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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

: 2006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동인문학상-37이동
이혜경 | 창비 | 2006년 05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6 리뷰 5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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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06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55쪽 | 409g | 153*224*20mm
ISBN13 9788936436926
ISBN10 8936436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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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1982년 『세계의 문학』에 중편소설 「우리들의 떨켜」를 발표하며 등단한 이혜경은 등단 25년 남짓한 기간 동안 그늘진 삶의 구석구석을 애정어린 시선과 정교한 필치로 형상화해온 대표적인 여성작가로, 더디지만 탄탄하고 뚜렷한 행보를 걸어왔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긴 여운과 잔잔한 문학적 감동을 던지는 이혜경 소설미학이 농익으며 변주되는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오늘을 사는 인간의 더욱 깊어진 아픔을 섬세하게 천착하는 작가의 감성을 확인케 하는 다양한 소재와 등장인물이 눈에 띈다. 이주노동자, 전화선으로만 삶을 사는 네트워커, 소도시 가전제품 기사, 여행가이드, 대형마트의 보안요원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마다 욕망으로 벌어진 현대인의 삶의 틈새에 밀착해 감싸고 보듬으려는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틈새』에는 2006년 제13회 이수문학상 수상작인 「피아간(彼我間)」을 비롯한 8편의 단편과 미발표 신작 단편 「섬」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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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틈새」에서는 가전제품 애프터써비스 기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의 중고등학교 동기동창인 영석은 육사를 나와 승승장구하다가 큰빚을 지고 소도시인 고향으로 돌아와 우주슈퍼를 차린다. 살림을 하던 아내 재희가 어느날 갑자기 단란주점을 차리고, 급기야 이혼 선언을 한다. 아내의 이혼 요구로 괴로워하던 주인공은 성공가도를 달리던 영석이 기수련을 표방한 사이비종교단체에 재산을 털린 사연을 듣고, 안온하고 평화로웠던 자신의 삶이 맞이한 틈새를 돌아본다.

올해 이수문학상 수상작인 「피아간」은 주인공 경은이 가족들에게 불임사실을 숨긴 채 거짓 임신을 꾸미고 지내다가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한다는 이야기다. 누워 계신 아버지에게 유언장을 작성하라는 새어머니에 어이없어 하며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던 경은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중 입양할 아이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가족간의 관계와 소통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등단 이래 이혜경이 꾸준하게 매달려온 소재에, 갈수록 심각해지는 불임 문제나 재혼 문제 등 관심사의 폭을 넓혀 한층 문제적으로 다루었다. 가족간의 갈등을 다룬 또다른 작품 「섬」에서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작은아버지에게 눈칫밥을 먹으며 자란 자매가 등장한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포목점을 운영하던 작은아버지는 언니를 점원으로 부리고, ‘나’에게는 대학등록금조차 인색하게 구는 인물이었다. 작은집 식구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울렁거린다는 주인공 내적 증상은 탈것만 타며 어김없이 찾아오는 언니의 ‘멀미’에 다름아니다. 또한 작가는 섬처럼 부유하는 주인공의 삶에 찾아오는 멀미를, 일본이나 대만 같은 섬나라가 겪는 지진에 비유하기도 했다.
「크레바스」에서는 대형마트의 보안요원이 주인공으로, ‘그’는 어린시절 겁이 많아 밤에 화장실을 갈 때면 다섯 살 아래 동생을 끌고 갈 정도였다. 동네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유괴사건으로 잠자던 동생을 잃은 ‘그’는 꿈결인 듯 그 장면을 떠올리고, 악몽에 시달린다. 그는 겁이 많아 오히려 위험 요소를 찾아내는 데 두각을 보여 마트에 취직하고, CCTV를 지키지만 사시(斜視)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마트의 CCTV에서 어릴 적 유괴된 동생과 흡사한 외양의 여인을 발견하고 혼란에 빠진다. 유난히도 담력이 약한 성정, 유괴당한 동생, 사시 증상 등 결핍의 징후를 다분하게 안고 있는 이 작품의 주인공 역시 CCTV 속에서만 사람들을 만나며 스스로를 타자화시키고 소외시키는 현대인의 전형이다.

