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08년 02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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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72쪽 | 508g | 148*210*30mm |
ISBN13 | 9788984312555 |
ISBN10 | 898431255X |
출간일 | 2008년 02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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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72쪽 | 508g | 148*210*30mm |
ISBN13 | 9788984312555 |
ISBN10 | 898431255X |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는 저자의 ‘노동과 꿈’ 홈페이지에 올린 글 가운데 엄선한 것과 그동안 신문과 잡지에 기고했던 글들을 묶은 것이다. 여기 실린 대부분의 글들은 자기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과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족에게 전해주기 위해 쓰기 시작한 것이 단초를 이루었다. 저자는 “스스로의 눈높이를 드러내는 것이어서,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고 책에서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노동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
머리말 추천의 글 1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검은 장갑 | 자장면과 볶음밥 | 어린이집 선생님 | 썩을 놈의 세상 | 참치잡이 외항 선원 | 할머니 이야기 | 43번지의 형제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나의 이상형 | 그래도 좋은 곳에 | 피눈물을 뿌리며 | 그 이름, 세 글자 | 고문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 2부 죽는다 해도 지지는 않는다 골리앗 노동자 | 대천 철도 노동자 | 예쁜 옷과 고운 화장 | 약속은 지킨다 | 단벌 신사 | ‘58년 개띠’ | 눈물의 생리휴가 | 역사의 기관차 | 무노동 무임금을 자본가에게 | 밑져야 본전 | 희망을 키워갈 때 | 노동조합을 만들고 달라진 것 | 노동조합의 영광을 가리는 길 | 할머니 환경 미화원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3부 옷깃을 여미며 막차에서 만난 사람 | 목포행 고속버스 | ‘하종강의 노동 시대’ | 옷깃을 여미며 | 죽음 곁에서 | 무섭도록 성실한 | 노동 대학에 가다 | 안동에서 만난 아줌마 | 의사를 찾습니다 | 완주 기행 | 담배에 관한 추억 | 그의 손이 한 번 스치면 | 내 친구의 별명 | 주례를 서다 4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햄스터에게 배우다 |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 스포츠 기자와 이라크 전쟁 | 어느 편에 설 것인가? | 그들도 우리처럼 | <빌리 엘리어트> 와 <인랑> | 살아남은 후배에게 | 노동절에 생각한다 | ‘학벌’이란 | 톨스토이 예술론 5부 살며 사랑하며 첫눈 | 가족 신문 | 14년 만에 양복을 입다 | 아들과의 전쟁 | 시험 성적 |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 | 찹쌀떡 | 돈 봉투와 휴지 한 상자 | 박○스와 떡과 편지 | 엄마의 생일 선물 | 이대로 살 수 없다! | 아내에 관한 추억 | 광복절과 운동화 6부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노동문제, 좀 제대로 가르치자 | 제발 열등감이라도 좀 느끼며 살자 | 공무원 노조 탄압하는 정부의 생떼 | 여성 노동자 강주룡과 KTX 여승무원 | 대학생들의 시험 답안지 | 은행 지점장의 전화 | 병원 파업과 의료 공공성의 관계 | 노동자 권리와 역사의 순리 | 분단이 빼앗은 노동자 권리 | 전태일 정신을 아십니까? | 노동조합은 ‘공공의 적’이 아니다 | 분노를 억누를 줄 아는 지혜 | 30년이 되도록 이뤄지지 않는 꿈 | 이주노동자들의 작은 승리, 큰 슬픔 | 어느 택시 기사와 나눈 대화 | 언제 적 ‘나체 시위’인가 | 부자 정치인의 계급의식 | 민주화의 진짜 주역들은 |
수 십 년을 노동상담을 하면서 척박한 이 땅에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저자가 그 길에서 만난 수 많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들 역시 갖은 억압과 시련에 굴하지 않고 희망의 싹을 틔우기 위해 자신과 혹은 세상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세상을 온통 뒤덮어 버린 자본의 시대에 그 두터운 벽을 뚫고 희망의 빛을 비추기 위해 온 몸으로 항거하는 사람들, 아마 제 주변에도 있을 터입니다. 아마 그 희망이라는 건, 제가 그들과 함께 손을 잡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생을 한우물만 파면서 사는 게 얼마나 힘겨운지, 그것도 노동자들의 편에서 거대한 자본과 맞서는 일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양심이 혹은 신념이 시키는 일을 묵묵히 걸어가는 분들이 있어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희망'이라는 걸 걸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측컨대 우리가 이 땅에서 진정 희망이라는 싹을 큰 나무로 키워내는 일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거나 영영 불가능한 상태인 '꿈'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자본은 점점 거대해지면서 교묘해지고 있는데, 그에 맞설 수 있는 힘은 미약할 뿐더러 그나마 분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이 자본 위에 서서 노동의 신성함, 땀의 소중함, 조화로운 삶을 주장할 그 날은 가능할까요?
