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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한 시대의 시인

: 현대 문학과 사회에 관한 에세이

김우창 전집-01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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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5년 12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568쪽 | 152*225*35mm
ISBN13 9788937455414
ISBN10 893745541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한국 문학 비평의 원점, 한국어로 전개한 사상의 정점
궁핍한 시대의 폐허 속에서 우리 문화의 재건을 모색한
한국의 지성 김우창의 결정판 전집 출간

1960년대부터 글을 발표하기 시작한 김우창은 2015년 현재까지 50년에 걸쳐 활동해 온 한국의 인문학자이다. 서양 문학과 서구 이론에 대한 광범위한 천착을 한국 문학에 대한 깊은 관심과 현실 진단으로 연결시킨 김우창의 평론은 한국 현대 문학사의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 지성으로서 세계의 석학들과 소통해 온 그의 이력은 개인의 실존적 체험을 사상하지 않은 채, 개인과 사회 정치적 현실을 매개할 지평을 찾아 나간 곤핍한 역정이었다. 전통의 원형은 역사의 파란 속에 흩어지고, 사회는 크고 작은 이념 논쟁으로 흔들리며, 개인은 정보 과잉 속에서 자신을 잃고 부유하는 오늘날, 전체적 비전을 잃지 않으면서 오늘의 구체로부터 삶의 더 넓고 깊은 가능성을 모색하는 김우창의 학문은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의 하나가 아닌가 한다. 그리하여 그 모든 고민이 담긴 글을 하나의 완결된 형태로 묶어 선보인다.

김우창의 원고는 그 분량에 있어 실로 방대하고, 그 주제에 있어 가히 전면적(全面的)이다. 새로 선보이는 전집 19권을 기준으로 대략 원고지 5만 5000매에 이르는 막대한 분량은 그 자체로 일제 시대와 해방 후, 6?25 전쟁과 군부 독재기 그리고 세계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를 따라온 흔적이다. 김우창의 저작은, 그의 책 제목들을 빗대어 말하면, ‘정치와 삶의 세계’를 성찰하고 ‘정의와 정의의 조건’을 탐색하면서 ‘이성적 사회를 향하여’ 나아가고자 애쓰는 가운데 ‘자유와 인간적인 삶’을 갈구해 온 한 정신의 행로를 보여 준다. 그것은 ‘궁핍한 시대’에 한 인간이 ‘기이한 생각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보편 이념과 나날의 삶’이 조화되는 ‘지상의 척도’를 모색한 자취로 요약해도 좋을 것이다.

2014년 1월 민음사는 새 김우창 전집을 출간하기로 결정하고 편집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64년에서 2014년까지 매체에 발표된 글과 미발표 원고를 모두 수집하고, 매 편 편집위원의 검토와 저자의 감수를 거쳐 분류했다. 집필된 당시의 텍스트를 최대한 복원한다는 원칙을 두고, 개고된 원고의 경우 변화된 부분을 밝히는 등 김우창 사상의 전모를 추적하고자 했다. 각 권은 발표 연도에 따라 배열하되 이미 출간된 단행본을 존중했기에 『궁핍한 시대의 시인』(초판 1977)을 비롯한 기존 민음사판 전집 다섯 권이 새 전집의 1~5권을 이룬다.

6~7권은 단행본으로는 최초로 선보이는 원고들이다. 1964~1986년의 글을 수록한 6권 『보편 이념과 나날의 삶』은 현대 영미 문학에 관한 초창기의 평론들을 통해 영문학자 김우창에 접근할 길을 열어 놓는다. 군부 독재하의 어두운 시대에 문화가 나아갈 길을 찾은 글들에서는, 책 제목이 시사하듯 매일의 일과 속에서 높은 이념을 좇는 김우창 사상의 핵심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1987~1999년의 글을 실은 7권 『문학과 그 너머』에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 산적한 문제들을 전면에서 대결한 흔적이 그대로 담겨 있다. 더불어 김지하, 천상병, 고은 등 당대의 문학가를 비평하고 유하 등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가운데 문학의 시대 이후에도 간직해야 할 ‘시인의 보석’을 가리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이번에 출간되는 1차분 일곱 권을 포함 전 19권으로 기획된 김우창 전집은 오는 2016년 상반기에 완간될 예정이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1권 궁핍한 시대의 시인

