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는 수학(수식, 개념 등)이 많이 등장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했던 수학이 어쩌면 편협한 지식과 경험에서 비롯된 가정이었음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다. 수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좀 더 수학적으로 아름답게?(수학의 기준에 맞추어 조화롭게) 살아가는 혹은 바꿔나가는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잘 정리한 글들로 볼 수 있겠다.
다소 냉정하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를 인용하자면, "미국내 방위조직이 예로부터 정확히 이해했던 한 가지 사실은 어떤 나라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상대 나라보다 좀 더 용감해서, 좀 더 자유로워서, 혹은 신의 총애를 약간 더 받아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보통은 비행기가 5% 덜 추격되는 쪽, 연료를 5% 덜 쓰는 쪽, 혹은 보병들에게 95%의 비용으로 5% 더 많은 영양을 지급하는 쪽이 이긴다. 이런 이야기는 전쟁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실제 전쟁은 이런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상당히 멋지다고 느껴졌다. 주제가 전쟁인게 꺼림직하지만... 수학이 어디에 쓰이는가? 라는 질문, 중고등학교때 나름 수학을 좋아하는 편이었던 나에게도, 막연히 나중에 어디에나 보편적으로 쓰이고 배경 지식으로, 지적 능력으로 기능하게 될꺼야라는 식의 선생님이나 지인들의 말을 막연히 믿으면 살았던 것, 그리고 지금도 거기에서 별로 달라지지 않았던 것을 돌이켜 보면, 이런 식의 명확한 사례 제시는 꽤나 도움이 된다. 저자 스스로도 이같은 막연한 전망의 사례를 이야기한 바도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실용적인 정책과 철학에 대한 호감을 가지면서, 이같은 사례는 웬지 더 피부에 와 닿는 듯한 생각이 든다. 현재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 수년간 B/C에 대해 고민하던 일을 하다가, 지금 당장 국제관계... 라는 모호한 업무를 담당하는 시점에, 여전히 Cost Recovery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고려하고 싶은 시점에서... 이런 계산을 하려고 한다는 것, 도전적인 자세임에 틀림없다. 무지 어렵겠지만서두...
하지만 저자는 숫자를 객관적인 척 하면서 거론하는 것의 위험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가장 기가막혔던 사례가 다음이었다. "2001년 12월 미하원은 일련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인 26명이 사망한 것은 <미국에 적용한다면 1,200명이 죽은 것과 같다>고 말했다. 뉴트 깅그리치는 2006년에 <이스라엘에서 8명이 죽은 것은 인구 규모를 감안할 때 미국인 약 500명이 죽는 것과 같음을 명심하자> 고 말했다." 아... 이 뭔 개소리냐? 저자는 이런 선형적인 비유의 몰상식함을 수학적으로 분석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선형적인 무리한 비유의 사례를 여럿 언급하면서, 내가 무척 통쾌해했던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한다. "스티븐 핑커는 인류 역사 내내 세상의 폭력성이 꾸준히 줄었다고 주장한 최근 베스트셀러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비슷한 논점을 강조했다. 20세기는 강대국 정치에 휘말려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시기로 악명이 높다." 뭔 얘기냐면, 30년 전쟁에서는 세계 인구중 100명에 1명을 죽인 꼴인데, 현재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양차 세계대전의 사망자를 더한 것보다 많은 7000만명이 죽을 것이다. ...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냐? 핑커의 '빈서판'에서 거론되었던 각종 통계들에 대해 상당부분 불만과 의구심을 가지던 나에게, 강력한 논리적인 비판의 근거를 제시하는 부분으로 보였다. 그래, 많은 지성인, 집단, 국가들이 이와 같은 통계 적용의 오류를, 통계 수치의 과대해석의 오류를 저지르는 것은 뭐... 그냥 한계라고 볼 수 있겠다. 이상적으로 그냥 한명 한명의 목숨에 대해 동일하게 볼 수만도 없겠지만(흑), 그렇다고 통계수치를 기계적으로 여기저기 적용하는 것, 그것의 오류를 수학자가 이야할 줄이야...
