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비슷한 하루를 보낸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고…, 출근하기도 전에 벌써 퇴근하고 싶고…, 일요일 오후부터 슬슬 신경질이 올라오고…. 별일 없이 사는 게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다가도, 가끔 미칠 것같이 지겹고 불안하다. 이런 원인 모를 무력감과 불안함을 애써 외면하며 시간을 견디다 보면, 어느덧 또다시 1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가고 1년이 후딱 간다. 새해가 되면 밝고 희망차기보다는 ‘아, 해놓은 것도 없이 나이만 먹는구나.’ 하는 생각에 더 우울해진다. 하루하루를 정말 열심히, 엄청 바쁘게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피로감에 억울함(?)까지 겹쳐져서 속이 더 쓰리다.
왜 열심히 사는데 제대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들까? 왜 사는 게 즐겁지 않고, 아무런 보람이나 성취감도 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가버릴까?
나 역시 한 사람의 직업인이자 가장으로서 ‘어떻게 하면 인생을 의미 있고 즐겁게 살 수 있을까?’를 늘 고민했다. 그리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해결해야 할 질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다. 어떤 일이든 ‘왜 하는지’를 알면 스스로 간절히 원하게 되고, 간절히 원해서 하는 일은 힘들고 어려워도 성취감과 보람, 성장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떤 일에 흠뻑 빠져본 적 있는가? 몸은 비록 완전히 탈진했지만 마음만은 만족감과 기쁨으로 가득 차올랐던 기억은? ‘무엇을 위해 오늘을 살 것인가?’에 대답할 수 없다면, 그런 순간을 맛볼 수 없다. 그저 닳도록 벽시계를 쳐다보며 퇴근시간을, 하교시간을 기다릴 뿐이다. 오늘 꼭 이루고 싶은 것, 기대하는 바가 없으니 과녁 없이 화살을 쏘는 것처럼 허무하다. 밀도가 아니라 부피, 목표가 아니라 시간표만 남은 하루다.
---「프롤로그 _ 후회 없는 인생 사용법」중에서
‘무적방시無的放矢’라는 말이 있다. ‘과녁 없이 화살을 쏜다.’는 뜻이다. 과녁 없이 화살을 쏘면 그 화살은 어디로 갈까? 과녁이 없는데 화살을 쏘아본들 무슨 소용일까? 100m를 날아가든, 10m 앞에서 떨어지든, 그리고 오른쪽으로 가든, 왼쪽으로 가든, 아무 상관없다. 처음부터 맞추고자 하는 과녁이 없었으니까. 몇 번 하다 보면 재미도 없고 힘만 빠진다.
우리의 하루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이뤄내고자 하는 정확한 과녁이 없으면 아무리 바쁘게 뛰어다녀도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몰입할 수도 없고 열정을 발휘할 수도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무적방시’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그저 열심히 돈을 번다. 누군가에게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표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하루하루가 점점 시들해지고 돈 버는 재미마저 없어진다면 문제가 있다. 돈 버는 것이 진정으로 원하는 목적, 즉 ‘과녁’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루목표가 없으면 이것도 중요해 보이고 저것도 중요해 보여서, 스스로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벌인다. 그렇게 일이 많아지면 당연히 몸과 마음이 지친다. 시간과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물리적으로 달성이 불가능해진다.
---「바쁘게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것은 아니다」중에서
다들 빼곡한 계획표를 짤 때, 어떤 사람은 오늘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시간과 취침시간, 단 두 개의 칸만 그렸다. 시계 모양의 계획표가 텅텅 비어 있는 것이다. 만약 선생님이 봤다면, 장난치느냐고 꾸중할 만한 시간표다.
이 시간표의 주인공은 바로 발명왕 에디슨이다. 토머스 에디슨은 하루 종일 사무실에 틀어박혀 연구에만 매진하는 바람에 조수조차 그를 만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가 다른 일은 일절 하지 않은 채 연구에만 집중한 시간은 하루 평균 20시간. 에디슨은 자신의 성공비결로 ‘한 가지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능력’을 꼽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하루 동안 일도 하고 TV도 보고 책도 보는 등 다양한 일을 하지만 에디슨은 단 한 가지 목표를 분명히 세우고 그 일에만 매달렸다.
