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6년 05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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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44쪽 | 830g | 154*225*35mm |
ISBN13 | 9788964358290 |
ISBN10 | 8964358295 |
발행일 | 2016년 05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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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44쪽 | 830g | 154*225*35mm |
ISBN13 | 9788964358290 |
ISBN10 | 8964358295 |
원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미술- 미술하는 인간이 살아남는다 I 원시미술 - 미술을 아는 인간이 살아남는다 01 섹시한 돌멩이의 시대 02 그들은 동굴에서 무엇을 했을까 03 동굴벽화에 숨겨진 미스터리 코드 04 인류가 4만 년 동안 그려온 이야기 05 우리 가까이의 원시미술 II 이집트 미술 - 그들은 영생을 꿈꿨다 01 3000년 동안 최강대국의 지위를 누린 나라 02 변하지 않는 완벽한 세계를 그리다 03 피라미드가 들려주는 불멸의 꿈 04 네바문에서 투탕카멘까지, 고대 문명의 르네상스 05 너무나 화려했던 황혼의 빛 06 미술의 영원한 주제, 삶과 죽음 III 메소포타미아 미술 - 삶은 처절한 투쟁이다 01 수로가 열어준 문명의 강 02 신전을 짓고 제물을 빚어 번영을 기원하다 03 광야에서 도시혁명이 시작되다 04 권력의 목소리, 권력의 얼굴 05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결정판 |
메소포타미아 미술 : 삶은 처절한 투쟁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메소포타미아에서 최초로 발명된 것이 수없이 많다고 합니다. 달력, 바퀴와 쟁기, 돛단배, 화폐, 법전도 그렇습니다. 심지어 맥주까지도요.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발명품은 ‘도시’입니다. 농사가 잘 되는 곳을 선택하여 잉여생산물이 나오고, 모든 사람이 식량 생산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지면서 다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고, 다양한 직업 집단이 생겨났습니다. ‘농업혁명’이라고 표현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에 본격적으로 진행됐던 것이 ‘도시혁명’이었습니다. 기원전 1만 년경에 일어났던 농업혁명으로 사람들이 한 지역에 머물러 살면서, 기원전 4000~3000년에 이르자 메소포타미아에 인구 1만 명 이상을 가진 복잡한 사회구조를 갖춘 도시들이 대거 출현하게 됩니다. 이런 변화를 양 교수는 ‘도시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메소포타미아의 미술은 이들 도시와는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도시의 중심에 지구라트가 지어지고 신전의 기능을 합니다. 그곳에는 그릇이 있고, 와르크 병이 출토되고, 조각상이 나왔습니다. 도시에는 권력자의 무덤이 있어 화려한 금과 라피스 라줄리 장식이 있는 부장품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도시 국가들 간의 갈등이 표현된 ‘우르의 군기’ 같은 유물도 확인됩니다. 자신의 공적을 찬양하고 권력의 정당성을 표현하기 위한 왕의 조각상과 전승비도 보입니다. 신이 자신에게 권력을 주었다는 것을 함무라비 법비에도 새깁니다. 이 지역에서 번성했던 도시들은 차츰 거대한 국가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거나, 전쟁으로 인하여 폐허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들 패권국의 이름이 아카드의 사르곤 1세 왕으로부터 구바빌로니아, 히타이트, 히타이트 신왕국, 아시리아, 신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까지 면면이 이어집니다. 이들은 이집트와도 패권을 겨루지요. 이들 패권국이 만들어 지녔던 미술품들의 설명이 책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아쉽게도 이들의 미술품들은 서구 열강에 의해 빼앗기고 파괴된 것이 많아 이들 땅에서 보는 것보다는 영국이나 프랑스의 미술관을 가야 볼 수 있다는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본 미술품은 이슈타르 문(복원)이었습니다. 이 문은 아시리아를 물리치고 바빌로니아를 다시 건설한 신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의 관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숭례문이라고 비유를 하더군요. 이 문은 모두 부서져 발굴한 독일인들이 베를린으로 조각들을 모두 가져가서 일일이 복원을 하였다고 하는데 독일인들의 끈기와 노력에 감탄하면서도 이 문을 바빌론이 아닌 베를린페르가몬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다는 것에 아쉬웠습니다. 장소성을 감안하면 이 문이 원래 있던 곳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혼자 상상을 했습니다. 바빌론의 복원도를 보면서 든 생각이었습니다.
