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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까

: 중,고등학생을 위한 글쓰기 길잡이

[ 개정판 ]
이오덕 | 보리 | 2007년 08월 17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3 리뷰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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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07년 08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400g | 153*224*20mm
ISBN13 9788984284371
ISBN10 898428437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이오덕 선생님이 청소년과 중,고등학생에게 주는 글쓰기 길잡이 책.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수단으로서의 글쓰기가 아니라 청소년들이 자기를 찾고 자기 말을 찾고 저마다의 삶을 찾을 수있는 길이 되는 글쓰기를 일러준다. 여러 가지 갈래에 따른 글쓰기 방법, 글쓰기와 문학의 관계를 밝히고 학생들이 쓴 시와 시인들이 쓴 시의 문제점을 밝히고 있으며 우리말을 살려 쓰는 길도 가르쳐주고 있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머리말
중·고등학생, 청소년들에게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서사문 1 ▶ 살아 있는 말은 어디서 오는가?
일하는 삶에서 얻은 글
부모님이 살아오신 이야기

서사문 2 ▶ 가치가 있는 글과 가치가 없는 글
먹는 이야기를 쓴 글
취업할 학생이 쓴 글

감상문 ▶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가?
이웃 사람들의 삶을 보는 눈
쓸 수 있는 글말, 써서는 안 되는 글말

일기 ▶ 그날그날의 기록
책으로만 익히는 말의 함정
책과 글말의 함정

설명문, 편지 ▶ 삶에 필요한 글쓰기
다듬어야 할 말 세 가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논설문, 감상문 ▶ 논리와 글쓰기
글을 머리로 만들지 말고
말을 책에서 배우지 말고

글쓰기와 문학
학생들이 쓰는 소설
어느 고등학생들이 쓴 글

2부 시와 우리 말

학생들의 시, 무엇이 문제인가?

시인들이 시, 무엇이 문제인가?
시란 무엇인가?
시와 삶
오늘날의 시

시골말과 어린이 말에 대하여
시가 되는 말
시에 나타난 시골말
시에 나타난 어린이 말

3부 우리 말 살려 쓰기

우리 말을 잡아먹는 일본말
우리 몸에 주사해 놓은 마약
암세포로 번져 가는 일본말법
우리 말을 죽이는 독약

신문이 퍼뜨리는 병든 말
겉치레 말과 행동
쌀 개방과 말 개방
신문기사의 제목
외세를 따라가는 말들의 잔치

알 수 없는 글을 어떻게 할까?
논술 문제, 어떻게 보고 어떻게 풀까?
‘우리 말’과 ‘국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글
차표에 적힌 글
‘우리 집’과 ‘나의 집’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살아 있는 말은 방 안에 앉아서 생각만 해서는 나올 수 없고, 책을 읽어서 많은 지식을 얻었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책만 읽고 몸으로 겪은 일이 없으면 도리어 죽은 말만 늘어놓게 된다. 살아 있는 말은 삶 속에서만 나올 수 있다.

글은 자기가 겪은 일을 정직하게 쓰는 것이 기본이라 할 수 있지만, 그렇게 정직하게 쓰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고, 다시 또 남들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가치가 있는 글을 쓰려면 가치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하고, 가치가 있는 생각을 해야 한다. 글쓰기가 어렵다면 바로 이것이 어려운 것이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다른 글쓰기 참고서와 이 책은 어떻게 다른가?
요즈음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논술 글쓰기 바람에 편승하여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 책은 이런 논술 교육 바람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글쓰기 공부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자기를 찾고 자기 말을 찾고 저마다의 삶을 찾을 수 있는 길이 되는 글쓰기를 가르쳐 준다.

이오덕 선생님의 다른 글쓰기 책과는 어떻게 다른가?
널리 알려졌듯이 이오덕 선생님은 아이들을 살리는 글쓰기 교육을 위해 평생을 애써오신 분이다. 교사와 학부모를 위한 글쓰기 지도 안내서인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와 더불어 초등 학생을 위한 ‘이오덕 글쓰기 교실’ 다섯 권을 비롯하여 많은 책을 펴내셨지만 중?고등 학생들을 위한 글쓰기 길잡이 책은 이것이 처음이다.

이 책의 내용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갈래별로 중·고등 학생들의 글을 보기로 글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2부 시와 우리 말…학생들과 시인들의 시의 문제점을 밝히면서 시를 삶의 관점에서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틔워 준다.
3부 우리말 살려 쓰기…일상 생활 속에서 우리말을 잘못 쓰는 여러 사례를 들어 우리말을 바로 쓰는 길을 보여준다.

이 책은 어떤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까?
중·고등 학생들을 위한 글쓰기 길잡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누구보다도 중?고등 학생들이 읽어 그 동안 잘못된 국어 교육으로 병든 우리 말과 글을 쓰는 버릇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글쓴이의 간절한 바람을 담고 있다. 논술 글쓰기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글쓰기의 올바른 방법과 자세를 배울 수 있는 글도 들어 있다.

