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6년 04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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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12쪽 | 380g | 133*200*30mm |
ISBN13 | 9788954640169 |
ISBN10 | 8954640168 |
발행일 | 2016년 04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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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12쪽 | 380g | 133*200*30mm |
ISBN13 | 9788954640169 |
ISBN10 | 8954640168 |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_007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 _033 뿌넝숴不能說 _063 거짓된 마음의 역사 _089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_119 남원고사南原古詞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 _179 이등박문을, 쏘지 못하다 _209 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 _235 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 _263 해설|김병익(문학평론가) 말해질 수 없는 삶을 위하여 _291 작가의 말 _309 |
아주 오래전 읽었던 소설집인데,
작가의 인장 같은 문장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던 소설이 몇 편 있었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뿌넝숴.
이 소설집에 실린 이 소설들을 다시 읽으면서
처음 이 소설들을을 읽었을 때의 그 전율이 되살아났다.
작가가 아무리 애를 써도 텍스트로 결코 전해질 수 없는
진실 너머의 그것을, 기어코 전하려고 노력하지만 끝끝내
이것이 가능하지 않음을 깨닫고 좌절하고야 마는, 그 뼈아픈 과정이
소설을 읽는 내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이 소설집 뒤로 많은 장편 소설과 소설집이 나왔지만
내게는 장편소설 <꾿빠이 이상>과 더불어 첫사랑 같은 소설집이다.
베스트셀러 작가 김연수 소설가의 단편소설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잡은 작품이다.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의 공통 테마는 진실이다. 소설은 진실을 탐구하고 말한다는 세간의 상식과 반대로 소설은 진실은 말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많은 작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수록작 <뿌넝숴>에서 중공군 병사가 겪은 전쟁 체험을 아무리 작가가 섬세하게 묘사해도 독자는 그의 몸에 새겨진 진실을 알 수 없다. 진실을 알기가 매우 어렵지만 진실은 탐구해야만 한다. 역사적 진실을 몸에 새긴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사라져간다. 이에 따라 역사적 진실도 소멸한다. 그런 현실이 안타깝니다.
등반 일지를 쓸 때, 그 지점을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그는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여자친구와의 일을 이해하기 위해 거듭해서 문장을 고쳐 썼다. 하지만 그가 결국 깨닫게 된 것은, 아무리 해도, 그러니까 자신의 기억을 아무리 '총동원해도' 문장으로 남길 수 없는 일들이 삶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김연수의 단편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는 두 개의 사랑이 존재한다. 그와 여자친구. 그와 나. 소설의 화자는 '나'이다. 나는 이렇게 썼다로 소설은 시작한다. 혜초가 쓴 『왕오천축국전』을 해석하고 각주를 단 나는 '그'가 기록했던 문장들을 읽어낸다. 이 소설에서 문장을 읽고 기록하는 행위는 중요하다. 자신을 향한 단 한 줄의 유서도 받지 못한 그는 자살한 여자친구를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다가 여자친구가 마지막으로 빌린 책을 찾아낸다. 여자친구는 『왕오천축국전』에 밑줄을 그어 놓았다. 그는 그 책을 잃어버렸다고 말하고 자신이 가진다. 그때부터 그는 여자친구가 마지막으로 읽은 그 책을 읽어낸다. 도서관에 앉아 여자친구의 삶을, 자신에게 한 줄의 유서도 남기지 않은 그녀의 마지막을 납득하기 위해 소설을 쓴다. 1986년 대한민국에서 죽음은 흔하고 널려 있었다.
여자친구가 남긴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부모님, 그리고 학우 여러분! 용기가 없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야만의 시대에 더 이상 회색인이나 방관자로 살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후회는 없어." 그는 유서의 문장을 받아들이기 위해 날이 밝아올 때까지 책을 읽고 소설을 쓴다. 죽음을 애도하기 전에 받아들이고 싶어 했던 그는 『왕오천축국전』의 해석과 각주를 쓴 '나'에게 자신이 쓴 소설을 부친다.
'나'는 그가 쓴 소설을 출판사에 넘겼다. 출판사에서는 괜찮은 소설이라면 그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는 소설을 출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출판사에서 만난 '나'와 '그'는 서로를 향한 감정을 내보인다. 여자친구를 이해하기 위해 쓴 소설은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으로 종결된다. 그는 낭가파르바트를 정복하기 위해 원정대에 합류한다. 그는 그곳에서도 기록을 멈추지 않는다. 여자친구가 읽고 '나'가 해석하고 각주를 단 『왕오천축국』은 그의 삶을 지배한다. 그는 완전한 기록으로도 남지 않은 여행서를 가지고 설산을 넘기 위해 떠난다. 탈락한 글자를 추측하고 비어있는 문장을 이어야 한다.
한 사람이 죽었다. 그 사람의 삶과 죽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온전하게 복원할 수 있을까. 8세기에 쓰인 여행기를 통해 혜초가 걸었던 길과 그 나라의 풍습들을 추측함으로써 지금의 불분명한 이유들을 '나'와 '그'는 파악하려고 한다. 여자친구가 쓴 유서의 탈락된 문장들은 복원이 가능한가. 그는 오직 그것만을 위해 설산을 넘고 기록한다.
김연수의 단편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는 두 개의 죽음이 존재한다. 그의 여자친구. 나의 그. 죽음을 받아들이고 남은 날들을 살고자 그들은 읽고 쓴다. 그에게는 많은 문장들이 있다. 문장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가 할 수 있는 건 쓰고 또 쓰는 것이었다. 그가 설산으로,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으로 넘어가 버리자 '나'역시 그를 이해하고자 글을 쓴다. 그가 남긴 기록으로 그의 삶과 이후를 추측한다. 그가 넘어가 버린 설산의 나라를 찾고자 한다.
그들은 읽고 쓰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삶을 추정할 수 있었을까. 완벽한 해석과 이해는 없다. 한 사람이 가진 삶의 총량을 예상할 수 없듯 누군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완벽할 수 없다. 해석과 이해의 작업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 자신의 한계를 깨달을 뿐이다. 그는 여자친구의 마지막 말, 후회는 없어를 해석할 수 없었다. '나'는 그의 마지막을 알 수 없었다. 죽음의 마지막을 이해하고 납득하려는 시도는 실패한다.
삶의 실패는 말할 것도 없고 죽음마저 해석을 실패한 문장들이 모이는 이곳은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만나는 세계의 끝, 고통을 넘고 삶의 고독을 버린 당신이 가닿은 절망이 사는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