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6년 03월 31일 |
---|---|
쪽수, 무게, 크기 | 252쪽 | 308g | 137*197*20mm |
ISBN13 | 9788934973768 |
ISBN10 | 8934973765 |
발행일 | 2016년 03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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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52쪽 | 308g | 137*197*20mm |
ISBN13 | 9788934973768 |
ISBN10 | 8934973765 |
《못생긴 여자》는 이탈리아의 소설로, 이탈리아에서는 신인들의 등용문과도 같은 이탈로 칼비노 상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들을 아주 좋아한다.) 작가인 미라아피아 벨라디아노는 1960년생이고 이것이 첫 번째 소설이다. (작가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일간지와 잡지에 글을 쓰며 칼럼니스트로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이 작가가 오십 살이 되어 쓴 첫 번째 소설의 주인공은 ‘못생긴 여자’이다.
“나는 못생겼다. 진짜로 못생겼다... 그렇다고 불구는 아니어서 남들이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아니다. 내 몸에 붙어 있어야
할 것은 다 붙어 있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영락없이 어딘가는 기준치보다 조금 더 짧거나 길다. 그것을 일일이 열거하는 건 의미도
없을뿐더러 부질없는 것이다. 하지만 자학이라도 저지르자는 심산으로 가끔은 거울 앞에 서서 내 몸을 구석구석 들여다본다..” (p.6)
레베카는 태어날 때부터 못생긴 아기였다. 그녀가 태어나자마자 레베카의 어머니가 우울증에 빠질 정도로 못생겼다. 의사였던 아버지는
레베카의 엄마만큼 상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어머니의 우울증으로 인하여 이후 레베카가 겪게 될 상실감을 치유해줄 정도는 아니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레베카는 자신의 외모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그 사실을 담담하게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받아들이며 성장했다.
“못생기게 태어나는 것은 불치병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간이 흐를수록 악화될 뿐이다... 못생긴 여자아이의 삶은
긴장의 연속이다. 외모가 주는 혐오감 외에 또 다른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언제나 조심스럽게 행동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p.59)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주변에 있던 몇몇 이들이 그녀를 도왔다. 집안일을 돌보는 마달레나는 어린 시절부터 레베카의 옆을 지켰다.
그녀가 학교에 갔을 때는 알베르니타 선생님이 있었고 전학생인 루칠라가 있었다.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레베카를 도왔던 것은 알리베르토 선생님이었고
그의 어머니인 데 릴리스 할머니는 레베카가 모르고 있던 몇 가지 사실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인생이란 세월이 흐르는 것도 무시하고 간직하기만 해야 하는 귀중품이 아니야. 삶은 우리 손안에 망가진 채로 되돌아오기 일쑤야.
그리고 그걸 고칠 수 있는 부속품이 항상 있는 것도 아니고. 가끔은 그냥 부서진 채로 가지고 있어야 해. 어쩌면 없어진 걸 같이 만들 수도
있겠지. 하지만 삶이란 우리 앞에 놓여 있고 우리 뒤에도, 위에도, 우리 안에도 있는 거야. 당신이 한쪽으로 물러서 있는다고 해서, 눈을
감는다고 해서, 주먹을 불끈 쥔다고 해서 삶을 멈출 수 있는 건 아니야.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 우리와 다시 시작해. 우리가 여기 있잖아.”
(p.197)
그녀의 어머니도 그리고 아버지도 소설의 끄트머리까지, 그녀가 나이가 드는 소설의 후반부까지도 그녀를 품지 않는다. 레베카가
들었어야 할 위의 문장은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의 어머니에게 한 말이다. 아버지는 레베카 대신 아내를 위로하였다. 그나마 레베카에게 위로가 된
것은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 정도이다. 그녀는 엄마가 죽은 이후 그녀의 일기장에서 ‘그 부드럽고 조그마한 다람쥐 다리로
그녀가 / 살며시 지나간다 / 하지만 내 침묵의 손길을 그녀는 느끼지 못한다’ 라는 문장을 발견한다. 레베카가 ‘사 년 이 개월 이십구 일’이
되던 날의 일기였다.