「문밖에서」는 절친한 친구인 L의 생일 파티에 모인 친구들과 어느새 강요가 되고, 부담이 되어버린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회의를 털어놓는 L의 이야기이다. 공동체와 ‘함께’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폭력이 무의식중에 개인을 소외시키는 현상을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안정감 있게 형상화했다. 문학평론가 김영찬은 이 작품에 대해 “차이를 배제하고 동일화하는 집단주의에 대한 성찰적 거부이며 개인에 대한 조용하지만 강력한 옹호”라고 평한다.

이주노동자의 삶에 그린 단편 「물 한모금」에서는 불법체류 이주노동자인 아밀, 일본 여자의 기사로 일하다 도둑질을 혐의로 거리재판을 받아 죽임을 당한 아밀의 동생 라흐맛, 그리고 아밀이 한국에서 만난 샤프가 등장한다. 동생 라흐맛처럼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기는 본토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경계(국경)에 서서 삶도 사랑도 허락받지 못한 이주노동자 신세는 처량하기 짝이 없다. 아밀이, 인생은 그저 소가 ‘물 한모금’ 마시는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며, 부유하는 자신의 삶과 잡혀간 샤프의 삶을 돌아보는 장면은 이주노동자의 고단한 삶과 현실을 애틋하게 보여준다.

그밖에 네트워크로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현실의 공간에서는 인간적인 소통이 부재하거나 어긋나기만 하는 현대의 일상을 그린 단편 「그림자」, 가족이라는 미명하에 행사되는 폭력과, 아파트 공동체라는 이름의 폭력에 주목하는 「망태할아버지, 저기 오시네」, 어른들 말을 듣지 않으면 늑대가 잡아간다는 경고를 믿었던 어린 시절의 소소한 추억을 엮은 소품 「늑대가 나타났다」 등이 실려 있다.

문학평론가 황도경의 해설처럼 이혜경의 이번 소설집은 ‘틈새’의 또다른 이름인 일상의 경계와 ‘금’, 거기서 비롯되는 폭력성과 소외성에 천착한다. ‘우리’라는 울타리와 경계에 속하지 않은 ‘타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타인이 느끼는 소외감을 섬세하게 읽어내며 보듬는 이혜경의 시선은 일방의 편을 드는 대신 결국 우리는 모두 ‘섬’처럼 존재한다는 사실을 쓸쓸하게, 그러나 따뜻하게 환기시킨다.

회원리뷰 (5건) 리뷰 총점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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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우수작 금 넘어오지 마...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진*래 | 2007.06.11 | 추천4 | 댓글10 리뷰제목
어릴 적 초등학교 책상엔 어디나 가운데 금이 그어져 있었다. 자를 대고 똑바로 그은 금도 있고, 볼펜 같은 걸로 지워지지 않게 확실하게 그어놓은 것도 있고, 심하면 칼로 파서 아예 골을 만든 것도 있었다. 이혜경의 <틈새>는 내게 그 금을 생각나게 했다. 이건 내 것, 저건 네 것이었다. 이 세상은 내 세상이고 저 세상은 네 세상이고. 금을 넘어오면 내 것이 되는 거였다. 팔꿈치라;
리뷰제목

어릴 적 초등학교 책상엔 어디나 가운데 금이 그어져 있었다. 자를 대고 똑바로 그은 금도 있고, 볼펜 같은 걸로 지워지지 않게 확실하게 그어놓은 것도 있고, 심하면 칼로 파서 아예 골을 만든 것도 있었다. 이혜경의 <틈새>는 내게 그 금을 생각나게 했다. 이건 내 것, 저건 네 것이었다. 이 세상은 내 세상이고 저 세상은 네 세상이고. 금을 넘어오면 내 것이 되는 거였다. 팔꿈치라도 넘어가면 큰 일이 났다.

 

그런데 그 금 그어진 세상은 사실 어른인 우리 가운데에도 늘 있었던 것이다. 어느 새 우리는 바른 길, 정답의 길, 하나뿐인 길을 만들어놓고 그에 맞춰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려놓은 동그라미나 네모에서 살려고 노력하고 그렇지 못하면 불행해지는 것이다. 또한 거기에서 벗어나면 아웃사이더였고 마이너리그였고 루저였다. 이혜경의 이 작품집엔 모두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모두 너와 나,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경계를 그리고 세상과 뚝 떨어진 섬을 그리고 문 안과 문 밖을 그리고 또한 두 세상 사이의 틈새를 그리고 있다.

