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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못굴, 그 끝없는 어둠속에서

[ 반양장 ] 제주 4·3 구술자료 총서-06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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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3년 04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40g | 153*224*20mm
ISBN13 9788946047099
ISBN10 894604709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 제주4·3 사건!
‘빨갱이가 되어버렸던’ 사람들, 고통의 기억을 재생하다


“다른 건 다 잊어불어도 어떵 4·3 때 일을 잊어? 그건 잊지 못허주. 하도 고독헌 시절이라노난.”
“빌레못에서 희생되신 분들이 사상적으로 그렇게 된 사람들이라고 하면 우리도 납득이 가지요. 그런데 칠십이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 한 살짜리 어린아이도. 살인이야!”
“세상에, 애기를 돌에 내부쳐서 죽였다는 거라. 글쎄, 일곱 달 된 애기라. 참 애기도 잘 났데. 지금 살아시민 육십일 거여.”

4·3은 흔히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으로 불리며, 오늘날 제주를 비롯한 한국 사회의 질곡과 갈등의 시원(始原)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다. 4·3과 함께 민족의 분단이 촉발되었으며, 이를 통해 남한 사회의 야만적인 빨갱이 배제와 배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4·3의 역사적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4·3에 대한 역사적 조명과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4·3은 오랜 기간 금기의 역사였고, 4·3과 함께 시작된 한국 사회의 모순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4·3을 몸으로 겪은 이들마저 사라지고 있다. 4·3 체험자의 대부분이 노령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니면 누구도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4·3은 우리에게 낯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 책은 시대가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채 앗아간 역사를 생생히 전달한다. 너무나도 무거웠던 세월을 안고 살아온 4·3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대량 학살’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장면을 다시 불러낸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제주4·3 구술자료 총서 5권과 6권을 펴내며

제1부 죄가 있든 없든 숨어야 살던 시절
1. 빌레못굴, 살앙 나가는 훈련헷수다
2. 물애기가 무슨 죄가 있어서…… 사람이면 할 수 없는 짓
3. 죄가 있든 없든 잡으러 와서 막 데려 갔어
4. 바람 부는 양 이레 붙고 저레 붙고
5. 중2 때 경찰서 유치장서 6개월 살앗주

제2부 행방불명된 사람들
1. 농사 짓다 잡혀가 행방불명된 아버지
2. 신던 신발 벗어 던지고 떠난 아버지
3. 우리가 경찰에 압박당했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지
4. 어떻게 범죄자가 돼서 그렇게들 죽었는지 몰라
5. 꽃피는 사람덜 탁탁 허여가민

제3부 검질 매는 사름헌티 총 잇어?
1. 두 살에 다리 총상, 어머닌 얼굴 다쳐 평생 고생
2. 4·3 초기 습격한 사람으로 누명, 억울한 옥살이
3. 눈뜨고 못 볼 죽음들, 애꿎은 젊은이들만 다 죽었어
4. 돈 때문에 죽은 시아버지, 하도 기막혀 잊지 못허주
5. 말 판 돈 때문에 아버지 희생됐수다
6. 남편 대신 죽겠다는 시아버지 같이 죽여

제4부 교사는 등사판 지키고
1. 등사판 지키는 숙직도 했어요
2. 발령 받고 간 국민학교가 군주둔지 돼 있었어

구술 정리를 마치며
제주4·3연구소와 제주4·3 구술자료 총서
주요 4·3 용어 해설
제주시 애월읍 지도
주요 제주어 용례
찾아보기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편자 : 제주4·3연구소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는 민간연구단체로, 제주4·3사건을 전문적으로 조사·연구해 4·3의 역사적 진실과 진상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통해 한국 역사의 올곧은 발전에 기여하고자 1989년 5월 개소했다. 이후 제주 공동체를 폐허로 만든 제주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운동에 앞장서왔다. 제주4·3연구소는 각종 국내외 학술대회와 토론회, 역사교실 등을 통해 4·3 관련 연구논문 및 자료집을 발간하고 있으며, 국내외 관련 자료 수집, 4·3 경험자들에 대한 증언채록 사업, 4·3유적 및 유물 조사 사업, 암매장·학살지 조사 및 유해 발굴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군인, 경찰, 민보단원들이 굴 안으로 들어오자 난 숨어버렸어요. 그 사람들이 “살려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나와라” 해서 다들 밖으로 나갔어요. 그 사람덜이 굴 밖으로 나가자마자 굴 입구에서 바로 죽였어요. 경찰은 어린아이의 다리를 잡아 바위에 거꾸로 메쳐 죽여버렸습니다. --- p.27

