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적으로 후보 단일화에 합의” “북한의 전격적인 핵실험 강행” 등 ‘전격적’이란 단어는 우리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바로 1940년 독일군의 프랑스 침공(서부전역)이다. 독일군은 육군과 공군을 통합해 작전을 신속하게 진행하여 아군보다 전력이 강한 연합군을 상대로 크게 승리하였다. 서방국가들은 이 예상치 못한 결과에 크게 당황했고 그 파장은 일파만파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 전투는 ‘Blitzkrieg’(독일어로 ‘전격전’이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곧 세계전쟁사에 혁신적인 전역으로 기록되었다.
이 책은 패배가 명백해 보였던 독일군이 승리하게 된 과정과, ‘전설’로 기록된 이 극적인 전투의 실상을 방대한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상세하고 치밀하게 그려낸 군사학서이자 역사학서이다.
이 책의 출간 의의
이 책은 1995년 독일에서 독일연방군 군사사연구소의 ‘2차대전기 작전’ 시리즈 중 하나로 출간되었다. 그 후 각국 군사학계와 출판계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미국, 프랑스, 일본 등에서 번역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군사전문가와 마니아들 사이에서 원서로 읽혀 왔다. 지은이 칼 하인츠 프리저는 독일연방군 육군대령이자 정치학과 역사학을 전공한 박사로서 현재 독일연방군 군사사연구소 연구원이다. 이 같은 그의 경력처럼, 이 책은 군사학서이자 동시에 역사학서로서도 학문적 엄밀함을 갖추고 있다. 이제 한국어판이 번역되어 우리나라 독자들도 독일군과 연합군의 구체적인 전략·전술과 배경 설명 등을 통해 서부전역의 진정한 실상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1940년 독일군 승리의 진실
그동안 ‘전격전’은 ‘독일군이 치밀하고 완전무결한 계획과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전쟁기법을 통해 서부전역에서 대승리를 이루어낸 전투’로 알려져 왔다. 이와 관련하여 전격전을 논리적으로 해석하고 정리한 수많은 이론들이 소개되어 왔다. 또 전격전이 히틀러의 치밀한 계획하에 진행되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과연 서부전역은 히틀러와 독일군에 의해 철저히 계획된 전쟁이었을까? 지은이는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군사기록보관소에 소장된 문헌들과 관련 인물들과의 인터뷰, 개인 기록물, 독일·영국·미국·프랑스 등의 서적과 논문, 잡지 등 전격전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을 섭렵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전격전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시간적 흐름에 따라 치밀하고도 총체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진실에 한걸음 다가섰다.
독일군은 왜 승리를 눈앞에 두고 진격을 멈췄는가
1940년의 서부전역은 독일군의 승리로 기억되지만 한편으로 미완의 승리였다.
기갑부대와 공군을 효과적으로 운용하며 독일군은 연합군에게 엄청난 심리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연합군은 독일군의 전차와 슈투카의 굉음 소리만 들어도 혼비백산할 지경이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독일군은 연합군을 완전히 포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왜 히틀러는 승리를 눈앞에 두고 진격을 멈추었을까? 지은이가 다다른 결론은 그동안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론들과 다르다. 즉, 전격전은 히틀러의 무책임한 전쟁도발에 맞닥뜨린 독일군 지휘부가 절망적인 전략적 상황을 타개하려던 자포자기의 작전술적 행동이었을 뿐이다.
전략·전술적 전문성과 역사적 사실의 결합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단순히 군사학적 내용만 다루지 않고, 어떤 결과가 있기까지의 과정과 그 배경을 상세히 묘사했다는 것이다. 애초 전쟁에 반대했던 독일군 지휘부와 히틀러의 갈등, 전격전의 핵심 작전인 ‘지헬슈니트’(낫질) 계획을 군 지휘부 몰래 히틀러가 보고받은 일, 이 계획을 두고 대립한 만슈타인과 할더 등 독일군 지휘부 내의 갈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계획이 핵심 작전으로 채택되기까지의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또한 히틀러와 육군원수 브라우히치 대장 간의 기 싸움, 만슈타인과 구데리안의 극적인 만남과 작전을 둘러싸고 펼쳐진 그들과 룬트슈테트, 클라이스트와의 논쟁 등은 당시 독일 육군 내부의 군사작전에 대한 시각과 논의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작전으로써만 기억되던 독일 장군들의 독특한 개성을 느낄 수 있는 점은 이 책이 독자들에게 주는 덤이다.
지은이는 경력에 걸맞게 독일군과 연합군의 전략과 전술, 그러한 전략과 전술이 나오기까지의 배경 등을 전문적 시각에서 설명했다. 1914년 슐리펜 계획과 1940년 지헬슈니트 계획을 비교하는 대목, 양군의 병력을 비교한 그림과 표, 작전상황을 세밀하게 묘사한 지도와 사진 등은 지은이의 군사학적 지식에 대한 이해와 그 깊이를 잘 보여준다. 이 같은 상세한 자료들을 통해 독자들은 마치 아르덴과 스당, 됭케르크에 직접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특히 본문 곳곳에 실린 컬러 지도는 당시 독일군과 연합군의 작전상황도를 직접 보는 듯하다.
긴박감 넘치는 서술과 생생한 이야기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전문적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긴장감 넘치는 서술이다. 책의 내용이 시간적 흐름을 따라가는 데다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더해져 긴박하게 진행되던 전쟁 경과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프랑스군과 독일군의 부대 운용 체계에 대한 서술은 매우 흥미롭다. 당시 프랑스군은 전차의 연료를 정해진 주유소에서 채워야 했지만, 독일군은 이동구간의 각 지점마다 연료를 가득 채운 드럼통을 두고 이동하면서 연료를 보급 받아 전차의 기동성을 살렸다. 또 프랑스군은 병사가 직접 명령지를 가지고 다니며 명령을 전달했지만, 독일군은 현대적 무전기를 이용해 의사소통을 했다. 독일군이 전차 운전병의 졸음을 쫓기 위해 각성제를 상비했던 일, 롬멜이 무전기가 고장 난 척하며 상부의 명령을 고의로 무시한 일, 안이하게 대처한 지휘관 때문에 지하 벙커에서 고스란히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프랑스 병사들의 비극은 전장의 긴박함과 처참함을 독자들의 가슴속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