 마루가 갑자기 왁자지껄해지더니 자기 소개를 하는 허석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리에 누워서 한참을 이리저리 뒤척이던 나는 모기장을 젖히고 방에서 나와버린다. 덥기도 하려니와 이상하게 마음이 들떠서 통 잠이 오지 않는다.

술자리에서 광진테라 아저씨는 목소리가 더욱 커진다. 아저씨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만 가면 정치적인 인물을 자처하는 버릇이 있다. 더욱이 지금 시점이 휴교령 이후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 허석을 의식했는지 부쩍 그런 방향으로 화제를 몰고 간다. 아저씨가 이 술자리를 정치적 집회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적 소신'에서가 아니라 '풍운아적' 기질에서 나오는 실속 없는 공명심 탓이라는 사실을 우리 집 사람들은 다 알고 있기에 별로 대꾸를 하지 않는다.
--- p.149
고달픈 삶을 벗어난들 더 나은 삶이 있다는 확신은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떠난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기보다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무 확신도 없지만 더 이상 지금 삶에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에 떠나는 이의 발걸음은 가볍다.
--- p.135
<새의 선물>은 깔끔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대목은 삶의 진실에 던져지는 날카롭고 에누리없는 시선이다. 보아서는 안 될 삶의 이면을 너무 일찍 보아버린 아이의 날카로운 비판적 시선과 거기서 오는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의 가차없는 묘사는 사트르트의 소설 <말>을 연상케 한다. -김화영(문학평론가)
--- p.
<새의 선물>은 깔끔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대목은 삶의 진실에 던져지는 날카롭고 에누리없는 시선이다. 보아서는 안 될 삶의 이면을 너무 일찍 보아버린 아이의 날카로운 비판적 시선과 거기서 오는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의 가차없는 묘사는 사트르트의 소설 <말>을 연상케 한다. -김화영(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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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문단의 비상한 관심과 세인의 주목 하에 진행된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은희경의 장편소설 「새의 선물」이 출간되었 다. 은희경씨는 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이중주'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한 데 이어 3,000만원 고료 제1회 문학 동네소설상 당선자로 선정됨으로써 한국 소설의 내일을 이끌어갈 뛰어난 신예작가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수상작 「새의 선물」은 환멸의 학습을 통해 인간 성숙을 그린 뛰어난 성장소설이자 지난 연대 우리 사회의 세태를 실감나게 그린 재미있는 세태소설이 란 호평을 받는 작품이다. 인생의 희비극적 단면에 대한 절묘한 포착, 상식을 뒤집는 역설과 잠언의 적절한 구사, 일상적 경험을 형이상학적 인식으로까지 끌어올리는 치열한 탐구정신 등이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 작품은 90년대 우리 문학의 중요한 수확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새의 선물」은 작가가 지난 여름 무주 적상산의 안국사라는 절에 들어가 2개월간 해발 1,000m가 넘는 선방에서 두문불출, 하 루 10시간씩 노트북 컴퓨터와 씨름하며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장편소설. 그야말로 작가 은희경의 영혼과 정신의 거센 출렁거 림과 인간의 삶과 세계를 꿰뚫는 빛나는 통찰이 돋보이는 역작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소설은 삼십대 중반을 넘긴 ‘나’가 1995년 무궁화호가 발사되는 광경을 보고서 아폴로11호가 달을 향해 발사되던 1969년 열두살(국민학교 5학년) 소녀시절을 회상해보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여섯살에 어머니는 전쟁통에 실성하여 목매 달아 자살했고, 아버지는 사라졌다. 외할머니 슬하에서 이모, 삼촌과 함께 생활하는 열두살의 ‘나’는 “세상이 내게 별반 호의 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열두살에 성장을 멈췄다. 나는 알 것을 다 알았고 내가 생각하기로는 더이상 성숙할 것이 없었다. ” 삶의 숨겨진 비밀을 다 알아버린, 남의 속내를 예리하게 간파해내는 조숙한 아이인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공간은 우물을 중심 으로 하여 두 채의 살림집과 가게채로 이루어진 ‘감나무집’, 그리고 읍내의 ‘성안’과 도청소재지를 넘나드는 남도의 지방 소 읍이 전부다. 그 공간에서 그는 각양의 군상들을 만나고, 그 군상들의 일상 속에 펼쳐지는 삶의 숨겨진 애증의 실체를 엿보거나 사람 사이의 허위를 들추어낸다.

