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닫기
사이즈 비교
소득공제
사이즈비교 공유하기

B급 좌파

리뷰 총점8.0 리뷰 67건 | 판매지수 96
베스트
사회 정치 top100 4주
구매 시 참고사항
  • 2010년 2월 17일 출간
eBook이 출간되면 알려드립니다. eBook 출간 알림 신청
1 2 3 4 5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408g | 153*224*20mm
ISBN13 9788985304719
ISBN10 898530471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지식인들, 록을 고르다     달콤 쌉쌀한 초콜릿
리얼리즘은 리얼하다       민들레
권 장로의 천국               도량
음악유전                       혁명은 안단테로
그들의 댄스를 막지 마라  조까
우리 안에 남은 파시즘     지성
폭주족을 위한 변명         좃선과 낙선
나의 월드컵 관전기         쾌도변명
사나이 한대수                공산품의 길
딸 키우기                      예수
조개구이                       너에게 수영을 권한다
교양                             캠페인
가르침은 계속된다          서준식을 지지한다
변태                             B급 좌파
교양 2                          광주 단상
교회                             파리를 떠나다
아들 키우기                   날라리들 고고하다
동물의왕국                    돌팔이
염치                             돌팔이 2
에덴의 왼쪽                   거북알
칭찬의 가족사                아웃사이더
영감과 빠가사리             꿈
개새끼들                       통일
오월                             첫사랑
교회2                           신분
톨레랑스                       돌팔이 3
썩은 고기                      이민
광수 생각                      건달의 2백자평
음모론                          어릿광대
어머니                          장진구에게
그 신문에 침을 뱉어라     프로
쪽의 거처                      염치 2
글쓰기 1.5년차의 단상     청년들, 영화로 도망가다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P62:
- 아마도 교양이란 '사회적인 분별력'일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그 뜻과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반드시 자기 힘으로가 아니어도), 그게 교양이다. 그걸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교양 있는 사람'이다. 교양은 근대적인 사회에 주어지는 축복이면서 더욱 근대적인 사회를 지향한다. 말하자면 교양은 그지없는 진보다.

P121:
- 지구에 있기 때문에 지구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이치는 당대와 지식인과의 관계와 닮았다.당대를 올바로 보기란 정말 어렵다.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까이 있기 때문에 더 잘 볼 수 있는 것도 많다. 지식인의 역할이 바로 거기에 있다. 세상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정보만으로 당대 현실을 파악할 때, 혹은 그게 모두라고 단정할 때 그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고 알리는 일 말이다.
--- p.62,p121
폭주족에 대한 사회의 적의는 지나치다(폭주족은 오토바이를 사용한 범죄조직이 아니다. 폭주족이 경찰에 잡혀 봐야 구류 이틀밖에 살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들의 범법행위가 적어도 실정법상으로는 매우 경미한 수준임을 방증한다). 그 적의의 실체가 다름아닌 계급적 경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밝고 깨끗하지 않은 모습을 한 모든 것에 대한 중산층의 불안과 혐오이자, 폭주족이 자신의 비천한 신분에 대해 부끄러워하면서 죽어지내길 바라는 사회적 요구를 거부한 데 대한 보복이다. 그 보복은 정기적으로 공공의 적을 선정하여 사회의 진짜 적을 감추는 TV라는 괴물에 의해 발표된다. “쓰레기 같은 자식들이 감히 이 사회를 지탱하는 중산층의 단잠을 깨워.”
--- p.42
오늘 나는 네 이념이 뭐냐는 질문에 '초보 좌파'라 답하곤 한다. 초보라 한정하는 건 내가 좌파가 뭔가를 제대로 안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이유보다는, 아직은 내가 제대로 된 좌파로 살아갈 가망성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좌파로 살아갈 수 있을까. 과연 나는 (글이나 말로가 아니라) 일생에 걸쳐, 일상 속에서 좌파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인가. 자신 없어 하는 내게, 한 어린 후배가 붙여준 새로운 별명이 위안을 준다. B급 좌파. 그래, B급이라도 좌파로 살 수 있다면.


