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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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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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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1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454g | 140*200*20mm
ISBN13 9788934972280
ISBN10 8934972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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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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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직도 만나고 있는 오랜 친구가 불쑥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고마워.”
며칠 전 잠을 자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아직도 나랑 놀아 주고 있는 몇 안 되는 내 친구들이 너무 고맙다는 생각. 그렇잖아. 내가 생각해도 나는 이기적이고 모난 데도 많은데, 그런 나를 참아 주고 아직도 놀아 주는 친구들이 고맙잖아. 그때 나는, 뭐라고 답했더라. 아마도 오글거리는 건 못 견뎌 하는 나는 농담처럼 그 말을 받았을 것이다. 나만 하겠니. 너도 알잖아, 나 친구 몇 명 없는 거. 너까지 나랑 안 놀아 주면 나 외로워서 큰일 나. 그래서 너한테 잘하는 거야. 나도 이기적이라서.
---「어른의 영화」중에서

그날은 집에 돌아와서도 W의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러다 문득 라디오 작가 시절 내가 자주 꿨던 꿈이 생각났다.

알람이 울려댄다. 일어나야 한다. 새벽까지 원고를 쓰다 잤으니, 두 시간도 못 잤다. 하지만 일어나야 한다. 머리 안 감고 모자 쓰고 나간다 해도, 방송국까지 40분은 걸리니까…. 일어나야 하는데, 지금은 일어나야 하는데…. 그러다 깜빡 다시 잠이 들면, 이런 꿈을 꾸곤 했다.

몸이 돌덩이처럼 무거워 침대에서 일으킬 수가 없다. 일으키기는커녕, 내 몸이 점점 더 침대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기분이 든다. 조금씩, 조금씩 더… 침대 안으로 내 몸이 빠져들어 간다. 그 순간 딱! 이 부딪히는 소리가 좁은 방 안으로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우걱우걱. 침대가 입을 닫아버렸다. 우걱우걱. 내가 사라져버렸다. 잠시 후 후두두 두둑. 침대가 내 하얀 뼈를 뱉어낸다.

그 즘 나는 늘 놀라서 깨곤 했다. 일어나 보면 하얀 뼈 대신 밤새 내가 흘린 땀이 침대에 흥건했다. 그때 나는, 내가 사라져버릴까 봐 두려웠던 걸까. 내가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걸까. W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스스로 사라져버린 걸까. 사라짐을 당한 것일까.
---「단 30분」중에서

“나는 만족을 모르는 인간인가 봐요. 어쩌면 지금의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왜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자꾸만 다른 꿈을 꾸는 걸까요?”
한 선배에게 물었다. 나보다 열 살 이상 많은 선배였다. 나름 진지하게 물어본 거고, 뭔가 어른스러운 답을 얻고 싶었다. 그런데 돌아온 선배의 답은,

“나도 그런 걸, 뭐.”

에에? 선배 나이가 돼도 그런 고민을 해야 한단 말이에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곧 오십을 바라보는 선배의 나이. 그런데도 선배에겐 꿈이 있었다. 그것도 선배의 지금 현실과는 무척 다른 꿈. 그래서 선배 또한 여전히 불안하고 힘들다고 했다. 그 꿈을 이뤄 나갈 의지와 열정이 늘 모자란 것 같아 자책하고, 현실과 꿈속의 삶 사이에서 갈등하느라 괴롭고.

“우울해! 선배 나이가 돼도 그런 고민을 해야 한다니, 우울해, 우울해!”
---「젠장, 큰일이다」중에서

어린 시절 나는 만화 ‘은하철도 999’의 철이가 여자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L은 생각했다. 가발을 쓰고 모자를 푹 눌러써 남자아이인 척해 봤자 나를 속일 순 없다고. 옆집 영희가 L을 바보 멍청이라고 부르기 전까지 L은, 철이가 틀림없는 여자아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철이가 남자예요? 아니죠? 여자죠? 영희가 바보 멍청이인 거죠?”
언제나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거짓말을 못했던 L의 어머니는, L을 향해 다음과 같은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내 아들이 바보 멍청이인 건가? 어떻게 철이를 여자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지?’

하지만 L에게 철이는 분명, 영심이었다. 1993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말을 남기고 타계한 성철스님보다도 몇 해 전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둘이면 둘이지 셋이겠느냐.’ 만고불변의 진리를 담아 이 노래를 불러대던 안경태의 영원한 첫사랑 영심이. 분명 은하철도 999의 철이는 영심이었다. 그러니 철이는 당연히 여자인 거 아닌가? 영심이가 크면 달려라 하니의 나애리가 되는 거고. 그런데 왜 영심이는 갑자기 나애리로 개명을 한 걸까? 사람들은 영심이와 나애리의 얼굴이 다르다고 하던데, 성형수술한 과거를 숨기기 위해 개명을 한 걸까?
---「정말, 정(正)말입니다」중에서

누군가 말했다. 인간은 서로의 불행을 털어놓으며 정을 쌓아 가는 동물이라고. 자신의 삶에 눈곱만큼의 불만도 없는, 정말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 나는 지금껏 만나 본 적이 없다. 우리는 모두 힘들다. 각자 다른 이유, 다른 크기의 불행을 우리는 모두 갖고 있다. 그리고 털어놓는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의 불행을. 그리고 또 듣는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들의 불행을. 나만 힘든 건 아니구나, 너도 힘들구나, 우리 같이 힘내자. 서로를 위로하며, 걱정하며, 독려하며, 함께 울다가 웃다가,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된다.

그래서 나는 바라게 됐던 것 같다. 다음 만남에선, 우리 모두 조금 더 작은 불행으로 투덜거릴 수 있기를. 나뿐 아니라 너의 불행 또한 작아져야, 나의 작아진 불행도 투정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다음 만남에선, 우리 모두 더 더 작아진 불행으로 투덜거릴 수 있기를. 그러다 어느 날은, 정말 시시콜콜한 얘기들로만 투정부릴 수 있기를. 그보다 완벽한 내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커다랗던 불행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어느새 우리 모두가 아주 작은 일로도, 나 요즘 이런 것 때문에 힘들잖아, 투정부리듯 볼멘소리를 하고 그러다 또 웃을 수 있는 내일. 나는 그런 내일을 꿈꾸곤 했다.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중에서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어.”
어느 날, B가 A에게 말했다. 천천히 책에서 고개를 들어, A가 두꺼운 안경 너머로 B를 바라봤다. 지금도 B는 그 날, 그 때, 그 순간 A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B를 바라보던 A의 표정. 그 표정에 짓눌려 B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그 사람이 싫지 않아.”
그리고 또 한참이나 B는 기다렸다. A가 무슨 말이든 해 주길 바랐다. 화라도 내 주길, 조금이라도 섭섭한 기색을 보여 주길, 아주 미세하게라도 달라진 표정을 보여 주길. 하지만 여전히 A는 A였다. 특유의 그 초연한 표정. 그 누구와 함께 있어도 혼자라는 표정. 그리고 내게는 그것이 너무 당연하다는 표정. 참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연 건 B였다.
“나한테, 무슨 할 말 없어?”
고개를 갸웃하며 한참을 생각하던 A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잘된 일인가요?”
---「누군가는, 그 손을 잡아야 한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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