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01년 03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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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92쪽 | 345g | 128*188*20mm |
ISBN13 | 9788932903330 |
ISBN10 | 8932903336 |
발행일 | 2001년 03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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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92쪽 | 345g | 128*188*20mm |
ISBN13 | 9788932903330 |
ISBN10 | 8932903336 |
사람 속을 박박 긁어 뱉어 낸 책 같다. 오후 네시에 오는 앞집 남자가 뭐가 어쨌다는 건지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어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된다. 그 누구라고 궁금해서 끝장 본다. ㅎㅎ
은퇴후 에밀과 쥘리에트는 시골생활을 시작하고 오후 네시면 앞집 남자 베르나르댕이 찾아 오는데 그 방문은 일분일초의 오차도 없이 매일 네시만 되면 반복됨으로 인해 두 사람은 고민하게 된다.
사람은 사랑없이 살수 있지만 다른 것에 애착을 갖는다고 했다. 그런데 이 세상 그 어떤것에 애착도 없고 흥미도 없고 관심이 없다면 살아가는 이유는 딱 한가지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앞집의 남자 베르나르댕은 시간이 가는 것을 축복한다. 정말 이런 사람이 있기나 한 걸까?의문이 생겼지만 나는 사람들이 보통 말하는 정상이고 나와 교제를 하는 모든 이들도 정상이므로 누가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직까지는 알 수 없음이다. 베르나르댕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더 많았다면 나는 비정상이 되는 거겠지!흠.
어지간히 성격이 낭만적이거나 좋지 않다면 베르나르댕에게 화를 낼텐데...두 사람은 그렇지 못하고 쩔쩔맨다.
이 책의 완성도를 높인건 결말이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이야기의 끝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이라면?...과 지식인이라면?...과 사회성을 온갖 갖춘 예의 바른 정상인?하며 뜨악하게 되지만 나라도 이런 선택을 하였을까?이기도 하다.
중독성이 높은 책이기도 했지만 읽으면서 나는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에 집착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가족.돈.지식.권력.등등.......
아멜리 노통브의 머큐리를 읽고 한동안 작가의 책을 찾아 읽어보았다.
능력 있고 참신한 작가인 것은 확실하다.
매번 발표하는 작품들이 호불호가 갈리고, 어떤 책들은 참 읽기가 힘이 든다.
이 책, "오후 네 시"는 작가의 작품 중에서는 비교적 쉽게 읽히는 책이다.
교직에서 은퇴한 한 노부부가 시골의 어느 마을에 정착하여 살기로 한다.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호젓하고 아름다운 전원생활에 두 사람은 행복한 노후 생활을 만끽하는데..
이들은 이웃에 인사를 하게 되고, 그 날 이후 이 말 없는 '이웃'의 방문이 시작된다.
그것도 언제나 변함 없이 오후 네시.
처음에는 이 말 없는 방문객에 대한 호기심과 호의로 무료한 시간에 벗 삼아 지내지만,..
어느새 일상이 되어 버린 오후 네시의 방문으로 인하여 노부부는 한 번도 해 본적 없던 부부싸움까지 하게 되고.
오후 네시의 방문객에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이들 부부는 이 무언의 방문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이 대개 그렇듯, 소설의 배경은 작은 마을의 주인공 노부부의 집과 이웃의 집 정도.. 한정된 공간에서의 심리 변화를 표현하고, 또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에 탁월하다.
독자들의 호평과는 달리 평단에서는 때로 악평을 받기도 한다는데..
아멜리 노통브의 책을 3권 이상 읽어 보면, 이 같이 서로 다른 반응에 대해 어느 정도는 수긍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 "오후 네 시"는 노통브의 책 중에서도 꼭 읽어볼만한 필독서라 할 만하다.