간행의 말
전집 출간에 즈음하여- 나의 글쓰기를 위한 변호
머리말
1부 궁핍한 시대의 시인
2부 예술가의 양심과 자유
3부 비평과 현실
4부 방법에 대하여
출전

저자 소개 (1명)

책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폐허에도 재건을 위한 많은 시사가 있다. 삶을 생각 없이 살아온 것이 아닌 우리 선대들은 많은 저작물을 남겼다. 그것을 무력화한 것은 외부, 주로 서구로부터 침입해 온 외래 사상이다. 이것을 하나로―그러나 경직된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하나의 문화로 재구성해 내는 것이 우리가 하여야 할 문화의 작업이다. 또 그것은 지금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그것을 살아 있는 일체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작업에서 핵심적인 것은 여러
이념적 실험들을 경험적 현실로써 시험해 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의할 것은 이 시험이 우리의 마음의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은 지각적 사건, 실존적 진실 그리고 보편적 전체를 구성하는 데 있어 바탕이 되는 공간이다. 이 점에서 마음은 통합의 능력이기도 하고, 세부적으로 생물학 실험에 사용하는 페트리 접시이기도 하다. ---「전집 출간에 즈음하여」중에서(1권 30쪽)

일의 시작은 결단을 요구한다. 이 결단은 시작의 의지를 하나로 굳히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역량의 부족함과 제약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사람이 행동을 통하여 현실에 개입하려고 할 때, 상황은 늘 사람의 힘보다 크다. 사람의 현실에의 개입은 사람과 물리적 환경 사이에 존재하는 불균형과 사회적 현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다른 사람들의 의지의 예측 불가능 속으로 스스로를 던지는 일이다. 이 던짐의 위험이 크다고 해서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은 이 던짐을 통하여 이러한 불균형과 예측 불가능까지도 자신의 책임 속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행동의 엄청남과 영광은 본질적으로 책임질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책임진다는 비장한 용기로부터 온다.
그러나 현실에의 행동적 개입은 절대적인 불균형과 예측 불능 속에 자폭(自爆)하는 행위가 아니다. 물리적 환경은 기술적(技術的) 통제의 정밀함에 의하여 조금 더 다룰 만한 것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의 의지의 불확실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스스로를 현실 속에 던지는 것은 그들의 공존적(共存的) 유대(紐帶)에 신뢰를 걸어 보기 때문이다. 사람의 사회적인 행동은 불가능에의 도전이 아니다. 행동에 있어서 동료 인간에 대한 신뢰는 행동의 책임을 조금은 가볍게 해 준다. 그의 잠월한 오만에도 불구하고 행동인의 겸손은 이 신뢰에 있다. ---「머리말」중에서(1권 32~33쪽)

우리가 보는 것, 듣는 것, 만지는 것―이 모든 것이 우리의 감성을 변형시키고 이 변형된 감성은 우리와 세계와의 관계를 매우 섬세한 방법으로 바꾸어 놓는다. 우리의 감성의 언어와 보는 것 듣는 것―회화며 음악이며 조각은 민주적 문화 속에서 조금 더 활발하여지고 많고 넓은 것을 포용하고 조금 덜 거친 것이 될 것이다. 가장 내면적인 마음의 기미도 여러 사람과의 자유롭고 평등한 교류 속에서보다 뚜렷한 가치가 될 것이다. 연극은 여러 사람이 모이는 모임의 계기이며 축제이면서 분명하게 말하고 분명하게 가르치는 토의의 광장이 될 것이다. 우리의 집 또한 보다 더 조화 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위압하고 뽐내기 위하여 위로 솟구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감싸 주면서 동시에 우리를 이웃과 자연에로 이어 주는 매개체로서 존재하게 될 것이다. 크고 무서운 관청이 아니라 조촐하면서 위엄 있는 모임의 장소가 시가지 풍경에서 더 중요한 곳이 될 것이다. 문화는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면서 문화 스스로를 생각하기보다는 삶을 생각하고 그 삶의 신장과 조화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문화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 되고 그러면서도 사회의 유목적적 발전을 위하여 굳건하게 나아가는 것이 될 것이다. ---「민주적 문화의 의미」중에서(2권 495쪽)