회원리뷰 (4건) 리뷰 총점9.3

혜택 및 유의사항?
무엇을 어떻게 쓸까 - 우리말을 살리는 글쓰기 교재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최*영 | 2015.06.0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제가 인터넷에서 글쓰기 교재로 추천받은 책이 <문장강화>와 <무엇을 어떻게 쓸까>입니다.   * 가치가 있는 글을 쓰는 법 내용의 진정성이 글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머리를 굴려서 쓴 글이 아닌 나의 경험이 들어 있는 글이 살아있는 글이며, 살아 있는 글이 가치 있는 글입니다.   * 형식도 중요하다 글은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도 중요합니다. 우리말의 독특한;
리뷰제목

제가 인터넷에서 글쓰기 교재로 추천받은 책이

<문장강화>와 <무엇을 어떻게 쓸까>입니다.

 

* 가치가 있는 글을 쓰는 법

내용의 진정성이 글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머리를 굴려서 쓴 글이 아닌 나의 경험이 들어 있는 글이 살아있는 글이며,

살아 있는 글이 가치 있는 글입니다.

 

* 형식도 중요하다

글은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도 중요합니다.

우리말의 독특한 특성을 살리면 더욱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일본어투와 외래어의 남용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훼손시켰습니다.

고치고 다듬어야할 저자의 조언들은 글을 정확하고 풍부하게 만들어줍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글쓰기와 우리말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1독을 권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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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을 쓰자!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지*고 | 2014.05.30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박웅현의『책은 도끼다』의 남은 영향('여파'의 순화어, '영향'이라는 단어도 한자어던데 '영향'의 순화어는 무엇일까?)은 어디까지일까?『책은 도끼다』에서 이오덕의『나도 쓸모 있을걸』이 소개되었는데, 꼭 읽어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만 하다가 시간이 지나고 있었는데, 도서관에서 '이오덕'이라는 세 글자가 눈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글쓰기 책이라서 더 생각하고 말 것 없이;
리뷰제목

박웅현의『책은 도끼다』의 남은 영향('여파'의 순화어, '영향'이라는 단어도 한자어던데 '영향'의 순화어는 무엇일까?)은 어디까지일까?『책은 도끼다』에서 이오덕의『나도 쓸모 있을걸』이 소개되었는데, 꼭 읽어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만 하다가 시간이 지나고 있었는데, 도서관에서 '이오덕'이라는 세 글자가 눈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글쓰기 책이라서 더 생각하고 말 것 없이 집어 들었다. 그렇게『무엇을 어떻게 쓸까』를 읽게 되었다.

 

글쓰기 책이라서 속으로 글쓰기 공부 좀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한 마디로 무엇을 얻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다 읽고 나서, 매우 크고 대단한 것을 얻었다. 비록 내가 처음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부끄러움 다음에 책임감을 얻었다. 글쓰기 이전에 우리 말, 우리 마음이 앞서야 한다는 생각을 얻었다.

 

말 하나 바로잡는 것이 단지 말버릇 하나 고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죽어 가는 우리 겨례의 마음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p. 119

 

'ㅡ을 통해서', '비하여', 'ㅡ에도 불구하고', 'ㅡ화된다', 'ㅡ적', '역할', '승부', '그녀', 'ㅡ었ㅡ' 일본 말법이었다니.. 이제라도 알게 됐으니, 쓰지 말아야지, 라는 다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된다. 한자어, 외래어, 일본 말법이 얼마나 많은가. 오늘 아침 신문 보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진짜 많았다! 상식도 상식이지만, 어휘를 늘리고자 신문을 읽기 시작한 것인데, 나쁜 말만 늘리는 꼴이었다니.. 신문 기자들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한다!

 

무슨 글을 쓰든지 글을 쓸 때는 언제나 그 글이 읽는 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글이 사회에서 가지는 가치란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쓰는 글은 어른들이 쓰는 글과 같은 수준의 글을 쓰기 위한 연습으로 쓰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의 글은 어른들이 흉내 내어 쓸 수가 없는, 그 자체로 훌륭한 가치가 있고 생명이 있는 것이다. 마치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목숨과 삶이 어른들의 그것과 똑같이 소중하듯이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써야 살아 있는 글을 쓸 수 있다.

                                                                                                        -p. 140

 

글쓴이는 "가치가 있는 글을 쓰려면 가치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하고, 가치가 있는 생각을 해야 한다.", 라고 말했다. 그래서 글쓰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가뜩이나 글쓰기가 어려웠는데,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어려워도, 글쓰기가 꿈인데, 피할 수는 없지. 지금부터라도 '가치'를 마음속에 두고 살아야겠다. 더불어 우리 말을 사랑하면서..

우리 말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전하고 떠난 이오덕 선생에게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우리 말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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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말은 삶에서 태어난다 (무엇을 어떻게 쓸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숲*래 | 2013.10.25 | 추천1 | 댓글2 리뷰제목
이오덕을 읽는다 3   모든 말은 삶에서 태어난다― 무엇을 어떻게 쓸까 이오덕 글 보리 펴냄, 1995.9.30.   ※ 책풀이 ※중·고등학교 다니는 푸름이들이 글을 즐겁게 쓰면서 푸른 마음 살찌우는 길을 밝히도록 돕는 이야기를 담은 《무엇을 어떻게 쓸까》는 글 한 줄을 겉치레 아닌 삶짓기로 쓸 때에 아름답다고 말한다. 남한테 보여주거나 자랑하려고 쓰는 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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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을 읽는다 3

 


모든 말은 삶에서 태어난다
― 무엇을 어떻게 쓸까
 이오덕 글
 보리 펴냄, 1995.9.30.

