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조
여하튼 그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하진 않았을 텐데요.
탁석산
선생님 책에는 그런 것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고 한국에 관한 것만 분석을 하셨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쪽을 좀 보시면 우리 것이 좀더 선명하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창조
일본의 경우에는 1990년대 초에 풍수에 대한 관심이 높았었죠. 제책 두 권도 일본인들이 가져가 번역해서 출판했어요. 그런데 그게 오래가지 않았어요. 아마 한 4년도 끌지 못했을 거예요. 약간 붐이 이는 것 같더니 금방 가라앉아 버리데요.
--- p. 84
우리는 몸에서 혼이 빠져나가 사라지는게 죽음이라고 믿잖아요. 거기서 혼이라는 게 어쩌면 DNA를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요. 한 생명체에서 다음 생명체로 혼이 건너가야 생명이 탄생하는거잖아요. 생물학적으로 볼 때 건너가는 건 DNA밖에 없거든요. 결국은 DNA를 혼이라고 불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 p.64
문제가 되는 것이 민중이라면 민중은 예술가가 아니다 민중적 예술가는 민중이면서 민중을 개관화할 수 있는 자, 그런 의미에서 민중을 넘어선 사람이다
--- p.65
명예와 권력을 가졌던 인물들이 재물까지 욕심 내가지고 추해진 경우가 얼마나 또 많습니까 그런데 임상옥은 그런걸 다 버리고 나중에는 시인이 되어 돌아가 죽었죠 게다가 그 사람이 죽을 때 한 말이 있는데 그게 요즘은 유행어가 됐대.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그래서 나 아주 작가로서 행복해. 어제도 기업인들 모임에 갔는데 다들 이말을 외우고 있더라고 . 작가로서의 책임같은 걸 느꼈지요 . 어쨌든 임상옥은 그 말을 실천으로 옮긴 사람이거든. 기업은 이익을 남기는게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거라고 그랬는데 그걸 행동으로 옮겼고 하여튼 자기 말을 자기의 행동으로 옮겼단 말이에요. 이젠 정말 기업가들도 인격자적인 자세가 필요해요. 진짜 기업가들은 바람피워서는 안되고 번 돈도 내 게 아니라 단지 잠깐 머무르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해야 된다고.
--- p.126
말한다는 것과 쓴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말을 잘하는 사람하고 글을 잘 쓰는 사람하고도 다르고, 또 말과 글의 역할도 다르지요. 덧붙이자면 산다는 것과 글 쓴다는 것도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 같아요. 정리해서 보지 아니하면 인생이 잘 살아질 것 같지 않다, 정리해서 분명하게 알고 살아보자는 것이 글쓰는 사람들의 동기 중의 하나랄 수 있습니다. 질서를 부여해 보고, 의미를 찾아보고...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말하듯이, 글을 쓴다는 것과 인생을 산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맥인지 몰라요. 정리해서 글을 쓰려고 노력하다 보면, 인생도 조리 있고 뭔과 질서가 있는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지요. 그러나 글쓰기가 끝난 다음 순간부터 다시 인생은 혼란스럽습니다.
--- p.384
난 경제를 잘 모르지만, 원래 자본주의라는 게 미국에서 발달했거든. 그런데 거기는 기독교하고 밀접한 관련이 있어. 가톨릭 쪽은 청부 사상을 강조한 나머지 별로 성장을 못햇어요. 그러니깐 가톨릭에서는 그 도구적인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너무 지나치게 물질적으로가면 이게 신성을 해친다고 해서 약간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어. 개신교가 돈은 나쁜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벌어서 좋은일을 할 수 있다, 하고 나오면서 자본주의 발전을 독려했지. 그런데 결국 돈이라는 건 물질주의야. 결과적으로 물질의 행복을 누리려고 인간은 돈을 벌지. 하지만 아까 편리라는 말을 했는데, 돈은 편리는 주지만 행복을 주는 건 아니지.오히려 21세기적 가치관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존재의 문제가 크다고.
--- p.128
그런 측면에서 저도 헌책방이 독서문화를 이끌어 나가는데 크지는 않지만 분명히 한 역할을 한다고 봐요. 전체적으로 출판 문화 전체가 확대되면 그 안에서 헌책방이란 공간도 독자들이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것이고요. 헌책방이 가을에 추수한 뒤에 떨어진 이삭 주워가면서 뒤따라가는 역할을 하면 좋을 거 같아요. 그렇게 되면 농사 전체도 잘 되는 것 아닌가요?
--- p.322
<슬픔이 하나>
어제는 슬픔이 하나
한려수도 저 멀리 물살을 따라
남태평양 쪽으로 가버렸다.
오늘은 또 슬픔이 하나
내 살 속을 파고든다.
내 살 속은 너무 어두워
내 눈은 슬픔을 보지 못한다.
내일은 부용꽃 피는
우리 어느 둑길에서 만나리
슬픔이여
-김춘수-
--- p.225
<무엇을 찾아 노력하는 사람은 방황하게 마련이고 방황하는 사람은 결국 잘못을 저질러도 구원된다.>....그러니까 스스로 강하게 느끼는 것을 계속해서 추구해나가면 설사 거기에서 잘못된 것이 있더라도 계속 추구하여 노력하는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에 있을수 있는 일이라는 말이 인생을 생각하는데에 일종의 해방감을 줬다는 느낌이 들어요...
--- p.391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작가란 어떤 사람이냐?> 그 첫째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작가celui qui derange>라더군요. 보통 게으른 독자가 좋아하는 작가는 안도감을 주는 작가죠. 내가 아는 걸 다시 멋있게 말해 주는 사람. 그런데 저들이 요구하는 건 내가 보지 못한 것, 지식이 문제가 아니라 내게 낯선 모습을 낯설게 말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방식을 불편하게 하는 작품, 그런 걸 말해요.
--- p.174
<슬픔이 하나>
어제는 슬픔이 하나
한려수도 저 멀리 물살을 따라
남태평양 쪽으로 가버렸다.
오늘은 또 슬픔이 하나
내 살 속을 파고든다.
내 살 속은 너무 어두워
내 눈은 슬픔을 보지 못한다.
내일은 부용꽃 피는
우리 어느 둑길에서 만나리
슬픔이여
-김춘수-
--- p.225
<무엇을 찾아 노력하는 사람은 방황하게 마련이고 방황하는 사람은 결국 잘못을 저질러도 구원된다.>....그러니까 스스로 강하게 느끼는 것을 계속해서 추구해나가면 설사 거기에서 잘못된 것이 있더라도 계속 추구하여 노력하는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에 있을수 있는 일이라는 말이 인생을 생각하는데에 일종의 해방감을 줬다는 느낌이 들어요...
--- p.391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작가란 어떤 사람이냐?> 그 첫째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작가celui qui derange>라더군요. 보통 게으른 독자가 좋아하는 작가는 안도감을 주는 작가죠. 내가 아는 걸 다시 멋있게 말해 주는 사람. 그런데 저들이 요구하는 건 내가 보지 못한 것, 지식이 문제가 아니라 내게 낯선 모습을 낯설게 말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방식을 불편하게 하는 작품, 그런 걸 말해요.
--- p.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