예로부터 시인의 말은, 사랑이라든가, 봄이라든가, 꽃이라든가, 또는 맑은 물, 바람, 산, 하늘과 같은 것을 환기하는 것들이었다. 이러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아름다움과 행복을 암시해 주는 심상들이다. 시인은 그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과 행복에 대한 소망을 이런 말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으레껏 그리움의 인간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시인을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가 비현실적인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그가 그리는 아름답고 행복한 것들에 대한 환영으로 인하여, 추하고 불행한 현실에 대결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인의 아름답고 행복한 것들은 현실을 피하고 호도하려는 충동만을 만족시켜 주는 것일까? 어쩌면, 이러한 것들은?물론 중요한 것은 정황의 문제라고 하겠는데, 정황에 따라서는 추하고 불행한 현실을 직시하고 그 앞에서 흔들리지 않게 살아가는 한 힘의 원천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시인의 보석」중에서(3권 131쪽)

어떤 규범적 상태의 인간성을 상정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적 상태 또는 정치적 사회적 상태를 논하는 데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여튼 그러한 인간이 있다면 그는 매우 구체적으로 감각하며 느끼며 생각하며 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이것을 무시하고는 어떠한 사회도 항구적이며 평화로운 삶의 틀을 만들어 낼 수 없음은 물론,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을 위하여 또 다음 세대를 위하여 또 그 다음다음 세대를 위하여 보다 나은 삶의 길을 헤쳐 나가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구체적으로 감각하며 느끼며 생각하며 사는 사람의 삶은 여러 예술과 문화 속에서 비로소 그 삶의 조건을 얻는다. 이것은 대체적으로 직선적 전진의 기하학적 비유로 생각될 수 있는 역사의 진보에 대하여, 근접적으로 원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구체적인 인간의 삶도 전진이 없이는 정체감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는 직선은 생물학적 리듬에 의하여 수정되고, 순환과 되풀이가 되고, 현재의 순간의 지속이 되어 곡선으로 굽어들게 마련이다. 역사가 삶의 노력에 의하여 진보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수많은 작은 원을 그리는 잔물결을 통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는지 모른다. ---「나아감과 되풀이」중에서(4권 39~40쪽)

정치는 실재적 작업이면서 인간의 내면을 가로질러 가는 것으로서 비로소 완전히 인간적인 정치가 될 수 있다. 그 매개를 통하여서만 그것은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위엄과 보다 풍부한 삶의 가능성에 맞닿아 있으며 그것을 북돋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정치가 쉽지 않은 것임은 또는 어쩌면 현실에 가능한 것이 아님은 사실이다. 내면의 과정은 느린 과정이다. 특히 그것으로부터 출발하여 집단적 일치에 이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는지 모른다. 정치는 성급하다. 현실의 작업 또한 긴급한 대책을 요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국가와 사회의 긴급한 일에 개인적 도덕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은 무책임한 사치라고 말한다. 큰 명분으로서 작은 인간의 진실을 무시하거나 억압하는 일은 흔히 보는 천박한 오만의 표현이지만, 이러한 말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을 위한 정치는 적어도 집단의 요구와 개인의 요청, 또는 집단적 윤리의 요구와 개인적 윤리의 요구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통렬하게 의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모순을 어떻게 조화하느냐 하는 것은 정치적 인간의―집단과 개체의 양극 사이에 살아야 하는 모든 사람은 정치적이다.―영원한 고민의 대상이다. ---「내면적 인간과 정치」중에서(5권 23~24쪽)