 


※ 책풀이 ※
중·고등학교 다니는 푸름이들이 글을 즐겁게 쓰면서 푸른 마음 살찌우는 길을 밝히도록 돕는 이야기를 담은 《무엇을 어떻게 쓸까》는 글 한 줄을 겉치레 아닌 삶짓기로 쓸 때에 아름답다고 말한다. 남한테 보여주거나 자랑하려고 쓰는 글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밝히고 즐기려는 꿈을 키우면서 쓰는 글이라고 말한다. 어른 문학이나 어른 사회에 휘둘리지 말고, 푸름이 스스로 가장 고운 사랑을 키워 글에 담자고 말한다.


..


  하늘빛이 예쁩니다. 아침에는 아침대로 하늘빛이 예쁘고, 저녁에는 저녁대로 하늘빛이 예쁩니다. 새벽과 밤에는 새벽하늘과 밤하늘이 새삼스럽게 예쁩니다. 예쁜 하늘빛은 둘레에 거치적거리는 것들 없을 적에 한결 예쁩니다. 이를테면, 전깃줄이나 전등이 없어야 더 예뻐요. 나무가 우거지거나 멧자락 넘실거린대서 하늘빛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높다란 아파트나 건물은 하늘빛을 가립니다. 비행기도 하늘빛을 가립니다. 커다란 풍선과 걸개천도 하늘빛을 가려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늘을 보며 살아야 합니다. 하늘을 보며 눈을 밝히고, 하늘을 마주하며 숨을 쉽니다. 하늘을 이루고 하늘을 흐르는 바람을 마셔야 비로소 사람들 목숨을 이어요. 하늘숨인 바람이 없고서야 사람은 살아가지 못합니다. 다른 짐승도, 풀과 나무도, 하늘숨인 바람이 없다면 모두 죽습니다.


  곧, 어떠한 목숨이든 하늘바람을 먹으며 삶을 잇습니다. 하늘바람을 먹으며 삶을 새롭게 짓습니다. 하루하루 새롭게 일구는 삶이요, 날마다 새롭게 북돋우는 삶입니다.


.. 자기가 실제로 겪었던 일을 자기 말로 하나의 이야기처럼 적었으니 재미있게 읽히지 않을 수 없다 … 마음이 착하지 않고는 이렇게 살 수 없고 이런 글을 쓸 수 없다. 이런 착한 심성은 가정에서 부모들이 기르는 것이다. 아마도 이 학생의 부모님은 일하기를 즐기면서 살아가시는 분들이라 여겨진다. 글은 이렇게 해서 써야 살아 있는 글이 된다. 보고 듣고 일한 것, 실제로 몸으로 겪은 삶 속에서 나와야 생명이 있는 글이 된다. 방안에 앉아서 책만 보고 생각만 해서는 절대로 살아 있는 글을 쓸 수 없다. 학생이고 소설가고 시인이고 다 그렇다 … 삶을 정직하게 쓰면서 스스로 삶을 키워가야 한다. 그래야 좋은 글이 씌어진다 … 글이란 무엇이든지 보기 좋은 것, 듣기 좋은 것을 써야 버젓한 글이 된다고 알고 있다면 글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 어떤 말이든지 생활 속에서 익혀야 비로소 제것이 되는 것이다 ..  (12, 14, 15, 65쪽)


  하늘을 품에 안으면 하늘마음 됩니다. 바다를 품에 안으면 바다마음 됩니다. 별을 품에 안아 보셔요. 달과 해를 품에 안아 보셔요. 우리는 누구나 별마음과 달마음과 해마음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옆지기나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사랑마음 되고, 한솥밭 먹는 이들과 꿈을 키우는 동안 꿈마음 됩니다.


  풀 한 포기 뜯으며 풀마음 됩니다. 나무 한 그루 아끼면서 나무마음 됩니다. 우리는 저마다 어떤 마음이 될 때에 즐거우면서 아름다울까요. 우리는 어린 나날부터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 삶을 짓는가요. 내 어버이는 나한테 어떤 마음 되도록 숨결을 물려주었을까요. 나는 내 아이한테 어떤 마음 되라는 뜻을 물려줄까요.


  우리들은 하늘마음 될 수 있듯이, 전쟁마음이나 돈마음 될 수 있습니다. 바다마음 될 수 있지만, 권력마음이나 학벌마음 될 수 있어요. 나무마음뿐 아니라 농약마음이나 비료마음 될 수 있습니다. 꽃마음이 될 수 있으나, 자동차마음이나 아파트마음 될 수 있어요.


  어느 길로 나아가고 싶은지 생각할 노릇이에요. 어느 길로 접어들 적에 스스로 즐겁다고 느끼는지 살필 노릇이에요.


  무엇을 바라보는가요. 무엇을 느끼는가요. 무엇을 생각하는가요. 바라보는 대로 걸어가고, 바라보는 대로 이룹니다. 느끼는 대로 살아가고, 느끼는 대로 사랑합니다. 생각하는 대로 일을 하고, 생각하는 대로 놀이를 찾습니다.


  언제나 사랑을 바라보는 사람은 언제나 사랑을 찾습니다. 늘 활짝 웃는 기쁨 누리려는 사람은 아무리 고되거나 벅찬 때를 마주하더라도 늘 활짝 웃으며 기쁨늘 누립니다. 삶이 생각을 짓기도 하지만, 생각이 삶을 짓기도 합니다. 삶이 오늘 내 모습을 빚기도 하지만, 오늘 내 마음이 그대로 삶으로 드러나곤 합니다.