“... 미움이란 감정, 나한테는 익숙하지 않아. 미움은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들 거야. 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버진 그저 희미할 뿐이야. 음악에 비유하자면 너무 잔잔해서 사라지듯이 끝나는 음악인 셈이지.” (p.247)
어쩌면 이 소설의 장점은 어쩌면 그녀가 당했을 고통을 적나라하게 적어내지 않는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당했던 일은 실루엣처럼 불투명하게 묘사된다. 명문가였던 아버지 가문의 어두운 구석에 대한 설명도 흐릿하다. 그런데 이러한 모호함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억울할법한 어두움에 대응하는 레베카의 소극성이 오히려 레베카가 당하는 모욕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는 듯싶다.
“지난 몇 년 간 나는 ‘차별’이라는 말에서 두려움을 느껴왔다. 민족, 사회, 문화, 외모, 취향... 감히 누가 어느 한쪽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소설은 그 ‘두려움’에서 태어났다. 환영도 사랑도 못 받는 레베카는, 지금도 우리 안에 있다.”
책의 앞날개에 위와 같은 작가의 말이 있다. 소설을 읽으며 지난 주 강남역 인근에서 발생한 여성 살해 사건과 뒤이은 애도의
포스트 잇, 들을 떠올렸다. 혐오 범죄이냐 아니냐를 두고 벌어지는 불필요한 논쟁도 떠올랐다. 지금의 애도가 비단 이번 사건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면 말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뉘고, 지금 살고 있는 곳에 따라 강남과 강북으로 나누고(이것으로도 모자라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그 남쪽과 북쪽을 테남과 테북으로 나누나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일자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고, 내국인과 외국인을
구분하고자 하고, 여혐과 남혐이 수시로 대립하는 것이 우리 사회다. 언론은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지 않고, 그들은 분석과 조장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만 같다. 차별이 혐오를 낳고 혐오는 또 다른 차별을 낳을 것이다. 차별을 없애는 사회가 아니라 차별을 조장하는 사회,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세월호 사건이나 가습기 사태, 그리고 이번 살인 사건까지, 애도의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사회를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 Mariapia Veladiano / 윤병언 역 / 못생긴
여자 (La Vita Accanto) 비채 / 250쪽 / 2016 (2011)
4월 23일, 오늘은 셰익스피어 사망 45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 사흘 뒤는 탄생 452주년이 되고.. 내가 매우 마음에 들어하는, 셰익스피어의 주제는 appearance and reality, 즉 보여지는 것과 진실이다. 이 작품속의 화자는 '못생긴 여자는...'하면서 비하적으로 말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않기 위해, 아니 기분을 거슬리지않기 위해 자기만의 구역에 머문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조그만 바운더리에 사는 그녀가 보이기만 하면 상처를 준다. 제목도, 거의 대개의 장을 시작하는 문장도 '못생긴여자는...'하면서 비하적으로 시작하지만, 책장을 덮을때의 내 느낌은 '예쁜 사람들, 예쁜 이야기'란 것이었다. 특이하게도 외모가 매우 아름다웠던 등장인물들이 전해주는 느낌은 어글리하고 뒤돌아보기 싫었지만 (특히, 고모!), 평균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는 감성의 인물이나, 병에 걸린 나이든 인물이나, 살찌고 말이 많은 인물들의 인상은 사랑스러웠다 (물론, 세상에는 그 반대의 일도 있을 것이다. 선의로 세상을 행복하게 만든 이슈의 기사 주인공들은 그 마음씀씀이만큼, 또 그 예쁜 마음이 반영된 듯한 훈훈한 외모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결함을 가졌기에 오히려 타인에 대한 마음씀씀이가 다른 것일까.
레베카, 성서에 따르면 많은 남자들의 사랑을 받는 여인의 이름을 가진 그 소녀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다고 칭송받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거부당한다. 못생겼기 때문에. 유전을 두려워했던 어머니의 두려움을 실현했기 때문에. 진실을 말하지않은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강가의 오래된 빌라에 사는 소녀는, 그럼에도 가족을 잃고 그녀에 대한 사랑을 다짐한 마달레나, 예쁘고 뚱뚱하고 호기심강하고 질문많고 비밀을 간직못하는 소녀 루칠라, 변덕스러운 고모를 대신한 데 렐리스 선생 (감정적인 고모와 달리 매우 이성적인 설득이나 행동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특히 처음 만난날 서늘한 손으로 소녀의 손을 쥐었던 그 장면) 과 그의 어머니에 의해 하나씩 세상과 인생에 대한 접점을 만들어나간다. 피아노와 목소리를 통해.