내가 알고 있는 내가 과연 ‘나’인가
- 아멜리 노통브, 『오후 네 시』를 읽고
고문자(拷問者). 격동의 시절 암암리에 맹활약을 펼친 고문기술자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고문자란 어떠한 이유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 행동을 타인의 생활 반경 안에서 펼치는 사람을 말한다. 그로 인해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지고 생활은 중심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한다. 당신에게도 혹시 그런 고문자가 있는가? 전혀 다른 성향, 전혀 다른 성격, 전혀 이해 받지 못할 행동으로 평화로웠던 삶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려 드는 사람.
은퇴 후 시골에서의 한적한 삶을 꿈꾸어온 에밀과 쥘리에트 부부에게 첫 눈에 <우리집>이라고 단언할 만한 매력적인 집이 나타난다. 자그마한 시골마을, 눈에 보이는 집이라고는 의사가 살고 있다는 이웃집 한 채 뿐인 곳.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여차해서 일이 생기면 바로 도움을 청할 거리에 의사가 살고 있다. 이런 곳이라면 생의 마지막 날까지 머무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 아닌가. 그러나 행복은 일장춘몽일 뿐. 오후 네 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한 평생 꿈꾸어왔던 평화로운 삶은 수렁 속으로 빠져버리고 만다.
매일 오후 네 시만 되면 어김없이 문을 두드린다. 마치 자기 집인 양 들어와 안락의자에 몸을 묻은 채 두 시간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 돌아간다. 바로 유일한 이웃집에 산다는 의사 양반 팔라메드다. 먼저 말을 걸어오는 법이 없다. <그렇소>, <아니오>와 같은 긍정 혹은 부정의 대답만을 내뱉는다. 에밀이 굳게 마음을 먹고 <왜죠?>와 같은 구체적인 설명을 요하는 질문을 건네기라도 하면 경멸에 찬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다. 마치 자신에게 대단한 결례라도 저지른 것처럼 상대방을 무한하게 만들어버리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 그렇지만 정작 자신이 범하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은 결례가 아닌 것처럼 행동을 한다.
도대체 그는 왜 매일 일정한 시각에 방문을 하는 것일까. 물을 수도 없다. 문을 열어주지 않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내내 침묵으로만 일관할 수도 없다. 평생 ‘예의’로 중무장한 채 살아온 에밀은 이 침입자에게조차 예의를 다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아무런 말이나 거의 혼자 떠들다시피 해야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말이다.
살아가다보면 본의 아니게 특수한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극한의 상황! 그럴 때가 되면 사람은 자신의 숨겨진 내면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로부터 겪게 되는 정체성의 혼란. 나라는 사람은 과연 어떤 인간인가 하는 난해한 질문에 봉착하기에 이른다. 아멜리 노통브의 『오후 네 시』는 바로 이런 이야기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의 또 다른 일면을 깨닫게 된 어느 평범한 노인의 치명적인 고통과 극단적인 선택.
어찌 보면 이야기는 단순하다. 매일 오후 네 시부터 여섯 시까지 이웃집 불청객과 보내는 시간 동안의 상황이 주요내용을 이룬다. 앞서 이야기했듯 <그렇소>, <아니오> 혹은 긴 침묵만이 이어지는 그 대화 말이다. 그런데 긴장감이 넘친다.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하다. 서로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표정과 말투 행동이 심각한 상황과는 반대로 위트 있게 펼쳐진다. 다소 무거운 주제를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작가의 재주 덕분에 흥미롭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살아가는 동안 사람이 지켜내야 하는 예의란 것이 어느 선까지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 막바지에 툭 하고 던져놓은 듯 마침내 드러나는 반전은 독자에게 궁극의 질문을 던진다. 내가 알고 있는 내가 과연 ‘나’인가 라는. 남들이 규정해 놓은 나를 진정한 ‘나’인양 착각하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세상의 속도전에 떠밀려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고 살아왔다면 한 번쯤 진지하게 돌아볼 기회를 마련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철학적이면서도 익살스러운 이 소설을 기회삼아서 말이다.
그런데 팔라메드는 정말 그 같은 결론을 원했던 것일까. 그것은 그에게 구원인가, 처형인가! 책을 덮고 나서도 질문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