불가능해 보이지만 희망을 놓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게 삶의 본질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 작은 희망마저 품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절망의 늪은 너무도 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길을 걸어가는 분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하며, 연대의 손을 뻗습니다.
비가 내렸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때는 여름이었던 것 같다. 허름한 건물에 적지 않은 인원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으니, 모두가 하종강 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서점에 들러 부랴부랴 저서를 구입한 나도 조금 늦게나마 그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던 게 벌써 2년도 더 전의 일이다. 저자의 사인은 이미 오래 전 잉크가 말랐다. 당시 대학 졸업 후 마땅한 직업을 갖지 못한 상태였던 나는 이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고도 남을 시간, 세상 역시 변화했을 듯한데 책을 읽으며 난 씁쓸한 미소만을 지을 뿐이었다. 어쩜 이리도 달라진 게 없을까? 내 자신을 향해 이와 같은 질문을 내뱉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질 않는다. 불과 2년 사이에 모든 게 달라져서 이 책이 구닥다리 마냥 느껴진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싶은데,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희망과는 어느 정도 평행선을 그은 채 달리고 있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희망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조금은 든다. 수치상으로는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썩 신뢰가 가지 않는 경제 회복에 관한 소식들을 듣는다. 청년층의 대다수가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직장을 잡지 못해 도피마냥 대학 울타리 내에 머무르는 현실을 잘 알면서도 희망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회의적인 시선이 자꾸만 고개를 치켜든다. 빨리 세상의 법칙을 깨닫고 이에 편입했더라면 좀더 편한 삶을 살 수도 있을 텐데, 왜 저자처럼 반대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개인적으로 노동자를 만나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노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을 듯하다. 나 역시도 그러하거니와 그런 입장을 피력하는 이들의 머릿속엔 노동자라 하였을 때 전통적인 육체노동의 이미지가 가득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로 분류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싶다. 산업 구조가 바뀌었기에, 예전에 비한다면 정말 많은 인원이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하고 있기에, 우리의 고정관념에 의하자면 이 땅에서 노동자로 불릴 수 있는 이는 아주 많지 않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점이 하나 있으니, 스스로 경영을 하고 있는 쪽이거나 아예 노동치 않는 쪽이 아니라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 의해 고용되어 있는 상태라는 점이다. 어떤 종류의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군가에의해 고용되어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는 게 중요하다. 내 몸과 정신을 움직여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모두는 노동자이다. 가시적인 폭력이, 직접적인 해고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고 사고치 않는, 그렇지만 막상 권리의 침해가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항하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대변해 줄 리는 없기에,... 정부에서는 그리고 언론에서는 이기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체제를 뒤흔드는 범법 행위일 뿐이다 매도하지만, 뭉치는 것 이상 효과적인 것도 없고, 그 외의 방법도 없기에 교사도, 경찰도, 공무원도 그토록 노동조합을 갈망했던 게 아닐까 싶다.
짧은 이야기들로부터 사람 사는 냄새를 맡았다. 현학적인 이론이 아니어서, 머리를 아프게 하는 복잡함이 없어서 좋았다. 서로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 안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중요한 시사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진리였다. 지금 당장에는 기기로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비용 면에서 더 저렴하게 먹힌다며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남을 외면하는 행동은 머지않은 훗날 타인에 의한 외면을 낳을 뿐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철통과도 같이 지켜야 하는 원칙, 인간을 최우선에 두고 사고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역사는 이 원칙에 충실했노라는 저자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소위 피지배층으로 분류되었던 이들의 자유가 점차 확대되는 방향으로 인류의 역사는 변화해왔다. 예외도 있지 않겠느냐 묻는 이들도 있겠지만, 굳이 애써 회의적인 시선부터 가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희망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린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하종강 지음/ 한겨레 출판
하종강 선생님의 책은 내게 부끄러움과 삶의 의지 같은 것을
안겨 주었다.
어떤 삶이 내 것인지를, 내가 생각하고 있던 삶의 방향이
그르지 않단 걸 깨닫게 했다.
내 마음 속의 소리들과 외적인 요구*형상들이
자꾸만 부딪혀 덜커덩거리고 있는 25살 내게
그래도 버리지 말아야할 것을 이 책은 가르치고 있다.
하종강 선생님처럼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단숨한 신념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허나, 흉내정도는, 그와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땅히그렇게 해야할 것들에 대해 너무나도 무심했던
나를 또 발견했다.
그리고 매몰되지 말아야한다 다짐했다.
인간에 대한 예의로, 내 자신에 대한 예의로
내가 놓지 말아야 할 것들을 고민했다.
다시금 내 안의 불씨가 꺼질때 쯤,
다시 이 택을 펼쳐보리라 마음 먹는다.
마땅한 것들을 잊고 사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겠다
마음 먹는다.