--- p.204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싸움은 절대선인 사람들과 절대악인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자기성찰이 가능한 사람들과 자기성찰이 부족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천 년 전 예수가 보여주었듯, 세상을 바꾸는 삶이란 대개 자신을 망가트리는 일로부터 출발한다.
--- p.160
서태지 모델을 선택했다는 것은 단지 서태지의 은퇴로 생긴 남성 댄스그룹의 빈자리를 차지한다는 것 외에 몇가지 세부를 갖는다.그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건 이른바 사회비판이다. 추측컨대 서태지 모델을 선택한 이수만이 서태지의 중요한 구성용소라 공인된 사회비판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닌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수만은 사회비판이라는 요소를 기꺼이 HOT 라는 공산품의 외장재로 채택했다
--- p.182,183
사람은 누구나 좌파로 살거나 우파로 살 자유가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선택을 일상 속에서 지키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정하는 일인 것 같다. 좌파로 사는 일은 우파로 사는 일에 비할 수 없이 어려우며,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아주 적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204
비정상적일 만치 현실에 무관심한 90년대 청년들은 '현실과 가장 닮은 가상편실', 영화로 도망했다. 말하자면 90년대 청년들에게 영화는 실종된 현실의 대체물이다. 80년대 청년들이 현실에 정열을 발산했듯 90년대 청년들은 영화 속의 현실에 정열을 발산한다. 현실에 비정상적일 만치 무관심한 그들은 영화 속의 현실엔 더할 나위 없이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그러나 극장을 나서는 순간 그런 개입의 경험은 그들에게서 흔적없이 증발한다. 그들은 다시 신실한 자본의 신도이자 반동의 신도의 삶으로 돌아간다.
--- p.
당대를 파악하는 지식인의 노동은 용접을 하는 용접공의 노동이나 물고기를 잡는 어부의 노동처럼 사회적으로 분담된 하나의 역할일 뿐이다. 지식인의 노동이 원래부터 다른 모든 노동보다 존귀한 건 아니다. 인간이 만든 것 가운데 원래부터 존귀한 것은 없다. 사회가 지식인에게 육체노동의 의무를 면해주고 존경과 명예를 준것은 지식인이 원래 존귀해서가 아니라 당대를 파악하는 그들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지식인에게 등대의 역할, 이정표의 역할을 맡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기억하는 지식인은 그리 많지 않다. 지식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고상한 삶과 세상의 존경과 명예가 제가 나면서부터 똑똑하고 잘나서 얻은 당연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들은 '지식인 세계' 를 형성하고 그들끼리만 소통가능한 암호언어(그들이 '지적대화'라고 부르는)로 그들의 허영심을 충족시킨다. 그들은 또한 그 서푼짜리 허영심의 냄새나는 퇴적물을 지성이니 교양이니 인문주의니 하는 이름으로 몸에 두른채 당대 현실로부터 대중들로부터 자신들을 구별짓는다.
--- p.123 '썩은 고기' 중
386이라는 경박한 조어(실재한 한 세대를 그런 빈곤한 상상력으로 요약했다는 점에서, 그런 빈곤한 상상력의 조어가 멀쩡한 시사어가 되었다는 점에서, 세기말엔 세상의 미감이 동반 폭락하는 것일까)로 지칭되는, 80년대의 청년들은 80년 광주에 근거했다. 그들이 세상은 고쳐나가기보다는 갈아엎어야 한다는 합의에 이른 건 80년 광주에서 미국의 역할을 알아차리고부터다. 일단의 젊은이들이 부산 미국문화원에 불을 지른 일은 그 합의의 첫 실천이었다. 극단적인 반공주의를 내세운 군사 파시즘과 20여 년을 싸워오면서도 미국을 거스르지 않던 한국 청년들의 낭만은 급격하게 혁명의 긴장으로 전이했다.
82학번인 나는 그들의 한 성원이다. 해방 공간이 (박정희 같은 인간마저 잠시 사회주의자였을 만치) 한 군데라도 똘똘한 청년은 모조리 빨갱이로 만든 시대였듯, 80년대는 한 군데라도 진지한 청년은 모조리 빨갱이로 만든 시대였다. 미 제국주의를 만악의 근원으로 보는 종속이론에서 출발한 우리는 마오나 그람시를 거쳐 연어가 강물을 오르듯 사회주의 운동사를 거슬러 올랐다. 80년대 중반이 지날 무렵, 우리 가운데 한 무리는 레닌에 안착했고 다른 한 무리는 김일성에 안착했다. 한 무리는 한국의 80년대를 19세기말의 러시아와 등치 하여 계급 해방을 이루려 했고 다른 한 무리는 남한의 북한화를 통해 조국 해방을 이루려 했다. 돌이켜보면 그런 우리의 선택은 명백하게 좌편향이었다. 우리의 선택이 가진 이념적 현실적 합리성을 떠나 그 시기가 지난 후 우리가 보인 삶의 궤적을 반추한다면, 우리가 앞으로 보일 삶의 궤적을 추정한다면 말이다. 우리는 90년대 우편향의 바람에 편승해 (우리가 80년대에 내보인 치열함에 비하면) 서글플 만치 졸렬하게 우리의 정신을 청산했다.
80년대를 거대한 가상현실게임으로 만든 그 졸렬한 청산은 대개의 우리 안에서 오늘까지 이어지지만, 그래도 우리의 80년대를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시려온다. 80년대는 연단에 서서 20년 후 수많은 동료들의 정신을 박제로 만들어 금배지와 바꿀 계획을 짜던 놈들이나, 조직생활에 적응 못 하는 자신을 자책하며 데모만은 개근하려 애를 쓰던 나처럼 하찮은 인간들만 있었던 게 아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청년들이 두번 다시 사적 안락을 찾기 힘들 삶의 지점을 찾아, 죽고 다치고 스러져갔다. 가슴이 시려온다. 이젠 돌아올 수 없는 그 순수와 정열의 순간을 생각하면 말이다.