그의 시선에 포착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지난 시절의 우리 이웃 같은, 미운정고운정으로 끈끈히 맺어진 살가운 사람들이다. 철없고 순수한 이모, 남편이 죽은 뒤 외아들을 떠받들고 사는 장군이엄마, 병역기피자이며 바람둥이인 광진테라아저씨와 착하고 인정 많은 광진테라아줌마, 신분상승을 위해 뭇남성에게 교태를 부리는 미스리, 순정파인 깡패 홍기웅 그리고 완전한 헤어짐으로 사랑의 추억을 완성하는 ‘나’ 등 개개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약자들 이고 소외당한자들이지만, ‘삶을 멀찌감치 두고 보려고 애쓰는 나’에 의해 그들의 일상을 감싸고 있는 따뜻함과 정겨움이 하나씩 복원된다. 그러한 따뜻함과 정겨움은 킥킥 웃음이 터져나오는 갖가지 삶의 에피소드 속에서 드라마처럼 혹은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펼쳐진 다. 그 웃음은 풋풋하다. 그러나 마냥 웃기만 하기에는 삶이 도저히 온전하지 못할 것 같은 상처의 내압과 잔인한 진지함이 또한 있다.

이 소설은 이처럼 묵직한 주제와 리얼리티를 내장하고 있으면서도 대단히 재미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작가 은희경의 번뜩이는 필력에서 연유하는데, 내밀한 삶의 속속들이를 다 알고 있는 이 소설의 화자인 열두살 계집아이의 당돌한 시선에 힘입고 있는 바 크다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자신이 화자를 돌본다고 여기고 있는 이모를 사실은 화자가 돌보고 있는 형국에 대한 묘사와 그 독 특한 어조는 이 소설의 해학과 웃음의 근원이자 묘미가 아닐 수 없다. 또한 동생을 등에 업은 채 천방지축 팔방놀이를 하는 문제 아적 소녀의 행동을 묘사하는 대목이나 ‘매사에 뒤에 처지기 때문에 하찮은 존재’였던 이선생님이 여호와의 증인이자 빨치산의 아내인 정여사 구출을 위해 화염 속으로 뛰어드는 순교의 장면과 그 후 정여사와 이선생님에 대한 간첩 혐의로 빚어지는 웃지 못할 풍자, 그리고 늘 가출을 꿈꾸면서도 버스가 떠난 다음에 먼지구름 속에 추연히 남아 있는 광진테라아줌마에 대한 묘사 등등 은 참으로 압권이다. 이와 같이 삶의 이면을 드러내는 작가 은희경의 싱싱하고 원숙한 심리묘사와 해학적인 문체는 우리 소설문 학에서 그리 흔하지 않은 강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다.

「새의 선물」은 때로는 웃음이 터져나오는 귀여운 간교함으로, 때로는 경쾌한 상상력으로 삶의 금기와 규범체계, 사회의 지식 메커니즘 따위의 고정된 인식틀을 해체하는 삶의 모험적, 도전적 통찰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인생에 대한 냉소로부터 비롯된 시니컬한 시선이 갖가지 희극적인 삽화들 속에서 리얼하게 펼쳐지는 이 소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진실이란 무엇인가, 진 실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되묻게 한다. 동시에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비밀스런 관계의 본질과 삶의 심연에 흐르 는 위악적 경험의 비합리성이라는 무게 있는 주제와 일정한 관련을 맺고 있다.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 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라 고 말하지만, 그것은 차라리 모성의 부재, 그 상처를 다스리기 위해 열두살 계집아이가 본능적으로 터득한 자기방어의 기제인 위 악과 냉소의 시선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삶의 잔인함과 허망을 꿰뚫은 역설이 아닐까. 황혼을 배경으로 서 있는 염소와 남자의 실 루엣, 그리고 하모니카 소리…… 마치 아득한 정적과도 같이 묘사되는 장면 속에서 ‘나와 같은 종류의 인간’인 그 남자 ‘허석 ’에 대한 화자의 사랑이라는 이미지 새기기와 그것의 가차없는 상실은 삶의 미망인 사랑과 성(性)에 대한 고통스런, 그러나 성 숙한 자기확인이 아닐까. 삶은, 사랑은 대단한 것이지만, 어쨌든 “농담인 것”이다.

