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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 1

나의 투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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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1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680쪽 | 762g | 148*210*35mm
ISBN13 9788935670123
ISBN10 893567012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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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의 삶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힘이 다할 때까지 움직이기만 하면 되니까. 그러다 멈추어버리면 되니까. --- p.9

이건 투쟁이다. 비록 영웅적인 투쟁이라 할 수는 없지만,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 치워도 치워도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는 방, 눈을 뜨고 있는 한 한도 끝도 없이 뒤를 따라다니며 돌봐주어야 하는 아이들 등 내 힘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어떤 지배적인 것들에 맞서는 투쟁이다. --- p.53

나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내 아이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서 어떤 의미도 찾을 수가 없다. 아이들은 내 삶을 꽉 채워주지 않는다. 적어도 내 삶은 그렇다. --- p.59

세상 속에 살며 세상의 무게를 느끼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로 산다 할 수 있는가. 무게를 느끼지 않는다면 우린 가벼운 그림 한 장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힘을 쓰지 않고 모아둔다면, 모아둔 힘은 도대체 어디에다 써먹을 생각인가. --- p.359

삶에서 내가 배운 한 가지 교훈은 참고 견디는 것이며, 삶에 대해 질문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니 내 속에서 서서히 싹이 트고 자라나는 동경과 온갖 감정은 글로 풀어낼 수밖에 없다. --- p.59

첫사랑이었다. 첫사랑은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오기에 어쩌면 가장 큰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 p.239

내가 기다리는 것, 내가 숨 쉬며 살 수 있는 이유는 가끔 내 어깨를 살짝 스치는 그녀의 가벼운 손길, 내 얼굴을 보거나 내 농담을 듣고 그녀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 방과 후 길에서 만나면 여느 친구들이 하는 인사 대신 건네는 가벼운 포옹이었으며,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를 때나 내 얼굴에 그녀의 뺨이 닿을 때 내 코를 간질이는 그녀의 체취와 사과향이 나는 샴푸 냄새였다. 그녀는 내게 젖어들었다. --- p.239

내가 본 것은 삶이었다. 내가 생각한 것은 죽음이었다. --- p.299

창문은 내 얼굴을 흐릿하게 반사해내고 있다. 반짝이는 눈동자는 어둑한 빛을 머금고 있었으나, 상체의 왼쪽 부분은 그림자에 가려 있다. 이마를 깊게 파들어간 굵직한 두 주름, 그리고 두 볼을 따라 입가까지 내려간 또 다른 두 주름. 그 주름들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다. 진지하게 쏘아보는 듯한 두 눈동자, 아래로 처져버린 입꼬리. 이 얼굴이 우울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그 얼굴에 들어차 있는 건 도대체 무엇인가. --- p.41

아버지 얼굴은 너무나 익숙했지만, 얼굴이 담아내고 있는 표정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거뭇한 검버섯이 뒤덮고 있는 얼굴 피부에는 살아 있을 때의 탄력성을 찾아볼 수 없어 마치 나뭇조각에서 도려낸 얼굴처럼 보였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닮은 그 무엇이었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에 자리한 희미한 장막 속에 서 있는 것 같았다. --- p.346

장의사는 문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곳을 나서며 일부러 문을 조금 열어두었다. 비이성적인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나는 아버지가 그곳에 혼자 남아 있는 걸 원치 않았다. --- p.348

아버지는 내게 누구였을까. 나는 아버지가 죽기를 바랐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 눈물은 도대체 뭘까. --- p.567

램프와 슈트케이스, 담요와 문손잡이, 그리고 창문들. 흙과 수렁, 강과 산, 구름과 하늘.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이렇게 우리는 생명을 머금지 않은, 죽음의 세계에 속하는 온갖 물건과 현상 속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잘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우리는 죽은 인간의 몸을 볼 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불편함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의 손길에 사로잡힌 인간의 몸을 가능한 한 우리의 시야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 p.10

말로 표현할 수 없기에 말해지지 않은 것들은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이 세상 밖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것들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고, 우리는 이것들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것들 자체라고 할 수 있으니까. --- p.341

아버지는 자신만의 바다 위에서 항해를 하고, 자신만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끝내는 자신만의 죽음을 맞았다. --- p.368

오, 아버지, 그런데 이젠 저를 떠나버린 겁니까? --- p.404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차를 타고 먼 길을 가는 순간만큼은 마음을 터놓고 내 속의 모든 것을 내보이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그것은 그동안 나를 그토록 꽁꽁 감싸고 보호해온 그 무언가를 벗어던지고 싶은 느낌이었으리라. --- p.409

나는 연극 무대의 배우처럼 겉껍질뿐인 삶을 살았다. 여기서는 이 역을 맡고, 저기서는 저 역을 맡는 떠돌이 배우처럼. --- p.502

세상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버린 눈은 세상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건 내 속에 자리한 세상의 의미가 변했기 때문이리라. 세상의 의미는 내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더 무의미함을 향해 느릿느릿 자리바꿈을 하게 된다. --- p.547

아버지의 죽음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현실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내게 잦아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 무. 어둠조차도 잦아들지 못하는 무의 세계. --- p.578

나를 무겁게 감싸고 있는 것은 언제든 비를 뿌릴 수 있는 잿빛 하늘 같은 어렴풋한 슬픔이었다. --- p.589

내일이면 모든 것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항상 더 밝게 다가오기 마련이니까. 새롭게 시작되는 다음 날의 빛 앞에서는 희망을 얻을 수 있는 법이니까.
--- p.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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