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년 전에 여행을 시작한 한 소년의 가슴 뜨거운 여정
눈의 여왕을 물리칠 수 있도록 마법의 검을 또 다른 자에게 전해야 하는
위험한 여행에 나서야 할 소년이 있다.
동쪽과 서쪽, 중간 지대의 마법사들은 눈의 여왕을 물리칠 사람에게 검을 전하는 중요한 일을 할 사람으로 소년을 선택한다. 소년의 엄마는 태생적으로 게으르고, 뭘 잘 잊어버리는 평범한 아들이 그렇게 중요한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마법사들은 용감하지도, 강하지도, 훌륭하지도 않고 소년이 ‘착하기’ 때문에 선택받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오랜 세월 소년을 지켜 준다는 명분으로 소년의 이름을 마법으로 가져가 버린다. 마법사들이 네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 너는 언젠가 자오선을 통과해 돌아올 거야. 자오선은 저 세계와 이 세계 사이의 돌아오지 못하는 지점이란다.
아무리 떠올려도 자신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고, 알 수 없는 마법사들의 말에만 의존해야 하는 소년은 그렇게 외롭고 슬픈 마음으로 검을 차고 머나먼 여행길에 나선다. 여왕이 보낸 마법의 올빼미 이브롬과 거래를 통해 손가락을 주고 시간을 거스르는 마법을 얻게 된 소년은 마침내 도착한 왕국에서 나약한 왕과 사악한 여왕을 만나게 된다. 여왕의 죄수가 된 소년은 셀 수 없는 오랜 시간 자신이 갇힌 문을 열고 도움을 줄 사람을 기다리게 된다. 특별한 능력이 있지도, 그다지 용감하지도 않은 소년이지만, 소년은 자신의 의무를 잊지 않고 선한 마음으로 그 의무를 가슴속에 담도록, 그래서 결국 집에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전달’의 의무를 가진 소년의 이 특별한 여행은 그 무엇보다도 멋지고 환상적인 판타지를 만들어 낸다.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에서 등장하는 소년 카이가 여왕과 얼음 조각 때문에 가족과 친구를 잊어버리고 얼어붙어 버렸다면, 소년은 여왕의 죄수가 되었지만 그리고 이름을 잃었지만 오직 선함의 힘으로 적까지 자신의 편으로 돌리며 지켜야 할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마법을 믿지 않는 소녀 오필리아, 마법의 겨울 속으로 들어가다
아동 과학 협회의 일원일 정도로 모든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믿는 소녀 오필리아는 이상한 말만 늘어놓는 소년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하지만 열쇠를 찾아 달라며 자신에게 지시를 내리는 소년의 말 또한 묘하게 무시할 수만은 없어, 박물관 이곳저곳을 탐험하게 된다. 천식으로 빠르게 달리기 힘든 것은 물론 가슴 뛰는 일이 생기면 흡입기를 빨아들여야 하는 오필리아는 과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무섭기도 하지만, 하면 할수록 치솟는 용기에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림 속에서 나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유령 소녀들, 움직이는 마네킹, 여왕의 불행의 새 등 층마다 존재하는 위협적인 마법 존재들을 만나게 되면서 소년의 말이 사실임을, 세상엔 설명 불가한 일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필리아가 마법의 존재를 믿게 되는 과정은 오필리아 내면에 존재한 상실감과 아픔에 대한 치유와 맞닿아 있다. 엄마의 죽음. 오필리아는 엄마의 존재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가족에게 터놓고 말하지 못한 상실감을 껴안고 있다. 엄마에 대한 건 입에 올리기도 피하며 일에 집중하는 아빠, 왠지 모르게 싸늘한 박물관 관장 미스 카민스키와 어울리며 이상하게 변해 가는 언니 앨리스를 뒤로하고 오필리아는 모험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모험의 과정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말을 걸고, 오필리아는 보이지 않지만 곁에 있는 엄마를 느끼며 더더욱 믿을 수 없는 마법 존재들과 싸워 나간다. 캐런 폭스리는 시공간을 초월한 한 소년과 한 소녀의 운명적인 만남을 영원할 것 같은 눈이 끊임없이 내리는 도시 안, 끝을 향해 째깍거리는 ‘겨울 시계’가 존재하는 현대의 박물관을 배경으로 풀어내어 마음속에 잔상이 오래 남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선사한다. 무엇보다 어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두 아이가 서로를 구하고 세계를 구해 내는 모습이 모두의 마음을 따듯하게 보듬을 잊지 못할 판타지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