.. 우리가 보통으로 쓰는 말이라도 좀더 깨끗한 우리 말이 있으면, 우리 말을 살려서 쓰도록 하는 것이 좋다. 가령 ‘생활’이란 말도 때에 따라서 쓸 수도 있지만 ‘살아간다’고 해도 될 자리에 ‘생활한다’고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 중고등학생의 글은 시인이나 수필가나 소설가들이 쓰는 문학작품의 흉내를 글감과 제목에서부터 내려고 하다 보니 솔직한 자기 이야기,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잘 안 나온다 … 남들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가치가 있는 글을 쓰려면 가치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하고, 가치가 있는 생각을 해야 한다 … 몸으로 겪은 것을 그대로 잘 생각해 내어서 쓰면 꾸며낸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고 감동을 준다 … 어른들이 쓰는 시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어린이들이 알 수 있는 말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  (24, 30, 33, 39, 178쪽)


  풀벌레 노랫소리 즐기는 사람은 고속도로를 시외버스 타고 달리더라도, 이렇게 시끄럽고 복닥거리는 한복판에서까지 풀섶 풀벌레 노랫소리를 느낍니다. 나비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땅밑으로 깊이 파고든 지하철을 타고 움직이더라도, 이렇게 깜깜하고 햇볕 한 줌 없는 데에서조차 꽃송이 따라 나풀거리는 나비 날갯짓을 느낍니다.


  곁에 있어도 우리 아이요, 먼발치에 있어도 우리 아이입니다. 옆에 있어도 사랑이고, 멀리 있어도 사랑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리에 있어야 그 모습이지 않아요. 눈을 감아도 늘 그 모습입니다.


  삶이란 빛입니다. 하늘빛이고 물빛이며 흙빛이요 햇빛입니다. 빛이란 사랑입니다. 하늘사랑이고 물사랑이며 흙사랑이요 해사랑입니다. 사랑이란 이야기입니다. 하늘과 물과 흙과 해를 누리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바로 사랑입니다. 이야기란 삶이지요. 하늘을 누리고 물을 마시며 흙을 밟고 해를 어루만지는 삶이 고스란히 이야기입니다.


  나랏님은 훈민정음을 만들고 뭐를 만들며 무엇무엇 만들었습니다. 나랏님 곁에 있던 지식인과 학자는 이것저것 쓰고 만들어 남겼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문학이나 역사라는 이름을 붙여 나랏님과 지식인과 학자가 남긴 몇 가지를 배우고는, 시험문제로 풉니다.

  그런데, 오늘날 학교에서는 먼먼 옛날부터 모든 시골사람이 스스로 짓고 누리던 노래와 놀이를 배우지 않고 가르치지 못합니다. 모내기를 가르치는 학교는 없습니다. 모내기를 하며 부르던 노래를 배울 수 있는 학교는 없습니다. 나물캐기를 가르치는 학교는 없습니다. 나물을 캐며 부르던 노래를 배울 만한 학교는 없습니다.


  방아찧기나 절구질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나요? 아이 낳기와 아이 돌보기를 가르치는 학교가 있나요? 기저귀천을 어떻게 끊고 어떻게 빨래하며 어떻게 개는가를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있나요? 아기한테 젖 물리는 매무새를 가르치는 학교란 없고, 젖떼기밥을 어떻게 마련해서 먹이는가를 배울 만한 학교란 없습니다.


  오늘날 학교 어디에서도 삶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학교 어디에서도 삶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삶이 없고 사랑이 없으며 사람이 없는 오늘날 학교입니다. 대학입시에도 삶과 사랑과 사람이 없어요. 졸업장에도 논문에도 교과서에도 삶과 사랑과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지식과 시험문제만 있습니다.


.. 글을 살리기 위해 자기를 속여서는 안 된다 … 한글학자들의 잘못은 ‘말’을 떠난 ‘글’의 질서에 매달리고, 그 질서 속에 빠져버린 데 있었다. 말을 떠난 글의 질서는 남의 것이다. 중국 것이고, 일본 것이고, 미국 것이고 서양 것이다 … “아무리 교과서가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문학작품, 더구나 시를 쓰는 사람은 살아 있는 우리 말을 써야지요. 교과서고 사전이고 그밖에 어떤 책보다도 위에 있어야 하는 것이 백성들이 쓰는 살아 있는 말 아닌가요?” 내가 이렇게 말했지만 그 시인은 시원스럽게 찬성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 ‘유식한 말’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말에서만은 ‘유식’한 것이 사실은 무식한 것이다 … 글은 몸으로 부딪힌 일을 쓰고 가슴에 울려온 느낌과 생각을 쓰는 것이지, 머리로 써서는 안 된다 … 우리가 하고 있는 학교의 교육이 ‘국어 교육’으로는 되어 있어도 ‘우리 말 교육’으로는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국어 교육’과 ‘우리 말 교육’은 어떻게 다른가? ‘국어 교육’은 한자말과 한자말로 된 글을 가르치는 교육이다. ‘우리 말 교육’은 우리 말과 우리 말로 된 글을 가르치는 교육이다 ..  (35, 57, 66, 74, 98, 216쪽)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칩니다. ‘우리 말’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한국말’이든 ‘겨레말’이든 가르치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학교에서는 지식과 시험문제만 가르칠 뿐, 삶과 사랑과 사람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풀’과 ‘나무’라는 낱말을 누가 지었을까요? ‘말’이라는 낱말을 누가 지었을까요? 임금님이 지었을까요, 학자가 지었을까요? 모두 아닙니다. ‘풀’도 ‘말’도 시골사람이 지은 낱말입니다. ‘짓다’라는 낱말도 시골사람이 지었어요. ‘사람’이라는 낱말도, ‘살다(삶)’와 ‘사랑’이라는 낱말도, ‘시골’이라는 낱말도 모조리 시골사람이 지었어요.


