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죽여드립니다
당신은 지금 외로우십니까? 아니면 난 외롭지 않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계십니까? 아무도 없는 새벽에 깨어났을 때, 홀로 밥을 먹을 때, 직장에서 퇴근해 집으로 향하는 도중, 우리는 불현듯 외로움을 느낍니다. 친구를 만나고 연인을 만들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1일 평균 자살률 38명, 불행 지수 81%를 조장하는 숨은 원흉이 바로 그들인 것입니다.
이제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파훼가 필요합니다. 더 이상 외로움은 불치의 질병이 아닙니다. 그것은 맞서 싸워야 할 적이며, 백신이 존재하는 바이러스입니다. 저희가 당신의 외로움을 낫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파고들어간 악성 종양을 뽑아드리겠습니다. 놈들을 모조리 몰아내, 빼앗겼던 행복을 되찾아드릴 것입니다.
이미 변화는 시작됐습니다. ㈜외로움살해자의 고객 수는 30만을 돌파했고, 100만 명에 달하는 예비 고객들이 상담 중입니다. 지금 현대 사회에서는 바야흐로 외로움과의 대혈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늦기 전에 결정하십시오. 당신은 믿음직스러운 보호자와 함께 싸우겠습니까, 아니면 놈들의 희생양이 되어 영원히 괴로워하겠습니까?
더는 고민하지 마십시오. 외로움살해자들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 외로움살해자 대표 강 길수, 02-9X88-9987, ㈜ OㅗI
- 안녕하십니까. 당신의 외로움을 없애드리는 외로움살해자, 센터 상담원 추미소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목소리가 광섬유 속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절박하게 토로했다.
“저는 놈들에게 당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방 밖으로 핏자국이 이어져 있는데……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아요.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어딜 가서 누굴 해쳤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해요.”
-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목소리에는 놀란 기색 하나 없었다. 상담팀의 여직원들은 끔찍한 간접경험에 매일같이 노출된 나머지, 사람 몇 명이 죽네 마네 하는 정도론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현대인의 삶에는 죽음보다 훨씬 큰 위협이 도처에 산재하지 않던가?
몇 초간 이어지던 정적은 곧 끊겼다. 친절한 목소리가 물었다.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30분 안에 임의의 살해자가 출발할 예정이오니, 성함과 직종을 말씀해주십시오.
그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동공은 무언가에 감염된 듯 벌겠다.
“남현수, 외로움살해자입니다.”
---「프롤로그 」중에서
세상은 그의 동료들을 이렇게 칭했다. 외로움살해자.
지금에야 모르는 이 없는 신조어로 자리매김했으나,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외로움살해자-일명 ‘외살자’-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 생소한 단어를 처음 들은 이들은 되묻곤 했다. 직업치고는 이름이 좀 섬뜩한데, 살인청부업자 같은 거야? 아니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답변은 그들의 회사가 거대한 광고지로 된 아가리를 으르렁거리며 토해냈다.
독극물 감별 기능사, 뉴스클리퍼, 장기이식 디자이너, 감성설계사, 토피어리 전문가와 홈메이커와 손해사정인. 세상에 직업은 많고, 현대인들은 직업만큼이나 다양한 정신질환에 시달린다. 정신병은 건실한 성인 남녀의 덕목이 되었다. 그 달 벌어 카드를 틀어막는 월급쟁이도, 세후 2억짜리 고액 연봉자도, 누구나 증세 다른 우울증을 한둘씩 가지고 살아갔다. 상담과 약물만으로는 완벽한 치료가 불가능했다. 이 세상은 누군가의 말마따나 ‘모두가 미쳐버린 현대 사회’로 거듭난 것이다.
---「1단계 ‘1’ 」중에서
“난 주로 심화된 고객들을 맡아, 1단계나 2단계는 거의 거절하고. 아마 이번 사람도 다른 직원이 가져가서 처리하겠지.”
“그래? 이 여자는 심각한가 본데, 숫자가 3이야.”
필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는 도로 건네받은 휴대폰 속 메시지를 읽었다. 이번 문자는 평소 받던 것보다 한참 짧았다. 액정에는 딱 세 마디와 단계 표시만이 적혀 있었다.
김 미, 독신, 여자. [3]
---「1단계 ‘4’ 」중에서
“그래서, 증상은 어떻습니까? 최대한 자세하게 말해주십시오. 본인의 외로움이 남들과 어떤 부분에서 다른지도요.”
미는 새로운 고민에 빠진 것 같았다.
“다 말해야 하나요? 조금 많은데.”
“물론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자세할수록 더 도움이 돼요.”
미가 숨을 들이마시는 동안 필은 기다렸다. 귀머거리들의 도시에서 말을 잊었던 사람이 할 법한 준비 동작이었다.
“저는 외로워요. 저무는 태양 밑에서 외롭고, 뜬 달 아래 또다시 외로워요. 내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그 의미가 희석될까 입을 다물 만큼 외로워요. 하루에도 몇 번씩 숨이 턱턱 막혀요. 누군가 주기적으로 심장을 움켜쥐었다 펴길 반복하는 것처럼.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 잦아들지도 않아요. 이건 천식 환자의 호흡곤란 같은 거예요. 찾아올 때마다 속절없이 호흡기부터 물어야 하는.”
---「2단계 ‘1’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