어쩌면 진리 그 자체는 간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과정은 어떤 경우에나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진리가 삶의 구체적 과정이 되는 것은 수많은 삶 속에서 수많은 판단과 수많은 실천의 결과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개체적 실존의 관점에서 볼 때도, 중요한 것은 어떤 특정 진리를 듣고 말하고 기억하고 하는 것보다도 그것의 깨우침이다. 이 깨우침은 사람마다 그에 주어진 능력과 그가 처해 있는 사정과 그의 개인적인 역사에 따라서 다를 수밖에 없다. 문화의 과정은 이 개체적 진리의 깨우침을 다양한 길을 통하여 가능하게 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하나로 묶어 나가는 과정이다. 이때 체험의 구체적 완성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학은 문화적 자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리를 이루는 것이다.
얼핏 보아 가장 강력한 것은 사실의 힘이다.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사실과 마음의 가치가 부딪칠 때, 결국 물러나게 마련인 것은 마음의 가치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기적인 것이요, 장기적으로 볼 때, 역사를 만드는 것은 마음과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이다. 또 그렇게 하여 사람의 다양하고 조화된 생각이 만든 세계에서 사람은 참으로 사람다울 수 있다. 이것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음의 힘은 인간사에서 약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끈질기고 무시할 수 없으며, 결국은 모든 것을 이겨 내고야 만다. ---「정치와 일상생활」중에서(6권 544쪽)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다 오늘의 우리 사회의 부패와 그리고 다른 견딜 수 없는 일들에 대하여 말합니다. 거죽의 원인이 무엇이든, 사람들은 깊은 마음속에 오늘의 삶의 불행을 느낀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문학이 할 수 있는 것은 이것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독자적인 삶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는 것은 좋은 이야기―가령, 자유와 신뢰와 책임과 사랑, 이러한 것들을 이야기하기가 어려워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상황에서 이것은 이미 거짓이고, 수사―말로써 말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문학은, 다시 말하여, 참으로 시적이고 예술적인 말은, 말을 통하여 말을 넘어가는 것을 지시하는 말입니다. 문학 하는 사람은, 또는 시인은, 좋은 말을 하는―대부분의 경우에 허사에 불과하게 되는 좋은 말을 하는 그러한 사람이 아니라, 릴케가 시인에 대하여 되풀이하여 이야기하듯이, 있는 것들의 나타남을 찬미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진정한 시인이 싫어하는 것은 좋은 말입니다. 그는 오늘의 삶을,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지 간에, 찬양하고자 할 뿐입니다.
---「문학의 옹호」중에서(7권 4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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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사회, 예술과 정치를 종합한 근대 지성의 원형
한국에 살며 한국어로 사유하는 이라면 반드시 소화해야 할 지적 자산

