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이야기하는 작가―미야베 미유키라면 역시 이 책!
『이유』『모방범』등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린 미야베 미유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미스터리 문학의 대가이다. 온갖 문학상을 수상하며 평단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동시에 독자들에게도 사랑받는 행복한 작가로서, 일본 유수의 출판 잡지 「다빈치」에서는 ?일본인이 좋아하는 여성작가?1위에 7년 연속 랭크되고 있다. 미야베 미유키는 추리소설은 물론 호러소설, 판타지, 10대 라이트노벨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화차』에서 시작되어 『이유』『모방범』으로 이어진 사회성 짙은 미스터리는 현대 사회의 병폐를 짚어내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잃지 않아 많은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녀는 이 작품 『화차』로 일본 양대 대중문학상의 하나인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수상하였고 나오키 상 후보에 오르면서 단번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하였다. 일본 독자들의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여, 발간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시대에 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은 개인으로서 굉장한 불행이다?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은 마쓰모토 세이초에 의해 만들어지고,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에 이르러 완성형에 도달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 책은 2000년에 발간되었던 『인생을 훔친 여자』의 개정판이다.
그녀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야기는 사라진 여성을 찾는 데서 시작된다. 독자는 그녀를 추적하는 주인공 혼마의 시선을 따라 퍼즐 조각을 맞춰가듯 그녀의 과거를 한 조각씩 맞춰나가게 된다. 신중하고 치밀하게, 또한 강인하게 계획을 세우고 움직였던 그 여성만큼이나 그녀의 과거도 한번에 조금씩밖에 드러나지 않아 더더욱 그녀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그럼에도 그 장본인은 마지막 장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그녀의 행적과 과거가 드러날 뿐이지만 한순간도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다. ?역시 미야베 미유키?라는 찬사가 절로 나온다. 드디어 그녀와 직접 만나는 순간, 모든 퍼즐 조각이 딱 맞춰져 하나의 그림으로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이 결말에 대해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데, 미야베 미유키의 최고 수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이 나오키 상을 수상하지 못한 것은 이 모호한 결말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라스트씬에서 혼마가 드디어 등장한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리는 속내는, 독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쩌면 저렇게 자그마하고 화사할까.
나는 자네를 만나면, 자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지금까지 누구한테도 들려주지 않았던 이야기를.
자네 혼자서 힘겹게 등에 짊어지고 왔던 이야기를.
도망 다녔던 세월 속에서, 숨어 지내던 세월 속에서,
자네가 비밀리에 쌓아 왔던 이야기들을.
이렇게 수많은 마음이 교차하는 문장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이야기는 끝났다. 독자의 상상력을 지극히 자극하는 엔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화차』에서 그려지는, 빚으로 인한 가정 붕괴와 야반도주, 자식에게까지 미치는 빚 독촉의 마수 등은 과연 이런 무법지대가 존재할까 싶으면서도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그려지는 개인파산자들의 처절한 삶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소름이 돋는다. 생활고를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이 급증하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내면도 결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범죄가 일어나기까지의 원인을 범인 한 명만의 사정으로 보지 않고 사회 배경에까지 확대시켜 일견 번영하고 있는 듯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드러내고 파헤치고 있다. 범죄자이지만 동시에 현대 사회의 희생자라는 점에서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떠오른다. 미워할 수도, 감히 동정할 수도 없으나 그녀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게끔 독자의 마음을 흔드는 미야베 미유키의 솜씨는 대단하다.
신용카드 사회가 낳은 불행한 여성의 인생을 발군의 필체로 그려내다.
과거의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인생을 꾸리며 행복해지고 싶었던 한 여성이 있다. 지긋지긋한 과거를 어떻게 해서든 털어내고픈 또 한 여성이 있다. 같은 운명일 수밖에 없었던, 비극으로 교차된 두 여성의 삶. 이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신용카드를 마구 사용해 개인파산한 사람을 한심하게 여기는 사회 풍조이지만, 한편으론 신용카드 회사의 화려한 광고를 보면 마음껏 쓰며 살아도 될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누구에게나 멋진 것을 마음껏 사고 싶고, 풍요로운 기분을 누리고픈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은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모두가 나름대로 조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약간의 계기가 있으면 마음의 고삐가 풀려서 낭비해버리고 마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지름신’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게 된 것도 그 반증일 것이다. 또한, 이 소설의 여성처럼 자신의 과거와 결별하고 인생을 완전히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는 일종의 변신 욕구도 많은 사람이 은밀하게 가지고 있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두 명의 여성과 독자, 양자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실 그렇게 큰 차이는 없을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는 빈부 격차가 점점 심해지고 있고, 이미 빈부에 따른 계급이 형성되어 유전되는 시대이다. 한편으로는 각종 미디어에서는 ?성공 스토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매주 로또 당첨자를 발표하고 있다. 성공해서 부를 누리는 사람과 자신과의 차이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매스미디어에서 유통되는 정보를 접하며 단지 부러워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문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자신의 처지만이 초라한 것 같아 견딜 수 없어 신용카드로, 대출로 풍요로움을 누리고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두 명의 여성을 통해서 ?인생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 정말 나쁜 것인가?라는, 사회의 불공평함을 삶 자체로 외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또 다른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하지만 인생이란 게 그렇게 간단히 변하는 게 아니다?라는 씁쓸한 현실도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은 나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누구라도 노력하면 성공하고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끊임없이 말하는―더욱 부추기는―사회와 그처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극히 한정되어 있는 현실의 갭이 여전하다. 오늘날 그 갭은 더욱 커지고 있다. 매스미디어에서는 유명 연예인이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카드를 쓰라고, 돈을 빌려 쓰라고 광고한다. 화통하게 돈을 쓰는 것이 오히려 선망되는, 소비만능주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도 충분히 통용되는 테마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개인파산의 예비군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