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01년 05월 30일 |
---|---|
쪽수, 무게, 크기 | 279쪽 | 411g | 133*225*20mm |
ISBN13 | 9788937460470 |
ISBN10 | 8937460475 |
출간일 | 2001년 05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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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79쪽 | 411g | 133*225*20mm |
ISBN13 | 9788937460470 |
ISBN10 | 8937460475 |
20세기 미국 문단의 이단아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사립학교의 문제아 홀든 콜필드가 퇴학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며칠간의 일들을 담은 작품이다. 십대들의 언어를 그대로 옮긴 듯한 욕설과 비속어 속에 위트를 간직한 문장으로 청춘만이 공감할 수 있는 페이소스를 녹여 낸 이 소설은 젊은 독자들 사이에서 ‘콜필드 신드롬’을 일으켰고, 홀든 콜필드라는 이름은 반항아의 대명사가 되었다. 전통적인 성장 서사가 자아의 발견과 성찰에 집중하고 있다면, 『호밀밭의 파수꾼』은 인간 존재를 특징짓는 공허함과 소외 그리고 위선적인 기성세대에 대한 예민한 성찰을 보여 준다. 이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누적 판매 7,000만 부를 기록했고,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된 이래 헤세의 『데미안』, 오웰의 『동물 농장』과 함께 100쇄를 돌파하며 ‘한국인이 사랑하는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
호밀밭의 파수꾼 9 |
망할 체크 무니의 조끼를 입은 녀석들이 어딘가 술집에 둘러앉아서, 피곤해하는 듯하면서 빈정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여자니, 책이니 연극에 대해서 비평을 하는 꼬락서니가 눈에 보일 듯이 그려졌다. 정말 그런 녀석들은 사람을 기가 막히게 만든다.
……흠뻑 젖는 건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피비가 목마를 타고 돌아가고 있는 걸 보며, 불현듯 난 행복함을 느꼈으므로. 너무 행복해서 큰소리를 마구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피비가 파란 코트를 입고 회전목마 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정말이다. 누구한테라도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위 두 구절로 주인공 홀든 콜필드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청소년기의 반항심에 기행으로 보일 만큼 충동적인 언행, 나름의 잣대를 갖췄으나 완전히 정립되지도 못한 불안정한 가치관을 지니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무한정 애정을 쏟아붓는 상류층 청소년이다.
콜필드는 가식과 허황을 증오하고, 염세적이며, 방황을 겁내지 않는다. 그는 작중 내내 순수함을 동경하고, 독백에서 가끔 악의를 읽을 수 있지만 대개 그 본인의 순수함에서 비롯된 증오다. 자신과 다르면서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평범하게 위선적인 모든 체제와 사람들에 대한 증오. 그는 여러 차례 퇴학당했고 이번 학교인 펜시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은 콜필드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한심한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사춘기 청소년이 어긋난 모습을 지켜본 어른들은 그 아이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그게 한 번으로 끝날 비행이 계속 이어지게 만들더라도. 대다수의 어른들은 아이들을 공감할 수 없게 된 지 오래 되었으니까.
콜필드의 충동심은 평소에 그가 싫어하는 친구와도 거리낌없이 어울리며 놀게 만들고, 사람에 대한 판단과 호감이 섬광처럼 타올랐다 사라지면서 그 자신도 모를 정도로 태도와 감정을 오락가락하도록 만든다. 후반부 안톨리니 선생의 집에서 도망쳐나온 뒤에는 그러고도 남을 만한 충격을 겪긴 했지만, 기존의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와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이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발작 증세를 일으키기까지 한다.
이처럼 매사 종잡을 수 없는 콜필드가 시종일관 유지하는 태도가 두 가지 있다.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저 “그러시겠어요?” 하고는 엘리베이터를 작동시켰다.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우습기도 하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지껄이면 상대방은 그저 이쪽 뜻대로 따라주기 마련인 것이다.
첫 번째는 시니컬한 태도다. 저자 샐린저는 헤밍웨이의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두 작가의 글은 분명히 다르지만 헤밍웨이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인물상과 홀든 콜필드는 공통점이 있다. 그건 격정으로 가슴이 차오른 상태에서도 냉소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물론 화를 내거나 씩씩거리며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작가가 서술하는 방식이 시니컬하다는 뜻이다. 헤밍웨이가 비교적 터프하고 샐린저는 그의 작품은 『호밀밭의 파수꾼』밖에 읽어보지 않았지만, 흔히 ‘대표작으로 대표되는 작가’로 여겨지는 것 같다? 비교적 내적으로 표출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다. 헤밍웨이는 인물의 내면을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폭발적으로 담아 이야기를 이끌지만 그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표현하는데, 『호밀밭의 파수꾼』은 철저히 콜필드의 입장에서 회고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문체가 그의 심리를 반영해 상당히 공격적이다. 콜필드는 총잡이가 되어 모리스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하지만 자신을 머리 끝까지 화나게 한 모리스에게 직접 덤비지는 못한다. 스스로를 겁쟁이라 자조하기도 한다. 싸워봤자 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일 수도 있지만, 콜필드가 호감을 가진 제인이 연관되어 있던 스트라드레이터의 경우 관계를 의심하다 결국 질 걸 알면서도 주먹을 날린다. 두 상황에서 콜필드가 보였던 태도의 차이가 그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콜필드는 아끼는 사람이 모욕당하거나 그와의 관계가 부정된다고 생각하면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도 덤빈다. 물론 이런 모습은 콜필드의 충동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샐리에게 정신 나간 제안을 하는 부분은 콜필드의 불안정한 상태와 거침없는 행동력을 가장 잘 나타내는 대목이다. 콜필드가 비록 허황된 얘기더라도? 아무 대책도 내놓지 않으면서 반발과 부정만을 일삼는 인물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쨌든 콜필드는 자기가 옳다 생각하는 걸 진심으로 믿고 행동으로 옮기며 그 자체에 가치를 둔다. 실제 그 나이대 청소년처럼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흔히 내로남불이라고 부르는 남에겐 깐깐하고 자신에겐 관대한 태도다. 하지만 콜필드는 정형화된 선인도 악인도 아니므로 콜필드가 띤 입체성 중 하나로 봐도 될 것이다.