이제 마흔에 임박한, 80년대의 한 하찮은 성원인 나는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좌파로 살거나 우파로 살 자유가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선택을 일상 속에서 지키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정하는 일인 것 같다. 좌파로 사는 일은 우파로 사는 일에 비할 수 없이 어려우며,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아주 적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80년대 우리의 선택은 대개의 우리가 지키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던 것 같다.
오늘 나는 네 이념이 뭐냐는 질문에 "초보 좌파"라 답하곤 한다. 초보라 한정하는 건 내가 좌파가 뭔가를 제대로 안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이유보다는, 아직은 내가 제대로 된 좌파로 살아갈 가망성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좌파로 살아갈 수 있을까. 과연 나는 (글이나 말로가 아니라) 일생에 걸쳐, 일상 속에서 좌파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인가. 자신 없어 하는 내게, 한 어린 후배가 붙여준 새로운 별명이 위안을 준다. B급 좌파. 그래, B급이라도 좌파로 살 수 있다면.
--- pp.201-204
"… 그 사람에 대한 제 생각은 간단합니다. 불신감. 이 한 단어로 족할 것 같습니다. (…) 그의 변명은 간단하겠죠. 우리는 너무 조급했다. 내 그릇이 작았다.(항상 개운치 않은 건 그는 항상 '나는 감옥에서 엄청난 도를 깨우치고 더 큰 사람이 되었다'는 분위기를 여기저기서 풍기고 다닌다는 거죠.) 다른 건 모르겠지만 최근의 그의 신작 시를 읽을 때, 저는 예전의 그의 글과 마찬가지로 그 특유의 '가쁜 호흡', 어떤 '집요한 욕망'을 느낍니다. (…) 그가 연예인이 되기로 작정했다면, 좀 덜 짜증나는 연예인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올해 초, 모스크바 유학 중인 옛 사노맹 조직원이 내 글을 읽고 보내 온 편지다. 나는 글에서 박노해(출소 이후의)를 두 번 언급했고 그 글들은 박노해에 대한 분명한 경멸을 담고 있었다. 준법서약서를 쓰고 나오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준법서약서를 거부하고 남기로 한 동료들을 "유연하지 못하다" 하고 진보의 기본을 저버린 자신의 '새로운 진보론'을 강변하기 위해 여전히 진보의 기본만은 놓지 않으려는 옜 동료들을 "낡았다" 하는 인간에 대한 경멸 말이다. 그러나 정작 그 글들이 책이 되어 나오자 나는 도리 없는 불편을 안았다. 어쨌거나 사회적 이유로 오랜 고생을 한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편지는 그런 내 불편을 얼마간 덜어주었다.
생태니 공동체니 일상성이니 서태지니 여기저기서 짜깁기한 박노해의 '새로운 진보론'은 과거의 박노해(혹은 과거의 진보)가 갖는 정치적 강퍅함보다 달콤해 보이고 어떤 사람들에겐 호감을 주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 새로운 진보론은 조금만 살펴보면 이미 진보의 테두리를 멀찌감치 벗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새로운 진보론엔 정치성이 송두리째 빠져 있다. 이 영리한 전직 혁명가는 '과거의 정치 편향을 철저히 반성'한다는 핑계로 슬그머니 정치성을 빼버린다.(과거의 문제는 정치편향이었는가, 정치성 자체였는가.) 대체 정치성이 빠진, 현실에 대해 정치적 긴장을 일으키지 않는 진보가 이룰 수 있는 미래는 어떤 것인가.