 

첫 단편 <물 한모금>이 한국 내 외국 근로자, 흔히 산업연수생이나 불법체류자라고 일컫는 동남아인들을 그린 작품이라 너무 쉽게 가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묘한 거부감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솔한 감정 전달과 오바하지 않고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는 작가의 글 솜씨에 빠져 어느 새 마음속 긴장이 풀어졌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세상의 일상 이야기도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단순하게 풀어나가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그 가운데 생각할 거리, 깨달음…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조금씩 스며들었다. 단순하고 명료한 명제들인데도 흔히 의식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일상의 금, 그 금들이 우리의 구체적인 생활에서 차지하고 있는 현상들을 단아하게 그리고 있다.

 

<그림자>에서 주인공은 밤중에 전화를 받으며 속으로 말한다. ‘넘어오지 말라고.’ <섬>에서 주인공은 잠을 못 자게 하는 기억에 대해 말한다. ‘큰 독에 장아찌 담그듯 차곡차곡 집어넣고 넓적한 돌로 단단히 눌러놓은 기억은, 조금만 틈을 보여도 부글부글 끓어넘쳤다.’ 마지막 구절에서 그 실체를 확인한다. ‘이 밤, 잠 못 드는 또 한 영혼이 문밖에서 숨죽인 목소리로 부른다. 나야.’ <문밖에서>에서는 여러 명이 모이던 모임에 안 나오게 된 이유를 말하는 한 친구의 말이다. “그런 일들이 여러번이었어.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도 휩쓸리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일들, 어떤 땐 별자리목걸이였고, 어떤 땐 [꿈풀이 사전]을 갖추는 거였고, 어떤 땐 누구 한 사람의 사생활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거였고.” <늑대가 나타났다>에서는 마을에서 늘 다른 데를 그리워하던 아이가 막상 먼데에 나와서는 날이 저물자, ‘늑대와 친척인 그’의 자전거에 올라 정겨운 ‘늑대냄새’를 맡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얘기이다. 

 

이혜경은 특별한 재미가 있는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소재나 기상천외한 주제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이혜경의 소설은 전혀 가볍거나 쉽지 않다. 술술 읽히고 단순한데 의외로 은근슬쩍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이면에 있는 이혜경이 생각하는 ‘금’, 그 금은 지금 내 마음속에도 내 생활 속에도 내 사고 속에도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깨닫는데, 끄집어내는데 더 어렵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늘 당연히 받아들였던 그 금에 대한 얘기를 이혜경은 우리의 여러 모습을 통해 담담하게 풀어냈다. 은근한 힘이 느껴지는 이혜경의 작품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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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가부장제를 넘어서는 사유의 씨앗-이혜경 소설집 『틈새』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오***스 | 2017.11.23 | 추천1 | 댓글2 리뷰제목
가부장제를 넘어서는 사유의 씨앗- 이혜경 소설집 『틈새』      이혜경은 소설집 『틈새』에서 가족이라는 제도적 굴레가 어떻게 사회적 문제로 표출되고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녀의 소설에 나타나는 새로운 관계에 대한 열망은 실상 새로운 관계를 부정하는 사회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보다 명료하게 표현된다. 「물 한 모금」에서;
리뷰제목

가부장제를 넘어서는 사유의 씨앗

- 이혜경 소설집 『틈새』

   

 