  모든 풀이름을 시골사람이 지었습니다. 왜? 왜 지었을까요? 시골사람은 늘 풀을 먹거든요. 풀에 둘러싸여 살거든요. 그러니, 풀을 잘 알밖에 없어요. 아니, 풀을 잘 알아야지요. 풀밭이나 풀숲에서 보금자리를 일구는 시골사람이니, 풀을 하나하나 알아차립니다. 다 다른 풀을 하나하나 알아차리는 동안 다 다른 풀에 하나씩 이름을 붙입니다. 골골샅샅 시골마을마다 다 다르게 이름을 붙이지만, 재미있게도 모두 엇비슷해요. 조금씩 말투와 말씨가 다르지만 고갱이는 똑같습니다. 텔리비전이나 라디오나 인터넷이나 전화조차 없지만, 함경도와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풀 한 포기한테 붙이는 이름 고갱이는 똑같아요.


  풀이름뿐 아니라 나무이름에서도, 물고기이름에서도, 벌레이름에서도, 새이름에서도, 짐승이름에서도, 모두 살짝살짝 말투와 말씨가 다르더라도, 서로서로 이내 알아차립니다. 무엇을 가리키는 ‘다르게 가리키는 이름’인가 하고 깨달아요.


  왜 시골사람이 말을 지었을까요? 참 마땅한 소리입니다만, 시골사람은 풀과 나무를 다루면서 살아갑니다. 풀과 나무와 돌과 흙으로 집을 짓습니다. 나무를 땔감으로 마련해서 불을 지핍니다. 흙을 일구고, 흙을 만집니다. 냇물이나 바다에서 물고기를 낚습니다. 풀벌레를 늘 바라봅니다. 온갖 들짐승을 만납니다. 수많은 새하고 만날 뿐 아니라, 새들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이렇게 모든 숨결하고 이웃이요 벗으로 지내는 시골사람이니, 이웃이요 벗으로 지내는 모든 숨결들한테 이름을 붙여 주지요. 너는 달팽이라고, 너는 왜가리라고, 너는 방울벌레라고, 너는 쑥이라고, 너는 참나무라고, 너는 꽃마리라고, 하나하나 사랑스러운 눈길과 살가운 마음으로 이름을 붙입니다. 그리고, 시골사람은 스스로 ‘사람’이네 하고 이름을 붙여요.


.. ‘말을 창조하면서 쓴다’고 하면, 신기한 말을 머리로 궁리해서 만들어 낸다는 말이 아니다. 자기 말, 어렸을 때부터 배워서 잘 알고 있는 우리 말을 살려서 써야 말을 창조하는 것이 된다 … 글의 내용이 절실한 이야기로 꽉 차 있으면 허튼 말이 없고 겉치레 글 꾸미기도 없다. 하고 싶은 말이 없으니까 뭔가 있는 것처럼 쓰려고 하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남의 것 흉내나 내고 말재주를 부리게 되고, 이래서 깨끗한 우리 말 대신에 어려운 한자말이나 유식하게 보이는 남의 나라 말과 말법을 쓰는 것이다 … 한자말을 쓰고 싶어하니 한문글자를 써야 한다고 우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렇게 한문글자와 한자말을 쓰고 싶어하는 마음이 바로 외국숭배사상이다 … 말 하나 바로잡는 것이 단지 말버릇 하나 고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죽어 가는 우리 겨레의 마음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중고등학생 때 우리 말을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아주 평생을 괴상한 병신 같은 말로 살아가게 되고, 이래서 우리 말은 죽어버리는 것이다 ..  (88, 89, 105, 107쪽)


  ‘우리 말’이란 바로 삶입니다. 살아가는 결대로 쓰는 말이 바로 ‘우리 말’입니다. 한국말이자 겨레말인 ‘우리 말’은 우리한테 우리 말인데, 이웃나라에서는 이웃 이녁대로 ‘우리 말’이 다를 테지요. 왜냐하면, 일본과 중국은 서로 삶이 달라요. 서로 삶이 다르니 말이 다릅니다.


  서로 삶이 다르기에 집이 다르고 옷과 밥이 다릅니다. 날씨가 다르고 철이 다르니 집과 옷과 밥이 다를밖에 없습니다. 물과 바람과 흙이 다르니 집과 옷과 밥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물과 바람과 흙이 다른 결에 따라 “말이 서로 다른 나라로 살아갑”니다.


  한국사람이 중국사람처럼 말할 까닭 없어요. 중국사람이 한국사람처럼 말할 까닭 없어요. 한국사람은 한국말 하면 되지, 중국말이나 한자말 쓸 까닭 없습니다. 일본사람은 일본말 하면 넉넉하지, 미국말이나 영국말 쓸 까닭 없지요.


