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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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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05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02쪽 | 530g | 153*224*30mm
ISBN13 9788991071308
ISBN10 899107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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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와도 일어날 이유가 없는 나날이었다. 내 스튜디오는 뉴욕 9번가의 작은 3층짜리 건물 꼭대기에 있었다. 지붕 전체가 하나의 채광창으로 돼있고, 구석에는 커다란 침대가 하나, 마룻바닥에는 전화기 한 대가 덩그러니 놓인 곳이다. 그 밖에 가구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벽시계조차도. 아침 햇살 때문에 나는 잠에서 깼다. 몇 시나 됐는지 알 수 없었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가진 돈이라곤 25센트짜리 동전 하나가 전부였다. 전화벨이 울리기 전에는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점심을 먹자거나, 일거리를 준다거나, 아니면 적어도 돈을 빌려주겠다는 전화가 누군가로부터 걸려오기를 내심 기다리고 있었지만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대신 뱃속에서 꼬르륵대는 소리만 울렸다. 더 이상 잠을 청해봐야 쓸데없는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로 누워서 보니 주인아주머니가 문틈으로 밀어 넣은 편지 세 통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몇 주 동안 내가 받은 우편물이라고는 전화회사와 전기회사에서 보낸 것뿐이었다. 그런데 오늘 의문의 편지 한 통이 나를 침대에서 빠져나오게 했다.
--- p.9
귀환한 비행기들은 관제탑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착륙허가를 기다렸다. 그중 한 대는 착륙장치 부위의 동체가 파손된데다 기내에 심각한 부상자가 탑승하고 있었다. (…) 승강구가 열리고, 부상당한 승무원이 대기 중인 의료진에게 인도됐다. 그는 아직도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뒤이어 두 사람이 더 실려 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조종사가 내려왔다. 이마에 베인 상처자국을 제외하면 그는 무사한 것 같았다. 나는 클로즈업 사진을 찍기 위해 그에게로 다가갔다. 비행기에서 내리던 그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봐, 사진사! 이게 당신이 기다리던 장면들인가?” (…) 병사들이 다치고 죽어가는 장면은 빠뜨린 채 그저 한가하게 비행장 주변에 앉아 있는 모습만 찍은 사진은 사람들에게 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전쟁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려면, 전사자와 부상자까지도 여과 없이 찍은 사진을 보여줘야 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내가 감상에 빠지기 전에 그런 장면들을 한 통의 필름에 담아두길 잘했다는 판단이 섰다
--- pp.46~47
낙하산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왼발을 문 밖으로 내민다는 것과, 일천 이천 삼천을 세야한다는 것과, 만약 낙하산이 펴지지 않으면 비상 낙하산의 레버를 잡아당겨야 한다는 것 정도였다. 나는 더 이상은 생각조차 못할 만큼 지쳐있었다. 어쨌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서 잠을 청했다. 병사들이 나를 깨운 것은 녹색등에 불이 들어오기 직전이었다.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왼발을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내밀면서 몸을 던졌다. 피로가 가시지 않아 몽롱한 상태였던 나는 일천, 이천, 삼천을 세는 대신 다른 말을 되풀이했다. “백수 사진기자 하강, 백수 사진기자 하강….” 갑자기 내 어깨가 확 당겨졌다. 낙하산이 펴진 것이다. 나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혼잣말을 해댔다. “백수 사진기자 공중부양.” 그러나 하강한 지 일 분도 채 안 돼 낙하산이 숲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위에 걸려버렸다. 무수한 탄환들이 내 주위를 스쳐갔지만, 감히 살려달라고 고함을 지르지도 못했다. 헝가리 사투리 때문에 까딱하면 적군과 아군 모두로부터 사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pp.9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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