나는 박노해가 다시 고난에 찬 혁명가가 되라는 게 아니다. 우리 중의 누가 그에게 그런 걸 요구할 수 있겠는가. 박노해는 할만큼 했다. 우리는 그의 과거만으로도 그에게 존경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이미 그가 그러고 있듯) 그가 안락하길 바란다. 그러나 박노해가 자신이 선택한 안락이 마치 새로운 진보의 방식인 양, 진보의 미래 비전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댐으로써, 여전히 그에게 호의를 갖는 순진한 사람들을 미혹하고 여전히 진지하게 진보의 갈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는 일은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이다.
거짓 선지자가 된 전직 혁명가는 피할 수 없는 자기 혼돈에 빠지고 그 혼돈은 더욱 깊어만 간다. 출소 직후 넘쳐나는 핸드폰을 개탄하던 그는 이제 자신의 신간 표지를 'TTL 풍'으로 만들어 달라 요구하고(이 경박한 미감), 출소 직후 하루 다섯 시간 노동하며 사는 농촌공동체를 만들겠다 약속하던 그는 이제 "세상을 배우기 위해" 주식투자를 해보겠다 말한다(이 가련한 현실감). 박노해 말마따나 세상은 변했고 진보도 변하건만, 변하지 않은 그 '가쁜 호흡'은 여전히 자신을 시대를 앞서가는 혁명가라 불리고 싶게 하고, 변하지 않은 그 '집요한 욕망'은 여전히 자신을 최고의 상품으로 만들고 싶게 한다.

     추신 : <한겨레>에 실린 박노해의 신간('오늘은 다르게'라는 경쾌한 제목이 붙은) 광고엔 오늘 이 나라를 대표하는 부르주아 지성들의 주례사가 도열했다. 조혜정, 박원순, 유홍준…. 박노해와 그 지성들의 계급 본능(교수나 변호사의 기득권만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은 예술처럼 교감한다. 그 지성들에게 박노해는 달콤함(분명한 현재인)에 쌉쌀함(더 이상 위험하지 않은 과거인)까지 곁들인, 달콤 쌉쌀한 초콜릿이다. 그 지성들은 천천히 그 초콜릿을 씹으며 시민계급에 의한 노동계급의 인수합병을 자축한다. 하지만 내 귀엔 벌써 그들의 새로운 대사가 들리는 듯 하다. "무슨 초콜릿이 이리 달기만 해. 싸구려란…."
--- pp.149-152
"… 그 사람에 대한 제 생각은 간단합니다. 불신감. 이 한 단어로 족할 것 같습니다. (…) 그의 변명은 간단하겠죠. 우리는 너무 조급했다. 내 그릇이 작았다.(항상 개운치 않은 건 그는 항상 '나는 감옥에서 엄청난 도를 깨우치고 더 큰 사람이 되었다'는 분위기를 여기저기서 풍기고 다닌다는 거죠.) 다른 건 모르겠지만 최근의 그의 신작 시를 읽을 때, 저는 예전의 그의 글과 마찬가지로 그 특유의 '가쁜 호흡', 어떤 '집요한 욕망'을 느낍니다. (…) 그가 연예인이 되기로 작정했다면, 좀 덜 짜증나는 연예인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올해 초, 모스크바 유학 중인 옛 사노맹 조직원이 내 글을 읽고 보내 온 편지다. 나는 글에서 박노해(출소 이후의)를 두 번 언급했고 그 글들은 박노해에 대한 분명한 경멸을 담고 있었다. 준법서약서를 쓰고 나오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준법서약서를 거부하고 남기로 한 동료들을 "유연하지 못하다" 하고 진보의 기본을 저버린 자신의 '새로운 진보론'을 강변하기 위해 여전히 진보의 기본만은 놓지 않으려는 옜 동료들을 "낡았다" 하는 인간에 대한 경멸 말이다. 그러나 정작 그 글들이 책이 되어 나오자 나는 도리 없는 불편을 안았다. 어쨌거나 사회적 이유로 오랜 고생을 한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편지는 그런 내 불편을 얼마간 덜어주었다.
생태니 공동체니 일상성이니 서태지니 여기저기서 짜깁기한 박노해의 '새로운 진보론'은 과거의 박노해(혹은 과거의 진보)가 갖는 정치적 강퍅함보다 달콤해 보이고 어떤 사람들에겐 호감을 주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 새로운 진보론은 조금만 살펴보면 이미 진보의 테두리를 멀찌감치 벗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새로운 진보론엔 정치성이 송두리째 빠져 있다. 이 영리한 전직 혁명가는 '과거의 정치 편향을 철저히 반성'한다는 핑계로 슬그머니 정치성을 빼버린다.(과거의 문제는 정치편향이었는가, 정치성 자체였는가.) 대체 정치성이 빠진, 현실에 대해 정치적 긴장을 일으키지 않는 진보가 이룰 수 있는 미래는 어떤 것인가.

