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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현대문학북스의 시-01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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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197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9549222
ISBN10 8989549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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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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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 위의 기관차는 어깨를 들썩이며
철없이 철없이도 운다
사랑한다고 말해야 사랑하는 거니?
울어야 네 슬픔으로 꼬인 내장 보여줄 수 있다는 거니?

때로 아무 것도 아닌 것때문에
단 한 번 목숨을 걸 때가 있는 거다.
--- p.30
살구나무가 주는 것들
처음에는 당연히 꽃을 보여주지요
쌀 안치는 소리를 내면서 피는 꽃들 말이지요

그 꽃들 지고 나면
잎을 보여주고요
그러면 잎은 그늘을 주지요

그 다음에는 풋살구를 주지요
풋살구를 주고 나서는 아픈 배를 주지요

아픈 배가 다 낫기를 기다리다가
놇게 통통 잘 익은살구를 주지요
(살구를 장에 내다 팔면 돈을 주지요)

작고 파란 것들이 이파리에
오물오물 몰려드는 건 이맘때쯤이지요
살구나무는 온몸을 내주지요

야금야금 자신을 갉아먹는 벌레들의 눈에
이파리의 온갖 무늬를 다 보여주지요.
--- p.46-47
바깥에 나갔더니 어라, 물소리가 들린다

얼음장 속 버들치들이 꼭 붙잡고 놓지 않았을

물소리의 길이가 점점 길어진다

허리춤이 헐렁해진 계곡도 되도록 길게 다리를 뻗고

참았떤 오줌을 누고 싶을 것이다

물소리를 놓아버린 뒤에도 버들치들은 귀가 따갑다

몸이 통통해지는 소리가 몸 속에서 자꾸 들려왔기 때문이다
--- p. 38
내 겨드랑이에 날개 대신 숭숭 자란 검은 털아,

50센티미터만 뛰어오른 뒤에는 어찌하지 못하고 추락하는 술통 같은 몸아,

그동안 너무 많이 걸어다녀서 굳은살이 박인 발바닥아,

슬퍼도 자지러지게 울어본 적 없고 분노 앞에서도 핏발 서지 않는 눈아,

한 번도 알 껍질을 쪼아본 적이 없는 입술아,

- '내가 저 여린 싸리나무 가지 끝에 날아가 앉을 수 없는 이유를 아느냐' 중에서 -
--- p.52
감나무 잎에 내리는 햇살은 감나무 잎사귀만 하고요
조릿대 잎에 내리는 햇살은 조릿대 잎사귀만 하고요

장닭 볏을 만지는 햇살은 장닭 볏만큼 붉고요
염소 수염을 만지는 햇살은 염소 수염만큼 희고요

여치 날개에 닿으면 햇살은 차르륵 소리를 내고요
잉어 꼬리에 닿으면 햇살은 첨버덩 소리를 내고요

거름더미에 뒹구는 햇살은 거름 냄새가 나고요
오줌통에 빠진 햇살은 오줌 냄새가 나고요

겨울에 햇살은 건들건들 놀다 가고요
여름에 햇살은 쌔빠지게 일하다 가고요
-<햇살의 분별력>전문
--- p.49
가을 산

어느 계집이 제 서답을 빨지도 않고
능선마다 스리슬쩍 펼쳐놓았느냐

용두질 끝난 뒤에도 식지 않은, 벌겋게 달아오른 그것을
햇볕 아래 서서 꺼내 마리는 단풍나무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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