“제일 처음엔 아기 안은 여자가 나오더라” 하는 거라. 그건 우리 외삼촌이라. 애기는 한 일곱 달쯤 됐을 거라. 그 굴이 그냥 걸어 나오지 못해. 이렇게 올라와야 나오는 데라. 게난 경찰관 보고 “아일 맡아줍서” 헌 모양이라. 경찰관은 납읍 사람이여, 납읍. 그 사람이 아일 맡아가지고 애기를 돌에 내부쳐서 죽여버렸어. 그러니깐 그 꼴을 보면서 이젠 나와가지고 어멍이(엄마가) 꼭 같이 달라붙은 것 같애. 그러니깐 어멍을 개머리판으로 부숴버린 것 닮아. 이 해골 박세기가 바싹 부숴져버렸어. 거 내 추측인데, 애기는 순경이 내부쳐서 죽인 건 맞아. 돌에.
세상에, 애기를 돌에 내부쳐서 죽였다는 거라. 글쎄, 일곱 달 된 애기라. 참 애기도 잘 났데. 지금 살아시민 육십일 거여. 그 애기를 돌로 내부쳐서 죽여버렸어. --- p.40

어쩌면 제주4·3사건에 연루가 안 됐어도 그 당시에 목포형무소에 수감됐던 사름덜도 무더기로 같이 거기서 희생됐지 않느냐, 저희덜은 그렇게 분석을 하고 있어요. 이런 것을 우리 유족덜이 찾기 전에 정부가 나서서 이제 4·3 위령공원(4·3 평화공원)이 조성되었고, 사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고, 대통령이 도민에게, 그리고 유족에게 사과를 했었고, 또 위령제 참석을 했고, 이런 시점에서 이제 정부가 숨길 것이 뭐가 있겠느냐 이겁니다.
한 줌 숨김없이 빨리 털어 놓고 말이지요. 지금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있지만 여기서도 보면 이런 것을 구체적인 것들을 지금 찾지를 못하고 밝히지 못하는 단계에 있어요. 유족의 바람이 있다면, 지금 80세에서 90세 난, 제일 나이 많은 그 유족, 아닌 도민덜이 생존해 있을 때, 정부가 또 미국이 이런 숨겨둔 자료가 있다 허면 숨김없이 빨리 털어놔줬으면 하는 게 아니냐 허는 겁니다. --- pp.102-103

음력 동짓달. 14일 저녁부터 15일 종일 취조를 받았어요. 우리 할망(아내)도 형편없이 맞았어. 그때는 뭐 매도 아니고, 소도 그것처럼 때리진 않지. 그러니 우리 할망 두드리는(때리는) 사람은 뭐라고 허면서 두드리냐면, “씨전정도 못허게 멘들아불켜(아이도 못 낳게 만들어버리겠다)” 허멍 두드렸어요.
그땐 뭐 말 할 수가 없어요. 안 본 사람은 말로만 해선 몰라. 때리는 것도 뭐 죽으라고 때리는 건데 뭐. 아프라고 때리는 게 아니고, 죽으라고 때리는 거야. 나는 전기 취조까지 받았어요. 그래서 내가 죽었다가 살았죠.
막 오줌 싸고, 똥 싸고…… 천장에 달아매고 하니까. 그래서 내가 취조 받을 때, 양쪽 다 아픈데 이 몸 가죽이 소 가죽 벗겨버린 것 같이 가죽 하나도 없었어요. 막 매로 두드려버리니까. --- p.116

4·3사건 당시에는 어떻게 됐느냐면, 그때 가족 중에 감옥에 갔다고 하면 직장에도 못 다녔어요. 근데 나쁜 형사들이 있어요. 우리 지금 작은 아들도 서른일곱인디, 다 합격했어도 면접에서 떨어졌어요. 할아버지가 뭐 징역 갔다고 해서……. 그래도 우리 큰아들은 이제 서울 갔고, 지금 손자가 경찰 경위예요. 우리 큰아들도 들어가고, 말젯아들(셋째아들)도 들어가고. 아들이 넷인데, 근데 제주도 사는 아이는 합격해도 그 형사가 와서 면접 떨어트려버렸어. 축협에도 합격됐는데 못 가고, 어디 어디 그때 한 세 군데 합격했었는데……. --- p.122

다른 건 다 잊어불어도 어떵 4·3 때 일을 잊어? 그건 잊지 못허주. 하도 고독헌 시절이라노난. 매 맞고, 나무허렌 허난 허고, 하귀에 모여난 건 잊어불지 않아. 바로 나 앞에서 같이 가던 사람도 죽어불고. 사람 목숨이라는 건, 그건 다 운명이주. 어느 사람이 그때에 특별히 죄를 더 지었다 덜 지었다 얘기도 못헐 형편인디, 같이 가다가도 죽어시난. 길 가던 사람도 잡히면 죽는 거라. 하나씩 이름 부르면서 이리 물러서라, 저리 물러서라 허면 어느 쪽에 간 사름을 살릴 건지 어떻게 알아. 어느 쪽에 간 사람을 죽일 건지도 모르니까. --- p.136


