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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장의 명반

: 클래식

리뷰 총점8.1 리뷰 4건 | 판매지수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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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3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560쪽 | 1568g | 158*232*70mm
ISBN13 9788932309033
ISBN10 893230903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카잘스의「무반주 첼로 조곡」 발견
1889년 어느 날, 카탈루냐의 수도 바르셀로나(스페인)의 한 악기점 으슥한 구석에서 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채 200년 동안이나 잠자고 있던「무반주 첼로 조곡」의 악보가 발견되었다. 그것은 멘델스존이 발굴 초연한「마태 수난곡」에 버금가는 위대한 발견이었다. 이 음악사상의 놀라운 '신대륙 발견자'는 당시 13세의 소년 파블로 카잘스였다. 카잘스는 그 후 12년 동안의 집념 어린 연구와 피나는 각고 긑에 비로소 첫 공개 연주를 할 수 있었다. 당시의 일을 카잘스 자신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내 생애의 한 시기를 이룩하는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1주일에 한 번 나를 만나러 왔다(당시 카잘스는 바르셀로나 시립 음악학교에 재학 중이었다.ㅡ필자). 그 무렵 나는 이미 보통 크기의 첼로를 지니고 있었다. '카훼 토스트'(카잘스는 바르셀로나에 온 지 9개월 후 그라시아 교외의 이곳에 트리오으 멤버로 고용됨ㅡ필자)에서 매주 한 번씩 울리는 고전 음악회의 독주용 악보를 찾으려고 아버지와 함게 바르셀로나의 악기점을 뒤지고 다녔다. 어느 날ㅡ그 때 내 나이는 13세였다ㅡ우연히 한 악기점에서 바하의「6개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발견했다. 말할 수 없이 매혹적인 신비가「6개의 무반주 첼로 조곡」이라는 악보 속에 깃들어 있었다. 나는 그 때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이 곡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고ㅡ나도 선생님도ㅡ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이 발견은 하늘이 내 생애에 베푼 커다란 게시라고 할 만한 사건이었다. 나는 곧 이 발견의 특별한 의미를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보물을 건드려 보기도 하고 살며시 쓰다듬어 보기도 했다. 그 후 조곡에 열중하여 공부하기 시작했으나 …… 청중 앞에서 연주해도 되겠다는 결심이 서기가지는 12년 동안 연구를 계속해야만 했다.
(중략)

카잘스는 96세로 죽는 날까지 평생 매일같이 일과처럼「무반주 첼로 조곡」을 연습했다. 그가 얼마나 신중했나 하는 점은 이 곡집 악보를 발견한 후, 연주 불가능한 부분을 수정 보완해 가며 40년간에 걸쳐 체험과 연구를 거듭하고 나서 이윽고 레코드 녹음을 시작했다(1936~1939년)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그 녹음(SP)이 바로 전성기의 그의 생동하는 역사적 명연주를 들을 수 있는 이 레코드(EMI/Angel)이다.

카잘스는「무반주 첼로 조곡」의 발굴 소개와 그 해석의 전형 또는 전통을 이룩하는 위대한 업적을 아무의 도움도 빌리지 않고 혼자 힘으로 해냈다. 오늘날 모든「무반주 첼로 조곡」연주의 정점에 높이 솟아 있는 카잘스의 연주는 그 생명력과 기술적 완벽성, 내부적인 통일의 높이와 깊이, 논리성과 즉흥성의 혼연 일체 등에서 비길 자가 없다.
--- pp.84~86
언제인가 레코드점에서 고객과 점원 사이의 기묘한 시비를 목격한 일이 있다.
“도대체 이따위 레코드를 돈 받고 팔아? 당장 물러 주시오.”
탕 하고 진열대 위에 내던지는 LP를 보니 후르트뱅글러 지휘의 차이코브스키 교향곡 제6번, 흔히「비창」이라고 하는 음반(DG)이었다. 영문을 몰라 하얗게 질린 레코드점의 아가씨가,
“아니 왜 그러세요? 어디 심한 흠집이라도 있어요?”
하고 묻자, 고객은 더욱 기승을 부리며,
“아니 무슨 놈의 레코드에 사람 기침 소리, 새 울음 소리 따위가 들어 있느냔 말이야!”
곁에서 듣고 있던 나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실황 녹음이라는 것을 아예 모르는, 아니 애초 이해를 못 하는 사람이었다. 웬만한 애호가라면 일부러라도 실황 녹음반을 구하려고 애쓰는 터인데, 아마 그는 초보자였던 모양이다.