나는 박노해가 다시 고난에 찬 혁명가가 되라는 게 아니다. 우리 중의 누가 그에게 그런 걸 요구할 수 있겠는가. 박노해는 할만큼 했다. 우리는 그의 과거만으로도 그에게 존경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이미 그가 그러고 있듯) 그가 안락하길 바란다. 그러나 박노해가 자신이 선택한 안락이 마치 새로운 진보의 방식인 양, 진보의 미래 비전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댐으로써, 여전히 그에게 호의를 갖는 순진한 사람들을 미혹하고 여전히 진지하게 진보의 갈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는 일은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이다.
거짓 선지자가 된 전직 혁명가는 피할 수 없는 자기 혼돈에 빠지고 그 혼돈은 더욱 깊어만 간다. 출소 직후 넘쳐나는 핸드폰을 개탄하던 그는 이제 자신의 신간 표지를 'TTL 풍'으로 만들어 달라 요구하고(이 경박한 미감), 출소 직후 하루 다섯 시간 노동하며 사는 농촌공동체를 만들겠다 약속하던 그는 이제 "세상을 배우기 위해" 주식투자를 해보겠다 말한다(이 가련한 현실감). 박노해 말마따나 세상은 변했고 진보도 변하건만, 변하지 않은 그 '가쁜 호흡'은 여전히 자신을 시대를 앞서가는 혁명가라 불리고 싶게 하고, 변하지 않은 그 '집요한 욕망'은 여전히 자신을 최고의 상품으로 만들고 싶게 한다.

     추신 : <한겨레>에 실린 박노해의 신간('오늘은 다르게'라는 경쾌한 제목이 붙은) 광고엔 오늘 이 나라를 대표하는 부르주아 지성들의 주례사가 도열했다. 조혜정, 박원순, 유홍준…. 박노해와 그 지성들의 계급 본능(교수나 변호사의 기득권만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은 예술처럼 교감한다. 그 지성들에게 박노해는 달콤함(분명한 현재인)에 쌉쌀함(더 이상 위험하지 않은 과거인)까지 곁들인, 달콤 쌉쌀한 초콜릿이다. 그 지성들은 천천히 그 초콜릿을 씹으며 시민계급에 의한 노동계급의 인수합병을 자축한다. 하지만 내 귀엔 벌써 그들의 새로운 대사가 들리는 듯 하다. "무슨 초콜릿이 이리 달기만 해. 싸구려란…."
--- pp.149-152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비장함은 그 자체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그 비장함이 글의 주제와 어울려서 메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을 때 비장함은 옳은 것이고, 그렇지 못할 때 비장함은 그른 것이다. 김규항 글의 비장함은 대체로 옳고 좋은 것 같다. 그가 칼럼에서 다루는 주제는 대개 진지한 것들이고, 그 비장함이 실릴 때 김규항의 메세지는 매우 효율적으로 전달된다.