콜필드가 뚜렷이 나타내는 또 하나의 일관적인 태도는 가식과 위선, 가짜들에 대한 증오, 곧 순수함에 대한 동경이다.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콜필드라는 인물에 대해 설명하라면, 맨 위의 두 문단과 함께 이 대사까지 인용해서 세 구절로 설명할 것이다. 책을 잡고 어느 페이지를 펼쳐봐도 콜필드가 독백이나 대사를 하고 있다면 그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위선자들에 대한 증오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증오하는 것은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악행이나 가식뿐이며, 사람 자체에 악의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뛰어난 부분, 이를테면 외모라든지, 능력이나 성격은 별개로 둔다. 즉 인정할 건 인정하고, 자신이 싫어하는 부분을 싫어하는 것이다. 콜필드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가 만든 피해자라든지 이런 건 아니어도, 그냥 좀 삐뚤어진 청소년일 뿐이다. 작중 내내 어떤 인물이든간에 가식적인 모습을 보이는 인물을 혐오하며, 그가 호감을 가진 사람들은 전부 위선적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인물상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인 D.B.는 홀든의 친형인데, 영화 시나리오를 작업하기 위해 할리우드로 간 뒤부터 위선자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
어니는 몸집이 뚱뚱한 흑인으로, 피아노를 연주한다. 상대가 상류층이나 명사가 아니면 상대도 하지 않는 지독한 속물이다. 그렇지만 피아노 연주만큼은 끝내준다. 정말 기분 나쁠 정도로 잘 친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렇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다. 난 그의 연주를 좋아하긴 하지만, 때로는 피아노를 엎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왜냐하면, 상류층이 아니면 상대도 하지 않는 그 인간처럼 음악도 그렇게 들릴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콜필드가 마냥 철없고 부정적이기만 한 아이는 절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애정을 갖고 아끼는 인물에게 엄청난 사랑과 관심을 퍼붓는다. 어린 시절 첫사랑이자 동네 친구에서 서서히 발전해나가며 좋은 기억만 남게 된 제인, 사족을 못 쓰고 아끼는 동생들, 일이 벌어지기 전의 안톨리니 선생 같은 사람들에게 콜필드는 항상 호의적으로 양보하는 태도를 취한다. 콜필드를 속좁고 재수없는 놈으로 볼 수는 있어도 그가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이렇게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서술한 글을 많이 읽어본 적이 없어서, 화자와 저자를 동일한 존재인 것마냥 착각하고는 한다. 그래서 작가 샐린저도 주인공 콜필드와 비슷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홀든처럼 성적 문제로 퇴학당한 적이 있었고, D.B.처럼 군입대 후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적이 있는데, 이 경험은 홀든의 군입대에 관한 견해로 짧게나마 드러나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그랬듯, 분명 콜필드의 기행을 이해할 수 없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특히 2022년의 대한민국에서는 청소년이나 2~30대 이상의 성인이나 공감하기 어려운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시대도 문화권도 차이가 큰데다 작중 묘사되듯 콜필드가 그 시대(1950년 미국)에도 평범한 아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콜필드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과 대조하면 생각보다 많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어른과 아이간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시대나 장소를 막론하고 사람 사는 곳이면 비슷하지 않을까? 나와 맞는 점이 없는 시스템이나 주변 인물, 이를테면 가족이나 친구부터 교사나 상사까지, 우리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지만 항상 떠오르는 반발심이나 일탈의 욕구를 느낀다. 성인이 되고 나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사람이 미성년자에서 성인이 된다고, 나이를 한 두 살 더 먹는다고 마법처럼 바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몇 살의 누구이든, 반항과 일탈의 충족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콜필드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 될 수 있다. 콜필드가 거쳐간 학교와 그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친구나 선생들은 대부분의 현대인들 곁에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콜필드가 동생들과 제인을 생각하듯, 우리에게도 애정을 쏟아줄 대상이 분명 있을 것이고, 우리는 좀 더 현대적인 방식으로 자의로 판단해서 옳은 데 순응하고 틀린 데 저항하며 사랑하는 이들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이다. 콜필드는 다소 극단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미워할 사람을 미워하고 사랑할 사람을 사랑할 줄 안다. 이 작품은 미국 작가가 쓰고 미국에서 출간되었으며 그 후로 72년이 지났다. 섬세하고 거침없는 심리 묘사와 풍성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청소년들이 공감하긴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홀든 콜필드의 생각과 그가 놓인 상황에 자신을 이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독자는 보편성을 지닌 고전답게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들에게 최고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 독서는 청소년에게 보다 성숙할 준비를, 성인에게 향수와 함께 자신을 또 한 번 점검할 태도를, 그리고 자신과 다른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다. 청소년이라기엔 나이가 많고 성인으로써는 아무것도 책임질 자신이 없는, 어느새 커버린 준비되지 않은 어른으로써 여러 생각을 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