저자의 주장은 수학자가 비록(?) '엄밀함'을 추구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 각종 제도나 정책들이 '엄밀하려고 하는, 혹은 엄밀한 척 하는 모습'의 한계를 좀 더 잘 지적할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다 보니 정책의 비용과 재정의 낭비에 대해서 이런 발칙하고도 참신한 이야기를 하는게 아닌가 싶다. "우리가 ... 물어야 할 질문은 <왜 우리는 납세자의 돈을 낭비하는가?>가 아니라 <납세자들의 돈을 얼마나 낭비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이다. 스티글러의 말을 빌리자면, 정부가 낭비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부의 낭비를 막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참 현실타협적인 이야기라 하겠다. 그러나 다양한 개인과 집단이 선호하는 정책과 수반되는 비용, 그 총합을 조정하는 입장에서 '낭비'라는 것이 어떻게 수학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가를 고려할 때, 그것을 없앤다는 개념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차분히 논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무수히 많은 방향으로 뻗쳐있는 벡터들을 한 방향으로 정향할 수 있는 선형식을 만든다는 것과 같은 불가능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면 왜 이렇게 현실은 복잡하고 비선형적인가? 꼭 그에 대한 답은 아니겠으나, "세상에는 알려진 미지의 것과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것이 있으며 두 가지는 다르게 다뤄져야 한다"는 저자의 인용구에서 부분적으로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세계의 동력학이라는게 있다면, 아직 그 작용과 운동방식에 대한 모든 요소들 중에도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 요소들 사이의 비선형적 관계(3체 운동과 같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들이 왜 알 수 없는 것인지를 명확히 정리하는 것이 수학의 일일까?.... 저자가 예시를 하는 빨간공과 검은공 게임의 예를 들자면, "결정 이론 문헌에는 전자에 해당하는 미지를 위험이라고 부르고 후자는 불확실성이라고 부른다. 위험한 전략은 수치적으로 분석할 수 있지만, 불확실한 전략은 엘즈버그가 보여 주었듯이 형식 수학의 분석 범위를 넘어선다."라고 한다. 불확실함의 정도를 수학적으로 범위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 전략은 수학의 범주 밖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 사례에서 날씨/기후 예측에 대한 생각이 들더라. 아주 거칠게 날씨정보에 대한 관측은 위험의 문제이고, 예측은 불확실의 문제이며, 기상학은 그 불확실함의 범위를 파악하고, 그 범위의 한계까지 구현하는 것이다. 파악은 순수학문의 범주, 구현은 응용학문의 범주... 이렇게. 그리고 현실은 규정된 불확실험의 범위가 나름 학문의 발전에 따라 조금씩 변동하고(줄어들고) 있는 상태로 인해, 예측이 틀렸을 경우에 대한 설명으로 불확실함이라는 근거/변명가 대중들의 동감을 얻기가 어렵고, 동시에 인간사회의 범주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 그러니까 다른 차원의 위기의 범주에서 파생된 기후변화가 그 불확실함의 범위를 또한 변동시키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 새로운 차원의 불확실함의 범위를 분석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라까? ... 스스로는 만족스러운 규정인데, 누군가를 설득할 자신은 아직까지 없네. 쩝~
그러한 복잡함과 불확실함의 세상에서, 다시금 통계의 의미와 사례를 되집는 부분에서 저자는 우생학의 골턴이 가졌던 합리성과 불합리함을 언급한다. 트렌드의 변화...평균화의 사례를 들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수학자들의 까칠한(?) 성격을 보여주는 아주 재밌는 말을 인용하는데... "그 책의 논지는, 정확하게 해석할 경우, 본질적으로 시시한 사실에 불과합니다. - 그런 수학적 결론을 <증명>하기 위해서 무수한 사업 부문들의 수익과 지출비에 대해 길고 값비싼 수치 연구를 수행한다는 것은 구구단을 중명하기 위해서 코끼리들을 행과 열로 배열해 보고 그 밖에도 무수한 종류의 동물들을 동원해서 똑같은 실험을 반복해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작업은 어쩌면 재미있을지 모르고 교육적 가치도 조금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동물학에도 수학에도 전혀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캬~! 어떤 사례에 대한 이야기냐면, 사업자들의 수치를 분석해보니, 속된말로 대를 이어가는 부자들이 매우 드물더라는 사실을 확인한 사람이(산수에는 강했지만 수학에 약한), 이게 대단한 수학의 법칙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에 대한 수학자의 비평이란다. 골턴은 명확히 이해했던, 그래서 그 이해를 바탕으로 회귀분석을 개발(?)하기까지 했었던 데이터의 회귀 특성이라는 당연한 사실인데 말이다. 재밌는 부분이 여럿 있었으나, 특히 이 까칠한 유머인용 부분에선 웃음이 터져나오더라.