김우창의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은 1970년대를 매료한 평론집이었다. 표제작 「궁핍한 시대의 시인」은 평이한 시어로 형이상학적 사유를 개진한 최초의 서정시인이자 어려운 시절에 자유를 향한 뜻을 굽히지 않았던 의인(義人)으로서의 한용운을 비평한 글이다. ‘궁핍한 시대’란 한용운이 살았던 일제 강점기였지만, 글이 발표된 1973년의 독자들에게는 동시대를 형용하는 강렬한 표현이었다. 이 글과 나란히 실린 「일제하의 작가의 상황」은 이광수, 염상섭, 현기영, 이상, 윤동주, 이육사에게 문학과 현실 간의 변증법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정치하게 분석한 대표작이며, 「한국 시와 형이상」은 최남선에서 서정주까지 한국 현대 시의 궤적을 종관해 오늘날 현대 시사를 이해하는 정론으로 자리매김했다. 김우창의 문학 평론은 비판적 시선을 허용하지 않는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작품의 아름다움만을 칭송하면서 그 구조적 형식과 역사적 의미를 보지 못하는 낭만적 경향을 벗어났다고 평가되고 있다.
김우창은 편집 동인 유종호와 더불어 계간 문예지 《세계의 문학》의 편집 위원으로 오래 활동했다. 문학의 자율성을 주창한 《문학과지성》 그리고 문학의 사회 참여를 추구한 《창작과비평》으로 대별되는 두 경향 사이에서 《세계의 문학》은 세계 문학과 한국 문학을 매개한다는 독특한 행보를 걸었다. 세계 문학의 유산을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한국 문학에서 한국인만의 것이 아닌 보편적인 의미를 추출하려 했던 노력은 1990년대의 ‘세계문학전집’ 총서로 이어진다. 김우창, 유종호, 정명환, 안삼환이 민음사와 함께 기획한 ‘세계문학전집’은 독자층의 광범위한 호응을 얻으며 독서 문화의 새 흐름을 만들었다. 김우창이 견지한 세계 문학을 향한 지향은 ‘세계문학포럼’과 같은 국제 행사에서 여러 차례 좌장으로 활동해 온 이력에서도 볼 수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 리처드 로티, 오에 겐자부로, 가라타니 고진 등 동서양 지성과의 교류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외면하지 않는 가운데 한국의 문제를 세계 속에서 풀어 나가고자 한 노력의 증거이다.
한국의 지성사를 특징짓는 두 축이 서구 이론의 수용과 한국 전통의 모색이라면, 전자의 압도하에 후자가 수세적으로 반응해 온 것이 현실이었다. 전공인 영문학의 바탕 위에서 한국 문학을 비평하고, 외래 사상과 세계사의 동향에 대한 박학한 지식을 토대 삼아 한국 사회의 명암을 짚어 온 김우창에 이르러 양자는 종합의 가능성을 내다보는 단계에 올라섰다. 오늘날 경제 문화적으로 단일하게 재편되어 가는 세계는 끊임없이 정보를 유통하며 그에 대한 신속한 가치 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 인문학이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모험가의 철학을 뒷받침하거나, 구석에 몰린 낱낱의 삶을 위로하는 역할에 만족하는 실정이다. 이즈음 내놓는 김우창의 글 모음은 전통과 현대를 관통하는 시야와 특수한 처지에서 보편을 지향하는 정신으로 인간과 세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한 인문학의 영광과 그늘까지 남김없이 드러낸다. 이에 한국에 살며 한국어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면해야 할 ‘거대한 뿌리’라 할 김우창 전집을 내놓는 바이다.