외모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외모에 갇혀 인생을 낭비하는 인물을 보는 것은 안쓰럽고 답답하다. 결국 말했던 것을 실현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호소가 든 문장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아주 최근에 와서야 사는건 언제나 좋은 것만 가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머리로 아는것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속도 차이가 있다.
그 집착하는 것이 외모이든, 사랑이든, 믿음이든, 살아가면서 느낀건데 그 어떤 인생의 사건이 언제나 그 상태로 머무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나쁜 소식으로 왔다가 좋게 가기도 하고, 또 새로운 의미를 전달해주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내일 어떻게 다시 깨질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 순간마다 또 다른 순간을 기다릴 힘이 남아있길 바란다.
p.s:
언젠가 동료들끼리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중에 결혼해서 딸을 낳았는데 이쁘면 “됐어. 넌 공부할 필요 없어. 그냥 이쁘게 자라기만 하면 돼.” 반대로 못생겼으면 “연애 따위는 꿈도 꾸지 말고 그냥 공부만 해.” 이런 대화들이 오고 간 배경이 무엇인지는 워낙 오래 전 일이라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외모가 한 여성의 진로랄까, 경쟁력의 지표인양 설명되던 성격의 주제였던 것이다. 누구나 외모 콤플렉스가 있게 마련이고 그것이 평범한 외모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정말 못생겼다는 극단적인 설정이라면 그때부터는 당사자는 심각해질 수밖에. 여기 이 소녀 레베카는 스스로 못생겼다고 인정하고 들어간다.
단순히 못 생긴 게 아닌, 진짜로 못생겼다고 말이다. 얼마나 못생겼으면 자신의 외모는 인간이란 종에 대한 하나의 모욕이고 무엇보다도 여성에 대한 모욕이라고까지 말할까, “사내아이기만 했어도!”, “어쩌면 저렇게 못생겼을 수가, 내 딸이 아니고 네 딸이기에 망정이지.” 레베카의 외모를 둘러싼 주변의 박대는 줄을 잇는다. 심지어 유전이 아닐까란 생각도 해보는 레베카. 분명 아버지는 미남인데... 딸은 아버지를 닮게 마련이지. 그러고 보니 <화과자의 안>의 여주 안짱도 아버진 문제없었지 않나.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딸이 이렇다보니 엄마조차도 딸을 바라보는 시선이 공허하다 못해 불행한 출산으로 받아들이니 참 뭐라 말할 수조차 어려울 정도로 소녀가 행여 상처받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으로 조마조마하게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서두에 언급했던 일화처럼 외모라는 핸디캡에서 자유롭지 못한 레베카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주려 했던지 고모가 피아노를 쳐야할 이쁜 손이라며 그때부터 피아니스트로 만들려고 한다. 고모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레베카에게 살 길은 오직 피아노뿐이니 죽자 사자 파고들라고 했을 때 못생긴 딸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고생하다 죽은 엄마는 자신의 딸이 이런 천부적 재능을 지니고 있었음을 진즉 인정해주었더라면 서로 마음의 짐을 덜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신은 때때로 공평하기도 한 동시에 잔인하기까지 한 것처럼 보인다.
“못생긴 여자아이도 물론 꿈꿀 수 있다. 그러나 꿈에서 깨어나는 일은 매번 밑도 끝도 없는 추락이다. 그래서 그녀는 꿈꾸는 법도 머지않아 잊게 될 것이다.”라는 책 속의 말처럼 레베카는 노후에도 꿋꿋하게 잘 버텨내며 또 다른 행복을 성취했을지는 정말 모른다. 아마 현실에선 코미디 프로에서 여전히 못생기고 뚱뚱한 외모가 웃음의 소재가 되는가 하면 나 자신조차 신입 여직원을 채용할 때 외모에 더 배점을 주었던 기억도 추가로 난다. 결국 이 이야기는 그런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교훈이나 비판을 주려하는 의도 대신 어떻게든 자신만의 재능으로, 자신만의 소신으로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해나간다는 행군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불평한들 세상은 완전히 바뀌지 않으니 다른 살 길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였던가 보다. 그런 취지의 책들이 요즘 들어 부쩍 보이는 까닭도 판타지보단 현실이 더 가깝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