그는 비장함 속에 자신이 겪은 에피소드를 점점이 박는다. 그런데도 그의 글이 일기가 사소설처럼 읽히지 않는 것은, 그의 눈길이 늘 사회의 변두리에 살갑게 가닿아 있기 때문이고, 또 그의 말투를 빌면 '정치적 긴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세상과 불화하는 사람이다.
고종석, '회고와 전망' 중에서
김규항에 대해 생각하노라면, '글쓰기란 과연 무엇인가?'하는 생각과 더불어 '먹물이란 무엇인가?'하는 생각에 깊이 빠지게 된다. 나는 그의 글솜씨에 감탄하는 동시에 그의 글 내용에서 한국의 내로라 하는 지식인들이 숭배하는 그 어떤 서구의 석학들로부터도 건질 수 없었던 그 어떤 소중한 깨달음을 자주 얻기 때문이다.

김규항의 글을 꿰뚫는 한 가지 중요한 정신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위선에 대한 강한 혐오다. 한국에서 위선에 대한 혐오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내가 김규항에 이르러 임자를 만나고 말았다. 그것도 아주 확실한 임자다.
강준만, '독설가 김규항을 해부한다' 중에서

회원리뷰 (67건) 리뷰 총점8.0

혜택 및 유의사항?
[11/50]B급 좌파.. 그거라도 어딘가~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하**기 | 2011.10.22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천당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신이 묻는다.(저는 천당과 지옥이라는 기독교적 믿음을 신뢰하지 않습니다만) "사는 동안에 네 꿈은 무엇이었나?" "전 꿈이 없었습니다.. 그저 삶이 이끄는대로 걸어갔을 뿐..." "내가 너를 세상으로 보낸 이유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땀흘리다 오라는 것이었다. 꿈꾸지 않은 죄!! 너는 지옥으로 가서 참회하거라!!"김규항의 책을 읽으면 내내 마음;
리뷰제목

천당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신이 묻는다.(저는 천당과 지옥이라는 기독교적 믿음을 신뢰하지 않습니다만) "사는 동안에 네 꿈은 무엇이었나?" "전 꿈이 없었습니다.. 그저 삶이 이끄는대로 걸어갔을 뿐..." "내가 너를 세상으로 보낸 이유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땀흘리다 오라는 것이었다. 꿈꾸지 않은 죄!! 너는 지옥으로 가서 참회하거라!!"
김규항의 책을 읽으면 내내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그가 저의 아픈 구석을 콕콕 찌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살아가는 동안 더 나은 세상을 꿈꾸지 않느냐~는 질책이 마음에 닿기 때문이기도 하며, 저로서는 감히 따라하기 힘든 삶의 내공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의 책을 읽으면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끼기도 하는 것은, 이미 신이 되어버린 '자본' 앞에 모두 바싹 엎드려 경배를 드리고 있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너는 가짜이고 당신들은 바보다!'라고 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독재의 시절에는 그 모진 억압 속에서도 모두가 민주주의를 열망하며 서로의 손을 잡고 연대하는 시대였다면, 지금은 모두가 새로운 권력자 '자본' 앞으로 서로를 밀치며 선착순으로 달려가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경쟁자일 뿐, 어느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되며 누가 쓰러졌다고 일으켜주다가는 경쟁에서 저만치 밀려나고 패배자가 되어 버리는 시대 말입니다. '돈'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세상의 가치를 재지 못하고, 역으로 세상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해 내는 시대입니다. 너무 견고하여 그 어떤 것으로도 깨뜨릴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으로 인해 숨이 턱~턱 막힙니다.
과거 독재의 시대엔 야만스러움이나 비열함, 비인간적인 것들이 모두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기에 우리가 분노하고 싸우는 일이 오히려 쉬웠습니다. 하지만, 자본의 시대엔 그 모든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우리를 옭아매고 있어서 싸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니, 대상이 없으니 싸울 수조차 없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어렴풋이나마 그 보이지 않는 실체를 실감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싸우면 되겠구나~하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본의 힘은 제가 그런 걸 느끼는 순간 바로 저를 덥쳐서 싸울 힘을 빼놓습니다. 자본주의가 달리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이미 제 몸이.. 제 영혼이 자본에 꼼짝없이 잡혀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처지라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그냥 자본이 이끄는 길을 따라서 불편한 마음을 이끌고 가야 하는 것인지, 몸부림이라도 치며 그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것인지.. 답은 주어져 있고, '실천'만을 요구할 뿐입니다.
내 양심이나마 간수하며 인간답게 살려고 애쓰기는 하지만 여전히 내 가진 걸 놓지 못하는 우파의 삶이 지금 내 삶이라면, 적어도 내 삶의 기준을 나보다 낮은 곳에다 두고 다른 사람의 양심마저도 지키려고 노력하는 좌파적 삶은... 어쩌면 포기할 수 없는 '꿈'과도 같은 것입니다.
자신을 B급 좌파라고 규정짓는 저자의 말에.. 그래도 그게 어디요~ 라고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저에겐 아직 그 삶이 포기할 수 없는 '꿈'입니다.
제 꿈이기도 합니다만,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는 길은, 모든 사람들이 '노동'을 멈추어 버리는 그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은 내 마음에서 '자본'을 영원히 추방하는 그 날이거나...