이혜경은 소설집 『틈새』에서 가족이라는 제도적 굴레가 어떻게 사회적 문제로 표출되고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녀의 소설에 나타나는 새로운 관계에 대한 열망은 실상 새로운 관계를 부정하는 사회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보다 명료하게 표현된다. 물 한 모금에서 이혜경은 한국사회 외국인 노동자의 절망을 세심하게 다루고 있으며, 문 밖에서라는 작품에서 그녀는 자신과는 다른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물 한 모금에 등장하는 외국인 노동자 샤프는 손이 잘리고 다리가 잘리고 더러 빈털터리 주검이 되어 돌아온 이들을 보면서도 복사가게를 운영하고자 하는 꿈으로 한국에 온다. 하지만 그에게 한국사회는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실 수 없는, 비정한 사회로 비쳐진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인내하며 일을 하지만, 일을 할수록 복사가게에 대한 그의 꿈은 점점 멀어진다.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사회가 지탱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한국사회에 뿌리내리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는 한국사회의 현실은 그만큼 한국사회에 차별이 만연해 있음을 입증한다. 타자들의 꿈은 견고하게 구축된 차별구조에 의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으로 남게 되는 셈이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내집단을 통한 외집단의 차별로 드러난다면, 문 밖에서에 나타나는 차별은 내집단 내부에서 벌어지는 양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내집단 내부의 차별은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분명하게 반영한다. 차이는 일상적인 삶에서도 인정되지 않고 있거니와, 집단 내의 동일성을 강요하는 ‘P’라는 여성 인물의 행태는 일상 속에 침투한 차별의 논리를 예증한다 하겠다. ‘P’는 벤처회사에서 받은 스톡옵션으로 경제적인 성공에 이른 인물이다. 그녀를 중심으로 다양한 유형의 여성들이 모이고, 그녀들은 때때로 모임을 갖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세계를 꾸려간다. 하지만 모임 속의 개인은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할 수 없다. ‘P’가 우연히 영화관에서 사랑에 빠진 ‘H’를 만나면서, H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H의 사랑과 관련된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이 모임에서 오고간다.

 

이 소설의 중심인물인 ‘L’의 지적처럼, 그녀들은 “H가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으로 H의 사랑을 단정하고, 그에 따라 H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퍼붓는다.’ “짧은 대립과 난처한 웃음으로 그런 상황에 대응하는 H의 마음 따위는 애초부터 그녀들에게는 관심사항이 아닌 것이다. 언뜻 타자에 대한 관심으로도 비쳐지는 이러한 상황은 실상 모임의 결속력을 강화하려는 ‘P’의 의도로 적절하게 통제되며 진행된다. “엄마가 물려준 십자가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S와 몸에 무언가를 붙이는 게 싫어서 시계도 안 차고 다닌다는 O”에게 별자리목걸이를 선물하고, 그 목걸이를 해야만 보내 준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상황 역시 타자들의 삶에 드리워진 동일자의 논리를 드러내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릴 때 살던 동네에 쌍둥이 형제가 있었어. 내 친구의 바로 위 오빠니까 나보다 세 살쯤 많았을 거야. 학교에서 돌아와 집으로 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골목이 있었는데, 마을 여자아이들은 골목 어귀에서부터 숨을 죽여야 했어. 그 쌍둥이가 길을 막고 못 가게 했으니까. 지들 마음에 들면 보내고 안 그러면 물을 끼얹기도 하고. 지들이야 장난이겠지만, 혼자 그 길을 지나야 할 때면 어찌나 겁이 났는지, 마음속이 꺼매지는 것 같았는데…… 언제부턴가, 우리가 모였다 헤어질 때면 어릴 적의 골목이, 그 골목을 지키고 있던 쌍둥이 형제가 생각났어. (106)

 

 

L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 정작 L이 나타나지 않는다. S가 집에 들르자 L은 인용문에 나오는 우화를 S에게 들려주고 있다. 마음에 들면 그냥 보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짓궂게 사람들을 괴롭히는 쌍둥이 형제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 타자의 삶에 개입하는 동일자의 논리를 상징할 것이다. L내가 골목을 지키는 쌍둥이인지도모른다고 생각하며 P를 중심으로 한 모임에 참여하는 걸 망설이고 있다. 모임 속에 내재된 동일자의 논리는 그 논리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마저도 동일자의 논리로 포섭하여, 결국 모임 구성원 전체가 자의든, 타의든 동일자의 논리로 통일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동일자의 논리는 그러므로 주체 스스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지 않는 한 누구나가 빠질 수 있는 존재의 수렁이다. 자신이 그토록 부정했던 쌍둥이들이 바로 자신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은 이혜경이 이야기하는 바깥의 사유가 자신(주체)에 대한 철저한 성찰을 통해 펼쳐질 수 있음을 예시한다. 거기에는 어느 누구도 동일자의 논리에 빠질 수 있다는 섬뜩한 자기인식이 있지만, 동시에 그 섬뜩한 자기인식만이 동일자의 논리에 틈새를 낼 수 있다는 작가의 소설적 사유가 담겨 있다.