궁핍한 시대를 지나, 풍요한 빈곤의 세계에 이른 오늘날
우리 삶의 가능성을 넓히는 새 문화와 학문을 구상하다

이번 새 전집 출간에 즈음하여 김우창은 자신의 저술 활동이 “주문이 들어오면 양복을 만드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그의 글쓰기는 말 그대로 그때그때의 사건에 대한 반응이었다. 저술은 저술가의 내면세계 같은 독자적인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요구와 저술가가 내놓을 수 있는 것 사이의 교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저술가의 사고와 언어는 역사적으로 틀 지어질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그는 주관성과 상대성을 넘어가는 진리를 추구한다. 이러한 모순 속에서 살아온 것이 인문학자 김우창의 행로라고 간추려도 좋을 것이다. 예술에서 정치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고, 한쪽 진영을 편들지 않은 채 엄정한 논리로 문제의 시말을 더듬어 나가는 그의 글은 때로 사변적이고 보수적이라거나 초월적인 이성 중심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복잡다단한 현실을 문장으로 얼버무리지 않는 김우창의 글에 동참하는 독자는 근대 한국이라는 시공간적 한계 속에서 사유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정신을 만난다.
근대에 인류는 이성을 참칭하는 오만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다른 인간을 억압하는 폐해를 역력히 드러냈다. 김우창은 근대의 빛과 그늘을 직시하면서, ‘포스트모던’이라는 이름하에 정당화된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인간의 더 나은 삶을 그리는 근대적 합리성에 대한 최후의 옹호자였다. 여느 사상가처럼 스스로 체계를 세우거나 핵심어를 내세운 적 없지만, 김우창의 사유를 어느 정도 포괄한다고 할 수 있는 개념은 곧 ‘심미적 이성’이다.
사실을 판단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인 이성은 추상화하는 고유한 성격으로 인해 마치 ‘수레바퀴가 밟고 가는 길목의 꽃’과 같은 개별자를 쉽게 사상하고 만다. 이때 거대한 목적으로 환원할 수 없는 개인의 낱낱의 존재를 환기하며 이성의 독주를 견제하는 것이 바로 심미적인 감각이다. 이는 우리가 시 한 구절, 노래 몇 소절, 한 권의 소설을 체험할 때를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쉬워진다. 아름다운 시는 생활 속에서 무뎌진 감각을 청신하게 하며, 마음으로 들어오는 음악은 굳어진 몸을 유연하게 펴고, 흥미진진한 소설은 미처 몰랐던 사람과 세상의 단면을 펼쳐 보여 준다. 이렇듯 개인의 감성적인 경험은 자연스럽게 더 큰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사는 자세를 가다듬는다. 이것이 심미적 이성이 그리는 사회이다.
김우창의 사상적 영역이 넓고 깊은 만큼, 후세대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컸다. 민족주의에 경도되지 않은 채 동서양을 두루 보는 시선 그리고 아카데미즘에 함몰되지 않고 분과 학문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발걸음은 그의 존재를 높은 산에 빗대는 측에게나, 넘어서야 할 벽으로 보는 측에게나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김우창의 영향을 보여 주는 최근의 예로는 사회학자 김찬호 교수의 『모멸감』(문학과지성사, 2014)을 들 수 있다. 한국 사회를 빚어내는 일상의 문법인 ‘모멸’이라는 감정의 구조를 추적한 이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김우창에게 실마리를 얻었음을 밝히고 있다. 한국인의 정서의 기저를 이루는 모멸감을 역사적 차원에서 분석하는 그의 접근법에는 과연 김우창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김우창은 어린 시절을 일제 강점기에 보냈고, 중학교 때 6·25가 터졌으며,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휴전을 맞는 등 격변 속에 있었던 까닭에 “내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됐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의 폐허를 다만 응시하고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폐허 위에 새로운 문화와 학문을 재건하고자 힘을 기울였다. 전통의 유산을 일방적으로 고리타분하게 만드는 외래 사상의 물살을 한차례 겪고 난 우리는 이제 자랑스러운 것이든 부끄러운 것이든 간에 우리의 경험 위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학문이 서구 이론을 요약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 자리를 조감하는 객관적인 수단이 되고, 문화가 화려하게 뽐내고 남과 경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깊게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되길 바란 김우창의 글은 넓어지는 세계에서 길을 잃지 않게 돕는 지침이 되어 줄 것이다.

김우창에 대하여

“철저함에 투철한 것이 김우창의 사유와 글의 특징이며, 이는 우리 문학 풍토에서는 유일무이하다.” ― 유종호(영문학자, 문학평론가)

좀처럼
크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였다

사색이란 쉬울 수 없어라

월남전 이후
가장 결핍된 인문을 지향했다

오뇌란 쉬울 수 없어라
― 고은, 「김우창」중에서(『만인보 10. 11. 12』, 창비, 2010)

“한국의 평론가들은 한국 시인들이나 작가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서양의 학자들이나 평론가들은 또한 그들 사회의 문학가들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사고의 패러다임과 감성의 구조가 상이한 동양과 서양이라는 두 세계를 그렇듯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동시에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 최장집, 정치학자

“김우창의 사유 세계는 고대와 근대와 현대가 서로 비추고 질문하고 응답하는 대화의 장이며, 우리의 궁색한 생각들이 길을 잃고 헤맬 때 언제나 길잡이가 되어준 통찰의 등대이다.” ― 도정일,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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