레코드 음악 애호가 중에, 실황 연주를 전혀 가 본 일이 없는 사람에게서 이런 현상을 종종 발견한다. 교향곡 같은 음량으로 듣던 실내악을 막상 연주회에 가서 들어 보고 실망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더구나 녹음 기술의 경이적인 발달로 요즘 웬만한 오디오는 다 놀라운 소리를 울려 주고 있으니까.

그런 사람일수록 오디오와 소리에 더 집착한다. 왕년의 그 어떤 명연주라 하더라도 '디지틀'이니 'PCM'이니 하는 생생한 녹음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모노럴 시대의 저 숱한 명연들, 스테레오 초기의 EMI, DECCA의 그 현란한 오페라곡이 다 그들에게는 한낱 유랑 극단의 처량한 나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몇 달 전, 모임이 있어 어떤 분의 몇천만 원짜리 오디오가 놓인 집의 음악을들어러 간 일이 있다. 방 그득히 놓인 영미국의 명기들(기종을 일일이 밝힐 수는 없지만)은 정말 그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예술품이었다. 그러나 곧 나는 실망했다. 그 집에 소장된 레코드의 초라함이여! 무조건 음질위주의 음반들이었다. 디지틀, 텔라크, 마크 레빈슨 등 초특급 음질 반(盤)뿐이었다. '모노'나 초기 스테레오 반 따위는 눈을 씻고 보아도 없었고 따라서 작곡가나 지휘자는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양복 입고 짚신 신은 모습이 내 앞에 훅 끼쳐 왔다. 그만큼 오디오에 돈을 들였으면 마땅히 레코드 수집에도 정성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 엄청난 기계로 베냐미노 질리의, 유씨 뵤를링의, 샬리아핀이나 엘리자베트 슈만의 따뜻한 목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디누 리파띠의「월쯔」나 기제킹의「무언가」를 왜 마다할까? '모노럴 녹음'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따뜻하고 애틋한 옛날의 그윽한 향취가 얼마나 많이 서려 있는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흘러간 날의 갖가지 추억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는 그 소중한 시간을 왜 외면할까?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 레코드 음악 애호가의 인사는 “무슨 오디오를 갖고 계십니까?”가 아니고 “무슨 음악을 들으십니까?”가 되어야 한다.
--- pp.6~7
드뷔씨(Clsude Achille Debussy, 1862~1918)의 작품 중 대중적인 인기가 제일 많은 곡이「목신으 오후 전주곡」이다. 1894년 12월 22일, 빠리의 국립 음악협회 초연 때에 대단한 호응을 얻어 앙코르까지 받았다. 그의 작품이 초연에서 호평을 받은 일은 평생 동안에 이 경우뿐이었다. 그는 하루아침에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가 새로운 음악 기법을 창안하게 된 계기는 화가 세잔느, 모네, 르노와르, 고갱 등의 화풍이 끼친 강한 영향 때문이었다. 드뷔씨는 자연이 간직한 갖가지 잡음을, 그 여러 소리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내어 음으로 묘사했다. 그러기 위해 독특한 음계와 화음과 관현악법을 써야만 했다.

