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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문학동네소설상-12이동
리뷰 총점8.6 리뷰 146건 | 판매지수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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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12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391쪽 | 576g | 153*224*30mm
ISBN13 9788954602594
ISBN10 895460259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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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No. 1
“이번 달에는 꽤 많이 자랐어요. 보이시죠? 뿌리가 살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잖아요. (……) 정말 굉장해요. 이번 달에도 엄청나게 자랐어요. 똥을 썩힌 거름을 바른 게 효과가 있나봐요. 냄새가 좀 나긴 하지만요, 하하. (……)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요. 햇빛은 어느 정도 받아야 하는 건지, 은행나무는 암수딴그루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교배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팔을 벌리고 있으면 알아서 교배를 해주는 건지, 아니라면 벌이나 나비가 해주는 건지. 저는 벌을 싫어하는데 어떻게 하죠? 하지만 괜찮아요. 나비는 좋아하니까요.”--새끼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남자

‘파일 No. 2
문득 내가 곧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뭐라고 설명은 못 하겠지만 내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학교 운동장에서 빠져나왔어요. 학교 운동장에 시체를 두면 안 되니까요. (……) 분리된 몸이 죽는 주말에는 항상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남해로 갔어요. 처음엔 무섭고 떨려서 그냥 산에 묻었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아는 스님이 있어서 암자에서 몰래 화장을 합니다. (……) 저에게는 일곱 번의 죽음이 있었어요. 그때마다 죽은 제 몸을 처리해야 했어요. (……) 재에서 나온 제 뼈들은 무척 뜨거워요. 뜨거운 뼈를 만지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죠. 아름답고 행복한 나는 모두 죽어버리고 이 밀리미터 나사를 돌리는 나만 지겹고도 지겹게 오래 사는구나.

파일 No. 3
시간이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 지하철을 타고 있다가, 무심하게 책장을 넘기다가,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다가, 혹은 멍하니 시계를 보고 있다가 그들은 짧게는 십 분에서 두세 시간을, 길게는 며칠에서 몇 년에 이르는 시간을 한꺼번에 잃어버린다. 자신은 불과 몇 초가 지났을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터무니없이 많은 시간이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이다.
“저의 사라진 시간들은 지금 어디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는 걸까요. 그걸 생각하면 참 가슴이 아파요.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누군가를 위해 아름다운 일을 할 수도 있는 시간이잖아요. 사라진 시간 속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낭비도, 폐허도, 후회도, 상처도, 그리고 그 시절을 살았다는 느낌도 없죠.”

파일 No. 4
고개를 돌리는 남자의 얼굴이 바로 나였어요.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죠. 분명히 나 자신이었어요. 진짜 나 말이에요. (……) 다가가서 나도 모르게 그를 안았어요. 마치 자기 신체의 일부를 만지는 것같이 자연스러운 느낌이었어요. (……) 우리는 모텔로 갔어요. 섹스를 했죠. 즐겁고 기묘한 섹스였어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내가 이 사람과 왜 섹스를 하고 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그런 섹스 말이에요. (……) 우리는 한 침대에서 같이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제가 먼저 일어나게 되었어요. 그래서 잠든 제 모습을, 아니 잠든 그의 모습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봤죠. 잠들어 있는 제 모습은 뭐랄까, 아주 사랑스러웠어요.

파일 No.5
_그녀는 일기를 읽는다.
_그녀는 자신을 부끄럽게 하는 과거를 고친다.
_시간이 지나 그녀는 자신이 일기를 고쳤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_그녀는 다시 일기를 읽는다.
_이제 수정된 과거가 그녀의 기억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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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형식주의 비평가들이 말하는 ‘낯설게 하기론’을 두고 “곰탕 뚝배기에 냉면을 담아오면 그것은 냉면이 아니다. 그것은 잘못 만들어진 곰탕일 뿐이다”라고 우리말로 옮길 수 있는 능력 속에 이 작가의 자질이 감추어져 있어 보인다. _김윤식(문학평론가)

상상력의 기발함과 대담함, 이제까지의 소설세계를 폭파시켜버릴 매머드급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기꺼이 이 소설을 그 첫머리에 놓을 수밖에 없다. 멋지다, 『캐비닛』! _신수정(문학평론가)

파격적인 형식을 갖고 있지만 구성적 필연성을 갖고 정밀하게 잘 짜인 소설이며 능청스러운 ‘구라’가 일품이었다. _은희경(소설가)

이 장편은 인간이 만든 질서하에서 멸종의 위기를 만난 인간적인 것, 그것의 진실에 대한 애정 어린 기억의 예술이 되었다. _황종연(문학평론가)

『캐비닛』은 신기한 이야기들과 신선한 화법을 시선을 끌었다. 이 작가의 캐비닛 속에 들어 있는 다른 소설들이 읽고 싶어졌다. _이승우(소설가)

재기 넘치는 작품이다. 세상의 진실이 새로운 은유의 산도를 통과해 삶의 실체에 접근할 때, 예기치 못한 환기가 불러일으키는 낯선 조짐에서 정적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 작품은 그런 특이한 정적을 품고 있다. _전경린(소설가)

『캐비닛』과 더불어 한국문학은 이제 또 한 명의 괴물 같은 작가를 갖게 되었다.
_류보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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