댓글 0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좌파란 이런 것일까..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Y*****e | 2011.08.15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한 때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을 갖고 있던 적이 있었다.그 때 뭘 제대로 알고서 그랬던 것 같진 않다.이전에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이념에 대한 단순한 흥미 이상은 아니었을런지도 모르겠다.하지만 그 사상에서는, 기존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확고한 의지같은 게 배어나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 때나마 가까이 했던 많은 것들에서 하나 둘씩 멀어지게;
리뷰제목


한 때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을 갖고 있던 적이 있었다.그 때 뭘 제대로 알고서 그랬던 것 같진 않다.
이전에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이념에 대한 단순한 흥미 이상은 아니었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사상에서는, 기존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확고한 의지같은 게 배어나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 때나마 가까이 했던 많은 것들에서 하나 둘씩 멀어지게 됐고,
솔직히 그런 가치들에 미련을 느끼지도 않았다고 생각한다.
내 한몸 건사하기도 힘들기만 한 것 같았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현실에, 시대상황이란 것에  점점 관심이 없어지고 무뎌져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게 성숙의 일부인냥,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적잖이 걱정이 됐다.
어쩌면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보수적인 소시민의 전형이 되어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괜히 기분만 상하게 되는 건 아닐지, 시간낭비만 하는 건 아닐는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책은 정말로 재밌게 읽었다.
제목처럼 '좌파'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글들일 거라는 예상은 당연히 했지만,
이렇게 즐겁게(?) 읽을 거라곤 전혀 예측하지 못했었다.
'온 몸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누군가 이 글의 저자인 김규항 씨를 보고 얘기했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순 없지만,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순하게 넘어가곤 했던,미처 두번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까지 예리하게 잡아내는 대목에선
어떻게 이런 부분까지 볼 수 있을까 하며, 그런 생각의 깊이에 놀라기도 했다.
사회 속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던 부조리들을 꿰뚫어 보고 명쾌하게 표현해내는
통찰력과 설득력은 전반적으로 감탄스러울 정도였던 것 같다.
거의 모든 페이지에 덕지덕지 포스트잍으로 도배하다시피했을 정도로,
한 군데라도 인상적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사실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터 시작되는 건지도 모른다.
그냥 단순하게, 편하게, 남들과 똑같이 사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김규항 씨를 보고 단순히 피곤하게만 사는 사람이라고 가볍게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사회에 대해서 무관심한 편이었고, 일부러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지만
나를 둘러싼 세상이나 역사에 대해서 무지한 일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너무 무심해지지 않도록, 내가 살아온 시대를 알고
앞으로 살아갈 시대를 제대로 알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회주의는 이론이나 사상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인간 영혼의 가장 고귀한 감정의 항거에서 태어난다.사회주의는 비참함, 실업, 추위, 배고픔과 같은 견딜 수 없는 광경이 성실한 가슴에 타오르는 연민과 분노와 만나 태어난다."(레옹 블룸)
161쪽

 

 

댓글 0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포토리뷰 [내 좋은 친구들, ‘F4’와 인사하실래요?] ④ 교양을 만나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로얄 낭**생 | 2011.01.17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김규항은 직설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글 또한 그에 입각한다. 모든 것은 좌파적 일관성에서 비롯된다. 한국 사회가 지닌 레드 콤플렉스는 좌파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오도하기 일쑤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상식이자 교양이다. 얼마나 이 사회가 몰상식했는지, 몰염치했는지 보여주는 리트머스다. 이 책을 읽고 자신의 교양을 성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유죄! -;
리뷰제목

김규항은 직설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글 또한 그에 입각한다. 모든 것은 좌파적 일관성에서 비롯된다. 한국 사회가 지닌 레드 콤플렉스는 좌파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오도하기 일쑤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상식이자 교양이다. 얼마나 이 사회가 몰상식했는지, 몰염치했는지 보여주는 리트머스다. 이 책을 읽고 자신의 교양을 성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유죄!