  그런데, 오늘날 어느 나라나 영어(미국말이나 영국말)를 참 많이 써요. 왜 그럴까요? 오늘날은 미국이 지구별에 크게 힘을 뻗칠 뿐 아니라, 비행기로 쉬 오가니까, 또 미국 사회와 문화가 다른 나라로 널리 파고들었으니까, 저절로 영어를 많이 씁니다. 자연스러운 결은 아니에요. 문화사대주의나 식민지주의라 할 만한데, 오늘날 지구별 여러 나라는 스스로 제 삶을 갈고닦아 제 사랑을 누리기보다는, 물질문명을 더 받아들이거나 뽐내어 경제성장을 이루려고 용을 씁니다. 이러다 보니 저절로 영어를 많이 쓰고 말아요. 안 쓸 수 없어요. 영어를 쓰는 미국과 영국(유럽) 사회는 경제성장과 물질문명을 앞세워요. 그러니, 경제성장과 물질문명을 받아들이려 하는 나라는 중국이건 일본이건 한국이건 영어를 자꾸 가르치거나 배우거나 쓰려고 용을 씁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셔요. 시골에서 조용히 흙을 만지면서 숲속에서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누리는 사람들이 어떤 말을 쓰는지 생각해 보셔요. 한국사람이라면 한국말만 씁니다. 일본사람이라면 일본말만 씁니다. 그렇겠지요? 제아무리 한국과 일본에 경제성장과 물질문명이 눈부시게 들어왔다 하더라도, 손전화 안 쓰고 텔레비전 안 보고 자동차 안 타며 전기조차 안 쓴다 하면, 이렇게 시골 두멧집에서 지내는 이들은 ‘먼먼 옛날부터 시골에서 이어온 수수하고 투박한 시골말’을 씁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똑같습니다. 시골사람은 영어를 안 써요. 시골사람은 한자말도 안 써요.


  학교를 오래 다닌 사람이 한자말도 쓰고 영어도 씁니다. 학자와 지식인이 쓴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한자말과 영어를 즐겨씁니다. 텔레비전 많이 본 여느 사람들 말씨에 한자말이나 영어가 저절로 녹아듭니다.


.. 과연 대학 진학만이 학생들의 갈 길인가? 대학 진학이 그런 끔찍한 비극을 겪고 목숨까지도 걸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길인가? 인생의 황금기에 온갖 잡동사니를 암기하는 일로 시달리고, 벗들을 죄다 적으로 만들고, 그래도 안 되어 더러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런 살벌한 경쟁에 이기고 살아남아도 대개는 몸과 마음이 다 병들어 있는 이 엄연한 사실 앞에서, 그래도 여전히 대학이요 대학만이 사람이 가야 할 단 하나 최상의 길인가 … 잘못된 교육의 결과는 다시 또 더 잘못된 교육의 씨를 뿌리고, 이래서 우리 아이들의 불행은 끝없이 되풀이되고, 역사의 비극은 끊어질 줄 모른다 … 글을 어렵게 쓰는 것이 쉽고, 쉽게 쓰기가 도리어 어렵다. 이것이 거꾸로 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제 우리는 말을 책에서 배우지 말고 삶에서 배워야 하고, 유식한 사람들에게 배울 것이 아니라 무식한 사람들에게, 저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배워야 한다. 말이 말로 되어야 글도 되는 것이니까 … 고향 이야기를 하자니 고향 말, 곧 우리 말로 쓰지 않을 수 없다 ..  (95, 114, 155쪽)


  시골살이하고 멀어질수록 ‘우리 말’하고 멀어집니다. 살림집이 시골에 있대서 시골말을 쓰지 않아요. 시골에서 일하거나 살아가더라도 텔레비전을 보고, 지식인들이 쓴 책을 읽으며, 학교를 오래 다닌 사람들은, 누구나 똑같이 한자말과 영어를 즐겨씁니다. 도시에서 살더라도 학교를 안 다니거나 조금 다닌 사람들은, 지식인들이 쓴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안 보는 사람들은, 먼먼 옛날부터 이어온 수수하고 투박한 시골말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삶에 따라 말이 다릅니다. 삶에 따라 스스로 말을 짓습니다. 도시에서 물질문명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사람은 새로운 물건을 만나면 한자말이나 영어로 새 이름을 붙이려 합니다. 시골에서 시골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은 새로운 물건을 마주하면 오랜 겨레말(우리 말)로 이름을 붙이려 합니다.


  참말 시골에서 시골스레 살아가는 어느 할머님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데, 이분이 택시를 처음 보고는 “상투 달린 것”이라고 말씀했다고 해요. 스스로 살아가는 대로 이름을 붙입니다. 우리 집 여섯 살 아이는 나비를 아주 좋아합니다. 언젠가 ‘수국’이라는 꽃을 처음 보고는 여섯 살 아이는 곧바로 “어, 나비꽃이네?” 하고 말했습니다. 수국에 달린 꽃잎이 마치 나비 날개 모양과 같이 생겼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비를 좋아하는 아이 눈으로 수국은 ‘수국’ 아닌 ‘나비꽃’입니다. 왜냐하면, 이 아이한테는 아이 삶대로 모든 것을 바라보니까요.


