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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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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1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416쪽 | 560g | 145*210*25mm
ISBN13 9788937441622
ISBN10 893744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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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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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을 맞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든 쪽은 환희였다. 둘뿐이었다면 다투고 의논하여 불쾌한 맘을 풀었겠지만, 환희와 청명은 지금 물랑루에 있었다. 수많은 관객이 으뜸 마술사의 봉변을 지켜본 것이다. 환희에겐 이 낭패를 슬기롭게 넘기는 것이 중요했다. 물랑루 으뜸 마술사의 권위를 엄격하게 세울 필요가 있었다. 정색을 하고 반말로 받아쳤다.
“놀기 싫으면 꺼져!” --- p.40

“물랑루는 즐기는 곳이야. 말 물, 밝을 랑! 밞음이 없는 곳. 양반과 상것의 구별이 없는 곳.함께 웃고 노는 곳. 보아하니 양반 댁에서 곱게 자란 규수 같으신데, 놀기 싫으면 돌아가 조용히 수나 놓으며 현모양처 흉내나 내. 괜히 내 공연에 침 뱉지 말고.”
“천하의 잡놈이구나, 너.”
“진짜 잡놈 맛 좀 보여 줄까?” --- p.41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나 봅니다. 천천히 하십시오. 기분도 바꿀 겸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질문이 많구나.”
“제 마술이 정말 재미없습니까?”
“알면서 왜 묻느냐?”
“몰라서 묻는 겁니다.”
“지루해.”
“지루하다? 이해가 안 되는군요. 그 밤엔 최신 마술을 연달아 다섯 개나 선보였습니다. 놀랍지 않았습니까?”
“놀라웠어.”
“지루했다면서요.”
“놀라웠지만 지루했어.” --- p.69

“물랑루에서 인기가 높다 들었느니라. 어느 정도인가?”
“공연을 보기 위해 팔도에서 모여드옵니다. 입장권을 파는 매표방 앞에서 하루나 이틀 전부터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옵니다.”
“네 마술이 왜 그리 인기를 끈다고 생각하느냐?”
환희는 즉답 대신 잠시 고개를 숙인 채 생각했다. 왕은 두려워 머뭇대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걱정 말고 답해 보거라.”
고개를 들었다.
“다른 세계로 이끌기 때문이옵니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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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존재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장벽을 너무도 쉽게 뛰어넘는다. 언어도, 국가도, 인종도, 성별과 나이도, 마침내 계급도. 누구도 쉽게 뛰어넘지 못하는 온갖 경계와 장애물들 앞에서, 그들은 주저하지 않는다. 『조선 마술사』의 환희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서커스도 뮤지컬도 없었던 시대에 기상천외한 마술쇼를 선보이며 시름하는 조선의 백성들을 환희의 도가니로 밀어 넣는다. 그들에게 환희는 단순한 마술사가 아니라 “고통 없는 세상을 선사하는 교주”였으니까. 조선 최고의 마술사 환희와 평생 유령처럼 궁궐에 숨어서 산 청명공주의 극적인 만남은 신분을 뛰어넘고, 시공을 뛰어넘고, 마침내 ‘너와 나’의 구별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상을 향한 눈부신 비전을 향한다. 이 가슴 뛰는 해방의 마술쇼에 참여하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했던 조선의 공주 청명을 향한 환희의 외침은 통쾌하기 그지없다. “놀기 싫으면 꺼져!” 오직 신명나게 놀 줄 아는 자를 향해 활짝 열린 조선의 마술 극장 물랑루는 오늘도 21세기 관객들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양반과 상것의 구별이 없는 곳. 함께 웃고 노느라 여기가 어디인지도 지금이 몇 시인지도 깡그리 잊게 되는 곳. 그 축제의 황홀경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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