끄트머리에는 불확실한 사실에 대해 불확실한 정도를 명시하면서 의견을 제시하는 것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주로 기술한 것 같다. "권고가 틀릴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 아무 권고도 내지 않는 것은 확실히 패하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조지 스티글러가 비행기를 좀 더 놓치라고 조언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확실히 옳다고 자신할 수 있을 때만 조언을 주는 것은 조언을 충분히 주지 않는 것이다." 이 문구가 있던 챕터의 소제목은 '틀리는 것이 늘 틀린 것만은 아니다'였다. 웬지 직장의 기본 입무인 날씨예보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문구라고 본다. 앞에 언급했던 불확실함과 위기에 대한 정리와 연결되기도 하고. 다양한 분석의 결과를 바탕으로 어떠한 조언을 할 때, 무엇보다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는 아님'을 확실히 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수치에 대해서 수학적인 입장들은 가능한 명확히 나와야한다. 불확실한 정도를 명시하면서. 끄트머리에 미국 선거에 대해서 그런 입장을 취한 네이트 실버의 행적을 저자는 높게 평가한다. 수학적으로 옳은 분석/권고의 방식이라 하면서.
선거/선택의 문제에 대해 점균류와 고어-부시간의 대결이 있었던 플로리다의 상황을 설명한 부분도 재미있었는데... 어쨌든 결론은 확실하지 않은 만큼을 가능한 명확히 설명하라는 주문으로 반복할 수 있겠다. 그것이 (수학적) 지성의 올바른 방식이 아닐까 하는 가정하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 올바른 지성은 스스로 항상 다음과 같은 성찰이 요구되는 것이리라. "피츠제럴드가 표사했던 <일류지성>의 조건은 곧 그가 자기 자신의 지성을 일류라고 부를 수없다는 뜻이었다." 다만, 선거의 경우... 정치의 경우... 그런 정보가 제공되더라도 대중들이 크게 바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을 듯 하다. "요즘 정치학 문헌에서 상식이 되어 버린 그 사실이란, 부동표들이 결정을 못 내리는 것은 정치적 신조의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책 양 후보자의 장점을 신중하게 저울질하기 때문이 아니라 대체로 신경을 거의 안 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라는 인용에서 예시되듯이, 선택의 확실함을 모호하게 만드는데 기여하는 부동표의 경우, 선택자의 무관심/무지가 주 원인인데.... 상세한 정보가 도움이 될런지 회의적이니까. 스스로 일류지성이라고 말을 못하는 성찰을 유지해야 하지만, 이류, 삼류지성의 순수하고 무고한 다수의 부동표~!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또 다른 단면일테니까.
마지막으로 저자가 지도교수에게 들었다는 조언을 언급하고 싶다. "어떤 정리를 증명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면 낮에는 그것을 증명하려 애쓰고 밤에는 반증하려 애써 보라는 것이다." 평범한 생활철학 같기도 한, 하지만 매우 수학적인 이 조언을 열심히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