.. ‘대지’는 우리 말이 아니다. 만약에 ‘땅’이라 쓰면 뭔가 보잘것없는 말, 빈약해 보이는 말 같고 ‘대지’라 하면 그럴싸해 보이고 시가 될 것 같은 말로 느낀다면, 그런 사람은 절대로 좋은 시를 쓸 수 없다는 것을 잘라 말하고 싶다 … 나는 벌써 이런 정신 상태를 우리 겨레가 가지고 있는 무더기 정신병이라 하여, 우리 말을 버리고 한자말·일본말·서양말을 쓰고 싶어 하는 고약한 버릇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란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 주고 높여 주는 것인데, 이런 병든 마음을 보여주고 있으니 이 글을 어찌 시라 하겠는가 … 바윗돌 위에서나 콘크리트 바닥에서, 또는 플라스틱 상자 속에서는 씨앗이 싹터 날 도리가 없다. 잡초가 나 있더라도 적어도 흙이 있고 햇빛이 쬐는 땅이라야 씨앗이 싹틀 수 있다. 시라는 씨앗도 삶이라는 땅이 있어야 한다 … 시인과 소설가들이 글만 쓰고 있다는 것, 이것이 문제다. 나는 글만 쓰고 있는 이들이 써 놓은 글을 제대로 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 흔히 한자말에 중독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쉬운 우리 말로 쓰면 글이 길어진다”고 하는데, 이것을 보면 요란한 한자말로 쓴 글보다 깨끗한 우리 말로 쓴 글이 훨씬 짧아졌다. 그런데, 이렇게 어린이도 어른도 누구나 알기 쉽게 쓸 수 있는 말을 왜 그렇게 어렵게 쓰고 싶어 하는가? 이게 병 아니고 무엇인가? 병이라도 예사로운 병이 아니라, 나라와 겨레를 아주 망치는 병이다 ..  (138, 144, 148, 149, 225쪽)


  모든 말은 삶에서 태어납니다. 글은 말을 옮긴 이야기입니다. 곧, 글도, 모든 글도 삶에서 태어납니다. 삶이 있고서야 말이 태어나듯이, 삶이 있은 뒤에 글이 태어납니다. 삶을 말로 나타내듯이, 삶을 글로 나타냅니다.


  그런데, 때때로 글에 삶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신문 사설이나 칼럼을 쓰는 사람들입니다. 사설이나 칼럼 아닌 여느 신문글에도 삶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삶을 모두 도려낸 채 쓰는 글이 신문글이라 할 만해요. 대학교 논문도 이와 같습니다. 학술논문에 삶이 드러나는 일이 없습니다. 정치평론, 문학평론, 예술평론도 이와 같아요. 그림과 사진을 놓고 쓰는 평론도 이와 같지요. 간추려 말하자면, 비평이나 평론이나 논평을 한다는 글에는, 또 연구를 하거나 학문을 한다는 글에는, 아무런 삶이 안 드러납니다.


  삶을 드러내는 글에는 마음이나 생각이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마음도 생각도 안 드러낸 채 ‘객관’이라는 눈으로 쓰려 하는 글이 비평이요 논평이며 신문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사가 쓰는 진료글이나 법관이 쓰는 판결글도 이와 같을 수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 봐요. 삶이 없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기자나 작가나 학자가 삶이 없이 일할 수 있을까요. 학문이나 연구에 삶이 안 깃든다면, 이러한 학문이나 연구는 무슨 뜻이 있을까요. 법관이 내리는 판결이 삶하고 안 이어질까요. 의사가 내리는 진료는 삶하고 동떨어질까요.


  프랑스사람 파브르가 쓴 《곤충기》와 미국사람 시튼이 쓴 《동물기》가 널리 읽히며 사랑받는 까닭을 헤아려 봅니다. 벌레 한 마리와 짐승 한 마리를 찬찬히 살펴보고 나서 쓴 글인데, 이 글은 ‘학문’이자 ‘연구’이자 ‘논문’이자 ‘비평’인데 아주 아름답습니다. 잘 읽힙니다. 군더더기조차 없습니다. 왜 그러할까요? 바로, 파브르와 시튼 두 사람은 이녁 삶을 담아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논문이나 비평, 또는 책을 쓴다는 생각이 아니라, 이녁 스스로 벌레와 짐승을 사랑하고 아끼며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벌레 이야기와 짐승 이야기를 쓴다는 생각이었기에, 이 글은 논문도 되고 학문도 되며 문학도 됩니다. 그러니까, 이 글은 바로 ‘글’입니다. 삶이면서 글입니다. 삶이면서 글이 되는, 다시 말해서 ‘삶글’이 될 적에는 따스함과 너그러움이 감돕니다. 삶글일 적에 참글이요 ‘글’입니다. 글이 글다울 적에는 부스러기나 찌끄러기나 겉치레를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수수하고 투박한 그대로 아름다운 이야기요 삶이며 사랑입니다.


  오직 삶으로 쓰고 삶을 쓸 때에 글이 됩니다.