상징파 시인 말라르메(Stephane Mallarme, 1842~1898)의 집에서는 화요일마다 정기적으로 예술가의 모임이 있었다. 젊은 시절 드뷔씨는 이곳에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음악가였다.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를 즐겨 듣는 시인ㆍ화가들과의 교우 속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말라르메의 시「목신의 오후」를 알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중략)

인상주의 음악의 선구적 작품「목신의 오후 전주곡」
드뷔씨는 말라르메의 시에 대한 인상을 음악화했다. 결코 표제 음악식으로 묘사하지 않고 그 시에서 받은 인상을, 드뷔씨가 받아들인 정신적인 반사(反射)만을 교묘하게 그려 낸 점에 특색이 있다. 그는 멍하니 초점이 모호한 하모니와 조각조각 흩어진 리듬형의 암시, 멜로디보다도 악기의 음색 변화를 미묘하게 그려내는 등 부드러운 관현악을 써서 자유로운 환상 속에 음시화(音詩化)했다.

곡은 훌루트의 반음계적인 독주로 시작하여 하프와 호른이 화답하다가 매끄러운 현의 반주를 받으며 훌루트가 다시 되풀이한다. 이윽고 오보에의 그리움이 서린 가락이 계속되고 목신의 마음은 몽환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차츰 뜨거운 정열을 부풀려 나간다. 목관과 하프의 활약으로부터 현의 일제 합주가 팽팽한 기분을 북돋우는 중간부에 이르러 비로소 멜로디가 뚜렷한 형태를 가다듬으며 아름다운 뷔너스에 대한 관능적인 욕망을 목관, 현 그리고 바이올린 독주로 표현한다. 어느덧 처음의 훌루트 독주가 돌아온다. 이렇듯 아련한 분위기 속에 표현하는 것이 드뷔씨 특유의 미묘한 음의 세계이다. 곡 속의 나른한 여름날 오후의 원시적인 관능의 고양(高揚)과 뒤이은 공허한 기분을 그리는 수법은 지금까지 어떤 작곡가도 시도하지 못했던 짙은 낭만적 서정의 향기를 풍긴다.
(중략)

토스카니니 만년의 기념비적인 명연주
「목신의 오후 전주곡」은 앙세르메를 비롯한 뮌슈, 마르띠농, 끌뤼땅스등 불란서계 지휘자의 음반이 즐비하게 많다. 각기 개성이 뚜렷한 명연주이지만, 여기서는 토스카니니의 디스크를 추천한다. 토스카니니보다 다섯 살 위인 드뷔씨는 생전에 자기 곡의 최고 연주자로 그를 꼽았다고 한다. 토스카니니가 86세 때(1953년)의 NBC 방송 실황 녹음인 이 연주는 윤곽이 선명하고 명석하여 단 한 군데의 애매한 점도 없는 완벽한 구도를 지닌다. 다른 지휘자에 비해 너무 명쾌하므로 드뷔씨적인 면이 부족하다고 불평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회화성(繪畵性)이나 독특한 향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묘하게 변화하는 음악의 색채감과 다이내믹스(강약법)가 드뷔씨의 문양을 보다 분명하게 살려 내고 있다. 또 NBC 교향악단의 탁월한 앙상블은 더 이상 치밀하고 오묘할 수가 없다. 토스카니니 만년의 연주이지만 그의 나이가 전혀 의식되지 않는 역사적 명반이다.
--- pp.739~743

회원리뷰 (4건) 리뷰 총점8.1

혜택 및 유의사항?
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k*******2 | 2022.04.0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독일의 바하가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코렐리, 비발디, 타르티니 같은 작곡가의 현악기를 중심으로 한 아름다운 음악이 분수처럼 영롱한 무지개를 그리며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비발디 (Antonio Vivalidi,1678~1741)의 이름은 독일에까지 널리 퍼져 바하조차도 큰 영향을 받을 정도였다. (-39-)     다른 지휘자의 『마태 수난곡』 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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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바하가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코렐리, 비발디, 타르티니 같은 작곡가의 현악기를 중심으로 한 아름다운 음악이 분수처럼 영롱한 무지개를 그리며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비발디 (Antonio Vivalidi,1678~1741)의 이름은 독일에까지 널리 퍼져 바하조차도 큰 영향을 받을 정도였다. (-39-)

