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리의 변화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실제로 내가 다른 곳에서 서비스를 받아보아도 나를 화나게 만드는 일은 아주 사소한 실수들이었다. 고객을 존중하지 않는 직원의 태도라든가, 불결한 화장실, 정성이 깃들지 않은 음식 등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그건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주 쫀쫀하게 디테일한 것부터 바로잡았다. 더러워진 침대 시트를 수시로 교체하는 일, 고객의 주차를 대신 해주는 일, 환자들을 잠 못 이루게 하는 모기들을 소탕하는 일, 비 오는 날 고객에게 우산을 빌려주는 일 등 고객의 걸음걸음을 방해하는 신발 속의 모래알 같은 것부터 털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일은 결코 탁상행정으로는 불가능하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두 귀를 크게 열고 현장을 꼼꼼히 살펴야 비로소 고객의 가려운 곳이 어디인지, 고객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나 깨나 병원을 머릿속에 넣고 살았다. 그것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일상의 활력이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이 없을까 고민하는 그 자체를 즐겼기 때문이다. --- p.10~11
직원 입장이 아닌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니 답이 나온다는 것을 그들도 서서히 이해하는 듯했다. 고객의 마음을 홀릴 만큼의 감동을 선사하지 못할지언정, 그들을 위한답시고 도리어 짜증만 안겨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효율이란 다름 아닌 고객 배려였다. 결국 그것이 우리에게 매출 증대라는 최대 효과를 가져다주지 않겠는가. 그렇게 이곳은 더디지만 조금씩 고객의 눈높이에서 생각하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 p.42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이대로 안주할까 봐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환자수가 는다는 것은 그만큼 직원들의 업무가 가중된다는 의미이니, 지금은 기뻐할지라도 지쳐 나가떨어지는 사람이 생기면 정말 큰일이었다. 그렇다고 직원을 충원할 형편은 아니었으니, 최대한 직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나는 사기 충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야 했다. 마침 개원 기념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형 영화관을 빌려 영화도 보고, 팀별로 장기자랑을 담은 동영상도 준비해보자.’ 그렇게 해서 화합을 다지는 의미에서 ‘고맙습니다’ 문화행사를 가까운 대형 극장에서 열기로 했다.
“우리를 믿고 찾아온 고객님들,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섬김의 자세로 최선을 다한 우리 직원들, 정말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내 마음을 담은 문구를 밤새 고민했지만, 역시 정답은 ‘고맙습니다’ 였다. 영화관 좌석으로도 내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서, 가장 고된 일을 하는 경비반, 미화반 직원들이 가장 상석에 앉도록 배려했다. 이날만큼은 가장 편안한 자세로 영화를 보라는 의미였다. 나와 부서장은 목이 좀 아프면 어떠랴 싶어 맨 앞줄, 교수진은 두 번째 줄에 앉도록 했다. 모쪼록 모든 직원들이 안주하지 않고 다시 비상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이행사의 목적이었으므로, 고개가 아픈 것쯤은 문제가 되질 않았다. --- p.154~154
보통 사람들은 장애물 앞에서 세 가지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부딪히거나, 뛰어 넘어가거나, 피해 가거나. 고 정주영 회장은 직원들이 “안되겠습니다”라고 보고할 때마다“해보긴 했어?”라며 꾸중했다고 한다. 나 역시 그렇다. 일단 시도해본 후 포기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도해서 실패하면 그 또한 귀한 경험이 된다. 장애물 앞에서 포기하거나 피해 가는 버릇에 익숙해지면, 변화는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진료 받는 시간보다 주차하는 시간이 더 길겠더라. 자리 찾는 데만도 한참 걸렸는데 공간은 또 얼마나 좁은지, 주차하느라 정말 고생했어.”
입원실을 돌고 있는데, 한 여성 고객분이 입원한 지인을 찾아와 이런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 걸 듣고 뜨끔했다. 사실 직원들 역시 주차가 불편하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주차 면적이 너무 좁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없는 공간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불편해도 감수하자는 것이 지금까지의 입장이었다. 그렇지만 고객의 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겠다고 공언해놓고, 고객이 직접 불평하는 걸 들어놓곤 못 들은 척 돌아설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이번엔 카페처럼 뚫을 곳도 없고 큰일이네.’
그날 나는 다시 강박증 환자가 되어 하루 종일 머릿속으로 주차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퇴근 후 지인들과 약속이 있어, 한 음식점에 방문했다. 그런데 입구에서 주차요원이 공손하게 내 키를 받은 후, 차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세심하게 대신 주차를 해주는 것이 아닌가.
‘아! 병원에서도 발렛파킹을 실시하면 되겠구나.’
결국 고객들이 지닌 불만의 핵심은 좁은 주차장이 아니라 불편한 주차였던 것이었다. 그러니 주차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우리가 직접 해주면 되는 것이었다. 문제의 초점에 집중하니 답이 금방 나왔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 p.172~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