‘희극적인, 그러나 너무나 비극적인’ 삶에 대한 칼날 같은 통찰, 마침내는 배반일 수밖에 없는 운명에 대한 냉소와 조롱, 결 코 대단하지 않은 일상의 늪 속에서 군더더기 없이 원숙하게 묘사되는 인물들의 내면과 삶의 위장된 진실들에 대한 눈부신 혜안! 장편소설 「새의 선물」의 전반을 관류하는 문학적 깊이와 서사적 무게는 그야말로 90년대 우리 문학에서 멸하지 않는 빛으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12살의 시각으로 고정되어 있고 한국의 시대 배경, 환경을 자연스럽게 풀어썼다. 섬세한 묘사로 작중인물과 사건을 ‘보여지는 나’에서가 아니라 ‘바라보는 나’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간결하게 썼다. 또 그 이중성을 인간적인 면으로 묘사하고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기 때문에 작품이 살아있고 따스함을 전해준다.
---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리뷰 (116건) 리뷰 총점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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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새의 선물 - 은희경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오* | 2018.11.30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이런 소설을 읽어본 지는 꽤나 오래 전이다. 출간된지 20년도 넘은 한국소설에 시간적 배경은 60년대. 어딘지 어둡고 한맺힌 글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의외로 작품은 시니컬하고 건조하고 그러면서도 유머와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열두살 여자아이가 화자인 탓도 있으리라.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나는 너무 일찍 성숙했고 그러기에 일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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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소설을 읽어본 지는 꽤나 오래 전이다. 출간된지 20년도 넘은 한국소설에 시간적 배경은 60년대. 어딘지 어둡고 한맺힌 글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의외로 작품은 시니컬하고 건조하고 그러면서도 유머와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열두살 여자아이가 화자인 탓도 있으리라.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너무 일찍 성숙했고 그러기에 일찍부터 삶을 알게 된 만큼 삶에서 빨리 밑지기 시작했다


   다분히 성장소설의 분위기를 갖는 작품은 69년에 열두살이 된 진희라는 아이를 화자로 하여 주변인물들에 대한 관찰과 묘사 그리고 그 시대, 그 공간만이 가능했던 일상들을 포착한 작품이다. 한정적 시간과 공간이지만 다양한 군상들에 대한 예리한 묘사는 이미 열두살에 성장을 끝내버린 한 소녀의 비밀스런 관찰일기를 넘어선, 만약 먼 훗날 모든 것이 사라진 지구에서 외계인들이 그 시대와 공간에 대한 자료를 찾고자 했을 때 사료적 가치로도 충분할만큼 시대적 진실과 맞닿아있다.


   진희는 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다. 자신이 여섯살에 엄마가 미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그것도 주변 사람들의 입방아일 뿐이다. 그런 진희가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삶'이 주는 불리함을 빨리 깨닫고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만의 방식을 터득한 것이다. 바로 삶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매 순간마다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자아를 분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삶에 거리를 두고 상처의 내압에 의해 갈갈이 찢기지 않도록 단단히 붙들어매는 것이다.


