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1996년 01월 01일 |
---|---|
쪽수, 무게, 크기 | 396쪽 | 592g | 크기확인중 |
ISBN13 | 9788985712767 |
ISBN10 | 8985712764 |
출간일 | 1996년 01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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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96쪽 | 592g | 크기확인중 |
ISBN13 | 9788985712767 |
ISBN10 | 8985712764 |
<새의 선물>은 작가가 지난 여름 무주 적상산의 안국사라는 절에 들어가 2개월간 해발 1,000m가 넘는 선방에서 두문불출, 하루 10시간씩 노트북 컴퓨터와 씨름하며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장편소설. 그야말로 작가 은희경의 영혼과 정신의 거센 출렁거 림과 인간의 삶과 세계를 꿰뚫는 빛나는 통찰이 돋보이는 역작이다. |
프롤로그.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1. 환부와 동통을 분리하는 법 2. 자기만 예쁘게 보이는 거울이 있었으니 3. 네 발밑의 냄새나는 허공 4. 까탈스럽기로는 풍운아의 아내 자격 5. 일요일에는 빨래가 많다 6. 데이트의 어린 배심원 7. 그 도둑질에는 교태가 쓰였을 뿐 8. 금지된 것만 하고 싶고, 강요된 것만 하기 싫고 9. 희망 없이도 떠나야 한다 10. 운명이라고 불리는 우연들 11. 오이디푸스, 혹은 운명적 수음 12. '내 렌나 죽어 땅에 장사한 것' 13. 슬픔 속의 단맛에 길들여지기 14. 누구도 인생의 동반자와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 15. 모기는 왜 발바닥을 무는가 16. 태생도 젖꼭지도 없이 17. 응달의 미소년 18. 가을 한낮 빈 집에서 일어나기 좋은 일 19.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도 깊은 것을 20. 사과나무 아래에서 그녀를 보았네 21. 죽은 뒤에야 눈에 띄는 사람들 22. 눈 오는 밤 에필로그. 상처를 덮어가는 일로 삶이 이어진다 |
이런 소설을 읽어본 지는 꽤나 오래 전이다. 출간된지 20년도 넘은 한국소설에 시간적 배경은 60년대. 어딘지 어둡고 한맺힌 글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의외로 작품은 시니컬하고 건조하고 그러면서도 유머와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열두살 여자아이가 화자인 탓도 있으리라.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너무 일찍 성숙했고 그러기에 일찍부터 삶을 알게 된 만큼 삶에서 빨리 밑지기 시작했다
다분히 성장소설의 분위기를 갖는 작품은 69년에 열두살이 된 진희라는 아이를 화자로 하여 주변인물들에 대한 관찰과 묘사 그리고 그 시대, 그 공간만이 가능했던 일상들을 포착한 작품이다. 한정적 시간과 공간이지만 다양한 군상들에 대한 예리한 묘사는 이미 열두살에 성장을 끝내버린 한 소녀의 비밀스런 관찰일기를 넘어선, 만약 먼 훗날 모든 것이 사라진 지구에서 외계인들이 그 시대와 공간에 대한 자료를 찾고자 했을 때 사료적 가치로도 충분할만큼 시대적 진실과 맞닿아있다.
진희는 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다. 자신이 여섯살에 엄마가 미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그것도 주변 사람들의 입방아일 뿐이다. 그런 진희가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삶'이 주는 불리함을 빨리 깨닫고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만의 방식을 터득한 것이다. 바로 삶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매 순간마다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자아를 분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삶에 거리를 두고 상처의 내압에 의해 갈갈이 찢기지 않도록 단단히 붙들어매는 것이다.
세 채의 집 한가운데 우물이 있는 집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 우선 부모없는 진희를 안타깝게 여기며 진희에게 뭐든 해주고 싶어하는 할머니와 매일처럼 할머니에게 잔소리를 듣는 철없는 이모 그리고 서울대 법대생인 삼촌이 있다. 거기에 진희 또래의 장군이와 장군이 엄마, 그리고 거기에 하숙하는 최선생과 이선생. 장군이 엄마는 전형적인 우물가 소문의 진원지이고 최선생은 여색을 밝히고 이선생은 그 속을 알 수 없는 존재감 없는 인물로 등장한다. 거기에 광진테라라는 양복점 식구들인 광진테라 아저씨와 아줌마 그리고 갓난아이 재성이가 있고 가겟집 네칸에는 뉴스타일양장점, 광진테라, 우리미장원, 문화사진관이 들어서있다.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 이외에도 소설 속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많은 사람들의 개별적 특징을 잡아내어 서술하는 작가의 묘사력이 압도적이다. 진희가 열두살을 지내었던 시간들은 열세살이 되고 눈이 오던 어느 날 밤 이야기에서 끝이 나는데 그 짧은 일년동안 성장한 사람은 비단 진희만이 아니다.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삶은 농담이고 상처를 덮어가는 일로 삶은 계속된다는 삶의 본질을 이미 열두살에 알아버린 진희의 냉소적 태도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소설이 나온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삶의 철학이 아닐까.