근데 우리 소개 내릴 때에 우리 누이동생이 양말 한 켤레를 오빠한테 주었노라고, 그 말을 벗한테 해놔두니까 벗은 자기네 외삼촌이 고성 김○○이라고…… 그 사람이 그때 신엄지서에 토벌대로 있었는데, 우리 누이동생이 소개 내릴 때 오라방한테 양말 줬다고, 자기네 외삼촌한테 말해버렸어요. 소개 올 때 오빠한테 양말을 짜 주고 왔다는 말이 경찰에 들어가서 잡혀간 겁니다.
그러니 우리 누이동생을 심어다가 무조건 두드려버렸어요. 지서에선 밥 한 직(한 숟갈)을 주지 않고. 가족이 있어서 갖다줘도 이틀 동안 밥도 안 주고 굶기멍 두드리기만 한 겁니다. 어떻게 하다가 누이동생이 배고프니까 도망쳐 하귀 바당으로 갔어요. 하귀 바닷가에 내려가서 톳도 주워 먹고, 하도 배고프니까. 한 이틀 바닷가에 있다가 밤중에 소개헌 집에 들었습니다.
그 사이에 신엄지서에서는 누이동생이 도망쳐부니까 우리 처를 심어다가 쳐 두드려버렸지요. 등으로 해서 천장에 달아매서 취조했습니다. 취조하다 하루 집에 보냈는데, 그날 저녁은 우리 처가 집에 오니까 누이동생은 다시 바닷가에 숨어들었지요. 우리가 살던 집을 밤중에 누가 올레를 지킨 모양입니다. 그러니 여동생을 심어단 그날 밝으니까 청년단덜(대한청년단)이 오라고 해서 철창으로 죽여버렸다고 합니다. --- pp.166-167

그러니깐 순경들한테 한 번 물어보면 더 잘 알 거야. 그 사람들 표창장을 다 탔을 것이여. 사람 많이 죽인 사람은 표창장 탔거든. 그때 사람 잘 죽인 사람은 표창장 여러 개 탔을 거여. 지금 순경헤난 사람들 중에 표창장 타났다고(탔었다고) 헌 사람을 보면, 이 사람은 사람 꽤나 많이 그런 짓을 했다는 거를 내가 생각허거든. 지금도 그때 순경했던 사람들이 많이 살아 있어.
내가 이렇게 다니면서 보면 다른 데선 순경 뎅겨났다고 허는 사람들이 있어. 경허고 내가 농담 비스듬히 해서 그때 표창장 타났구나 허면 표창장 탔다고. 그런 사람들은 확실히 사람으로 생각되질 안 허거든. 그러니까 그때 경찰했던 사람이라면 다 알아 봐야지. 지금은 다 잘 했다고 해. 그때 그렇게 했다고 해도 자기는 해변으로 내려가게 해서 다 살렸다고 허거든.
--- p.177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제주 방언 그대로, 사료적 가치를 높이다

『빌레못굴, 그 끝없는 어둠 속에서』는 제주4·3연구소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진행한 ‘제주4·3 1,000인 증언채록 사업’의 결과물 중에서 제주시 애월읍에 거주한 4·3 생존자 33명의 구술을 정리해 엮은 것이다. 앞으로도 제주의 지역별로 총서 출간이 이어질 예정이다.
이 책은 주로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에 있는 천연동굴, 빌레못굴에서 벌어진 학살사건과 관련된 증언을 담고 있다. 빌레못굴은 천연기념물 제342호로 지정된 아름다운 화산동굴이지만, 4·3 당시 난리를 피해 피신 온 주민 30여 명이 군경으로 이루어진 토벌대에 의해 잔인하게 학살된 곳이기도 하다. 이 책의 첫 번째 증언자 양태병 씨는 빌레못굴 학살 사건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로, 함께 숨어들어 온 사람들의 죽음을 뒤로하고 살기 위해 어둠 속에 숨어야 했던, 당시의 비참하고 참혹한 상황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또한 이 책은 65년 전에 일어난 비극, 제주4·3 사건을 제주 방언으로 그대로 살려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서는 사료로서의 가치를 한층 높였다. 이는 제주에서조차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기록·보존하는 한편, 제주4·3 당시의 상황을 그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제주4·3 사건 65주년, 살아남은 사람들 33명의 목소리를 담아낸 증언집

정부는 2000년 1월,[4·3 특별법]이 공포됨에 따라 4·3 진상조사에 착수해 2003년 10월 15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작성한[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를 확정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의 보고서 채택에 따라 2003년 10월 31일 제주도를 방문해 국민에게 ‘과거 국가 공권력의 잘못’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지금 다시 한번 제주4·3을 끄집어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이 책은 우리가 풀어내야 할 과제인 제주4·3 사건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일 것이다. 구술자료는 구술자의 기억에 의존한다는 한계가 분명 존재하지만, 한편으로는 구술자의 실제 경험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더 구체적이고 생생한 진실을 발견할 가능성 또한 높다. 구술자들 사이에 엇갈리는 진술조차 새로운 역사적 사실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통로다. 이번 총서는 앞서 출간된 총서에 이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4·3사건의 퍼즐 조각을 생존자 구술을 통해 맞춰나갈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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