- 준수 100자평 -

교양을 만나다, 《B급 좌파》

여기 또 하나의 불온. <씨네21>에 연재했던 김규항의 칼럼은 이랬어. 세상의 똥꼬 깊숙한 곳에 똥침을 날리는 글빨에 시원통쾌한 청량감을 느꼈고, 무엇보다 내 민무늬 정신에 통찰과 사유를 자극했었지.

직장생활을 하던 그때. 나는 하루살이였어. 뭐 제대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 일에 쫓기고 마감하는 틈 사이로는 술에 쩔어 지내는 여느 직장인이었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증발시킨 채, 나는 그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아메바와 같았다고. 이봐, 여기 한 잔 더, 꽐라~


그렇게 지내다가 그 칼럼을 묶은 《B급 좌파》를 만났어. 오오, 이 책, 놀라워라. 거기엔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 교양이 있었어. 당시는 알다시피, IMF를 관통하며, 더욱 강화된 돈지랄과 무교양이 판을 치던 때였지. ‘대박’이 일상어가 되고, “부자 되세요”라는 천박한 인사말이 미덕처럼 퍼진 시대.

그런 시대에 김규항은 혹독하고 삐딱하게 세상의 무교양을 꼬집고 있었지. 아, 나는 이 친구를 만나고서야 그때야 다시 반성을 하게 됐어. 나도 모르게 교양 없음에 편입돼 있었구나, 싶은 깨달음.


그 친구는, 말하고 있었어.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혹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회·문화적 인물․현상들에 대해 우리가 자체 증발시켰던 교양을. 지극히 상식적이고 어릴 때 교과서를 통해, 어른들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였어! 시대가 그걸 박제시켰을 뿐. ‘틀린’ 구석이라곤 없는 지극히 상식적인 교양.

근대화를 스스로의 힘으로 겪지 않고, 남의 손에 이끌려 질질 끌려온 원죄 때문이었을까. 분별없는 열정이 만들어놓은 세상에, 내 친구는 교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지. 뇌에 주름을 새기게 만든, 그래서 너에게 《B급 좌파》를 권한다.

“아마도 교양이란 ‘사회적인 분별력’일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그 뜻과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반드시 자기 힘으로가 아니어도), 그게 교양이다. 그걸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교양 있는 사람’이다. 교양은 근대적인 사회에 주어지는 축복이면서 더욱 근대적인 사회를 지향한다. 말하자면 교양은 그지없는 진보다.” (pp.62~63)

물론, 나는 아직 ‘교양’을 쌓기 위해 김규항을 읽고, 만나. 그것을 ‘좌파’라는 말로 굳이 연결할 필요는 없어. 다시 말하지만, 그건 상식이고, 교양이니까. 한편으로 그의 정체성인 좌파가 얼마나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인지, 김규항을 통해 절감하고 있어. 오랫동안 우경화 혹은 우파 일색이다 보니, 이곳은 너무 침침해졌어. 교양도 없어지고 상식도 증발하고 원칙마저 휘발된 이상한 나라. 그런 의미에서, 김규항은 교양의 회복! 《B급 좌파》의 형제 격인 《나는 왜 불온한가》(김규항, 돌베개, 2005)를 만나도 좋겠지. 이것 역시 직설이야.

이 친구가 좋아한다는 루쉰(노신)의 말은, “지금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할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지. 네가, 당신이, 그대가 함께 길을 그렇게 걸어갔으면 좋겠어.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아, 묻고 싶은 게 있어. 넌 교양을 어떻게 만나고 있니? 
 


댓글 0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한줄평 (1건) 한줄평 총점 10.0

혜택 및 유의사항 ?
평점5점
기대하던 책입니다. 출간된지 오래됐지만 가슴 펑 뚫리는 책이네요.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t******7 | 2015.04.17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13,5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aniAla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