.. 농사꾼이고 일반 서민들이 쓰지도 않는 ‘자애’니 ‘환희’니 하는 말을 써야 그럴듯한 시가 된다고 생각하는 우리 나라 시인들의 잘못된 글쓰기 병폐는 김소월과 같은 민요시인까지도 어릿광대 노릇을 하게 만들어, 문학이라는 글쓰기 상품을 만들어 내는 모든 작가들의 정신을 오염시키고 말았다 … 우리 나라의 시인들은 우리 말에 너무 관심이 없고 감각이 무디다 … 맨 처음 일본시와 서양시를 따라 쓰기 시작했던 최남선 때부터 잘못되었던 것이다 … 시는 ‘가장 싱싱하게 살아 있는 말로 나타내는 예술’이다 … 시골 농사꾼들의 말, 어린이의 말, 이것이 시로 쓸 수 있는 가장 귀한 말이다 … 생활 따라 말이 달라지더라도 지금까지 쓰던 말을 아주 버리고는 낯설고 엉뚱한 새 말을 지어낼 것이 아니라, 될 수 있는 대로 지금까지 써 오던 말을 잘 살려서 쓰는 것이 슬기롭다 … 한자말이나 서양말, 외국 말법보다는 오히려 우리 시골말, 시골에 남아 있는 사투리를 쓰면 시가 살아나고 새로와 보인다. 시골말, 시골 사투리가 가장 깨끗한 우리 말이기 때문이다 ..  (162, 166, 168, 169, 172∼173쪽)


  이오덕 님이 쓴 《무엇을 어떻게 쓸까》(보리,1995)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 책은 글쓰기가 무엇인가를 또렷하게 밝힙니다. 글쓰기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삶쓰기’입니다. 삶쓰기가 아니고서는 글쓰기가 되지 않습니다. 삶쓰기가 아닌 글쓰기는 거짓쓰기일 뿐입니다. 삶을 쓰지 않으니 겉치레와 거짓부렁을 하고야 맙니다.


  삶이 있어야 글에 담을 알맹이가 있습니다. 삶이 없으면 글에 담을 알맹이가 없습니다. 알맹이가 없는 글을 억지로 쓰려 하니, 겉멋을 부리지요. 한자말이나 영어를 자꾸 섞어 쓰며 어려운 글이 되도록 합니다. 어려운 글이 되도록 해서 못 알아듣게 하면, 사람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하다가 ‘글이란 이렇게 해야 되는가 보다’ 하고 잘못 받아들이곤 합니다.


.. 내가 아주 크게 걱정하는 것은 이런 일본말의 ‘찌꺼기’가 아니다. 찌꺼기쯤이야 언젠가는 버리게 될 것이고, 가령 그 한 부분이 남아서 아주 우리 말이 되어 버린다고 해도 그다지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찌꺼기가 아니라 우리 말을 자꾸 잡아먹는 무서운 독소를 지닌 알짜 일본말과 일본 말법이 널리 쓰이고 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 우리가 아직도 일본말을 못 버릴 뿐 아니라 중국글자와 그 글자말을 즐겨 쓰는 까닭은 순전히 일본제국주의가 주사해 넣어 놓은 무서운 마약이 우리 겨레의 몸과 정신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이렇게 서양말을 많이 섞어서 쓰는 일본말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듣고 또 그런 일본글과 그 글을 번역한 글을 많이 읽다 보니 저절로 서양말을 일본사람들처럼 많이 쓰게 된 것이다 … 이 ‘국민학교’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이 마지막 발악을 하면서 조선사람들을 철저히 황국신민으로 만들고 학교를 군대식 훈련장으로 바꾸기 위해 붙힌 이름이다 ..  (186∼187, 188, 189, 196쪽)


  하늘은 사람을 속이지 않습니다. 시월은 시월이고 오월은 오월입니다. 해는 아침마다 뜨고 저녁마다 집니다. 달과 별은 저녁마다 빛나고, 어디에나 미리내가 곱습니다. 다만, 도시에서는 전깃불을 지나치게 밝혀 별빛도 미리내빛도 안 보이도록 가로막습니다. 그러니까, 도시에서는 참을 감추고 거짓을 드러낸다 할 만합니다. 도시에서는 ‘있는 것’을 ‘있는 듯 없는 듯’ 모르도록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곳에서 삶을 누린다면 자꾸 참하고 멀어지거나 삶을 잊고 맙니다. 참하고 멀어지거나 삶을 잊으니, 글을 써도 글답지 못하고 말을 해도 말답지 못해요. 시골말하고 등돌릴 뿐 아니라 ‘한국말(우리 말)’이 무엇인지 못 알아챕니다.


  시골에서 살더라도 시골사람답게 안 살고 도시사람처럼 살면 말다운 말을 몰라요. 도시에서 살더라도 시골사람다운 넋을 건사하면 말다운 말을 알아요. 삶을 가꿀 때에 말을 가꿀 수 있고, 말을 가꾸며 마음을 가꿉니다. 마음을 가꾸기에 사랑을 가꾸고, 사랑을 가꾸는 동안 일과 놀이도 아름답게 가꿉니다. 하루하루 아름다움이 샘솟는 삶이라면, 이러한 삶을 바탕으로 글을 즐겁고 아름답게 쓸 수 있습니다.


  문장수련을 하거나 글쓰기강좌를 듣는대서 글이 나아지지 않아요. 삶을 가꾸어야 글이 나아집니다. 대학교를 다니거나 책을 많이 읽어야 글을 잘 쓰지 않아요. 삶을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게 잘 가꾸면 글은 저절로 거듭납니다.


  마음속에 사랑을 심을 때에 글이 사랑스럽습니다. 삶에 꿈을 심을 때에 글이 빛납니다. 글쓰기는 삶쓰기이듯, 글읽기는 삶읽기입니다. 책읽기는 늘 삶읽기입니다. 삶읽기란 사람읽기요 사랑읽기예요. 그러니까, 글쓰기란 사람쓰기이면서 사랑쓰기입니다. 4346.10.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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