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6년 05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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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8쪽 | 390g | 145*210mm |
ISBN13 | 9788954640756 |
ISBN10 | 8954640753 |
발행일 | 2016년 05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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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8쪽 | 390g | 145*210mm |
ISBN13 | 9788954640756 |
ISBN10 | 8954640753 |
너무 한낮의 연애 _007 조중균의 세계 _043 세실리아 _073 반월 _103 고기 _129 개를 기다리는 일 _153 우리가 어느 별에서 _179 보통의 시절 _205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_231 해설 | 강지희(문학평론가) 잔존의 파토스 _261 작가의 말 _285 |
김금희 작가의 단편 <조중균의 세계>에는 마흔이 훌쩍 넘었지만 이렇다 할 직급도 없는 출판사 교정교열 직원 조중균 씨가 나온다. 사무실에서 유령 같은 존재인 그는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해 사람들과 좀처럼 융화되지 못한다. 들릴 듯 말 듯한 인사와 함께 출근하고, 업무 시작 전 국어사전을 펼쳐 읽는 기괴한 취미가 있으며, '지나간 세계'라는 제목의 시를 매일 똑같이 쓴다. 식대 9만 6천 원을 돌려받기 위해 점심을 거르고 한 달간 본부장과 씨름을 벌일 정도로 고집이 세다. 어느 노교수의 책 교정을 맡은 조중균 씨는 노교수의 불만과 필요 이상의 야근을 감수해 가며 작업에 매달린다. 조중균 씨의 고집 때문에 노교수와 그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고, 이후 그는 결국 직무 유기, 태만이라는 이유로 해고된다.
융통성 없고 특이하다는 이유로 이른바 낙오자, 괴짜라 불리는 이들이 있다. 사회가 규정한 '정상'이라는 가이드라인을 그저 고분고분 잘 따라 주면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그런데 이에 좀처럼 수긍하지 않고 삐걱대며, '정상인'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다수의 심기를 굳이 건드리는 소수가 꼭 있단 말이다. 그들을 향해 다수는 "왜 저래?"라는 불평을 너무도 가볍게 던진다. '나는 저런 사람이 아니라서 다행이야'라며 그들을 남몰래 자기위안의 도구로 삼기도 한다. 인사가 매번 어설픈 조중균 씨를 보고 '사회생활 헛했네, 헛했어'라며 왠지 모를 자신감을 느끼는 화자처럼.
조중균 씨는 소위 '좋게좋게'가 통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눈치를 준다면 식대 9만 6천 원 정도는 그냥 포기하고 점심을 먹으면 될 것을 꼭 몸소 증명까지 해 가며 돌려받고야 만다. 대학 시절엔 시키는 대로 좋게좋게 이름만 쓰면 될 시험에서 끝까지 이름을 쓰지 않아 결국 유급당해 군대에 다녀왔다. 좋게좋게 하고 넘기라는 부장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집을 부린 대가로 돌아온 건 근무 태만이라는 낙인, 그리고 해고였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고수하는 조중균 씨는 허먼 멜빌의 단편 <필경사 바틀비>의 바틀비를 떠올리게 한다. 월스트리트 한복판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말만 반복하며 조용한 싸움을 하다 결국 삶을 저버린 기묘한 남자. "왜 저래?"라는 말이 절로 나오려다가도, 생각해 보면 그들의 행동에 구구절절한 이유가 붙어야 할 의무는 없다. 애초에 제3자에 불과한 나라는 불청객을 이해시켜야 하는 의무는 더더욱 없다. 조중균 씨의 세계에선 그냥 그게 옳은 것이었고, 바틀비의 세계에선 그저 '안 하는 편을 택하는 것'이 최선이었을 뿐이다.
대학 시절 조중균 씨가 시험지에 이름 대신 남긴 시 '지나간 세계'는 연단에서, 광장에서, 거리에서 대대적으로 읽히며 데모에 불을 지피곤 했다. 그가 시로써 보여 준 조용하면서도 우직한 면모는 사실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달라진 건 그를 둘러싼 사회이자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사회에 맞춰 빨리빨리 옷을 갈아입은 다수는 '정상인'으로 불릴 수 있었고, 거의 유일하게 변하지 않았던 조중균 씨의 세계는 서글프게도 제목 그대로 '지나간 세계'가 되었다.
결국 회사는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조중균 씨의 존재는 그렇게 서서히 증발할 것이다. 실직 후 조중균 씨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바틀비의 마지막만큼은 닮지 않았기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버텨 낸 끝에 그의 세계가 적어도 그의 안에선 온전했기를 바라 본다. 회사에서 살아남은 화자가 간신히 기억하는 조중균 씨의 세계는 여전히 잔존하며 이따금씩 화자를 찾아와 흔들어 놓을 것이다. 타인의 기분을 위해 상한 떡을 소리도 내지 않고 묵묵히 씹던, "나는 나태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적힌 수첩을 매일같이 조용히 내밀던, 그때 그 모습으로 말이다.
2021.03
2022.08월의 두 번째
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작가는 글을 쓰는 일을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 하루,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일들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고 있을 다양한 감정들.
그런 것들 중 공감하고 싶거나 이야기 해 주고 싶은 소재를 찾아 인물을 통해 극적인 서사로 간접적인 대화를 시도한다.
그 대화에 응하고 그를 벗 삼을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다.
김금희 작가는 그렇게 알게 되고 벗이 되고픈, 최근에 알게 된 작가이다.
일상에 널브러져 있는 소소한 것들, 어찌보면 관심 밖이었을 수 있는 그 널브러짐이 정리가 되어 다시 보인다고나할까...
그런 느낌이 소설들이었다.
'시선은 일방이어야 하지 교환되면 안 되었다. 교환되면 무언가가 남으니까 남은 자리에는 뭔가가 생기니까, 자라니까, 있는 것은 있는 것대로 무게감을 지니고 실제가 되니까...('너무 한낮의 연애'中에서 - p. 28)'
'안녕이라는 말도 사랑했니 하는 말도,구해줘라는 말도 지웠다. 그리도 그렇게 지우고 나니 양희의 대본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고 어떤 것은 어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일을 뿐이라는 생각이 남았다. 하지만 그건 실제일까. ('아주 한낮의 연애'中에서 -p. 42)'
'동결이라는 상태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내 안의 모든 것이 아주 차가워져서 살이 붙고 피가 붙고 똥도 붙고 눈물도 곁붙어서 차가운 것들이 견딜 수 없게 차가워서 붙고 붙다가 더는 붙을 수 없어 멈춰버린 상태. 가장 저점에서 엉기고 마는 상태. 그런 건 나쁠까,좋을까. 아니면 나쁘지도 좋지도 않을까.('시실리아'中에서-p. 86)'
그건 그녀가 붙여줄 수 있는 최선의 이름이었는데, 뽀삐,바둑이, 복슬이,메리 같은 흔한 이름은 개를 담아내지 못했다. 오직 개라는 이름만이, 특징적인 형상과 품성을 암시하지 않는 그 불친절하고 표정 없는 단어만이 개에게는 어울렸다. ('개를 기다리는 일' 中에서-p. 156)'
'그렇게 몽상하다 멈추고 몽상하고 몽상하다보면 그런 일들이 다 맨숭맨숭해지면서 그냥 그런 보통의 일이 된다. 샐러리맨도 보통이고 마귀도 보통이다. 인간 말종도 원수도 가엾은 단독자도 다 보통의 것, 그냥 심상한 것, 아무렇지 않은 것, 잊으면 그만인 것, 거기서 거기인 것들이다. ('보통의 시절'中에서- p.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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