 

 

다른 지휘자의 『마태 수난곡』 에서는 한 곡 한 곡이 독립되어 있지만,멩겔베르크의 연주는 전곡을 하나의 끈으로 엮어 유기적인 연결을 돋보인다. 이는 녹음을 의식하지 않은 실황 연주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비단 합창 뿐만 아니라 독창자들도 최고의 열연을 펼친다. (-105-)

 

 

1960년 12월 7일 브뤼셀에서 하스킬은 갑자기 죽었다. 철도역 층계를 내려오다 굴러 떨어진 때문이었다. 이 때 나이 65세였다.

예술가로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인간으로서는 하스킬만큼 불행한 사람도 없었다. 20세기의 가장 불행한 사건이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고스란히 몸소 겪어야 했던 점은 동시대의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체험한 일이므로 그녀만의 고통은 아니었다. 그러나 등이 굽은 곱추로서는 남달리 전쟁의 혼란을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병마는 그녀의 등만을 굽혀 놓지 않고 뇌종양이 정신까지 위협했다. (-245-)

 

 

1826년은 베토벤의 생애에서 최악의 해였다. 조카 카알 때문에 죄로워하다 보니 건강도 따라서 나빠져 죽음까지 각오할 정도가 되었다. 이 해 2월과 3월에 신경통과 소화기 계통의 병 및 눈병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7월 29일에는 자식처럼 돌보던 카알이 불량한 생활 끝에 빚에 몰려 권총 자살 미수사건까지 일으켰다. (-327-)

 

 

청년은 살아갈 기력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히 힘을 쓰나, 곡의 장조와 단조의 교체가 마음의 불안을 드러내고 만다. (-409)

 

 

19세기 중엽의 빈 월쯔는 오늘날의 팝송만큼이나 빈 시내에 흘러 넘치고 있었다. 더구나 당시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는 국민에게 향락주의를 권장하는 정책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크게 유행했다. (-531-)

 

 

타협을 모르는 그의 완벽주의는 악단원에게서 완전한 인토네이션과 균형 있는 아름다운 음향을 이끌어 내고 순수하게 음악 자체에 육박하여 청중을 진한 감동 속에 감싸 버린다. 첼리비다케는 음악이 지니는 생명감과 즉흥서을 무엇보다 중요시하여 그 음악이 표현하는 내용을 보다 깊고 풍부하게 부각하는 데에 크게 이바지했다. (-633-)

 

 

 

시에서 피를 빨아들이는 동안에 음악은 살이 쪄서 모습을 바꾸었다. 대부분의 가곡 작곡가가 선을 자체에 전념했지만, 불후는 시의 뜻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요소로서만 선율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가곡은 하나하나가 언어의 의거한 회화(繪畵) 소품이라고 할 수 있다. (-732-)

 

 

발터 지휘의 교향곡 제1번은 그가 자기 자신의 개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면서도 모두가 말러의 음악 자체에 동화되어 있고 또 나아가서는 말러의 음악 자체도 개인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보편성을 얻고 있다. 발터, 말러하는 음악가에 대한 좋다, 싫다는 따위의 사사로운 감정을 초월하여 만인을 감동시키는 예술을 만들어 내고 있다. (-815-)

 

 

공산권에 속한 폴란드가 어떻게 그토록 전위적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마 오랫동안 계속된 전란과 황폐 속에 싹튼 저항 정신과 자립 정신 그리고 코페르니쿠스 이래로 전통적인 자주 독립의 기개와 권위에 대한 강한 저항심이 빚어낸 혁명 정신 같은 민족성이 예술 분야도 전위적 자세로 이끌어 갔을지 모른다. (-929-)

 

 

슈바르츠코프 (1915~) 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노래의 영역은 서로 다르지만 마리아 칼라스와 함께 세계 정상의 프리마돈나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연주의 정점을 어느 해쯤으로 보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그녀의 오페라와 가곡의 전성기가 각기 다르므로 둘로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1045-)

 

 

언젠간 베트로폴리탄이 내 앞에 무릅을 꿇고 노래해 달라고 애원할 날이 올 거예요, 그대가 와도 나는 절대로 응하지 않을테니 단단히 기억해 두세요.