페르시아의 수도 수사와 제국의 영토를 넓힌 후 새로운 수도로 건설한 페르세폴리스의 설명도 흥미로웠고, 이 도시들이 알렉산더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페르시아가 남긴 찬란한 문화를 모두 없애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오히려 페르시아 문화의 특정 부분은 알렉산더의 제국에 스며들었다고 합니다. 우수한 문화는 언제나 멸종되지 않고 어디엔가 그 유전자를 전달하기 마련이지요.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정복한 다음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금화를 만들었는데, 금으로 화폐를 만든 뒤 표면에 지배자의 모습을 새겨 넣는 것은 페르시아 사람들이 처음 고안해낸 방식이라고 합니다. 왕의 얼굴이 새겨진 금화가 전국에서 사용될 때 피정복민들은 그들이 누구에게 정복당했고, 그 힘이 얼마나 강하며, 언제나 자기들을 지배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날, 한 시도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국제무역의 통화로도 사용하는 것에 손색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집트에 로제타스톤이 있다면 메소포타미아에는 베히스툰산 100미터 높이에 다리우스 1세가 자신이 반란자를 처단하고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로 등극하게 된 과정을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아주 높은 위치의 바위에 새긴 비문이 있습니다. 다민족 국가였던 페르시아 제국을 지배한 다리우스 1세가 치적을 자랑할 때, 고대 페르시아어, 엘람어, 바빌로니아어 등 세 가지 쇄기문자로 기록했습니다. 이 세 가지 언어 중 고대 페르시아의 언어는 1802년 이미 해독이 되어 사전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다양한 민족이 문명을 발전시킴과 동시에 갈등을 만나야만 했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이집트와는 달리 영원불멸을 표현했던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가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처절한 투쟁 그 자체였고 그들의 이런 삶은 그들이 만들고 남긴 미술품을 통하여 우리가 지금도 알 수 있다는 것에 미술사를 연구하는 분들의 노고와 뛰어남에 존경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끝.
메소포타미아 미술이 나온 토양, 하나님도 관심을 가졌던 지역.
세계 문명의 발상지는 수렵 채집 생활을 벗어나 농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있는 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고 하지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있는 지역을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라고 합니다. 세계 최초의 문명이 만들어진 곳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란과 이라크 지역에 해당됩니다. 메소포타미아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두 강 사이의 땅’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리스어, 이 언어는 지중해에 근접한 지역에 고루 영향력이 미친 언어입니다. 다 알렉산더의 지배를 받아서 그럴 것입니다. 이집트 문명은 아프리카 문명일까요? 아님 유럽 문명일까요?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문명에 속한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집트 문명이라고 하면서 아프리카라는 말을 회피합니다. 3000년 간의 찬란한 문명을 가진 이집트가 아프리카에 속한 나라라고 인정하기 싫은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이란-이라크 문명’이라고 부르지 않는 속내도 대강 비슷한 심리일 것입니다. 최초 인류 문명의 발상지 메소포타미아는 성경의 창세기에서도 거론되는 지역입니다. 보겠습니다.
‘에덴에서 하나의 강이 흘러 동산을 적시고, 그 곳에서 강이 나뉘어 네 줄기가 되었습니다.(창세기2:10) 세 번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입니다. 이 강은 아시리아 동쪽으로 흐릅니다. 네 번째 강은 유프라테스입니다(창세기2:14)’
성경에서는 창세기(지구가 태어난 것은 45억 년 전입니다. 그때 하늘이 열리고 땅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라고 하면서도 ‘아시리아 동쪽’이라는 지명을 씁니다. 이곳의 역사를 보면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많은 도시들 중 우루크를 아카드인이 정복하고 우르에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BC3600년경) BC2300년경 아카드인이 주인공인 국가가 등장합니다. 그 다음은 구바빌로니아가 이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고, 이어 지금의 터키 지역에 근거지를 둔 히타이트에게 정복당한 후(BC1700년경) 이 지역이 비어 있다가(히타이트인들은 정복 후에는 그곳을 차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근거지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아슈르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란 뜻의 아시리아가 출현합니다. 창세기에서 거론하는 지명으로는 아주 최근(아무리 늘여잡아도 BC5000년경입니다)의 국가명, 또는 지역명 아니면 민족명이라는 것에 놀랍니다. 7일 만에 만드신 세계에서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시고 살게 한 에덴동산이 존재했던 시대가 궁금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사람이 얘기하니 앞뒤가 헝클어진 게 아닌가 의심합니다. 이야기가 옆길로 샜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강에 둘러싸여 있어 토질이 좋다고 해서 농사가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강수량이 중요하지요. 이 지역은 북부의 고원지대에 비해 비가 거의 없거나, 하류 지역은 지나치게 습해 갈대만 무성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다 이들 강들은 건조기에는 강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내고, 비가 많으면 강물이 범람을 합니다. 결국 농사를 지을 수 있으려면 관개를 잘 해야 했습니다.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생존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관개를 위한 수로를 건설하고 관리하는 건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므로 자연히 그 노동력을 체계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할 어마어마한 정치권력을 가진 집단이 그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그렇다고 이 지역에 이집트의 파라오 같은 정치권력이 있었다는 것은 아니고, 두 강을 따라 다양한 민족이 저마다 지역의 패권을 잡으려고 경쟁하면서, 저마다 독립된 공동체로서 성격이 강했다고 합니다. 문명의 시작과 동시에 분쟁과 갈등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고, 당연한 일이지만 이들 중 하나가 메소포타미아 지역 전체를 통일해 체계적인 국가를 이루는 단계로 나아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은 이렇게 특수한 정치적 배경이야말로 메소포타미아 미술의 특징을 결정한 요인 중 하나라고 양 교수는 설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