   세 채의 집 한가운데 우물이 있는 집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 우선 부모없는 진희를 안타깝게 여기며 진희에게 뭐든 해주고 싶어하는 할머니와 매일처럼 할머니에게 잔소리를 듣는 철없는 이모 그리고 서울대 법대생인 삼촌이 있다. 거기에 진희 또래의 장군이와 장군이 엄마, 그리고 거기에 하숙하는 최선생과 이선생. 장군이 엄마는 전형적인 우물가 소문의 진원지이고 최선생은 여색을 밝히고 이선생은 그 속을 알 수 없는 존재감 없는 인물로 등장한다. 거기에 광진테라라는 양복점 식구들인 광진테라 아저씨와 아줌마 그리고 갓난아이 재성이가 있고 가겟집 네칸에는 뉴스타일양장점, 광진테라, 우리미장원, 문화사진관이 들어서있다.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 이외에도 소설 속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많은 사람들의 개별적 특징을 잡아내어 서술하는 작가의 묘사력이 압도적이다. 진희가 열두살을 지내었던 시간들은 열세살이 되고 눈이 오던 어느 날 밤 이야기에서 끝이 나는데 그 짧은 일년동안 성장한 사람은 비단 진희만이 아니다.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삶은 농담이고 상처를 덮어가는 일로 삶은 계속된다는 삶의 본질을 이미 열두살에 알아버린 진희의 냉소적 태도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소설이 나온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삶의 철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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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은희경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앨*스 | 2013.07.11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열두 살 진희는 성숙하고 이지적인 아이다. 스무 살이 넘은 제 이모 영옥이보다도 먼저 삶에 대한 통찰력과 삶의 이면을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감정을 이성으로 다스릴 줄 아는 이 이지적인 아이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는데, 아마 누구라도 새의 선물를 읽게 된다면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다운 발랄함과 순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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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두 살 진희는 성숙하고 이지적인 아이다. 스무 살이 넘은 제 이모 영옥이보다도 먼저 삶에 대한 통찰력과 삶의 이면을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감정을 이성으로 다스릴 줄 아는 이 이지적인 아이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는데, 아마 누구라도 새의 선물를 읽게 된다면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다운 발랄함과 순수함, 사랑스러움이 아닌 이지적이고 위악스럽기 까지 한 이 아이에겐 그럴 만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미쳐버린 엄마는 어린 진희를 버려둔 채 집을 나가 자살을 해버리고, 아빠는 잠적해버리고, 결국 진희는 외할머니 손에 맡겨져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삶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일찍 깨달아버린 진희는 자신이 삶에 대해 집착하면 할 수록 자신은 자신이 가진 상처의 내압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았다고 말하는데. 솔직히 열두 살의 통찰력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그런 부분이다. 나이에 비해 성숙한 진희라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잡은 건 아주 매력적이지만, 진희를 너무 성숙한 어른처럼 그려놓았다는 게 흠이라면 조금의 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어른 같은 아이 진희의 눈으로 치밀하게 관찰되는 진희네 동네사람들,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는 아주 흥미롭다. 특히 난 장군이엄마와 장군이 이야기가 나오면 더 흥미진진하게 읽곤 했다. 역시 이야기속에는 얄밉고 멍청한 악역정도는 꼭 등장해줘야 재미가 있는 것 같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장군이가 똥간에 빠진 이야기다. 장군이 엄마에게 모욕을 당한 복수로 장군이를 똥통에 빠지게 해 장군이 엄마를 곤욕스럽게 할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멍청하고 순진한 장군이가 진희의 계획대로 결국 똥간에 빠지고 장군이 엄마가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을 읽으며 장군이에겐 미안했지만 무척이나 통쾌하고 재미있었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발견하고는 잽싸게 집어들어 내 것이 된 새의 선물. 동네 도서관에선 찾을 수 없어 궁금하기만 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정말 재밌고, 정말 매력있으며, 정말 잘썼다. 이렇게 좋은 소설을 읽으면 이제는 부럽다는 생각보다 난 이렇게는 못쓸거야 라는 좌절감이 먼저 드는데 어찌보면 당연한 것도 같다. 이렇게 긴 장편소설에 그렇게 많은 등장인물들을 등장시키면서도 끊기지 않는 흐름을 이어가는 건 정말 치밀하게 계산하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역시 소설을 쓰려면 머리가 좋아야 하는가. 은희경님의 다른 책 타인에게 말걸기, 태연한 인생도 빨리 다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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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받은 삶의 선물 내용 평점3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은**니 | 2013.05.10 | 추천1 | 댓글2 리뷰제목
은희경의 『새의 선물』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등단한 신인이었던 그녀에게 작가적 명성을 안겨준 소설이니 그녀에게는 그야말로 ‘선물’인 작품이다. 익히 이름은 들어왔으나 유명세를 타거나 유행의 중심에 있는 것은 뭐든지 일단 관심권 밖에 두는 까칠한 내 성미 탓에 18년 전에 발표된 이 작품을 이제서야 읽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좀 실망스럽다.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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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새의 선물』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등단한 신인이었던 그녀에게 작가적 명성을 안겨준 소설이니 그녀에게는 그야말로 선물인 작품이다. 익히 이름은 들어왔으나 유명세를 타거나 유행의 중심에 있는 것은 뭐든지 일단 관심권 밖에 두는 까칠한 내 성미 탓에 18년 전에 발표된 이 작품을 이제서야 읽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좀 실망스럽다.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때(아니 어쩌면 지금도) 많은 독자들이 열광했고 평론가들도 상찬했으며 또 몇 해 전에는 개정판까지 펴냈다고 하길래, 나도 이 소설에서 뭔가 건질 선물이 좀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서사도, 문장도, 구성도, 주제도 어느 하나 내게 선물이 되기에는 좀 미흡했다.