 

그로부터 거의 11년 후에 정말 요청이 왔을 때 죤슨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1122-)

 

 

『휘가로의 결혼 』 은 모짜르트가 좋아한 오페라 부활의 걸작이다. 이 오페라에 등장하는 여성들 중 가장 생동감이 넘치며 매력적인 인물은 수잔나이다. 서민적인 매력을 지닌 수자나에게서 모짜르트는 처녀 시절의 콘스탄제의 모습을 마음 속에 그리며 작곡했을지도 모른다. (-1205-)

 

 

 

로엔그린은 백조가 가까이 오자 그 목의 사슬을 풀어준다. 순간 백조는 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강가에 치솟으며 소년으로 바뀐다. 소년의 출현과 동시에 오르크루트가 기성(奇聲) 을 지르고 그 자리에 쓰러진다. 그 소년이야말로 오르트루트의 마술로 백조가 되었던 영주 고트후리트였다. (-1306-)

 

 

오페라 『카르멘 』 은 1875년 3월 3일, 바리의 오페라 꼬히끄 극장에서 초연의 막을 올렸으나, 대개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이 처음에는 뜻밖의 냉대를 받는 통례대로 평이 나빴다. 대본 작가의 한 사람인 알레비는 "마지막에 갈수록 냉랭한 분위기로 바뀌다가 제4막에 이르러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얼음 같은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고 쓰고 있다. (-1420-)

 

 

브루크너의 음악이 지니는 가치는 그의 아홉곡의 교향곡에 있다. 오늘날 독일 오스트리아에서는 베토벤을 이은 대교향곡 작곡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낭만적'이라는 부제가 붙은 제4번 교향곡이 인기가 있지만 작품의 깊이로 보면 제7번 , 제 8번 그리고 마지막 악장이 미완성인 제9번 교향곡이 심원한 브루크너의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그의 교향곡에서 아다지오 악장은 든는 이를 자연의 신비경으로 빠져들게 한다. (-1508-)

 

 

청주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인 안동림 교수는 1932년에 태어나 2014년 세상을 떠났으며, 그가 남긴 저서 『이 한장의 명반 클래식 』은 자신의 삶을 바친 명저라고 말할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을 LP 판이나 ,mp3 로 들어왔던 우리가 이제 유투브로 검색을 하면 찾아들을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게 되면서, 클래식에 대한 깊이와 의미를 향유하게 되었으며, 소비와 생산, 영감과 창의력을 노펴 나가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클래식 하면 떠오르는 바하,비발디,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벱,슈베르트,드뷔시,쇼팽, 리스트,. 무쏘르그스키 교향시 ,드보르자크, 펜데레츠키, 살리라핀 등등의 음악가가 추구해왔던 클래식 음악의 정수를 엿볼 수 있으며, 왜 클래식 음악이 나의 마음과 감정의 동선에 따라가게 되는지 엿볼 수 있다.

