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일. 신기정은 그것이야말로 트집잡을 수 없는 인생의 유일한 법칙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대답은 몹시 못마땅했다. 동생이 모든 걸 우연과 운에 맡기고 되는대로 사는 것 같아서였다. 어쩌다 그렇게 된 게 아니라 그저 삶을 방치한 것이었다.--- p.30~31
“그럴 분이 아니에요.” (…) “암요. 당연히 그럴 분이 아니죠. 절대 그럴 분이 아니죠. (…) 그런데요, 이런 일은 다 절대로 그럴 리 없는 사람들이 해요. 인간은 원래 그럴 리 없는 존재거든요.”--- p.42
대부분의 일들이 불확실한 가운데 벌어지며 그 내막과 진실은 알 수 없는 것임에도, 인간이 선의를 가진 존재라는 것은 세상의 몇 안 되는 진실 중 하나였다.--- p.78
대체로 그럴 나이였다. 뭔가를 준비하거나 준비한 것에서 실패하고 다시 시도할 나이. 뭔가를 끊임없이 채우려 하지만 채워진 것 없는 나이.--- p.114~115
함께 연결되어 있던 시절에는 그들도 차마 몰랐을 것이다. 그들 중 누군가 몇 년 후 외로이 죽음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그들 누구도 그 죽음을 애도하는 일에 참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p.120
언제고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연은 원할 때는 못 본 척하지만 원치 않을 때는 조력을 베풀기도 하니까.--- p.227
가난은 일단 낯을 익히면 계속 들이닥친다. 살수록 빚이 느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p.237
어쨌거나 삶은 계속된다. 무슨 짓을 어떻게 하더라도 심지어 아무 짓도 하지 않더라도. 하지만 단지 살아지는 삶에서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다. 그것이 삶의 난처한 점이다. 아무리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는 인생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우리 자신에게 정당화해야 할 의무감을 느낀다. 그 의무감에 시달려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약점이다. 하지만 삼손의 머리카락이 그런 것처럼, 약점이야말로 우리의 힘이다. 주어진 의무를 어쩔 수 없이 떠맡을 때 삶은 살아갈 만한 것으로 변화될 수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변화된 삶은 애초에는 예상치 못했던 모습으로만 주어진다. 그것을 삶의 비의(悲意)라고 해야 할지 비의(秘意)라고 해야 할지. 그런 비의가 『선의 법칙』에는 있다. 어쩔 수 없이 실패해버린 삶의 한 부분을 떠맡으려 분투하다가 의외의 변화의 기미에 직면하는 것. 그렇게 되기까지 한자리에 멈춰 있는 자신의 삶을 이리저리 끌고 가며 주저흔(躊躇痕)을 남기는 것. 『선의 법칙』을 읽는 일은 삶의 비의를 음미하는 일과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것이다. 권희철 (문학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