 

망태할아버지 저기 오시네늑대가 나타났다두 작품에는 작가의 이러한 사유가 우의적인 수법을 빌어 표현되고 있다. 두 소설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은 설화적인 배경과 어울려 내부세계의 편협한 자기동일성의 논리를 비판하는 매개로 작동하고 있다. 망태할아버지 저기 오시네는 어린 시절 무서운 꿈에 곧잘 등장하던 망태할아버지안락한 내 집 어딘가에 숨어 있을 바퀴벌레에 비유하여, 이유도 모른 채 공포에 떠는 사람들의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자신의 삶을 위협한다고 생각한(각인된) 대상들이 왜 위협의 대상인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망태할아버지나 바퀴벌레는 원래부터 그렇게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위협적인 대상일 뿐이다. 사람들의 안락한 삶 뒤편에 도사리고 있는 무반성적 삶의 현실은 동일자의 논리가 현실세계를 지배할 수밖에 없는 정황을 설명해준다.

 

늑대가 나타났다에서 이러한 논리는 어른들이 가지 말라는 곳에 갔다간 단박에 늑대에게 잡혀갈 거다라는 말을 통해 변주되어 나타난다. 늑대는 경계의 외부에 있는 존재이다. 어른들의 말(관습)을 따르지 않는, 다시 말해 경계의 외부를 넘보는 아이들에게 늑대인간은 결코 본받아서는 안 될 금기를 상징한다. 중요한 것은 늑대인간이 왜 금기의 대상이고, 늑대인간이 과연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주체는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모르지만 늑대는 무서운 대상이고, 모르지만 늑대는 함께 존재해서는 안 될 대상이다.

 

하지만 저수지 너머에서 사는 아이들처럼 마을 바깥에는 분명 사람들이 살고 있다.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상황만큼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있을까? 경계의 외부를 향한 호기심(욕망)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집을 떠나 경계의 외부로 나아가게 한다. 그녀는 경계의 외부에서 아내가 죽은 다음 처제와 함께 사는’, 그래서 늑대의 친척이라고 불리는 병태 아저씨를 만난다.

 

 

아저씨 못 만났으면 어쩔 뻔했냐. 아이 혼자 돌아다니다간 큰일난다.

그가 고개를 살짝 뒤로 돌리며 말했다. 늑대와 친척인 그가 늑대 이야기를 하는 게 신기했다. 어쩌면, 마을 어른들이 그를 잘못 본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스름녘, 들판을 혼자 걸어가는 아이에게 말을 걸어준 사람은 마을 안에서 늑대 취급을 받던 그뿐이었다. 먹빛으로 더 짙어진 가로수들이 이제 무섭지 않았다. 나는 슬그머니 그의 허리춤을 잡으며 그의 등에 몸을 기댔다. (234)

 

 

들판을 혼자 걸어가는 아이에게 말을 걸어준 사람이 마을 안에서 늑대로 취급받던 병태 아저씨뿐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경계의 외부에 존재하는 인물이 주인공을 경계의 내부로 되불러들이는 존재로 나타난다는 역설 앞에서, 그녀는 비로소 어른들의 말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보게 된다. 경계의 외부에 늑대는 있었지만, 그 늑대는 경계의 내부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무서워했던 늑대는 아니었다. 스스로 내가 나 아닌 아기늑대인 것 같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이제 경계의 내부와 외부를 넘나드는, 말 그대로의 늑대인간이 되었다.

 

새롭게 탄생한 이 늑대인간은 어떻게 될까? 마을에서 멋쟁이로 통하던 영희 언니처럼, “탑에 갇힌 공주처럼 저녁마다 공들여 빗던 머리채를 잡힌 채 질질 끌려서집으로 돌아와 어둠이 깔릴 무렵마다 으어헝소리를 외치는 존재로 돌변하게 될까? 작가는 아기늑대의 탄생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 그 아기늑대의 후일담에 대해서는 일체 입을 다물고 있다. 소설 자체가 우의적이므로 그것은 독자의 상상력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일까?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투영된 늑대인간의 이야기는 독자들의 끊임없는 상상력을 촉구한다. 마을에 새겨진 금기는 이 상상하는 독자들의 힘이 모여야만 새로운 맥락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화라는 형식에 담긴 이러한 이야기가 우리 사회의 견고한 차별구조를 부수는 틈새로 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내면의 에 갇힌 인물들이 유독 많이 나타나는 이혜경 소설의 특징과 우화의 형식은 서로 연관되지 않을까. 우화 속에서 경계의 내부와 외부를 넘나드는 인물이 실제의 현실 속에서는 폐쇄된 내면에 갇힌 채 살아간다면, 그것은 그만큼 경계의 외부를 향한 이혜경의 소설적 상상력이 소설의 담론 내부에 갇혀 있음을 예시한다.