 

 

즉 음악가는 싫어할 수 있다.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음악가의 음악은 싫어지지 않는다. 클래식 음악이 가지는 고유의 음악적 보편성 때문이다. 음악을 통해 내 마음을 동요 시키며, 마음의 평온을 가져 놀 때가 있었다. 나의 마음이 격정적일 때느,격ㄹ적적인 클래식 음악을 소비하면서 , 내 마음의 펴온을 가져온다. 중세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은 그들이 남긴 그림과 동화되었고,그 음악을 통해서 , 한사람의 개인의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위대한 화가라 하더라도,그 시대에 그림이 파리지 않으면, 궁핍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하지만 음악은 그렇지 않다. 눈은 닫혀 있어도 귀는 항상 열려 있기 때문이다.내 마음이 기쁘면, 긍정적인 클래식을 듣게 되고, 내 마음이 분노로 동화되면,그 감정과 일치하는 음악에 따라가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유럽의 클래식 음악, 미국의 팝음악, 사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 누군가를 향한 음악적 색과 향,그 하나하나가 주는 울림이 내 삶을 풍요롭게 하며,나를 기쁘게 하고, 나를 때로는 분노의 늪으로 끌어 달길 때가 있다.음악에 의해서 ,내 삶은 완성될 수 있고, 음악의 깊이와 소양에 따라서, 내 삶은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그 믿음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자은 안동림 교수는 자신의 노년 이후의 마지막 삶을 이 책 한 권에 쏟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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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유일한 클래식 음반 레퍼런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2점 YES마니아 : 로얄 도**독 | 2006.06.19 | 추천2 | 댓글3 리뷰제목
안동림 교수의 ''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은 이렇다할 클래식 음반 레퍼런스가 없는 국내에서 유일한 책이다. 클래식을 전공하지 않은 영문한 교수인 그가 많은 서적을 참고하여, 좋은 음반과 더불어 음반이나 곡에 대한 뒷 이야기를 다루었다. 음반을 섣불리 고르기 힘든 초보자에게는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요, 애호가에게는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1988년 초판;
리뷰제목
안동림 교수의 ''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은 이렇다할 클래식 음반 레퍼런스가 없는 국내에서 유일한 책이다. 클래식을 전공하지 않은 영문한 교수인 그가 많은 서적을 참고하여, 좋은 음반과 더불어 음반이나 곡에 대한 뒷 이야기를 다루었다. 음반을 섣불리 고르기 힘든 초보자에게는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요, 애호가에게는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1988년 초판되어 1997년에 개정 증보판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맞춤법을 쓰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띄어 상당히 거슬리는 티도 있다. 지금은 ㅍ이라고 쓰는 것을 과거에 ㅎ으로 쓰는 경우 등과 같이 말이다. 푸르트 뱅글러를 후르트 뱅글러, 프랑소아를 후랑소아로, 드뷔시를 드뷔씨 등으로 쓰거나 이제는 잘 쓰지 않는 한자식 표현도 눈에 띈다. 불란서란 표현은 지금은 잘 쓰지 않지 않은가. 이런 사소한 문제는 출판사의 무성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서적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귀한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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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로얄 c*****0 | 2005.02.04 | 추천5 | 댓글0 리뷰제목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물리학자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그가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직업적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에도 손색이 없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다면 상대성이론을 연구하기에도 바쁜 그가 어떻게 바이올린까지 신경 쓸 짬이 있었을까? 역설적으로 그는 자신의 이론을 더욱 정교하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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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위대한 물리학자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그가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직업적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에도 손색이 없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다면 상대성이론을 연구하기에도 바쁜 그가 어떻게 바이올린까지 신경 쓸 짬이 있었을까? 역설적으로 그는 자신의 이론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기 위해 버이올린에 더욱 열성적으로 달려들었다. 즉 궁극적으로 위대한 것에는 통하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을 소개하며 이런 사족을 다는 이유는 이 책의 저자가 음악과는 관련이 없는 영문학자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시골대학의 교수인 그는 바쁜 짬짬이 클래식음악과 관련된 글을 썼다. 그 결과물인 이 책은 놀라움 그 자체이다. 솔직히 말해 처음에는 이곳저곳에서 짜집기한 티가 나는 이 책의 가치를 그다지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사랑을 읽을 수 있었다. 클래식음악 초심자는 물론 어느 정도 음악을 안다는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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