 

특히 이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삶과 사랑에 대한 통찰을 담은 잠언성 문장들은 아무리 조숙하다고는 해도 열두 살짜리 소녀의 머리 속에서 흘러나온 생각이라고 보기에는 좀 무리인 것으로 여겨진다. 열두 살짜리 1인칭 화자의 시점이라기보다는 3인칭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 더 입각해 있는 그런 문장들은 관련된 서사의 의미를 지나치게 깔끔하게 해석하고 정리해 버려서 독자의 상상력에 공명하는 서사의 여운을 박탈하고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문장들.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에는 이쁘고 좋기만 한 고운 정과 귀찮지만 허물없는 미운 정이 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제나 고운 정으로 출발하지만 미운 정까지 들지 않으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운 정보다는 미운 정이 훨신 너그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확실한 사랑의 이유가 있는 고운 정은 그 이유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지만 서로 부대끼는 사이에 조건 없이 생기는 미운 정은 그보다는 훨씬 질긴 감정이다. 미운 정이 더해져 고운 정과 함께 감정의 양면을 모두 갖춰야만 완전해지는 게 사랑이다. (123)

 

구국의 영웅이 되는 것과 살인자가 되는 것의 차이는 그에게 어떤 기회가 주어지는가에 달려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살인자가 되는 것은 그에게 살인을 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고 배신자가 되는 것 역시 배신의 기회가 왔기 때문이므로. 그 기회를 받아들이느냐 물리치느냐 하는 선택은 스스로가 하는 것이지만 선택의 전 단계에서 어떤 기회를 제공하느냐는 순전히 삶이 하는 일이다. 배신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지만 배신을 하도록 기회를 마련하는 것은 언제나 삶의 짓인 것이다. (325)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소설의 앞뒤에 붙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스물두 장()으로 이루어진 본문과는 시간적으로나 이야기의 성격으로나 너무 단절된 느낌을 주어서 사족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현재 시점인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서른 중반의 분방한 불륜녀로 등장하는 화자와 과거 시점인 본문에서 열두 살짜리 조숙한 소녀로 나오는 화자는 동일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이야기의 연결고리가 너무 느슨하고 또 느닷없어서 독자들의 마음 속에 동일 인물로 떠오르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삶과 사랑에 대한 잠언성 문장들에서 느껴지는 시점의 파탄에 논리를 제공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고육지책이 아니었나 싶은데, 내가 보기에는 악수(惡手)로 여겨진다.

 

내 마음에 든 것이 딱 하나 있다면 그건 작가가 이 소설의 표제로 삼은 자끄 프레베르의 시였다.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 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버렸네

- 자끄 프레베르의 시 「새의 선물」전문                                         

 

의미심장한 이 짧은 시를 책의 속표지 다음에 친절하게 수록해 놓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처럼 소설 제목의 의미를 소설의 내용과 관련지어 심각하게 따지는 독자들은 꽤나 골머리를 앓았을 것이다. 거의 400쪽에 육박하는 소설의 본문을 아무리 샅샅이 뒤져봐도 새의 선물이라는 단어는커녕, 그것을 암시하는 에피소드나 실마리가 될만한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으니 말이다.

 

제목으로 삼은 이 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 소설은 이라는 늙은 앵무새로부터 운명이라는 해바라기 씨앗을 건네받은 한 소녀가 시골 마을에서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열두살 짜리 어린 소녀가 유년의 한 시절을 보냈던 그곳을 감옥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로부터도 버림받아 어쩔 수 없이 시골 할머니집에 몸을 의탁해야만 했던 소녀의 삶의 조건을 생각하면 그녀의 마음만큼은 어쩌면 감옥에 갇힌 수인의 심정과 다를 바 없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과연, 감옥에 갇힌 수인처럼, 어린 소녀는 그 순수한 동심의 시절을 물들이는 천진난만함과 발랄함 대신에 위악과 냉소로 자신을 무장한다. 자신의 취약한 삶의 조건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채택한 이 위악과 냉소는 삶의 온갖 굴곡을 다 겪은 성숙한 어른에게나 어울리는 세련된 정장이나 우아한 드레스와 같은 것이어서 열두 살짜리 어린 소녀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라는 소녀의 당돌한 고백은 그래서 너무 슬프다소녀는 삶의 선물을 너무 일찍 받았다. 그리고 뒤늦게 『새의 선물』을 읽은 독자인 나는, 소설 속 화자이자 주인공인 이 어린 소녀가 너무 일찍 받은 선물 탓에,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누리고 싶었던 선물을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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