 

이런 점에서, 멀어지는 집의 등장인물 선영이나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에 나타나는 경미언니와 같은 인물들의 삶에 작가는 좀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우화의 세계를 넘어 현실 속에서 경계의 내부와 외부를 가로지르고 있으며, 그러한 가로지르기는 그녀들의 주체적인 삶 속에서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차별이 일상화된 사회를 예리하게 성찰하고 있는 이혜경 소설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요구가 작가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혜경은 지금 우화와 현실 사이에서 작가로서의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는 듯싶다. 작가가 우화의 세계에서 깨달은 진실을 현실 속에서, 현실의 인물과 더불어 진지하게 펼쳐내기를 간절하게 기대한다.

 

댓글 2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불행한 삶의 한줄기 희망-틈새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천*애 | 2014.01.15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경북 북부 탄광촌의 어디, 내가 살던 집 옆의 방 두칸에서 사글세를 살던 여자는 그 곳을 벗어나는 길은 공부밖에 없었노라고 했다. 공부 말고는 도저히 그 곳을 벗어날 핑게를 만들지 못해 죽어라고 공부만 했고, 지방대에서 알아주는 K대의 합격증을 받았을때 여자가 꿈꾼 세상은 탄광촌이 아니었다. 그런 여자가 부엌으로는 쥐가 기어 다니는 방 두칸에서 키우는 아이는 자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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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북부 탄광촌의 어디, 내가 살던 집 옆의 방 두칸에서 사글세를 살던 여자는 그 곳을 벗어나는 길은 공부밖에 없었노라고 했다. 공부 말고는 도저히 그 곳을 벗어날 핑게를 만들지 못해 죽어라고 공부만 했고, 지방대에서 알아주는 K대의 합격증을 받았을때 여자가 꿈꾼 세상은 탄광촌이 아니었다. 그런 여자가 부엌으로는 쥐가 기어 다니는 방 두칸에서 키우는 아이는 자폐증세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딸아이였다. 그러나 여자는 단 한번도 자신의 아이가 자폐증이라는 것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아이가 다니는 약국의 약사가 병원에 한번 데려가 보라는 말을 했다고 여자는 내내 이를 갈았다. 이웃의 나이 많은 여자가, 달래고 어르는 말로 병원에 데리고 가기를 권했고 마지못해 병원에 다녀온 여자는 이번에는 의사를 향해 적의를 드러냈다. 순 돌팔이 같은 놈, 지 새끼 같으면 그렇게 쉽게 자폐라고 말하겠냐고 이를 가는 여자를 보며 나는 할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여자가 사리에 어둡고 자기 생각만 하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잘 사는 시댁을 뛰쳐 나온 이유는 어이 없게도 시아버지의 폭력 때문이라고 했다. 딸아이가 정상적이지 못한 것도 그 아이를 임신하고 만삭이었을때 시아버지가 발로 며느리의 배를 찼기 때문일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여자는 적의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퇴근 무렵 시아버지를 피해 골목의 담장 아래 웅크리고 있는 여자를 데리고 집을 나온 사람은 여자의 남편이었다. 그럴수없이 자상하던 남편은, 온전치 못한 아이와 상처가 깊은 여자를 데리고 넓디넓은 자신의 집을 버리고 그 곳에 살고 있었다.

