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02년 03월 31일 |
---|---|
쪽수, 무게, 크기 | 298쪽 | 445g | 152*223*20mm |
ISBN13 | 9788936433642 |
ISBN10 | 8936433644 |
출간일 | 2002년 03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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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98쪽 | 445g | 152*223*20mm |
ISBN13 | 9788936433642 |
ISBN10 | 8936433644 |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가 하성란이『옆집 여자』 이후 2년여 만에 선보이는 세번째 작품집. 한층 탄탄해진 구성과 절제된 언어로 우리의 삶 도처에 잠복해 있는 비극을 냉정하게 그려내 독자들의 가슴을 뒤흔든다. 면밀하게 배치된 미스터리적 요소가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소설을 한층 흥미롭게 한다. |
작가의 말 1. 별 모양의 얼룩 2.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3. 파리 4. 밤의 밀렵 5. 오, 아버지 6. 기쁘다 구주 오셨네 7. 와이셔츠 8. 저 푸른 초원 위에 9. 고요한 밤 10. 새끼손가락 11. 개망초 해설/한기욱 |
이 책도 내가 고등학생 때 읽었던 단편집.
당시에는 도서실에서 빌려서 읽었는데 이번에 다시 생각이 나서 구매했다.
너무 늦게 구매했군요. 쏘리.
이 단편집에 나오는 소설들은 시적이다.
현실과 환상, 그 중간 어디쯤에서 글을 쓰는 것처럼 몽환적이다.
나는 분명히 어떤 이야기를 읽었는데 다 읽고 나면 남는 것은
사진 몇장처럼 남아있는 이미지다.
그래서 구미를 당기고, 그래서 친절하지 않으며, 그래서 개운한 맛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단편집을 오랫동안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은
내 머릿속에 몇컷으로 남아있는 그 이미지가 너무도 강렬하기 때문이다.
뭐 원래 소설은 서사로 쓰고 시는 이미지로 쓰는 거니까.
이미지로 소설을 쓰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시를 쓰다가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면-ㅅ-...
이렇게 쓰세요. 이미지로 소설쓰기도 가능합니다!
결론은... 이 단편집은 참 시적이라서 좋다.
이 책에는 무려 11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하나같이 저자의 모습처럼 단정하고 조용한 분위기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일상은 어항 속처럼 조용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카메라 핸들링이 심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어지럽다.
너무 차갑고 서늘하다.
유치원에서 캠프를 갔던 아이는 불에 타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뭉그러진 시체가 되고,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담은 오동나무 장이 그 딸 아이의 관이 될 뻔하기도 하고, 고요하고 평온해 보이는 시골 마을은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 조만간 결혼을 약속한 말끔한 교사 약혼자가 생일날 자신의 집에서 친구들과 같이 약혼녀를 윤간한다. 실직한 남편은 어느 날 집을 나가고,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린 여자애 때문에 주차장에 세워둔 차는 찌그러진다. 33년 동안 탄탄대로를 걷던 남편이 뜬금없이 목수가 되겠다고 은행을 그만두더니 몰상식하고 교양 없이 소음을 일삼는 윗집 사람들과 신경전을 벌이고 급기야 윗집 아이들의 유괴범으로 잡혀간다. 늦은 밤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택시를 탈취한 범죄자인 것 같다. 친구를 만나러 밤길을 나섰던 여자아이는 경주 시합을 하던 차에 치이는데 사고를 은폐하려는 당사자들에 의해 강에 수장된다.
그 곳이 어디건, 겉 모습이 얼마나 평온하건 상관 없이 늘 죽음의 기운과 분위기가 떠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나는 아무 잘못도 없이 살았는데.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자부하는데.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생겨날까?
누구나 결혼을 할 땐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고,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자기나 배우자를 닮은 사랑스런 아이가 태어나 잘 자라줄 거라 생각한다. 부모의 기쁨이 되어주고.
살면서 배우자와 이혼을 한다거나, 핸드캡을 가진 아이를 낳게 된다거나, 아이나 가족을 먼저 잃게 된다거나, 혹은 자신이 병이나 사고로 죽게 된다거나 그런 걸 미리 염두에 두고 사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은 항상 우리 주위를 안개처럼 떠돌고 있으면서, 언제든 우리에게 불시에 찾아온다.
그 때, 우린, 당황하게 된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러는 거야?
그런데 하성란은 전혀 분노하지 않는다.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그저 응시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담담하고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한없이 서늘한 블루의 이미지.
작가와 작품이 정확히 일치할 뿐더러, 표지 역시 이러한 작품의 분위기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 블루,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다.
그 마술 피리 소리를 따라 가면 안 될 것 같은데, 계속 따라 가게 된다. 너무 매력적이라서.
일상적인 소재들을 이야기로 엮어내는 힘이나, 비일상적인 소재들을 이야기로 엮어내는 힘이 어느 한쪽에 쳐짐이 없이 균일하다.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삶이 매우 사실적인 만큼(맞벌이를 하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결혼한 여자로서, 실직한 남편을 둔 일하는 여성으로서, 장애아를 둔 엄마로서), 인간으로서 겪는 상황들이나 아이로서 겪는 상황들 역시 매우 사실적이다.
하나의 관점이나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작가 자신의 외연을 넓힌 것이 마음에 든다.
이 작가가 이 작품집을 냈을 때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 정도였을 땐데 그래서일까? 지금의 내 나이 여성들이 느낄 수 있는 불안감이나 두려움, 여유 없는 일상이나 공허함 등도 공유할 수 있었다.
다만 재미난 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부부들의 경우 대개 아이가 없거나(안 낳는 것인지 못 낳는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이가 있더라도 장애아라는 것. 혹은 아주 평범한 아이인데 부모들은 맞벌이를 하기에 바빠 아이가 얼마나 예쁘게 자라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갖지 못하고 있거나.
이게 한국을 살아가는 30대의 자화상일까? 흔들리는 카메라로 보는 사물처럼 늘상 어지럽고 현기증 날 것 같은. 가정도 더 이상 지친 몸을 쉴 곳이 못 되고, 아이도 기쁨의 대상이 아닌 부담의 짐이 되어 버린.
그런데 이 숨막히게 인간을 짓누르는 현실을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게 바로 하성란이라는 작가다.
현실은 언젠가부터 괴기 영화나 공포 영화처럼 되어 버렸다. 그 일상을 사람들은 하루하루 '견디며' 산다.
어항 속의 물고기들은 과연 평온할까? 그 곳의 삶이 숨막히지 않을까?
'평범한 일상'이라고 불릴 수 있는, 조용하기는 하지만 결코 평온하지는 않은, 개개인의 삶에 주목하며, 그 삶의 공포와 괴기와 음산함과 외로움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 그게 바로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이다.
[덧붙임] 개인적으로는 「저 푸른 초원 위에」를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이나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편혜영의 「사육장 쪽으로」와 유사한 작품인데, 그 작품만큼이나 인상적이다.
기회가 되면 편혜영과 하성란의 작품들을 더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