열두 살 진희는 성숙하고 이지적인 아이다. 스무 살이 넘은 제 이모 영옥이보다도 먼저 삶에 대한 통찰력과 삶의 이면을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감정을 이성으로 다스릴 줄 아는 이 이지적인 아이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는데, 아마 누구라도 새의 선물를 읽게 된다면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다운 발랄함과 순수함, 사랑스러움이 아닌 이지적이고 위악스럽기 까지 한 이 아이에겐 그럴 만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미쳐버린 엄마는 어린 진희를 버려둔 채 집을 나가 자살을 해버리고, 아빠는 잠적해버리고, 결국 진희는 외할머니 손에 맡겨져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삶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일찍 깨달아버린 진희는 자신이 삶에 대해 집착하면 할 수록 자신은 자신이 가진 상처의 내압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았다고 말하는데. 솔직히 열두 살의 통찰력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그런 부분이다. 나이에 비해 성숙한 진희라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잡은 건 아주 매력적이지만, 진희를 너무 성숙한 어른처럼 그려놓았다는 게 흠이라면 조금의 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어른 같은 아이 진희의 눈으로 치밀하게 관찰되는 진희네 동네사람들,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는 아주 흥미롭다. 특히 난 장군이엄마와 장군이 이야기가 나오면 더 흥미진진하게 읽곤 했다. 역시 이야기속에는 얄밉고 멍청한 악역정도는 꼭 등장해줘야 재미가 있는 것 같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장군이가 똥간에 빠진 이야기다. 장군이 엄마에게 모욕을 당한 복수로 장군이를 똥통에 빠지게 해 장군이 엄마를 곤욕스럽게 할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멍청하고 순진한 장군이가 진희의 계획대로 결국 똥간에 빠지고 장군이 엄마가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을 읽으며 장군이에겐 미안했지만 무척이나 통쾌하고 재미있었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발견하고는 잽싸게 집어들어 내 것이 된 새의 선물. 동네 도서관에선 찾을 수 없어 궁금하기만 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정말 재밌고, 정말 매력있으며, 정말 잘썼다. 이렇게 좋은 소설을 읽으면 이제는 부럽다는 생각보다 난 이렇게는 못쓸거야 라는 좌절감이 먼저 드는데 어찌보면 당연한 것도 같다. 이렇게 긴 장편소설에 그렇게 많은 등장인물들을 등장시키면서도 끊기지 않는 흐름을 이어가는 건 정말 치밀하게 계산하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역시 소설을 쓰려면 머리가 좋아야 하는가. 은희경님의 다른 책 타인에게 말걸기, 태연한 인생도 빨리 다 읽어야 겠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등단한 신인이었던 그녀에게 작가적 명성을 안겨준 소설이니 그녀에게는 그야말로 ‘선물’인 작품이다. 익히 이름은 들어왔으나 유명세를 타거나 유행의 중심에 있는 것은 뭐든지 일단 관심권 밖에 두는 까칠한 내 성미 탓에 18년 전에 발표된 이 작품을 이제서야 읽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좀 실망스럽다.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때(아니 어쩌면 지금도) 많은 독자들이 열광했고 평론가들도 상찬했으며 또 몇 해 전에는 개정판까지 펴냈다고 하길래, 나도 이 소설에서 뭔가 건질 ‘선물’이 좀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서사도, 문장도, 구성도, 주제도 어느 하나 내게 ‘선물’이 되기에는 좀 미흡했다.