하루에 단 한 가지 일만 했다고 해서 그가 하루를 잘못 사용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에디슨처럼 자신이 꼭 이루고자 하는 한 가지 목표를 제대로 끝내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하루를 보내는 방법이다. 자신의 목표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시간을 어떻게 써도 좋다. 여기에서 핵심은 시간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것이다.
---「시간표 집착형 vs. 나침반 집중형」중에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대학에 들어갈 때 그 대학, 그 학과에 반드시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는가? 회사에 입사할 때 그 회사에 꼭 입사해서 하고 싶은 일이 분명했는가? 아마 그런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왜’에 대한 답이 명확하지 않으면 단기적인 목표를 이루어도 큰 의미가 없다. 성적에 맞춰서 들어간 대학생활이 그렇고, 조직에 기여하고자 하는 자신만의 가치가 없는 채로 어쩌다 임원으로 승진한 경우도 그렇다. 멋있어 보이니까 혹은 돈과 명예가 보장되니까 같은 1차원적인 이유는 상대적으로 낮은 성취감을 준다.
목표가 생겼다면 ‘왜’를 질문해보자. 내가 왜 그 목표를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가? 분명히 구체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약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면 그것은 나의 목표가 아니다.
나는 오늘 어떤 하루를 살 것인가? 오늘 나만의 삶의 방향이 있는가?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오늘의 가치는 달라진다. 목적이 명확하다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완벽한 하루가 될 수 있다. 뚜렷한 목표를 가진 사람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보내다가 하루 정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표가 없는 사람이 그저 쉬는 게 더 좋아서 휴식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반대로 아주 바쁘게 살았어도 완벽한 하루라고 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저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목적도 없이 바쁘게 사는 사람도 있다.
이유를 알아야 무엇이든 제대로 해낼 수 있다. 상사가 시킨 일도 그냥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이 일을 왜 하는지, 어떤 일과 연관이 있는지 질문하고 고민하는 사람은 그 일 이상의 일도 해낼 수 있다. 학생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왜를 질문하면서 공부하면 한 번 외우고 끝나버리는 학습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는 지식이 된다.
---「와이Why를 찾으면 왓What도 보인다」중에서
만약 여러분이 한국에서 쉽게 만나지 못하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초청강연에 참석한다고 가정해보자. 대부분은 세계적인 작가를 만난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참석할 것이다. 그런데 간혹 이런 사람도 있다. 그의 저서를 미리 읽어보고,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슈를 조사한다. 그리고 그 강연에 자신이 왜 참석해야 하는지, 무엇을 배워가고 싶은지에 대한 목적을 결정한다. 그런 다음 강의를 들으면서 자신의 관점과 비교해보고 궁금한 점을 직접 질문하기도 한다.
실제로 내가 아는 학생 중 하나가 《아웃라이어》의 저자인 말콤 글래드웰의 강연에 가기 전에 준비한 내용이다. 사전에 단단히 준비해간 만큼, 책 내용을 그대로 강연해서 아쉬웠다는 대중적인 반응과 달리 그 학생은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어디에서 감동을 받았는지 신나게 이야기했다. 그 학생의 하루는 말콤 글래드웰을 만난 이후로 달라졌다고 한다. ‘오늘 강의를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 대한 준비를 그렇게 하지 않았었더라면, 그 학생 역시 ‘그저 그런 강의였어.’ 하고 잊어버렸을 것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참여하는 사람과 사전에 무엇을 배울 것인지 목표를 확실하게 정한 사람이 있다면, 둘 중 누구에게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될까? 당연히 후자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짧은 시간이라도 그 안에서 무엇을 배울지 고민한 사람에게만 더 깊은 내용이 보인다.
지금 이 순간이 곧 나의 미래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무슨 일을 하든 무의미해지지 않도록 노력하라. 하루의 기회비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니까.
---「오늘이 올해를, 올해가 향후 10년을 결정한다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