 

  내가 그 여자를 볼 때마다 견딜수 없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아버지의 병이 깊어 자신이 다시 집으로 들어가 병간호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시댁에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탄광촌을 벗어나기 위해 죽어라고 공부를 한 그녀는 왜 탄광촌보다 더한 자신의 시댁을 벗어나지 못했을까. 나는 아직도 그 여자의 머리속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얼굴이 뽀얗고 예쁘던 그녀,

 

  영문학을 공부했다는 그녀는 그 후 날마다 걷지 못하는 시아버지의 병수발을 들면서도 이제 더 이상 시댁 식구들이 자신을 구박하지 않는다고 좋아했다. 가끔씩 그녀의 집에 들러 차를 마시고 나오면 내 머리속을 하얗게 비었다. 그녀가 사는 집, 그 여자. 지금 여자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이혜경의 소설집을 읽으면서 내내 그녀가 떠올랐다. 대구의 어디에서 살고 있는 실재하는 그녀는 십수년이 지난 지금껏 내 머리속에 남아 있다. 그 여자가 그 생활을 견딜수 있었던 것도 그녀만의 '틈새'를 발견했기 때문일까. 혼자서도 충분히 똑똑하고 잘났던 그녀는 자신보다 훨씬 못생기고 어리숙해 보이던 남편을 우상처럼 떠받들고 있었다. '망태할아버지 저기 오시네'에 나오는 여자처럼 시가쪽 사람들의 극성을 고스란히 받아 들이는 이유는 아마 모르긴 해도 그녀의 남편 때문일 것이다. 죽자고 공부해서 벗어난 탄광촌과 며느리의 임신한 배를 발로 차는 시아버지와 그 시아버지의 편을 들어 욕을 퍼붓는 시어머니가 사는 집 중 그녀가 정말 벗어나야 할 곳은 어디일까.

 

  오래전에 이 책을 사두고도 다른 책에 밀려 끝끝내 맴돌던 이 책을 읽지 않았던 이유는 시골스러운 표지 디자인 때문이었다. 나는 이혜경이란 작가에도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유행을 한참 벗어난듯한 표지 디자인도 어느 정도 낯설었다. 표지에는 선혈이 떨어지듯 푸른 색 위에는 붉고 노란 꽃잎들이 떠다니고, 단란주점을 하다 남자를 만나 이혼을 요구하는 한 여자와, 온 읍내가 알아주던 요지부동의 전교 일등짜리가 운영하는 우주슈퍼가 그려져 있다. 그런 <틈새>를 비집고 들어 간 내게 이 책은 오래전에 잊어 버렸던 한 여자를 떠올리게 해 주었다.

 

  사람은 저마다 숨겨둔 얼마간의 슬픔들이 있을 것이다. 추석을 쇠고 마음속에 담긴 얼마간의 우울이 아직 걷어지기 전에 읽은 이 책은 내게도 잠겨 있을 슬픔을 비죽비죽 드러나게 해 주었다. 위로 세명의 동서에, 절대로 자식에게 양보하지 않는 완고한 팔순을 넘긴 시어머니와 턱없이 보수적이기만 한 네명의 남자들이 있는 우리집의 명절을 쇠는 방법은 간단하다. 입끝에 웃음을 물고 여기저기 살랑거리는 것말고는 별 뾰족한 수가 없다. 그나마 내 입의 웃음을 끝까지 허물어 뜨리지 않는 것은 양손 그득히 들고 간 선물과 음식들이다. 그것의 유효기간은 명절을 충분히 웃으며 보낼수 있을 정도이다. 잘 사는 막내 시동생, 시댁에 선물 주는 것을 하나도 아까워하지 않는 막내 며느리, 그런 것들이 명품 브랜드보다 더 단단하게 나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돈줄 따라서 목소리가 날렵하게 날아다니는 맏동서를 느낄때마다 나는 섬찟하다, 어느날, 더 이상 내가 그런 선물을 사들고 갈 수 없을 때를 생각하면.

 

  그런 사람에 대한 섬찟함과 우울은 명절을 쇠고 돌아온 내 전신의 진을 빼게 만들었다. 그리고 종일 아무말도 하지 않고 이혜경의 <틈새>를 읽었다. 그녀의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과 아직도 자폐증 아이를 끌어안고 살고 있을 내가 아는 한 여자와, 나는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이 소설집을 읽는 동안 나도 소설 하나 쓰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왜 소설'집'이라고 할까. 소설이 모여 사는 집이라는 뜻인가.

한번쯤 읽어 보면 좋을 책이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낮고 슬프고 가난하고 우울한 우리를 보는듯하다. 작가의 예리한 눈에 내 삶을 송두리째 들킨지는 말고. **이 책이 올해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했던가. 작가가 모조리 찾아내 버린 우리의 슬픔이 예리하게 책에서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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