특히 이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삶과 사랑에 대한 통찰을 담은 잠언성 문장들은 아무리 조숙하다고는 해도 열두 살짜리 소녀의 머리 속에서 흘러나온 생각이라고 보기에는 좀 무리인 것으로 여겨진다. 열두 살짜리 1인칭 화자의 시점이라기보다는 3인칭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 더 입각해 있는 그런 문장들은 관련된 서사의 의미를 지나치게 깔끔하게 해석하고 정리해 버려서 독자의 상상력에 공명하는 서사의 여운을 박탈하고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문장들.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에는 이쁘고 좋기만 한 고운 정과 귀찮지만 허물없는 미운 정이 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제나 고운 정으로 출발하지만 미운 정까지 들지 않으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운 정보다는 미운 정이 훨신 너그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확실한 사랑의 이유가 있는 고운 정은 그 이유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지만 서로 부대끼는 사이에 조건 없이 생기는 미운 정은 그보다는 훨씬 질긴 감정이다. 미운 정이 더해져 고운 정과 함께 감정의 양면을 모두 갖춰야만 완전해지는 게 사랑이다. (123쪽)
구국의 영웅이 되는 것과 살인자가 되는 것의 차이는 그에게 어떤 기회가 주어지는가에 달려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살인자가 되는 것은 그에게 살인을 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고 배신자가 되는 것 역시 배신의 기회가 왔기 때문이므로. 그 기회를 받아들이느냐 물리치느냐 하는 선택은 스스로가 하는 것이지만 선택의 전 단계에서 어떤 기회를 제공하느냐는 순전히 삶이 하는 일이다. 배신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지만 배신을 하도록 기회를 마련하는 것은 언제나 삶의 짓인 것이다. (325쪽)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소설의 앞뒤에 붙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스물두 장(章)으로 이루어진 본문과는 시간적으로나 이야기의 성격으로나 너무 단절된 느낌을 주어서 사족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현재 시점인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서른 중반의 분방한 불륜녀로 등장하는 화자와 과거 시점인 본문에서 열두 살짜리 조숙한 소녀로 나오는 화자는 동일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이야기의 연결고리가 너무 느슨하고 또 느닷없어서 독자들의 마음 속에 동일 인물로 떠오르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삶과 사랑에 대한 잠언성 문장들에서 느껴지는 시점의 파탄에 논리를 제공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고육지책이 아니었나 싶은데, 내가 보기에는 악수(惡手)로 여겨진다.
내 마음에 든 것이 딱 하나 있다면 그건 작가가 이 소설의 표제로 삼은 자끄 프레베르의 시였다.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 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버렸네
- 자끄 프레베르의 시 「새의 선물」전문
의미심장한 이 짧은 시를 책의 속표지 다음에 친절하게 수록해 놓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처럼 소설 제목의 의미를 소설의 내용과 관련지어 심각하게 따지는 독자들은 꽤나 골머리를 앓았을 것이다. 거의 400쪽에 육박하는 소설의 본문을 아무리 샅샅이 뒤져봐도 ‘새의 선물’이라는 단어는커녕, 그것을 암시하는 에피소드나 실마리가 될만한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으니 말이다.
제목으로 삼은 이 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 소설은 ‘삶’이라는 늙은 앵무새로부터 ‘운명’이라는 해바라기 씨앗을 건네받은 한 소녀가 시골 마을에서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열두살 짜리 어린 소녀가 유년의 한 시절을 보냈던 그곳을 감옥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로부터도 버림받아 어쩔 수 없이 시골 할머니집에 몸을 의탁해야만 했던 소녀의 삶의 조건을 생각하면 그녀의 마음만큼은 어쩌면 감옥에 갇힌 수인의 심정과 다를 바 없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과연, 감옥에 갇힌 수인처럼, 어린 소녀는 그 순수한 동심의 시절을 물들이는 천진난만함과 발랄함 대신에 위악과 냉소로 자신을 무장한다. 자신의 취약한 삶의 조건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채택한 이 위악과 냉소는 삶의 온갖 굴곡을 다 겪은 성숙한 어른에게나 어울리는 세련된 정장이나 우아한 드레스와 같은 것이어서 열두 살짜리 어린 소녀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라는 소녀의 당돌한 고백은 그래서 너무 슬프다. 소녀는 삶의 선물을 너무 일찍 받았다. 그리고 뒤늦게 『새의 선물』을 읽은 독자인 나는, 소설 속 화자이자 주인공인 이 어린 소녀가 너무 일찍 받은 선물 탓에,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누리고 싶었던 선물을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참,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