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열정이 다한 것 같고, 지금 있는 곳에서 떠나야 할 것 같고, 뭔가에 질질 끌려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계속될 때, 그만두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없이 원망스럽고 가슴이 조여오는 느낌이 들 때 우리는 참고 또 참는다. 폭발하지 않기 위해, 자제력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을 누르고 또 누르는 것이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해서 무조건 사표를 던져버리지는 않는다. 잘못된 선택이 남기는 후회의 무게 또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답답함을 일시적으로 누르기 위해, 혹은 한발 떨어져 생각해보기 위해, 인생에서 가장 고약한 적인 자기 자신과 마주하기 위해……. _pp.18~19
*사람들은 흔히 인도나 네팔을 가면 인생이 완전히 바뀔 것 같다거나,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서 못 간다는 말을 한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그것이 정말 원하는 삶이라면, 그런 기회의 바다에 한 번쯤 자신을 던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엔 모르는 척 눈감고 지내는 것보다 일단 경험하고 폭을 넓히는 편이 나은 게 있는 법이다. 그렇게 삶의 대안 하나쯤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것은 주머니 속에 언제나 꺼내 쓸 수 있는 ‘히든 카드’ 한 장을 품고 다니는 것과 같다. 아무것도 감수하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진짜 실패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데 있는 건 아닐까. _pp.43~44
*간혹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국내에도 좋은 곳이 많은데 그 짧은 시간에 굳이 외국에 갈 필요가 뭐가 있느냐고. 맞는 말이다. 여행이 단순한 꽃구경이라면 분명 외국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왜 없을까. 그러나 내게 여행의 의미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다. 단절이고 되돌아옴이다. 다른 말을 쓰고, 다른 글자를 쓰고, 다른 것을 먹고 마시는 사람들, 이전에도 이후에도 나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사람들과의 섞임. 그것은 매몰되어 있던 일상과 가장 손쉽게, 가장 빠르게 단절되는 방법이었다. _p.54
*어쩌면 내 삶을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는 순간부터 자신이 원하는 삶과는 멀어지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그 사이의 벌어진 틈을 적당히 메워가며 살아가기 마련이지만, 그 간격이 너무 멀어지게 될 때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이른바 평양 감사도 저 싫으면 못 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자기 내부에서 보상을 찾지 못하는 자는 노예라고 했다. 그러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주인공인 삶을 더 늦기 전에 살아보고 싶어졌다. _pp.79~80
*80개국을 여행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맨 처음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어디가 제일 좋았어?”가 그것이다. 가장 흔하지만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 제발 안 해주길 바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물어보는 사람을 아주 잘 안다면 조금은 쉬울 수도 있다. 휴양지를 좋아하는지 오지를 좋아하는지, 걷기를 좋아하는지 머물기를 좋아하는지에 따라 여행지와 방법이 달라지니까 말이다. 미식가에게 경치 좋은 곳을 소개해줬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며, 사람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대자연을 소개해줬다가는 볼 게 하나도 없이 삭막하더라는 소리 듣기 십상이다. _p.110
*나이가 들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조화를 이루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 늙느냐 아니냐는 어쩌면 이러한 조화를 얼마나 잘 이루어가고 있느냐의 문제라는 생각. 나와 가족, 일과 놀이, 정신과 육체의 조화 말이다. 1년 내내 직장에 치여 가족을, 또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면 단 며칠만으로 균형을 조금은 회복시킬 수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그렇게 대만으로의 표를 끊었다.
더 늦기 전에,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더 사랑하기 위해……. _p.347
___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